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3417413번째 소울라이크 용사-99화 (75/280)

99화 이 X나게 멋진 세상에 축복을

“…… 크윽.”

나는 이를 악물고 격통을 참아내며, 상체에 깊숙이 박힌 타라 엄마의 갈비뼈를 빼냈다.

아니지. 이제 타라 엄마가 아니지. 타라 엄마였던 무언가라고 해야 되겠다.

“꺼거걱. 끄… 거거걱.”

아직도 기괴한 신음과 함께 꿈틀거리는 기괴한 형상의 고깃덩어리.

등 뒤로 돋아난 여섯 개의 팔이 지면을 벅벅 긁는다. 활짝 열린 가슴팍은 음식을 탐하듯 연신 뻐끔거렸다. 당장이라도 죽을 것처럼 키익, 키익거리는 신음을 계속 흘린다.

나는 피 때문에 빨갛게 물든 시야로 그것을 잠깐 주시했다.

[몬스터 정보]

[명칭: 축복받은 도회인 - 사라 아넷트]

[체력: 52/1510 마력: 0/0]

[힘: 229 민첩: 143 지능: 3]

[상세: 청염의 마왕, 아스타르트의 간택을 받은 자들 중 하나. 인간의 여린 육체는 하사받은 힘을 가두는 질 나쁜 그릇으로 전락하며, 잠식당하면 더 이상 인간으로 볼 수 없다.]

더 이상 인간으로 볼 수 없어서 몬스터로 표기했다고 하신다.

아스타르트. 그 이름이 나온 이상, 이 깜짝파티도 불사교 놈들이 준비한 거라고 보는 게 맞겠지.

게다가 ‘간택을 받은 자들 중 하나’라니. 이건 타라네 엄마 말고도 도처에 이런 괴물들이 더 섞여있다고 생각해도 무방하겠지?

―괴, 괴물! 괴물들이다! 살려줘!

나는 문득 전생에서 들었던 시민들의 비명을 떠올렸다.

그거… 설마 미친놈처럼 달려드는 불사교가 아니라. 진짜 괴물 보고 소리쳤던 거냐?

“미치고 환장 팔짝 뛰시겠네.”

뒤늦은 깨달음의 탄성을 흘린 나는, 곧 허리춤을 뒤져 에테르를 들이켰다.

그러나 삐빅. 경고음과 함께 또 다른 상태창이 눈앞을 가렸다.

[상태이상 - 회복 불가]

[상세: 사멸의 저주가 깃들었다. 아스타르트 고유의 주술로, 그 끝은 죽음뿐이다. 여신의 신전에서 축복으로 치유할 수 있다.]

[상태이상 - 출혈 (대)]

[상세: 치명적인 출혈. 지속적으로 체력을 잃는다. 치료하지 않으면 빠른 시간 내에 사망한다.]

“하이고 X발.”

가지가지 하네 아주.

사라 같은 괴물에게 상처를 입으면 회복마저 불가능한 모양이다. 기가 막힌 나머지 헛웃음을 흘렸다.

“쿨럭!”

때마침 내 몸이 작살났다고 시위하듯, 기침을 하자 피가 한 움큼 터졌다. 전신에 격통이 치달리는 한편. 구멍이 숭숭 뚫린 배와 등에서도 울컥 피가 쏟아졌다.

아찔한 현기증이 일었다. 어느새 나는 타라 엄마였던 고깃덩어리 옆에 주저앉아 버렸다.

“끄거거… 어거걱….”

시끄럽네. 대가리 울리니까 조용히 좀 해주십쇼 타라 어머님.

자꾸 옆에서 호러영화 사운드를 내는 괴물에게 푸직. 검을 쑤셔박아 마무리했다.

잠깐 바르르 떨리던 그것은 이내 추욱 늘어지며 완전히 침묵했다.

[레벨 업!]

[레벨 업!]

[레벨 업!]

그러자 무려 레벨업 팡파레가 3번이나 들려왔다. 혹시나 싶어 레벨을 확인해 보니 내 귀가 틀린 게 아니다. 이놈을 잡아서 레벨이 3 올랐다.

현재 내 레벨은 183. 타라 엄마를 경호하며 시가지를 정면돌파 하다 보니 많은 불사교도를 도살했고. 전생보다 8레벨정도 더 올렸다.

나는 멍해지는 정신가닥을 간신히 붙잡고 멀거니 하늘을 올려봤다.

‘죽을 때나 기다릴까.’

뭐랄까. 다 귀찮아졌다.

시커먼 공허함이 가슴 깊숙한 곳에서 울컥 넘쳐흐른다. 공허함은 내 옆에 늘어져 있는 괴생물체… 타라 엄마를 볼 때마다 미친 듯이 불어났다.

자포자기 상태가 됐다. 까짓 거 죽이려면 죽여라. 이젠 나도 모르겠다.

“… 끄응. 에효.”

