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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417413번째 소울라이크 용사-97화 (73/280)

97화 절망의 익스프레스

“크으… 주, 죽겠다.”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혀를 내둘렀다.

아픔이 가시고, 간신히 머리가 좀 돌아갈 상황이 되자. 가장 먼저 의문이 찾아왔다.

‘아니 근데… 진짜 어떻게 그 마족 누님이 불사교랑 같이 있는 거야?’

설마 이렇게 최악의 형태로 재회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니, 사실 재회할 거란 생각조차 안 하고 있었지. 뒤통수 한 대 씨게 맞은 느낌이다.

나는 불사교도와 그 누님 사이의 커넥션이 있을 법한 가정들을 떠올리려 해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둘 사이에 공통점이라곤… 나를 죽이고 싶어한다는 것. 그것 외엔 없을 텐데 말이다.

무슨 연결고리가 있어서 둘이 협력하게 된 걸까.

‘후. 생각해봐야 소용없는 거면. 생각하지 말자.’

잠시 고심한 결과. 나는 결국 그런 결론에 이르렀다.

지금 내가 가진 정보로는 어차피 해명하지 못할 커넥션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괜히 그걸로 고민하는 건 시간 낭비밖에 안 된다.

나는 직후 내 상태창을 띄웠다. 확인할 게 있어서였다.

[명칭: 박정용]

[별칭: 163417413번째 정식 용사. 마왕의 알 수호자. 불사에 종속된 자]

[LV. 164]

[체력: 1220/1220 마력: 450/450 신체상태: 약한 혼란]

[힘: 232 민첩: 388 지능: 51 히어로 센스: 19]

[남은 능력치 포인트: 0]

“좋아.”

역시 상당한 양의 경험치가 되돌아왔다.

할센베르크 시절에 이미 사신의 총애 스킬을 20레벨 마스터까지 찍은 상태라, 사념을 수복하면 경험치의 반절 가량이 수복된다.

전생에서 레벨을 21정도 올렸으니… 대충 그 반절인 10레벨이 계승된 것이다.

거기다 이자나미의 심장으로 수복된 추가 능력치도 만만치 않다.

물론 이 추가된 능력치는 죽고 난 다음의 생에는 이어지지 않지만… 당장 전투가 좀 더 쉬워지기에, 결국 레벨업이 쉬워지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대로 계속해서… 강해지는 거다. 조금씩이라도!’

나는 주먹을 불끈 쥐며 결의를 다졌다.

그렇다. 이것이 내가 이번 싸움에서 취할 근본적인 전략. 이름하여 ‘제2금융권식 복리 능력치 무한 데스런 작전’이다.

죽은 다음 잔류사념을 회복하면 경험치의 반이나 ‘사라진다?’ no.

죽은 다음 잔류사념을 회복하면 경험치의 반이나 ‘회복된다!’ yes, yes, yes!

이런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모토로, 죽을 때마다 쌓이는 경험치를 야금야금 모아 성장하고. 결국 놈들을 압도한다는… 단순하지만 확실한 압살법이다.

“…… 후우. 옘병맞을.”

물론 나도 안다. 이거 미친 작전이다.

죽음의 공포를 뼛속 깊이 느끼던 시절… 할센베르크에 있을 때는 절대 떠올리지 않을 발상이지. 지금의 약간 맛이 간 나만이 떠올릴 발상이다.

일단 이 작전을 수행하려면 필수적으로 따라오는 조건이 두 가지 있다.

‘무조건 전생보단 레벨을 많이 올릴 것. 그리고… 반드시 잔류사념을 회복하고 죽을 것.’

일단 전생보다 레벨이 낮은 상태에서 죽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만약 이번에 아무것도 못한 채 164레벨로 죽어버리면… 결국 다음 생의 내 레벨은 159까지 삭감될 테니까.

게다가 행여나 잔류사념을 회복하지 못하고 죽는 날엔, 지금까지 쌓아온 전투경험이 싹 다 날아가 버린다. 이게 치명적이다.

물론 죽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나는 잃었다는 자각도 없겠지만.

어쨌든 열심히 싸워서 레벨을 쌓았으면. 이제 죽으면 된다.

장렬하게 죽고, 경험치 토해내면 다음 생의 내가 받아먹고.

또 장렬하게 죽고. 경험치 토해내면 다다음 생의 내가 받아먹고….

이거 작전명 바꾸자. ‘박정용은 죽어서 경험치를 남긴다 작전’으로.

새삼 반추하니, 돌이킬 수 없이 곱창나버린 내 인간성이 실감되는 작전이다.

‘그래… 앞으로는 스킬도 찍어놔야겠어.’

스킬을 찍어놓은 뒤 죽었을 경우. 계승된 레벨 분량의 스킬은, 사념만 수복하면 그대로 수복된다. 물론 이자나미의 심장으로 사념을 수복하지 않으면, 스킬포인트가 쌓이게 된다.

전생에서는 쉴새없이 싸우느라 스킬 쪽은 생각조차 못 미쳤지만. 지금이라면 여유가 있다.

