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화
싸움은 지리멸렬하게 지속되었다.
한 시간 정도가 지나자 경비병들이 몰려왔고. 그들은 불사교도의 결속과, 이례적인 몇 불사교도의 강력함에 무릎을 꿇었다.
잠시 지나자 시민들과 똑같은 몰골로 바닥을 기는 꼴이 되었다.
“사, 살려주세요….”
“아파… 아파요…!”
살아남은 시민들은 케른을 벗어나기 위해 시가지를 빠져나가려 했다. 아니면 더 깊은 골목으로 들어가 저 무자비한 손속을 피하려 했다.
“안 돼 로니! 제발! 제바아알!”
“누나아아아!!”
그렇다 보니 대규모의 전투나 학살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지금에 와서는 숨바꼭질이나 술래잡기에 가까운… 도처에서 일어나는 소규모의 학살과 국지전이 반복되고 있었다.
물론 숨바꼭질이든 술래잡기든. 대부분 불사교도들이 승리했다.
“X발 진짜… 끝이 없네!!”
파바바박! 나는 주변에 즐비한 불사교도들을 마력검으로 벌집을 만든 뒤. 짜증이 치솟은 나머지 빽 소리질렀다.
“…….”
“…….”
내 주변으로 무수한 불사교도들이 악수의 요청을 하고 있다.
쓰러진 불사교도들 너머로 또 다른 불사교도들이 자리를 꿰어찬다. 무슨 편의점에서 진열물품 채우듯이 자연스럽게 교체된다.
그 징글징글한 광경에 나는 또 욕지기를 주워섬겼다.
“후우… 허억… 옘병 진짜….”
불사교도를 죽이기 위해 전장을 종횡하던 나는, 어느새 판자촌이 있던 뒷골목에서 놈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물론 이 상황은 내가 원해서 만든 게 아니다. 놈들이 교묘한 방식으로 나를 추격한다 싶더니. 어느새 이런 골목까지 유도당해 앞뒤로 포위당한 것이다.
“한놈씩 좀 덤벼라. 한놈씩….”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땀은 비오듯이 흘러 턱을 타고 줄줄 흘러내렸고. 호흡이 너무 가빠져서인가. 눈앞이 흐리다.
몸에는 크고 작은 생채기가 가득했다. 옷 안이 땀과 피로 흥건해 기분이 나쁘다.
그 중에서도 왼쪽 어깨는 거의 뼈가 드러나도록 깊게 상처가 났다. 그래서 휘두를 수 있는 건 오른손의 베스타크 뿐이었다.
에테르는 바닥난지 한세월 됐고. 왼팔은 들어올릴 힘도 없다.
세븐 소드 피어스를 사용할 때 외엔 사실상 기능이 정지했다.
‘망할… 한계다.’
지금 상황 자체가 힘든 것도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힘든 건, 도저히 끝이 안보인다는 점. 그것이 절망감을 야금야금 부추겼다.
족히 100명은 넘게 죽인 것 같다. 하지만… 아직도 까마득하다.
‘어그로를 끈 것까진 좋은데….’
화려한 광역 스킬들로 학살을 하고 다녀서 그런가. 주위에 있던 불사교도들은 모두 일반인 학살을 중지하고 내게 몰려든 상태였다. 놈들에게도 내가 제1의 척살대상으로 인식된 것이다.
학살이 멈춘 것까진 좋다.
하지만 그만큼 분산되어 있던 불사교도를 모두 견뎌야하는 입장이 되어서, 체력소모가 생각 이상으로 빠르다.
“…….”
여기까지인가. 그런 말을 중얼거리려다 직전에 틀어막았다.
사망플래그를 박아도 정도가 있지. 나는 좀 더 긍정적인 말을 하기로 했다.
“이 싸움이 끝나면 세스나한테 청혼하러 가야겠다.”
결국 사망플래그인 건 똑같다만.
내 농담이 재미있었는지, 불사교도들이 격한 리액션을 해줬다.
“…….”
투두두두! 사방에서 나를 둘러싸고 있던 불사교 놈들이 일제히 달려든 것이다.
나는 몸상태를 한번 체크해보고. 놈들의 수준을 한 번 살펴봤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다.’
객관적으로 판단했을 때, 이번 웨이브를 버티지 못하고 나는 죽는다.
나는 시선을 흘깃 내렸다. 그리고 정신을 집중해 내 상태창을 허공에 띄웠다.
[[명칭: 박정용]
[별칭: 163317413번째 정식 용사. 마왕의 알 수호자. 불사에 종속된 자]
[LV. 175]
다른 건 몰라도. 이번 도전으로 이거 하나는 확실해졌다.
‘불사교도는 황금고블린이다.’
놈들은 스펙을 한참 웃도는 경험치를 쏟아내고 있다.
그러지 않고서야, 고작 한 시간 밖에 버티지 못한 내가. 벌써 20에 가까운 레벨업을 할 수 있었을 리가 없다.
‘어지간히도 불사교가 싫나 보다?’
다분히 의도가 느껴지는 경험치의 몰빵이다. 나는 불쾌함에 어쩔 줄 몰라하는 똥털의 얼굴을 상상하며 피식 웃었다.
