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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417413번째 소울라이크 용사-100화 (76/280)

100화

“아저씨 누구?”

타라라는 꼬맹이는 나를 아주 경계했다.

나는 물론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 심정이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뭐, 지금은 나도 처음 보는 처지니까.’

잔류사념 회복하고 나면 내 인식이 어떻게 바뀔까. 어떻게 저 꼬마를 만나고, 어떻게 구워삶아서 전설 퀘스트를 받아낸 걸까. 애초에 퀘스트 내용은 뭐고 보상은 뭘까.

그런 걸 생각하면 좀 기대되기까지 했다.

생각만 하고 있을 필요가 있나. 난 바로 옆에 떨어져 있는 잔류사념을 회복했다.

끔찍한 몰골의 시체에는 되도록 시선을 안 주려고 노력했다.

[아이템 발동 - 이자나미의 심장]

[전생의 잔류사념을 획득했다.]

[힘을 11, 민첩을 32, 지능을 0 포인트 수복했다.]

[실전스킬 - 세븐 소드 피어스 LV. 13을 수복했다.]

[실전스킬 - 페이탈 쏜즈 LV.3을 수복했다.]

[실전스킬 - 흑익 LV. 2을 수복했다.]

[전생의 기억을 모두 수복했다.]

잔류사념 회복이 끝나고. 전생의 기억이 모두 돌아온 그 순간.

나는 처참할 정도로 죽을상이었다고 한다.

“… 아저씨. 갑자기 왜 그래요? 아파요?”

옆에서 잔뜩 경계하던 타라조차 무심결에 물어볼 정도로 말이다.

나는 그 물음에 간신히 정신줄을 붙잡았다. 멍한 와중에도 필사적으로 입가를 틀어올려 웃음을 만들어냈고. 말했다.

“아무 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그것은 내가 잔류사념을 회복하고도 비명을 지르지 않은 최초의 순간이었다.

지독한 공허감에 짓눌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던 거지만.

* * *

‘늦지 않았어… 지금… 지금이면!!’

나는 허겁지겁 케른의 상업지구를 달렸다.

사위를 미친 듯이 살폈다. 갈색 단발머리를 가진 여자들을 닥치는대로 스캔했다.

붉은 눈. 갈색 눈. 검은 눈. 녹색 눈…. 아니야. 아니다. 다 아니다.

“사라!! 사라 아넷트씨! 들리면 당장 대답하십쇼!! 사라아아아!!”

허겁지겁 야시장 거리에 진입한 직후. 고래고래 고함을 쳐대며 사방을 배회했다. 주변 이목이 죄다 내게 쏠렸지만 상관없다. 오히려 그게 내가 바라는 바다.

이번 회차엔 루시의 바가지 덕분에 스타팅이 빨랐다. 아직 하얀 폭발조차 일어나지 않았다. 당장 수분 뒤에 일어날 비극을 모르는 사람들이 왁자지껄하게 야시장을 누비고 있는 상태다.

‘지금이라면 아직!’

그녀를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살려야 한다. 타라와 약속을 했다. 약속했던 본인조차 기억 못해도, 나는 기억한다.

두고 봐라 타라. 반드시 내가 네 엄마 데려다 줄 테니까.

“네. 제가 사라 아넷트예요. 저를 찾으셨다고… 이, 일단 좀 사람 없는 곳에서 얘기해요!”

그리고 내 노력은 금방 빛을 봤다.

역시 미친놈처럼 고함을 지른 것이 유효했다. 세상 부끄러운 얼굴로 뛰쳐나온 사라의 모습을 보고, 나는 여러 의미를 담아 한숨을 내쉬었다.

“얘기 하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일단 빨리 갑시다!”

나는 일단 사라의 손목을 붙잡고 곧장 발걸음을 놀렸다. 방향은 당연히 중앙 시가지 너머, 타라가 있는 뒷골목 쪽이다.

“예? 가, 가다니 어딜…!”

“어디든 좋아요. 여긴 위험합니다. 지금 당장 타라를 데리고 케른을 나가요. 당장입니다!”

“제, 제 딸아이 이름은 또 어떻게… 이, 이것부터 놔주세요! 아파요!!”

뒷골목을 코앞에 두고 사라가 내 손을 뿌리쳤다. 나는 그제야 손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갔음을 깨달았다.

“죄, 죄송… 합니다.”

뒤늦게 손을 떼고, 사라를 쳐다봤다. 그녀는 경계심이 잔뜩 어린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그녀의 손목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주변 상가의 사람들도 웅성거리며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

분위기와 눈빛으로 봐선 좋은 얘기 오가고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 일단 진정하자.’