하지만 나는 결국 어기적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을 조금만 까딱여도 정신이 아찔해지는 격통이 찾아왔지만. 나는 어떻게든 걸음을 옮겨 케른의 뒷골목 쪽으로 향했다.

나를 일으킨 건 두 소녀의 얼굴이었는데. 첫 번째는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는 루시의 얼굴이었고. 두 번째는 나를 간절한 눈으로 바라보던 타라의 얼굴이었다.

‘그래. 갈 땐 가더라도 결과보고 정도는 괜찮잖아.’

최소한 타라에게 말은 해줘야지.

미안하다고. 네 엄마는… 결국 찾아내지 못했다고.

못 찾은 거 보니 분명 난리통 피해서 잘 살아 있을 거라고.

그렇게 말해줘야 한다.

보상까지 미리 받아놓고 퀘스트를 실패한, 나의 마지막 양심이다.

“…….”

“…….”

케른 중앙 시가지의 넓은 광장을 지나, 뒷골목으로 향하는 입구에 다다랐을 때. 나는 문득 뒤에서 인기척을 느꼈다.

뒤를 돌아보자 수십에 달하는 불사교도들이 나를 향해 검을 겨누고 있었다.

“새끼들 귀신같네. 박정용 대뱃살 맛집 소문 듣고 왔냐?”

피가래가 끓어서 제대로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억지 농담을 쳤다.

그러나 놈들은 언제나 그랬듯, 일언반구도 없이 나를 향해 달려들 뿐이다. 여전히 칼 같은 단체행동이었다.

“재미없긴.”

나는 쇳소리 같은 웃음을 내며 검 손잡이를 움켜쥐었고. 천천히 검을 뽑았다.

그리고 검조차 뽑을 힘이 없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아.”

퍼걱, 우직, 우드득!

내가 얼빠진 탄성을 흘린 것과, 수십에 달하는 검날이 쑤셔박힌 것은 거의 동시였다.

나는 시선을 떨궜다. 고슴도치마냥 온몸에 날붙이가 돋아나 있는 내 모습이 보인다.

“쿨럭.”

좀처럼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그것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끝내 이해하지 못했다.

‘순순히… 죽어줄… 수는….’

내가 곧 죽는다는 사실은 역시 도저히 이해하기 싫었지만.

불사교 놈들을 찢어죽이고 싶다는 의지만큼은 그 상황에서도 충천했다.

“페이탈… 쏜즈.”

파바바박! 내 유언에 따라 망토가 열 두 갈래로 찢어졌다. 날 둘러싼 놈들의 육체가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가시에 갈기갈기 찢겨나간다.

눈꺼풀에 힘이 점점 없어진다.

시커멓다.

[레벨 업!]

[레벨 업!]

…….

….

분위기 파악 못하는 팡파레는 놀랍도록 선명하게 뇌리를 흔들었다.

* * *

[불사의 마왕, 루스티카 아스모데우스에 의해 회귀 고정축 강제 개변이 시행되었다.]

[불사의 회귀점이 갱신되었다.]

[일시 - 대륙력 1108년, 1월 13일, 02시 44분]

[장소 - 마르크트레스. 약속의 평원 상부지역, 소도시 케른 서부 관문]

얼떨떨하게 패널을 내려보는 내 앞에서, 루시가 천천히 맞닿았던 입술을 떼어냈다.

기분 탓인가. 핏기 없는 루시의 하얀 얼굴이 조금 붉게 물들어 있는 듯했다.

“에효오. 또 실패냐아. 아니 나도 슬슬 쪽팔린다고! 뽀뽀를 몇 번이나 더 해야 되는 거냐! 그냥 나 죽여라! 죽여어! 빼애애액!!”

그리고 별안간 루시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더니. 모 만화 단비마냥 드러누워 떼를 쓰기 시작한다.

갑작스러운 입맞춤에 당황한 것도 모자라 그런 리액션을 받아버리니. 당황이 두 배가 되는 건 당연지사다.

“야 루시. 너 이상한 거야 원투데이 아니라지만 왜 또 지랄….”

거기까지 말했을 때. 나는 허리춤의 파우치에서 보랏빛이 흘러나오는 것을 눈치챘다.

그리고 한 템포 늦게 알림창이 떠올랐다.

[아이템 정보]

[명칭: 망자의 함]

[알림: 아이템 갱신 - 전생에서 망자의 함 저장 아이템이 갱신되었다.]

“…….”

나는 주섬주섬 파우치를 뒤졌고. 망자의 함을 꺼냈다.

워낙 많이 해본 짓이라 그런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뚜껑을 열고 내용물을 살펴봤다.

[판자촌에서 타라라는 애를 찾아라. 깜짝 놀랄 보상이 걸린 전설급 퀘스트가 있다.]

[7살쯤 돼보이는 여자애. 갈색 단발에 회색 눈. 딱 보면 알아.]

그런 쪽지가 들어 있었다.

판자촌? 타라? 깜짝 놀랄 보상? 전설급 퀘스트?

이게… 다 뭔 소리들이냐.

