102화
학살당한 민간인 시체가 도처에 즐비한 거주지구 한복판. 아까까지만 해도 변방도시 새벽의 편안한 적막이 감돌던 이곳은 지옥도가 된지 오래였고.
나와 설백은 그 한 가운데서 대치한 채로 말없이 서로를 쳐다봤다.
“정용님, 죄송해요. 말씀을 어겨버렸어요.”
별안간 설백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푹 수그렸다.
나는 뇌정지가 온 머리를 어떻게든 수리해 나갔다. 그러자 가장 먼저 드는 것은 당연히 의문이었다.
“… 그게 무슨 소리야. 뭐가 미안하다는 건데?”
“정용님은 가만히 있으라고 하셨지만… 저, 제논씨에게 부탁해서 정용님이 있는 곳으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랬다는군.
그래. 일단 설백이 어떻게 여기 있는지는 해명되었다. 이제 더 큰 문제가 남아있었다.
나는 설백의 어깨를 붙들었다. 정신적으로 여유가 없으니, 아마 꽤 세게 잡았을 거다. 그녀의 얼굴이 살짝 찌푸려진 게 증거다.
“왜? 대체 왜 온 건데.”
“그야 당연히…! 저, 정용님 혼자만 싸우게 둘 수는 없으니까요!”
이런. 소년만화 단골 클리셰가 여기서 등장한다고?
나는 그럼 코를 쓱 문지르며 ‘젠장… 믿고 있었다구!’ 하면 되냐?
‘아니. 그게 아니지 옘병오라질.’
믿고 있었다구는 얼어 뒤질. 설백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이 상황이 이해가 안 되는 건데.
나는 도저히 머리가 못 따라간 나머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분명 거기서 대기해달라고 했잖아. 내 말을 잘못 이해한 건가?”
“아뇨. 제대로 이해했어요. 하지만…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대체 왜 그럴 수가 없냐니까?”
“왜긴요! 지금 정용님 몸 상태를 보세요!!”
설백이 순간 언성을 높이며 내 양 팔뚝을 붙잡았다. 그리고 보란 듯이 내 눈앞으로 내밀었다.
‘이런.’
왼팔이 가제트 형사마냥 덜렁거린다. 뼈까지 잘려버려서, 조금 남은 근육에 의지해 간신히 붙어만 있는 꼴이다.
꽤 그로테스크하다. 반박할 말이 궁색하다.
“이렇게… 만신창이가 될 때까지 싸우고 있는데… 저는 가만히 앉아서 구경만 하라고요?!”
사실 팔만 문제도 아니었다. 목에도 꽤 깊은 상처가 나서 셔츠가 시뻘겋게 젖어 있었고. 상체에 구멍이 세 개 정도 뚫렸다. 오른쪽 다리는 이미 감각이 없어서 질질 끌고 다니는 상태다.
몸이 이지경이 됐는데도 아직 어슬렁거릴 수 있다니. 용사 지원 시스템의 대단함을 새삼 느낀다. 체력치를 잔뜩 높여놓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음. 생각해보니 그러네.’
그래. 쟤 말이 옳다.
이런 처참한 꼬라지가 된 가족, 친구, 지인이 있다면 나도 아마 저렇게 행동할 것이다. 지금 상황이 이해가 안 되는 건 그녀가 이상하기 때문이 아니다.
이상한 건… 놀라울 정도로 아무 감상도 안 드는 내쪽이다.
내가 멍청히 생각하고 있자니 덥석, 설백이 바짝 다가와 내 몸에 양팔을 둘렀다.
당황할 틈도 없이, 내 품에 얼굴을 묻은 설백이 웅얼거리며 말했다.
“어떻게 그래요. 사람이 어떻게 그래요! 저를… 저한테, 대체 얼마나 빚을 지우시는 거예요.”
“빚이라니….”
“처음에 저를 구해주셨던 빚도 어떻게든 갚고 싶어서 노력했는데… 대체 왜, 저를 위해 이렇게까지 하시는 건가요…?”
뭔 빚 같은 소리. 나는 그럴 생각따윈 없었다. 이건 내가 하고 싶어서 부리는 고집이다.