도저히 진정은 안 되지만. 진정하려고 노력이나 해보자.

나는 그 자리에서 잠시 심호흡을 했다.

“후우우.”

다시 차분한 눈으로 사라를 가만히 쳐다봤다. 잠시 뜸을 들인 뒤, 혼란스러워하는 그녀에게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말들을 정리해 나갔다.

그러나 그 순간.

사라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어서인지, 얄궂게도 상태창이 떠올라 눈앞을 가렸다.

[몬스터 정보]

[명칭: 축복받은 도회인 - 사라 아넷트]

[체력: 90/90 마력: 0/0]

[힘: 8 민첩: 10 지능: 11]

[상세: 청염의 마왕, 아스타르트의 간택을 받은 자들 중 하나. 지금은 힘이 발현되지 않았다.]

거기에 나타난 것은….

어김없이 몬스터로 표기되는 그녀의 상태창.

마치 ‘발악해도 소용없다’라고 엄포를 놓듯이. 시야 한가득 등장해버린 사형 선고.

나는 해명을 위해 열었던 입을 그대로 콱. 다물어 버렸다.

“…….”

“… 저, 저기요?”

사라가 나를 부른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뭐라 말은 하고 싶은데, 뭐라 말하면 좋을지 전혀 모르겠다. 이런 적은 또 처음이다.

그래.

굳이 말로 대답할 필요가 있나.

그런 결론에 도달한 나는 곧장 검을 꺼내들었다.

“…… 아?”

푸욱. 사라는 자기 배에 쑤셔박힌 시커먼 검날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쳐다봤다.

아는 무슨 아. 댁이 본 게 맞다. 현실부정 하지 마. 미친 듯이 떨리는 사라의 눈빛에 나는 무기질적으로 시선을 맞춰줬다.

어금니를 피나도록 악물고, 검을 쥔 손에 힘을 줬다.

그러자 히죽.

기다렸다는 듯이 사라의 입이 귀까지 찢어지며 소름끼치는 웃음을 그렸다.

―놀랍기가 그지없군. 대체 어떻게, 아무 단서가 없는 이 시점에 눈치챈 겐가?

“……!”

―정말… 미래라도 보고 왔나? 용사 박정용군.

쩌저저적!

나는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검을 있는 힘껏 위로 쳐올렸다.

사라의 갈비뼈가 부서지고. 폐와 심장이 으스러지고. 척추와 신경다발이 검에 걸려 질겅거리길 잠시. 목뼈를 부수고 두개골을 아작내고 뇌를 반으로 가른 검이, 하늘로 솟구쳤다.

후두두둑. 사방으로 흩어지는 사라의 체액 속에서 나는 중얼거렸다.

“하. 고건 또 몰랐네.”

나는 깨달음의 표시로 불알을 탁 치는 대신. 토막난 사라의 머리통 한쪽을 퍼억, 짓밟았다.

복부를 시작으로 양쪽으로 갈라져버린 사라의 신형. 내 발 아래 짓이겨진 그녀의 얼굴은 일그러진 채 여전히 킬킬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회색 눈동자 너머에 있는 어떤 존재를 향해 뇌까렸다.

“너. 면상 맞대곤 대화 못하는 타입이구나. 이 존나게 음침한 씹덕 새끼야.”

그래. 난 저 목소리를 알고 있다. 듣자마자 알아챘다.

정확히는 누군가의 시신을 통해서 대화한다는 지금 상황이, 까맣게 잊고 있던 요소 하나를 일깨워줬다.

‘첫 번째 회귀점 갱신.’

카사스라는 조직에서 파견된 미행자가 붙었고. 그놈이 돌연사했던 사건. 그리고 제르미 발킨의 시신 뒤에서 말을 걸었던 수수께끼의 존재.

방금의 목소리는 그 때 목소리와 똑같았다.

이제 모든 게 이어진다.

이제야. 너무 늦게 이어진 진실을 깨닫고 말았다.

―내 자네에게 말하지 않았나? 조만간 다시 만날 것이라고.

클클클. 널브러진 사라의 시체에서 기분 나쁜 웃음이 연신 넘쳐흘렀다.

그 대답으로 내 예상이 맞았다는 게 확정되었다. 나는 얼굴에 튄 핏방울을 소매로 거칠게 닦아냈다.

팔을 내리자, 내 입가에는 어느새 비릿한 조소가 걸려 있었다.

“카사스 재정상황이 많이 안 좋냐? 어쩌다 불사교랑 인수합병 됐어. 사장이 월급 못 주니 배째래?”