‘잠깐만. 진정… 진정하자.’

아마추어 같이 당황하지 말자. 원투데이 겪어본 상황도 아니잖아? 그래. 익숙하다. 너무 익숙해서 토악질 나올 정도지.

‘방금 루시의 리액션도 그렇고….’

아무래도 ‘그 상황’인 거 같은데.

뭐, 기억 남아있는 당사자한테 물어보는 게 가장 빠르겠지. 나는 곧장 루시에게 고개를 돌렸다.

“야 루시. 지금 그거냐?”

“그거다!”

“…….”

그거 맞다네. 대충 예상은 했다만.

역시 내 부고(?)를 남한테 듣는 기분이란 참담해지는 기분을 금할 길이 없다. 몇 번을 겪어도 얼떨떨하군.

내가 그 자리에서 꼼지락거리고 있자니. 어느새 변신이 풀려 원래 상태로 돌아온 루시가 쌍심지를 벌떡 세웠다. 그리고 나를 향해 힘껏 삿대질한다.

“뭘 꾸물거리냐! 당장 튀어가서 싸울 준비나 하고 있어라! 시간이 아주 남아돌지 그냥! 네가 그러니까 자꾸 실패하는 게다! 기합 넣어라 기합! 팍씨!”

“… 알겠어 인마. 거 준내 뭐라 그러네 씨불….”

몇 번이나 실패했길래 저러냐. 워낙 기세가 서슬퍼렇다 보니 묻지도 못하겠다. 솔직히 한 다섯 번까진 허용범위 아니냐?

나는 어쩔 수 없이, 한 가정의 가장이 된 기분으로 케른 시가지로 향했다.

“야 루시. 내가 흉마에 먹혀서 미친놈이 되면. 네가 배때지에 칼침 쑤셔서 깨워라.”

나는 농담 반 진담 반 섞어 루시에게 말했다. 그녀가 회귀점을 갱신해줬을 때부터 생각하고 있던 말이었다.

반응을 슬쩍 보니 루시는 놀란 듯이 눈을 끔뻑이고 있었다. 그녀가 이내 허파 바람빠지는 웃음을 흘렸다.

“거 참. 한결같은 놈이로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그런 말을 지껄인다. 뭐… 전생의 나도 이런 비슷한 말을 지껄였나 보다.

어쨌든 루시는 짓궂은 미소를 입가에 머금으며 말했다.

“대답이라면 이미 두 번이나 했느니라. 알아서 기억 되찾아서 듣거라.”

“… 드럽게 비싸게 구네. 씁.”

나는 곧장 쌍검을 뽑아들었고. 흑익을 사용해 유성처럼 밤하늘을 가로질렀다.

투학! 한 번의 도약으로 주변 풍경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 * *

“보자. 꽤 가까운데.”

나는 우선 루시가 말한대로 잔류사념이나 회복하기로 했다.

딱히 루시의 대답이 궁금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전생에 뭔 일이 있었는지는 궁금한 게 사실이니까.

‘이쪽이다.’

난 얼마 안가서 잔류사념을 찾아낼 수 있었다. 케른 시가지에서 뒷골목으로 향하는 입구 부근에서 랜턴 빛이 멈춘 것이다.

되게 애매한 곳에서 죽었네. 가장 처음 든 생각은 그것이었다.

‘그리고… 타라라고 했던가?’

나는 판자촌 입구와 내부 경계를 서성이며 지나가는 부랑자들을 기웃거렸다.

그러다 다시금 망자의 함에 들어있던 쪽지를 살펴봤다.

[판자촌에서 타라라는 애를 찾아라. 깜짝 놀랄 보상이 걸린 전설급 퀘스트가 있다.]

[7살쯤 돼보이는 여자애. 갈색 단발에 회색 눈. 보면 딱 안다.]

“7살 정도에 갈색 단발… 회색 눈….”

그런 애가 무려 전설급 퀘스트를 가지고 있단 말이지. 혹시나 지나가다 보이면 퀘스트나 받아놔야겠군. 나는 꿀팁을 남겨준 전생의 나한테 속으로 감사하며, 잔류사념이 있는 방향으로 쭉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잔류사념을 발견한 나는….

“어.”

그대로 굳어버렸다.

온몸에 수십 개의 구멍이 뚫린 채 뻗어있는 내 시체도 충분히 놀라웠지만. 내가 1차로 놀란 이유는 일단 그것 때문이 아니다.

내 시체 옆에 쭈그려 앉아 시가지를 바라보는 한 소녀 때문이었다.

“… 타라?”

나는 예상되는 그녀의 이름을 내뱉었고. 내 예상이 적중했는지, 소녀는 이쪽을 돌아봤다.

꼬맹이의 갈색 단발이 찰랑였다. 은회색 눈이 가만히 나를 훑는다. 한참 동안 가만히 마주보던 그녀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아저씨 누구?”

처음 보는 어른에게 꼬마들이 보이는 당연한 반응.

경계심이 가득 담긴 말투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