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3417413번째 소울라이크 용사-98화 (74/280)

98화

잔류사념의 회복과 타라의 의뢰를 들어주는 시간까지 있었기에, 내가 시가지에 도착한 건 전생보다 30분 정도 늦은 시간이었다.

“크… 우욱!”

“사, 살려… 살려주시오! 제발! 아아악!”

이미 많은 저항 세력들은 목숨을 구걸하는 처지에 있거나. 패색이 짙은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었다.

상황이 좋지 않다. 빨리 내가 돌입해서 불사교 놈들의 기세를 휘저어줘야 한다.

‘좋아. 그럼…!’

시가지 중심에서 흑익을 해제한 나는, 한 가지 실험에 돌입했다.

조금 먼 곳으로 시선을 향했다. 신체능력이 향상되며 시력도 상당히 좋아졌다. 1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을 건물의 지붕도 어렴풋이 눈에 들어온다.

그곳을 가만히 노려보다가, 이내 중얼거렸다.

“세븐 소드 피어스.”

7개의 마력검이 번개처럼 지그재그를 그리며 날아간다. 그 변칙적인 움직임은 궤도를 예측할 수 없게 내가 일부러 꼬아 놓은 것이다.

그리고 파파팍! 서로 다른 궤도로 진입한 마력검이 굴뚝 위를 초토화 시킨다. 스파크와 함께 굴뚝이 산산조각 나며 부서져 내렸고.

[레벨 업!]

동시에 팡파레가 울리며 내 레벨이 올라갔음을 알렸다. 누군가가… 불사교도가 내 마력검에 맞고 절명한 것이다.

이것으로 판명되었다. 나는 회심의 미소를 흘렸다.

‘스나이퍼 위치는 전생과 동일.’

물론 어쩌다 보니 일치했을 가능성도 있다. 때문에 앞으로는 전투 전에, 지금처럼 저격수 위치부터 조져놓고 시작할 예정이다.

원래 게임을 하더라도 원딜 자르고 한타 시작하는 게 국룰이니까.

‘그러면… 마족 누님이 등장하는 위치도?’

그런 가정을 잠깐 떠올렸지만. 솔직히 확률은 적다고 본다.

애초에 그녀의 목표는 워낙 뚜렷하다.

나를 죽이는 것.

그러니 마족 누님은 줄곧 나를 찾아 케른을 배회하다가, 우연히 판자촌에서 마주쳤다고 생각하는 게 차라리 가능성이 높다.

현재로서는 누님의 스타팅포인트(?)를 내가 알아낼 방법은 없다. 그렇다면….

‘다른 귀찮은 놈들의 소재를 파악한다!’

저격충. 패잔병 마족 누님. 그리고 또 나를 위해 불사교도들이 뭘 준비했을까.

상상만 해도 가슴이 펄떡펄떡 뛴다. 물론 짜증나서 그렇다.

“… 응?”

혼자 혀를 차며 시가지를 질주하고 있는데. 문득 내 뒤로 세 개의 신형이 따라붙었다.

무표정한 얼굴과, 불사교 놈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구부정한 양날검. 주변에서 사람들을 학살하던 불사교도가 따라붙은 것이다.

“혼자 있고 싶으니까 다 꺼져!”

나는 짜증 섞인 고함과 함께 세븐 소드 피어스를 영창했다. 피피핑! 공기를 찢어발기며 날아간 일곱 개의 마력검은 그대로 세 놈의 급소에 명중….

‘이 새끼들 봐라?’

… 하지 못했다.

피를 토하며 쓰러진 건 한놈뿐이다. 나머지 두놈은 찰나의 틈에 몸을 비틀어 치명상을 피했다.

한 가닥 하는 놈들이다. 나는 자세를 고쳐잡았다.

“…….”

“…….”

치명상을 피했다곤 하지만 가슴과 복부가 꿰뚫린 깊은 상처다. 그러나 불사교도들은 이쑤시개라도 꽂아놓은 행색으로 태연하게 내게 돌진했다.