난 인생 흥미본위로 사는 사람이다. 내가 괜히 자타공인 호구겠냐. 애초에 인간관계 수지타산 따져가며 살지를 못한다.
‘그걸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다고?’
빚을 갚고 싶다니. 지금까지 그런 표현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잖아. 설마 했었나?
… 아니. 안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확실하다. 저런 말을 했다면 내가 잊어버릴 리가 없다. 들었다 해도 그 자리에서 바로 정정해줬을 거다.
안 그래도 혼란스러운 머리가 뒤죽박죽이 된다. 나는 간신히 목소리를 짜냈다.
“당장 도망쳐. 중앙 시가지 쪽을 거쳐서 서부 관문으로 나가. 거긴 내가 다 정리했으니까… 지금은 안전할 거야. 여긴 아직 위험해.”
“… 하지만!”
“말 했잖아. 나 불사신이라니까. 상처는 침 바르면 나아.”
물론 뼈 잘린 건 침 묻혀도 안 붙습니다. 출혈 쇼크 오기 싫으면 즉시 병원 갑시다.
애석하게도 설백 역시 그 정돈 아는지, 곧장 아란을 내게 붙였다. 빠르게 활력이 돌아오며 몸이 치유되어 간다. 가벼워지는 몸과 달리 마음은 천근만근 무거워졌다.
“안 돼요. 이렇게 다치고서 어떻게 혼자 더 싸우겠다는 건가요. 정 싸우시겠다면, 저도 함께 싸우게 해주세요.”
“아니 그게 안 된다니까? 난 죽어도 괜찮지만 넌 아니란 말이야.”
“주, 죽었다 살아나는 게 사실이라 해도. 다치는 게 고통스럽지 않은 건 아니잖아요!”
“…… 사실이라 해도?”
나는 순간 눈썹을 꿈틀거렸다. 순간 통제가 안 될 정도로 험악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자 설백은 퍼뜩 시선을 피하며 “거, 거짓말이라는 소리가 아니에요.”라고 뒤늦게 첨언했다.
‘안 돼. 시간이 없어.’
곧 불사교도들이 이곳에도 쫙 깔릴 거다. 놈들이 눈치채고 나면 늦는다. 설백을 빨리 돌려보내야 한다.
조급해졌다. 초조해진다. 나는 어금니를 악물었다.
“아무튼 괜찮아. 나 신경쓰지 마. 난 죽어도 돼. 몇 번 말해야 되냐.”
“죽어도 괜찮은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어요!”
“세상에 X발 여기 있다고!! 내가 아니라 썅팔! 너나 걱정하라고!!”
나는 결국 답답한 나머지 고함을 지르고 말았다.
화들짝 놀란 설백이 몸을 움츠린다. 동그랗게 뜨인 그녀의 눈을 보고 나니, 내가 방금 무슨 짓을 한 건가 싶었다.
문득 피로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지금까지 아드레날린이 팽팽 솟아서 잊고 있던, 엄청난 전투의 피로감이었다.
‘아이고야. 거 사람 마음이 제일 어렵다더니. 씨펄.’
나 저렇게 걱정해주는 사람은 이쪽 세상은 물론이고 지구를 뒤져봐도 없을 텐데. 잘하는 짓이다. 자괴감이 한계를 모르고 무럭무럭 용솟음친다.
나는 한숨과 함께 쏟아내듯이 말했다.
“설백. 난 진짜 괜찮아. 그러니까 남들 말고 너부터 걱정해. 지금 누구보다 위험한 건 내가 아니라…!”
나는 이마를 싸매고 말하다 문득 고개를 들었고. 눈을 부릅떴다.
대체 언제부터였을까. 설백의 옷 위로 무언가 돋아나 있었다.
“……. 아?”
가슴팍을 거칠게 꿰뚫고 나온 그것은… 말뚝이었다.
내 팔뚝만큼이나 굵직한 쇠말뚝이 피에 젖은 채 설백의 가슴을 뚫고. 내 눈앞까지 삐져나와 존재감을 발산한다.