아니. 정확히는 지금 말고는 찍을 여유가 없다.

한 번 전투에 진입하면 그 뒤론 좀처럼 여유가 없어. 능력치 투자하는 시간만 해도 빠듯하다.

“대가리 깨져도 공격스킬이다.”

나는 흑익과 세븐 소드 피어스, 그리고 페이탈 쏜즈를 중점적으로 스킬포인트를 분배했다.

앞으로 전투 중에 생기는 스킬포인트도 웬만하면 세븐 소드 피어스나 페이탈 쏜즈에 투자할 생각이다.

당연히 장기적으로 보면 보조스킬을 골고루 찍는 게 좋겠지만. 이건 불사교라는 난관을 돌파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당장 필요한 스킬 위주로 찍자. 소모전으로 가면 무조건 내가 불리하니까… 광역 공격으로.’

더 강력하고, 빠르고, 정확한 공격으로 원샷 원킬이 이루어져야 한다. 스킬 원샷이 아니라 촉수 하나. 그리고 마력검 하나에 적 하나가 일격사할 정도는 강해져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이 비대칭 싸움은 승리 가능성이 전무하다.

물론 그런 면에서는 공격력 증가와 함께 촉수의 상한이 하나씩 늘어나는 페이탈 쏜즈가 이상적이긴 하지만….

‘이건 쿨타임이 있어서 문제고. 마력 소모도 꽤 커.’

결국 내 진짜 주력 스킬은 세븐 소드 피어스일 수밖에 없다. 특히 지금 같은 일 대 다수의 난전 상황에서라면 더더욱 말이다.

이 효자스킬 없었으면 진짜 어쩔 뻔했냐. 새삼 변경백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사무친다.

“좋아. 그럼….”

대충 지침도 정해졌다. 불사교를 저지하러 가자.

더 꾸물거리면 나만 불리해진다. 아직 시민 측의 저항세력이 남아있을 때 한 놈이라도 정리해야, 나중에 내게 몰리는 놈들이 적어질 테니까.

나는 곧장 흑익으로 날아오를 준비를 했고.

“저기요. 아저씨.”

직후 등 뒤에서 들려오는 가녀린 목소리 때문에 급히 제동을 걸었다.

흘깃 돌아보자, 추레한 누더기를 뒤집어쓴 소녀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손가락을 들어 내 얼굴을 가리켰다.

“어떤 아저씨. 이 오빠 말하는 거?”

“네. 아저씨요.”

오빠로 기껏 정정해줬건만 한결같군. 뚝심 있는 꼬맹이다.

나는 소녀의 얼굴을 가만히 살폈다.

“…….”

땟국이 흐르는 얼굴에 푸석거리는 갈색 머리카락. 그리고 음울한 진회색의 눈이 인상적인 꼬마다. 겉모습은 추레하지만 눈빛만큼은 살아있는 게 느껴진다고 할까.

평소 같으면 상황이 급하니 무시했겠지만, 나는 일단 그녀에게 완전히 돌아섰다. 저 단단한 눈빛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왜 부르는데. 오빠가 지금 좀 급하거든? 빨리 얘기해봐.”

“아저씨는… 사람 죽이는 무서운 아저씨들이랑 싸우러 온 거예요?”

“맞아.”

“그럼… 착한 아저씨인 거죠?”

“내 별명이 걸어다니는 유니세프긴 했지.”

사실 착해서 붙은 별명은 아니고 호구라서 붙은 별명이다만. 애초에 유니세프가 뭔지도 모를 애니까 그냥 넘어가자.

내가 뱉은 조크에 스스로 실실대고 있자니. 꼬맹이가 총총걸음으로 다가와 내 소매를 꾹 붙들었다. 그리고 절박한 얼굴로 올려다본다.

“아저씨. 우리 엄마 좀 찾아주실래요?”

순간 입가의 미소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대답하는 목소리는 자연스럽게 묵직해졌다.

“엄마?”

“엄마가 야시장 때문에 밖에 나갔는데, 아직도 돌아오지 않아요. 시장에 무서운 아저씨들이 너무 많아서… 찾으러 갈 수가 없어요.”

“…….”

“엄마… 괜찮겠죠? 잘 숨어있겠죠? 저, 엄마 다시 만날 수 있죠?”

그쪽 담당이 아니라 잘 모르겠는데. 불사교한테 문의해 보렴.

마음 같아선 공무원식 농담이라도 하고 싶은데. 울먹이는 꼬마의 얼굴을 보니 그럴 생각이 싹 날아갔다.

동시에 띠링, 내 시야 구석으로 알림창 하나가 등장했다.

[퀘스트 발생!]

[명칭: 엄마를 부탁해]

[난이도: 전설]

[상세: 멸망한 마을 엘라타의 피난민 타라는, 야시장에서 밤늦게 일하는 엄마의 귀환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타라의 어머니를 무사히 타라에게 데려다 주자.]

[보상: 타라의 반지. 13코퍼.]

이상하다.