역시. 저딴 괴물들이 나랑 같은 사람이라고? 그럴 리가 없다.

저놈들은… 확실히 뭔가 있다.

“일단 죽어.”

그리고 나는 그제야, 놈들의 등 뒤로 대기시켜놨던 나머지 7개의 마력검을 사출시켰다.

퍼버버벅! 섬짓한 파육음과 함께 놈들의 몸이 절단난다. 핏방울이 확 튀었다. 내 얼굴에도 조금 묻었다.

할짝. 나도 모르게 혀로 슬쩍 핥았다.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아니 미친… 왜 핥고 지랄이냐 미친 새끼신가….’

직후 내 행동을 한탄하며 현자타임에 돌입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깜짝 놀랐다.

놈들의 피에서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짜릿한 맛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 나도 뭐, 저 새끼들 욕할 처지는 아니군.’

누가 누굴 보고 괴물이라 욕하냐. 나나 정신 똑바로 차리자.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주변을 살폈다.

“아, 아신이시여! 굽어 살피소서!”

“꺄아아악!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줘요!”

“아아아악!”

상업지구의 판매대 구석에서 일련의 상인들이 포위당한 채, 불사교도들에게 하나씩 죽임을 당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래. 내가 구해드리지. 아신 말고 마왕 따까리라도 괜찮다면.

“페이탈 쏜즈!”

나는 일부러 우렁차게 스킬을 영창하며 놈들에게 달려들었다.

의도대로 놈들의 시선이 일순간 내게로 향했다. 그 찰나의 틈이면 충분하다. 나는 곧장 가시를 늘여 놈들의 몸을 사정없이 꿰어버렸다.

퍼버버벅! 방심하고 있던 놈들은 사지 어딘가를 꿰뚫린 채 날아가, 상점 벽에 처박혔다.

물론 그걸로 끝은 아니었다. 나는 곧장 추가타를 날렸다.

‘세븐 소드 피어스.’

페이탈 쏜즈의 데미지는 세븐 소드 피어스보다 약하다. 확인사살은 필수다.

늘어난 가시의 궤도를 그대로 따라간 마력검들이 놈들의 급소를 찔렀다. 몸을 경련하던 불사교도들이 이내 축 늘어졌다.

나도 그제야 한숨과 함께 망토를 원래대로 변형시켰다.

“… 다, 당신은…?”

살아남은 상인들이 나를 쳐다보며 희망 어린 눈길을 보냈다.

지금은 대답해줄 틈도 없다. 댁 같은 사람들 구하러 다니랴, 애 엄마 찾으랴 바쁘다 이 말이야.

나는 대충 충고나 해주며 스쳐지나가려 했다.

“일단 이런 데서 싸돌아다니지 마십쇼. 무조건 안 들키도록 숨거나 최대한 케른에서 멀리 도망….”

내 말은 거기서 우뚝 멈췄다.

그리고 퍼뜩. 덜덜 떨고 있던 상인들 중 하나에 눈을 맞췄다.

여자였다. 이제 한 30대쯤 되었을까. 평범한 인상에 야윈 몸. 어디에나 있을 법한 가난한 상인의 모습이다.

“… 당신….”

연한 갈색 머리에, 특유의 단단해 보이는 회색 눈만 아니었다면. 분명 그대로 지나쳤을 것이다.

시선이 집중되자 의아하게 마주보는 그녀에게, 나는 멍하니 질문을 던졌다.

“딸 하나 있죠. 타라라고.”

“… 아?”

“판자촌에 살고. 키는 한 요만하고. 싸가지도 좀 없고?”

그녀의 회색 눈은 내 말이 이어질 때마다 부풀어 올랐다. 어떻게 알았냐고 묻듯이.

정답이었다. 내가 찾던 타라의 엄마. 야시장의 상인이라던 그녀가 지금 내 눈앞에 있었다.

‘살아… 있구나.’

설마, 이렇게 쉽게 찾을 줄이야. 아신들이 이제야 내 편을 좀 들어주나.

그런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기막힌 우연이였다.