―그래. 정용 군. 이렇게나 애틋하게 바라는데 같이 싸우게 해주게.
그리고 설백의 뒤에서 슬금슬금 기어 나오는 시체가 하나.
방금까지 그녀의 주위에 널브러져 있던 평범한 시신이었지만. 나는 그 정체를 알고 있다.
불사교도의 시신… 카사스의 수장이 이번에도 찢어지는 광소를 지으며 킬킬거렸다.
―약속의 평원이라니. 그렇게 멀리 있으면 내가 강림 의식을 시작하기가 힘들어지잖나.
앗. 아아.
나도 모르게 멍청하게 탄성을 흘렸고. 그건 설백도 마찬가지였다.
푸확! 카사스의 수장은 말뚝을 뽑았다. 말뚝에서 생긴 구멍으로 피가 미친 듯이 쏟아졌다. 마치 온몸의 피를 다 빼내려는 듯이. 이상할 정도로 폭포수처럼 핏줄기가 쏟아진다.
설백은 물 흐르듯 이어지는 일련의 광경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쳐다봤다.
“아… 으… 아, 아란…!”
설백은 구멍을 손으로 싸매며 아란을 불렀다. 그러나 아란은 설백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응할 수가 없었다. 카사스의 수장이 굴곡진 양날검으로 아란을 꿰뚫어버린 것이다.
―정용군이 성대하게 분탕을 쳐준 덕분에 아직 목숨이 한참 모자라지만… 강제로 깨울 정도는 모였으니. 아쉬운대로 이쯤에서 시작해야겠구먼.
이상하다. 아란은 분명히 물리공격이 통하지 않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런 내 상념을 박살내듯이, 아란은 공중을 흐느적거리다 이내 바닥으로 엎어졌다.
―키… 키이이이….
죽어가는 단말마와 함께 아란의 모습이 천천히 허물어진다. 어느 순간 휙, 공중으로 사라져 버렸다.
“아… 아, 아란!!”
설백이 아찔한 비명을 지르며 그것에 달려가려는 찰나. 그녀의 몸이 우뚝 멈췄다. 그리고 우드드득! 말뚝이 빠진 자리로, 새빨간 팔뚝 하나가 튀어나왔다.
거대하고 기괴한… 사람인지 짐승인지 모를 뒤틀린 팔이. 피에 젖어 번들거리며 등장했다.
“아… 아… 아아아악!!”
설백의 눈이 뒤집혔다. 눈물을 쏟으며 비명을 질렀다. 고통과 공포가 뒤섞인 절규였다.
우드득, 뿌드득! 그 순간에도 설백의 몸에 뚫린 구멍에서는 무언가가 계속 튀어나오고 있었다. 새빨갛고 기괴한 팔이 나오고. 나머지 한쪽 팔이 나온다. 그 다음엔, 짐승과 인간을 섞어놓은 듯한 새빨간 얼굴이 틈을 비집고 나온다.
“정용님… 도, 도망… 도망가세요!!”
설백이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듯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얼굴을, 튀어나온 새빨간 얼굴이 마주봤다. 순간 설백이 눈을 부릅떴다.
시간이 일순 정지한 느낌을 받았다.
―배… 고파.
새빨간 얼굴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낮은 울림을 토해냈다.
튀어나왔던 팔이 설백의 머리를 붙잡더니. 그대로 뽑아내 버렸다. 우지직. 버둥거리던 그녀의 몸이 일순간 추욱 늘어졌다.
너무 순식간이었다. 나는 탄성 지를 타이밍도 놓쳐버렸다.
―배. 고… 파.
설백의 몸에서 반쯤 튀어나온 그것은 뽑아낸 머리를 그대로 씹어삼켰다.
멍한 정신으로 으저적. 우드득. 사운드만 가득 채워진다. 놈이 기괴한 입을 우물거리는 모습이 슬로우모션처럼 내 눈에 들어왔다.
“…….”
나는 그 광경을, 악몽을 보고 있는 것처럼 손가락 까딱 하나 못한 채 끝까지 지켜봤다.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저건 이길 수 없다. 싸울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도망쳐라. 당장. 전력을 다해서. 뒤도 보지 말고 도망쳐라.