일개 꼬맹이의 개인 의뢰에 할센베르크 탈출과 동급의 난이도가 붙었는데. 내 눈깔이 잘못된 거냐, 패널이 잘못된 거냐. 아님 이 세상이 잘못된 거냐?

하긴 저 미션이 할센베르크 탈출보다 어려웠으면 어려웠지, 쉽진 않으니까. 전설 난이도가 붙는 것도 이상할 건 없다.

‘근데 보상이….’

타라의 반지와 13코퍼라.

나는 순간적으로 타라의 손을 훑었다. 낡아빠진 철제 반지 하나가 보였다. 그것만으로도 대충 견적이 나왔다.

이 난감한 상황을 어떻게 빠져나갈지 고민하는 사이. 그녀가 추가타를 가해왔다.

“저 아저씨… 이거.”

“음?”

“제가 가진 돈 전부예요. 이거랑… 제 반지도 줄 테니까… 우리 엄마 데려와 주면… 안 돼요? 더는 주고 싶어도 가진 게 아무것도 없어요….”

나는 타라가 내민 것을 멍하니 받아들었다. 짤랑 소리를 내며, 손바닥으로 구리빛 동전 몇 개와 낡은 반지가 떨어졌다.

“어… 음….”

13코퍼와 타라의 반지. 그녀의 전재산이자, 시스템 상으로 걸려 있던 퀘스트 보상이었다.

아직 의뢰를 수락도 안 했는데 그녀가 보상을 먼저 줘버린 것이다.

삐빅―. 경보 같은 효과음과 함께 패널이 떠올랐다.

[퀘스트 완료???]

[보상 획득 - 타라의 반지. 13코퍼]

“…….”

용사 지원 시스템마저 초유의 사태에 당황한 게 분명하다. 물음표가 세 개나 박혀있는 게, 뇌정지가 온 모습이다.

나는 한숨을 깊게 내쉬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비장의 한수는 나중에 제시해야지 인마.’

얘가 빈민가 살면서 세상물정도 모르네. 너 이렇게 살면 눈 뜨고 코 베인다. 내가 많이 베여봐서 알아.

물끄러미 올려다보는 타라의 회색 눈동자를 가만히 쳐다보던 나. 결국 두 손을 들고 고개를 저었다.

항복의 표시였다.

“너. 쪼깐한 게 촉은 좋구나.”

“… 에?”

“호구새끼 골라내는 선구안이 보통이 아니야.”

이 급박한 상황에서. 하고 많은 사람들 중에 하필이면 나한테 부탁하다니. 그렇게 따지니 장사수완은 모르겠고 촉은 좋은 건지도 모르겠다.

… 아니면 설마 나한테서 그렇게까지 호구 냄새가 진하게 나냐?

뭔가 뒷맛이 찜찜한 채, 나는 망자의 함을 들어올려 메모를 휘갈기기 시작했다.

[판자촌에서 타라라는 애를 찾아라. 깜짝 놀랄 보상이 걸린 전설급 퀘스트가 있다.]

[7살쯤 돼보이는 여자애. 갈색 단발에 회색 눈. 딱 보면 알아.]

미래의 내게 보내는 심부름 쪽지였다.

생판 남에게는 관심이 일절 없지만. 일단 엮여버린 사람이면 얘기가 다르다.

최선을 다해야 직성이 풀린다. 다음 생의 나도 결국 나니까, 내 행동을 나무라진 않을 거다.

‘음… 일단 거짓말은 안 했어.’

물론 일을 싸질러 놓고, 다음 생의 나한테만 맡겨놓을 만큼 생각이 없진 않다.

나는 타라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어준 뒤 최대한 믿음직스럽게 말했다.

“오빠가 너희 엄마 찾아올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라.”

“아… 아!”

줄곧 흐려져 있던 타라의 얼굴에 그제야 미소가 돌아왔다. 그녀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고. 이내 내 옷깃을 꽉 붙잡았다.

“아저씨… 우리 엄마, 찾아와줄 수 있어요?”

“거럼.”

“아저씨, 시장의 무서운 아저씨들보다 강해요?”

“당근빳따지. 그것보다 자, 따라해 봐. 오빠. 오.빠.”

“아저씨… 죽으면 어떡해요?”

“에효.”

내 추한 노력은 동심 앞에서 속절없이 무산되었고. 결국 나는 패배의 쓴웃음을 머금은 채 뒤돌아섰다.

파바박! 망토가 갈라지며 까마귀의 날개로 변한다. 나는 날아오르기 전, 타라에게 마지막 한 마디를 남겼다.

“아저씨 불사신이야. 절대 안 죽어.”

그리고 나는 땅을 박차고 밤하늘로 날아올랐다.

휘둥그레 뜬 눈으로 바라보는 타라의 얼굴이 빠르게 멀어졌고. 나는 만족스럽게 웃음을 머금었다.

‘하. 존나 멋있었다 박정용.’

솔직히 지금 이 순간을 맛보기 위해 타라의 의뢰를 받아들였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나는 ‘차도남이지만 어린이에겐 따듯한 다크히어로 박정용’을 몇 번이고 곱씹으며, 히죽거리는 얼굴로 시가지를 향해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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