* * *

“아지매! 딱 붙어서 잘 따라오십쇼!”

“아… 네, 네!!”

나는 등 뒤로 타라 엄마를 대동한 채, 시가지를 가로질렀다.

스스슥. 일부 불사교도들이 우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나를 노리는 놈들이 측면에서 둘. 등 뒤에서 타라 엄마를 노리는 놈이 둘.

나는 즉각적으로 판단을 내렸고. 행동으로 옮겼다.

“페이탈 쏜즈!”

카가앙! 금속음이 울렸다. 후방을 습격한 놈들의 검날이 페이탈쏜즈와 맞부딪치는 소리였다.

나는 가시의 변형을 해제하지 않은 채, 그대로 좌측의 불사교도에게 에스파다를 냅다 던져버렸다.

퍼억! 놈은 무표정한 그대로 내가 내지른 칼에 목이 뜯겨나갔다.

‘한 놈.’

거기서 멈추지 않은 채, 나는 그대로 지면을 박차 반대편으로 뛰어올랐다. 몸을 미친 듯이 회전시키며, 어느 순간 회전력에 몸을 실어 검을 휘둘렀다.

파가각! 뼈와 살갖이 짓이겨지는 소리. 내 앞에는 불사교도의 시체가 공중으로 핏방울을 흩뿌리고 있었다.

‘두놈.’

시큰거리는 통증이 복부에 느껴졌다. 시선을 내려보니, 조그마한 비수 하나가 배에 박혀 있었다.

그냥은 못 간다 이거냐. 나는 쓰게 웃으며 그것을 뽑아버렸다. 그리고 물의 에테르를 집어삼켰다.

치지익.

상처가 시퍼런 연기와 함께 여물었다. 나는 에테르의 치유 반응을 보며 슬쩍 인상을 찌푸렸다.

방금 그건 에테르가 독을 치유할 때 나오는 반응이다. 아무래도 독이 발린 비수였던 모양이다. 에테르 아끼지 않고 즉각 회복하길 천만다행이다.

그 순간. 앙칼진 비명소리가 울렸다.

“꺄아악!”

퍼뜩 고개를 돌려보니, 가시의 포화를 뚫고 들어온 불사교도 둘이 타라 엄마의 목을 노리고 있었다.

나는 망토를 원상복구시킨 뒤, 바닥에 널브러진 불사교도의 시체에서 에스파다를 뽑아냈다.

그리고 곧장 검을 휘두르며 마력검을 사출시켰다.

“어딜!”

파지지직! 날아간 마력검들이 놈들과 맞붙었다.

대부분 놈들이 휘두른 검에 막혀 허공에서 흩어졌지만. 도합 14개나 되는 검을 모두 쳐내진 못했다.

놈들의 몸에 박힌 마력검이 스파크를 흩뿌린다. 고통 때문인지 놈들이 잠시 몸을 움찔거린다.

그리고 그 순간에는 내가 이미 놈들의 눈앞에 당도해 있었다.

“일섬.”

키이잉! 마력이 담긴 검광이 번득였다.

횡으로 새파랗게 일렁거리는 검의 궤적에 따라, 놈들의 몸이 양단되어 지면에 쓰러졌다.

“… 아… 아.”

주저앉은 타라 엄마가 불사교도들의 시신을 보며 망연자실한 탄성을 흘렸다. 그녀의 온몸이 격렬하게 떨리고 있었다. 동공은 탁 풀려 시체를 망연히 쳐다본다.

‘하긴. 그럴만도 하다.’

오히려 저게 정상적인 반응이지? 이런 광경을 직접 연출해놓고, ‘아 사타구니에 땀 차네’ 따위의 감상 밖에 들지 않는 지금의 내가 더 이상한 거다.

나는 그녀에게 손을 뻗으며 건조하게 말했다.

“딸내미가 손꼽아 기다리니까 빨리 갑시다. 저도 바쁜 사람이라서.”

“아… 아아….”

타라 엄마는 혼란에 젖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이내 비척비척 몸을 일으켰다.

