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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417413번째 소울라이크 용사-101화 (77/280)

101화 맹목의 독

‘모르겠다. 될 대로 돼라.’

상황이 요지경이 되자, 이번에도 가장 먼저 머릿속에 들어찬 건 자포자기였다.

하지만 이번 생의 자포자기는 목숨까지 내려놓았던 전생의 그것과는 방향성이 달랐다. 완전히 180도 달랐다.

‘남은 스킬 포인트, 미미르의 눈에 올인.’

현재 내 레벨은 168. 전생에서 183까지 올려놨기에, 본래 레벨인 154에 경험치의 반절이 계승되어 14레벨이 오른 상태다.

전생에서 사념을 수복했을 때에 비하면 4레벨이 더 오른 상태. 아직 안 찍은 스킬포인트는 4포인트가 있다. 그것을 전부 미미르의 눈에 때려박은 것이다.

[스킬 레벨 상승 ― 미미르의 눈 LV. 17]

[탐색 대상의 정보 정확도가 상승한다.]

[미미르의 눈 15레벨 달성 ― 동시 탐색 개체수가 3개체까지 확대된다.]

[정보 탐색에 필요한 시간이 단축되며, 탐색 가능 거리가 증가한다.]

당장 공격스킬에 투자할 포인트도 아까운 마당인데. 뜬금없이 보조스킬인 미미르의 눈에 포인트를 투자한다? 이건 딱 잘라 말하면 미친 짓이다.스킬은 일단 한 번 투자해버리면 사념을 수복해도 스킬을 돌려받는다. 스킬포인트를 돌려받는 게 아니다. 제정신이 아니고선 할 수 없는 짓이다.

그럼에도 이런 짓을 벌인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 나는 제정신이 아니다.

‘미래 족까.’

나는 지금 심장 언저리에 켜켜이 쌓인 이 불쾌감을 해소하지 않으면, 당장 미쳐버릴 것 같았다.

마침 잘 됐다. 스킬 레벨이 15레벨을 넘어가자, 동시 스캔 가능 개체가 3개체까지 늘어났다. 내가 지금 하려는 짓에 최적의 조건으로 맞아 떨어지고 있었다.

‘미미르의 눈!’

나를 피해 도망다니거나, 숨죽이고 지켜보는 일련의 사람들.

나는 그들을 향해 미친 듯이 미미르의 눈을 난사했다. 무수한 정보창이 나타나 눈앞을 가득 메웠다.

[인물 정보]

[인물 정보]

[인물 정보]

[인물 정보]

[몬스터 정보]

[인물 정보]

[인물 정보]

…….

….

일단 한 놈 발견.

나는 몬스터 정보가 표기된 유일한 놈을 향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

파육음이 울린다. 내찌른 베스타크는 매대 앞에 서있던 한 여성의 가슴을 정확히 관통했다.

우당탕! 야시장의 매대가 비틀거리는 여자와 부딪쳐 엎어진다. 진열됐던 과일과 음식들이 바닥을 굴러다닌다. 철철 흐르는 피가 그것들을 붉게 물들였다.

“꺄아아악!”

“미, 미친 사람이야! 살려주세요!”

“경비! 경비를 불러!!”

그 광경을 눈에 담은 사람들은 더욱 패닉에 빠져 사방팔방으로 도망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에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쓰러진 여자를 쳐다봤다.

그녀는 어느새 품에서 꺼낸 단검을 움켜쥔 채 죽어 있었다.

“… 하.”

아마 조금만 늦었으면 저걸로 반격이 꽂혔을 거다. 그런 생각을 하자 들끓던 가슴이 착 가라앉았다.

끓어오르는 답답함과 분노 대신 차오르는 건, 묵직한 살의였다.

‘… 미미르의 눈.’

지금까지와는 상황이 다르다. 이번의 나는 방어가 아니라 공격하는 쪽이다. 바퀴벌레가 스스로 기어 나올 때까지 손가락 빨고 있지 않는다.

나는 세스코다. 개버러지 새끼들 박멸하는, 사람 잡는 세스코.