히어로 센스의 경고가 온몸을 부술 듯이 두들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직.
그리고 뒤룩. 괴물의 텅 빈 무저갱 같은 눈이 내쪽으로 돌아왔다.
그것은 몸을 어기적거려 남은 하반신을 모두 꺼내더니. 천천히 내쪽으로 뒤뚱거리며 기어왔다.
그리고 기괴하게 틀어진 입을 벌려, 말했다.
―배… 고… 파.
나는 곧장 흑익을 사용했고.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허겁지겁, 전속력으로 날았다. 최선을 다해 그놈에게서 떨어지려고 안간힘을 썼다.
“으… 으아아악! 아아아아아!!”
나는 미친놈처럼 비명을 지르며 최선을 다해 날았다.
내가 처음 시작했던 지점. 서부 관문 앞쪽을 향해 날았다. 머릿속이 하얗게 칠해져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서부 관문으로 향하는 이유도 딱히 없었다, 그저 귀소본능에 따라 시작지점을 향해 날아갔을 뿐이다.
거의 다 왔다. 이제 조금만 더.
―먹… 을. 거… 야.
퍼어엉!
놈의 기괴한 목소리보다 한 발 빠르게, 칠흑의 광선이 내 몸을 훑고 지나갔다. 하반신을 휩쓸고 밤하늘 저편으로 날아가는 압도적인 빛기둥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한 발 늦게 찾아오는 고통에 다시 입을 벌렸다.
“어… 크, 으어.”
엄청난 작열감. 온몸을 불로 지지는 듯한 통증이 몰려온다.
차라리 빨리 죽었으면.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끔찍한 고통이었다.
콰당탕. 나는 바닥을 몇 번이나 구르며 추락했다. 서부 관문에서 가까운 한 민가의 벽에 처박혀 간신히 몸이 멈췄다.
“그… 아아아.”
낮은 신음을 흘리던 나는, 곧 내 몸상태를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하반신 아래 감각이 없다 싶더니. 감각만 없는 게 아니라 하반신이 뚝 잘려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간당간당하게 붙어 있는 곱창이 길게 뽑혀 바닥에 축 늘어져 있다.
그 쇼킹한 비주얼에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 오우, 야.”
‘끈 떨어진 연이 된 기분’이라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지식이 늘었다. 아닌가? 이렇게 잔인한 뜻은 아니었던가?
그런 실없는 생각을 마지막으로 의식이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훅. 촛불처럼 꺼진다.
* * *
[불사의 마왕, 루스티카 아스모데우스에 의해 회귀 고정축 강제 개변이 시행되었다.]
[불사의 회귀점이 갱신되었다.]
[일시 - 대륙력 1108년, 1월 13일, 02시 44분]
[장소 - 마르크트레스. 약속의 평원 상부지역, 소도시 케른 서부 관문]
얼떨떨하게 패널을 내려보는 내 앞에서, 루시가 천천히 맞닿았던 입술을 떼어냈다.
기분 탓인가. 핏기 없는 루시의 하얀 얼굴이 조금 붉게 물들어 있는 듯했다.
“… 으엥?”
그리고 내 얼굴을 가만히 마주보던 루시는 퍼뜩, 내게서 조금 떨어지며 당황한 듯 물었다.
“용사. 너 왜 우냐?”
“엉?”
“이몸과의 키스가… 그, 그렇게 감동적이었냐? 나, 나까지 부끄러워지는구로!”
멋쩍게 볼을 긁적이는 루시의 알아먹지 못할 말들. 나는 고개를 갸웃 꺾으며, 눈 주위를 손으로 스윽 훑었다. 그러자 웬걸. 축축한 물기가 느껴졌다.
나는 울고 있었다. 그것도 봇물 터진 양 펑펑 울고 있다.
“…….”
와. 양산형 갓세계물 엔딩에나 나올 대사를 진지하게 내뱉을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어쨌든 나는 눈을 부비적거리며 중얼거렸다.
“어라. 나… 어째서 눈물이….”
막상 이 상황이 닥치니 저절로 나오는 멘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