―으음. 걱정을 다 해주니 카사스의 수장으로서 기쁘구먼. 하지만 안심하게. 불사교 따위 오합지졸들은, 카사스의 위대한 뜻에 이용되는 장기짝에 불과해.

“이빨 터는 수준은 위대하네. 인정.”

이놈이다.

이놈이 이 개같은 짓거리를 조종한 흑막이 틀림없다.

아스타르트의 파편 소환 의식을 주도한 주범이자. 불사교를 조종한 인형사이고. 사라에게 에그타르트인지 아스타르트인지의 간택을 깃들여놓은 천하의 씹새끼.

틀리면 변경백 불알 하나 떼가도 좋다. 그 정도의 확신은 있었다.

“너 어디냐. 면담 좀 하자.”

콰악! 나는 사라의 머리통을 자근자근 짓밟으며 말했다. 딴에는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목소리에 분노가 덕지덕지 들러붙어서 다 말아먹었다.

자칭 카사스의 수장은 그런 나를 비웃듯이 흐음, 하고 콧소리를 낸다.

―내가 누군지가 그리 궁금한가? 자네 같은 유명인사의 관심이라니 쇤네는 기쁘다네.

“아니 X발럼아. 대가리 박살내려면 어디 있는지는 알아야 할 거 아냐.”

네가 카사스 대빵이든 칠갑산 조깅동호회 회장이든 알 게 뭐냐. 난 사무라이가 아니라서 당장 쳐죽일 놈 정체는 궁금하지 않다.

그러나 내 서슬퍼런 말에 대한 반응은 쯧, 하고 혀 차는 소리였다.

―이전부터 느꼈네만. 자네는 화가 나면 일단 주변머리가 없어지는 모양이군. 나와 만나기 전에 우선 좀 어른이 되시게나.

그게 대화의 끝이었다. 모 프로게이머의 금세기 최대 명언을 인용한 카사스 수장은 그대로 침묵했다.

추욱, 사라의 시신에 남아있던 생기가 빠르게 잦아들었다.

[레벨 업!]

[레벨 업!]

[레벨 업!]

그러자 레벨업 패널과 팡파레가 울렸고. 그것들이 사라진 직후 내 감각을 자극하는 것은.

“꺄아아악!”

“사, 살인이다!”

“미친놈이 사람을 죽인다!!”

많이 들어봤던 멘트와 함께 들려오는 공포에 젖은 비명소리였다.

‘뭐지?’

아직 하얀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불사교가 벌써 움직였다고? 설마 내가 빨리 움직인만큼 놈들도 일찍 학살을 개시한 건가?

나는 곧장 검의 피를 털어내며 전투할 준비를 마쳤고.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로 시민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 아아.”

그리고 나는 깨달음의 탄성을 흘렸다.

공포에 찬 시선. 찢어지는 비명. 그리고 분노가 담긴 고함.

그것을 한몸에 받고 있는 한밤중의 학살자는, 다름 아닌 나였다.

“푸하하하 인생 씨―팔. 으하하하!”

그러네. 맞네. 그걸 몰랐네.

저 사람들 입장에선, 별안간 아무 죄도 없는 여인네 반으로 찢어죽인 천하의 씹새끼가 바로 나네.

‘아. 세상 진짜 존나게 아름답네.’

나는 이마를 짚었다. 지금 상황이 기가 막힌 나머지 한바탕 박장대소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미친 사람처럼 웃음이 끊임없이 흘렀다. 사람들은 그런 내 모습을 보고는 조금씩 뒷걸음질쳤다.

그리고 들끓는 혼란의 도가니 속에서. 들리면 안 될 목소리가 미약하게 들려왔다.

“…… 엄마?”

웃음이 뚝 멈췄다. 나는 불에 덴 마냥 퍼뜩 시선을 돌렸다.

거기엔 타라가 있었다. 내 발 아래 누운 사라를 쳐다보는 시선이 망연자실하게 풀려 있다.

생각해보니 여기 뒷골목 바로 앞이었지. 뒤늦은 깨달음이 뒤통수를 후려친다.

“괴, 괴, 괴… 괴물.”

타라의 낡은 바지가 사타구니부터 천천히 젖어 들어간다. 오줌을 지린 것이다.

그녀는 바들바들 떨리는 다리를 애써 움직여 뒷걸음질 친다. 눈물이 줄줄 흐르는 타라의 눈동자는 혼란과 공포로 점철되어 있었다.

시선은 나를 똑바로 향해 있었다.

“…….”

나는 입을 열었다가, 다물었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버렸다.

‘괴물’이라는 말에 반박할 거리가 떠오르지 않아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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