“…….”

“……!”

“……!!”

한 놈, 두 놈, 세 놈. 열 놈. 스무 놈….

나는 도망다니는 인파에 섞인 불사교 놈들을 하나씩 참살해 나갔다. 작업은 놀랍도록 쉬웠다. 놈들은 내 공격에 이렇다할 저항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놈들을 쳐죽이는 내 손속에는, 더 이상 일말의 주저도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나는 계속해서 불사교도를 사냥하면서도, 한편으론 이상을 느꼈다.

아무리 내가 기습적으로 찾아내고 있다곤 하지만. 이렇게 쉬운 건 위화감이 있다.

[레벨 업!]

[레벨 업!]

레벨은 미친 듯이 올라가는 중이다. 이미 전생의 최대 레벨이었던 183레벨을 넘기고, 185에 달했다.

예의 저격수가 있는 장소를 공격해 놈을 쳐죽이고. 놈을 포함해 50명쯤 되는 불사교도를 썰어넘긴 그 순간. 내 학살에는 제동이 걸렸다.

쿠구구구. 멀리 약속의 평원 방향에서 새하얀 섬광이 밤하늘을 뚫고 쏟아진다. 하얀 폭발. 의식이 시작된 것이다.

그것이 내 손이 멈춘 이유 중 하나고. 다른 하나는….

“이, 이 악마 같은 놈! 학살을 멈추거라!”

“마르크트레스의 정신을 얕보지 마라!”

나를 둘러싼 케른의 고레벨 시민들. 그리고 경비병들이 때문이었다.

“으, 으으으…!”

“두, 두려워하지 마라!”

그야말로 괴물을 보는 듯한 시선이다. 두려움과 분노가 혼재한 술렁임이 묵직하게 감돌고 있다.

전생에서는 불사교도들을 향하고 있던 그 증오가. 오롯이 나에게 쏟아지고 있다.

문득 숨 쉬기가 힘들어지는 한 편.

“이… X발련들이.”

억하심정이 목까지 치고 올라와, 욕이 되어 튀어나갔다.

네놈들이. 도움도 안 되는 쓰레기 새끼들이. 나한테 이런다고?

한 놈이라도 더 살려보겠다고 목숨 버려가며 개지랄하는 나한테. 이렇게 나온다 이거냐?

‘내가 마음만 먹으면…!’

거기까지 생각했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마음만 먹으면 뭐 어쩔 건데. 아스타르트 소환되는 거 방치하고 다 죽여버릴 건가?

지금 이 분노는 비이성적이다. 이렇게 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저 사람들은 아무것도 몰라. 나는 이렇게 될 걸 예상했어야 했다.

내가 생각이 짧았던 거고. 어리석었던 거다.

“망할… 지미럴…!”

하지만. 그걸 알고 있어도. 빡치는 건 빡치는 거다.

개빡치는 걸 나보고 뭐 어쩌라고.

“다 꺼져.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

나는 성큼성큼 발을 놀려 인파를 헤치고 나가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퍼퍼퍽! 어깨로 쏜살같이 날아온 뭔가가 내 전진을 막았다.

화살이었다. 방어도 덕분에 망토에 맞고 튕겨나온 화살이 바닥을 구르고 있다.

“이 새끼들이 진짜!”

나는 발끈한 나머지 화살이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숨을 삼켰다.

“야!! 모두 도망…!!”

석궁을 들고 있는 여자 주위로 무수한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 문제는 하나 같이 소름끼칠 정도로 무표정한 얼굴이라는 점이다.

내가 소리치는 것보다 놈들의 행동이 살짝 빨랐다.

“끄, 으아아악!”

“뭐야! 왜, 왜 그러는 거야!”

“이, 이 자도 미쳤다! 광인은 하나가 아니다!!”

푸직, 우득! 퍼거걱!

석궁을 든 여자를 중심으로 파문이 일 듯, 피보라가 하늘로 솟구쳤다.

주변에 있던 무표정한 일반인들이, 날 둘러싼 경비병과 고레벨 시민들을 뒤에서 덮치기 시작한 것이다.