한참을 그 자리에 가만히 있던 그녀가 문득, 고개를 푹 수그린 채 내게 묻는다.

“… 딸은… 타라는, 무사한가요?”

뭐지. 갑자기 질문 타임? 나는 엉뚱한 그녀의 질문에 의아함을 느꼈지만.

갈색 머리칼 아래로 당장 울 것 같은 얼굴이 보였기에 일단 순순히 대답해줬다.

“예. 무사하니까 저한테 엄마 찾아달라고 부탁을 하죠.”

“아… 다행이야… 정말 다행… 이야….”

그리고 그녀가 눈가에 가득하던 눈물을 주르륵 떨군 그 순간. 타라 엄마의 어깨가 끈 떨어진 인형처럼 힘없이 늘어졌다.

그녀가 양 팔을 힘껏 움켜쥐었다. 그리고 땅에 얼굴을 파묻은 채,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 타라…. 우리… 우리… 딸… 아가…. 불쌍한… 내 새끼….”

“어. 저기, 갑자기 왜….”

별안간이었다.

그녀가 몸을 수그린 채,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리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나는… 문득 뒷목이 싸늘한 느낌을 받았다. 일순간 시야가 확장되며 시간이 느려진다.

나는 이 느낌을 안다.

히어로 센스가 발동했다.

‘위험…?!’

그녀의 목에 칼을 박아넣는 내 모습이 끊임없이 뇌리를 후려친다.

위험하다. 죽여라. 지금 당장. 아니. 하지만 왜. 대체 왜?

본능이 미친 듯이 경고를 보낸다. 이성은 의문을 보낸다. 이성과 야성이 격렬한 사투를 벌인다.

그리고 찰나의 망설임이 만들어낸 빈틈. 그것이 문제였다.

번득. 갈색 머리칼 사이로 보이는 그녀의 눈빛은 회색이 아니라… 새빨간 붉은색이었다.

“아… 으… 그아… 캬아아아!!”

사람의 것이라곤 생각되지 않는 그녀의 비명. 그리고 퍼걱! 파육음이 울린다.

귀가 아니라 뇌를 직접 울리는 소리였다. 옆구리 부근에서 엄청난 격통이 치달렸다.

나는 참았던 숨을 토하며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 커, 헉.”

거대한 아가리처럼 쩍 벌어진 뱃가죽으로 나를 물어뜯는 타라의 엄마가 보인다.

세로로 길게 벌어진 그녀의 상체에는, 날카로운 갈비뼈가 이빨처럼 몇 겹으로 돋아나 있었다. 그것들이 내 옆구리를 단단히 물고 질겅질겅 씹어삼키는 중이다.

…….

….

… 하.

한숨 섞인 웃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진짜… 불, 사교… 씨… 발… 새끼들….”

그래. 너희는 놀래킬 준비가 다 돼 있구나.

정말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받았던 다른 깜짝 선물들보다 최소 10만배는 놀라워.

나중에… 아무리 나중이라도. 반드시 지금 내 기분을 너희들한테도 느끼게 해줄게.

갈아 마셔도 시원찮을 천하의 썅놈새끼들 같으니.

“미안하다. 타라.”

나는 베스타크를 번쩍 치켜들었다.

치지지징. 마력검이 타라 엄마 위로 장전되었다.

“끼… 케극… 으그그극….”

우드득. 목이 이상한 방향으로 뒤틀린 그녀가 마력검을 쳐다봤다. 단단하고 총명해 보이던 회색눈은 없고, 새빨간 짐승의 눈알이 거기에 있었다.

주르륵. 피눈물이 그녀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 아아… 그아….”

타라 엄마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가슴팍에 돋아난 아가리로 나를 씹어삼키며. 아무런 저항도 없이 마력검을 그저 쳐다보기만 했다. 판결을 기다리는 사형수처럼.

나는 이를 악물고, 집행했다.

“…… 우리, 딸.”

퍼버버버벅!

질척한 파육음과 함께 그녀가 고깃덩어리로 변하기 직전. 나는 그런 목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못 들은 걸로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