“…….”

그렇군. 위화감의 정체. 놈들이 반격을 안 하던 이유. 그것을 깨달았다.

의식이 아직 시작되지 않았기에 놈들은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의식 시작 전에는 명령이 없으면 반격조차 하지 못하는 듯하다.

그리고 의식이 시작되었기에 놈들은 반격을 시작한 것이다.

“커… 억…!”

무방비하게 기습을 허용한 시민과 용사들은 레벨이 무색하도록 쉽게 사지를 절단 당했고. 속절없이 바닥에 쓰러져 나갔다.

“사, 살려주시오!”

“왜, 왜 이러는 거요… 우, 우리가 무슨 짓을 했다고…!”

그 뒤의 프레이즈는 역겹도록 반복된 그것이었다.

저항하던 이들의 호기롭던 목소리는 목숨구걸로 바뀌어 있었고. 불사교도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들의 목을 자른다. 피분수가 일어나고 시체가 우후죽순 늘었다.

“…….”

“…….”

그리고 어느새 시민들의 스크럼은 불사교도들의 스크럼으로 바뀌어 있다. 무표정한 수십 개의 눈이 사방에서 나를 압박해온다.

그래 이 분위기. 차라리 반갑기까지 하다.

나는 사납게 미소를 지으며. 놈들에게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오라이.”

새끼들 전생 때도 지금도, 그 말 하나는 잘 듣더라.

놈들이 일제히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세븐 소드 피어스!”

나는 마력검을 전개함과 동시에 망토를 가시로 변형했다.

고속으로 회전하던 마력검과 가시들이 일제히 다른 방향으로 쏟아져 나갔다.

* * *

“뒤져버려어어!!!”

나는 비명처럼 기합을 내지르며, 마지막 힘을 쥐어짜 검을 휘둘렀다.

카아앙! 금속음이 찌르르 울렸다. 막혔다. 망할. 방금 건 나름 회심의 일격이었는데.

눈앞이 아찔해지는 찰나. 내 공격을 막아낸 불사교도가 곧장 반격을 가했다.

“컥!”

나는 가슴팍을 걷어차여 비틀거렸고. 그 틈에 치고들어온 불사교도는 득달같이 내 심장을 향해 검을 찔렀다. 진청색 세검이 번득인다.

속도가 일반 불사교도들과는 한 차원이 다르다. 뭐 불사교 간부쯤 되는갑지.

우지직. 화끈거리는 고통이 치달렸다.

“끄… 으으으!”

그러나 고통은 가슴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다. 검을 막아내느라 반쯤 잘린 채 너덜거리는 왼팔에서 오는 것이다.

방금 건 의도된 거다. 나는 불사교도의 세검을 왼팔에 꽂은 채 힘겹게 미소를 띄웠다.

“드디어 잡았다. 쏴닉 새끼야.”

나는 왼팔을 내쪽으로 확 끌어당겼다. 불사교도가 중심을 순간적으로 잃으며 내 쪽으로 비틀거렸다. 나는 준비하고 있던 검을 잽싸게 놈의 경추에 찔러넣었다.

뿌드득! 놈의 목이 찢겨나가듯이 꿰뚫린다. 너덜거리던 머리가 그대로 툭. 바닥에 떨어졌다.

“쿨럭… 커헉! 하아….”

정리되었다.

방금 그 놈이… 이 구역의 마지막 불사교도다.

스스로도 믿기지 않지만. 광장을 꽉 메웠던 불사교도가 모두 정리되었다. 주변에 산처럼 쌓인 시체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게 전부 내가 한 건가 싶어 감개무량할 정도다.

‘… 이, 이제 겨우… 시가지 클리어한 건가.’

물론. 내가 정리했다는 건 케른 중앙 광장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 시가지뿐이다.

아직 상업지구와 거주지구. 그리고… 뒷골목에 숨어있을 소규모 불사교 잔당들도 정리해야 한다.

이제 고작 반 왔다. 나머지 반을 처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앞길이 까마득하다.

나는 반쯤 무의식적으로 허리춤을 뒤져 에테르 병을 꺼냈다. 그리고 입에 갖다댔다.

[오류 - 에테르 부족]

[남은 에테르가 없어 에테르를 흡수하지 못했다.]

“… 얼씨구.”

원래 회복템 아끼면 똥 된다지만, 너무 물처럼 마셨나. 조금 아껴쓸걸… 하는 후회가 잠시. 이내 고개를 저었다.

조금이라도 아꼈다간 그 엄청난 인원수를 감당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크, 으….”

그건 걸레짝이 된 지금의 내 몸이 증명한다. 내 판단에 오류는 없었다. 쓰는 게 옳았다.

나는 한숨을 흘리며, 이번엔 내 상태창을 띄웠다.

[명칭: 박정용]

[별칭: 163417413번째 정식 용사. 마왕의 알 수호자. 불사에 종속된 자]

[LV. 217]

[체력: 1520/1520 마력: 750/750 신체상태: 출혈(대). 약한 광증(狂症)]

[힘: 214 민첩: 342 지능: 51 히어로 센스: 19]

[남은 능력치 포인트: 84]

“허.”

그야말로 눈이 돌아갈 법한 폭렙업. 고작 2시간의 불사교도 사냥으로 63레벨이 올랐다. 할센베르크에서조차 이런 속도로 레벨 업을 하지는 않았다.

고민을 깊게 할 시간은 없다. 나는 빠른 속도로 포인트 분배를 계산했다.

‘힘이랑 민첩은… 안 그래도 레벨 평균치보다 훨씬 높아.’

즉각 결정했다. 한 방이라도 더 버티고, 스킬을 한 번이라도 더 쓰기 위해 체력과 마력에 중점 투자했다.

결과적으로 체력은 1800까지 맞추고, 마력은 1000까지 상승시켰다. 그러고도 포인트가 남아버려서 나머지는 민첩에 때려 박았다.

어차피 죽으면… 레벨 반절 분량의 능력치 말고는 전부 도루묵이 되니까 뭘 찍든 상관없다.

“… 가볼까.”

나는 자신을 채근하듯 중얼거렸고. 떨어지지 않는 발을 어거지로 옮겨 거주지구로 향했다.

“…….”

적막하다. 이미 이 구역에서 도망칠 사람들은 다 도망쳤고. 죽을 사람들은 다 죽었다.

이 넓은 시가지 대로를 걷는 사람은 나 혼자밖에 없었다.

‘다들… 무사하겠지.’

나는 설백과 제나, 그리고 마왕의 얼굴을 차례로 떠올렸다.

세 사람은 제논과 함께 약속의 평원에서 대기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지시했다.

제논이 학살 저지에 붙었다면 정리가 훨씬 쉬워졌겠지만. 불사교 놈들이 화신체인 설백에게 무슨 짓을 할지 장담을 할 수 없어 호위는 무조건 필요했다.

이게 맞다. 내가 무조건 옳다. 후회하지 말고 자책하지 마라.

나는 격통이 찾아올 때마다 세뇌하듯 그렇게 되뇌었다.

‘그래. 나도 힘 내서… 해야….’

스스로를 다독이며 거주지구로 진입했다. 거주지구의 입구 부근에는 우리가 줄기차게 묵었던 여관, ‘약속의 쉼터’가 있었다.

그 앞을 지나치던 나는 순간 걸음이 우뚝 멈췄다. 일단 내 눈을 의심했다.

“… 아니….”

하지만 환영은 아니었다. 그 사람이 곧장 나를 눈치채고 내 앞으로 달려왔으니까.

나는 내 앞에 오도카니 서 있는 사람에게 삿대질하며, 떨리는 목소리를 뽑아냈다.

“네가 왜, 여기에 있어.”

설백이었다.

분명히 약속의 평원에 있어야 할 그녀는… 어째선지 지금, 내 앞에 있었다.

우당탕탕. 푸콰샹 나마스떼. 머릿속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

뇌정지가 오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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