‘일단 저항할 수 있는 데까진… 저항해야겠지.’
나도 나를 34번이나 죽인 놈들한테 곱게 죽어주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으니.
나는 곧장 베스타크를 들고, 힘껏 아래로 내려쳤다.
“지뢰진!”
쿠구구궁. 지면을 울리는 진동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처음 마력 충만했던 때의 위세에 비하면 형편없지만. 여전히 잠깐 시간을 버는 데에는 충분했다.
나는 놈들의 스크럼이 흐트러진 그 틈을 타 곧장 스킬을 영창했다.
‘연화.’
푸직! 나는 시야가 흔들린다 싶은 순간 미리 검을 찔러넣었고. 베스타크는 부드럽게 불사교도의 뱃가죽을 꿰어버렸다.
쉴 틈은 없다. 나는 곧장 잠입 스킬로 놈들의 인파에 숨어든 뒤, 종횡무진으로 놈들을 유린하며 미친 듯이 베스타크를 휘둘렀다.
“그림자 사슬!”
빈틈을 발견했다. 나는 곧장 스킬을 사용했고.
촤르르륵! 시커먼 사슬이 득달같이 튀어나와 한 불사교도의 온몸을 속박했다.
“…….”
놈이 바둥거릴 때마다 몸에 활력이 돌아오는 것이 어렴풋이 느껴진다. 하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카앙! 키이잉! 사방에서 돌아오는 반격을 막아내고, 맞는 데에 깎이는 체력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
“…….”
그리고 이것도 처음엔 꽤 잘 먹혔던 전술이지만. 지금에 와서는 너댓 명을 참살하자 곧장 놈들이 대응책을 실행했다.
“…….”
불사교 놈들이 서로 거리를 벌린다. 경계태세를 취해 내 침투를 막는 진형을 짜기 시작한다.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곧장 놈들의 무리 속에서 이탈하려 했다.
그리고 퍼걱! 둔중한 소음과 함께 등줄기에 격통이 치달렸다.
“커… 억!”
나는 허리를 비트는 것과 동시에 검을 휘둘렀다. 서걱, 현실감 충만한 손맛과 함께 불사교도 하나의 머리가 내 앞으로 나뒹군다.
머리를 잃고 망연히 서 있는 놈의 육체는, 내 등에 검을 박아넣은 채 멈춰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는 더욱 놈들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대체… 무슨 원리야?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 거냐고.’
내 움직임을 보고서 학습한 게 아니다.
애초에 할센베르크에서 변경백 아래에 다져진 내 특제 암살법은, 알고도 당할 수밖에 없는 극한의 테크닉이 녹아 있다.
하지만 놈들은 무슨 하나의 유기체마냥 점점 내 전술에 적응했다.
본인이 직접 겪지도 못한 것을… 마치 개미나 벌떼들이 그러하듯이. 일견 섬뜩하기까지 했다.
‘저 단합력의 비밀부터 밝혀내지 않으면…!’
잡생각이 너무 길었던 것일까. 고통으로 신경이 분산되어서인가.
나는 순간적으로 뒤에서 느껴지는 막대한 살기를 너무 늦게 눈치챘다.
“큭!”
하나 남은 팔로 무리하게 몸을 뒤틀었고, 곧장 검을 휘둘렀다.
카아앙! 긴 금속음이 울렸다. 팔이 뒤틀렸다. 생각 이상으로 엄청난 힘에 몸이 견디지 못한 것이다.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 상대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내 몸에 푸욱. 검을 찔러넣었다.
“… 커, 헉.”
순간 시간이 정지했다가, 다시금 흐른다. 가슴을 후벼파는 끔찍한 이물감에 숨을 삼켰다.
내 가슴을 꿰뚫은 붉은 대검이 왠지 낯이 익어 의아하던 찰나.
나는 고개를 가까스로 들어올렸고. 대검의 주인을 눈에 담고는 망연자실한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하… 이, 건… 진짜….”
상상도 못한 정체의 인물이 거기에 있다.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반가움마저 서렸다.
도저히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만난 탓인가. 분노보다도 황당함이 머릿속에 가득찼다.
“분명히 말했을 것이다. 반드시 복수할 것이라고.”
그렇게 뇌까리는 보라색 입술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증오로 활활 타오르는 붉은 눈빛과 보라색 피부. 그리고 육감적인 몸매를 아슬아슬하게 가리고 있는 낡아빠진 하얀 갑옷.
“… 오랜만이네. 누님.”
언제였던가. 이름 모를 불타는 마을에서 ‘폴룩시우스’라는 마왕을 잡고, 놔줬던 상위마족이다.
이름이 아마… 프리뮬러였던가. 프라모델이던가. 뭐 아무래도 상관없다.
이름은커녕 존재 자체를 잊고 있었던 엑스트라 년이… 이딴 식으로 등장한다고?
인생 얄궂어도 너무 얄궂지 않냐. X발. 고통으로 찡그린 얼굴에 허탈한 웃음이 절로 떠올랐다.
“불사교는 어쩌다 입사했어. 근무여건이 좋아? 마족이라도 사대보험 들어준대?”
“…….”
“대답 좀 해봐 누님. 모처럼 오랜만에 만났는데….”
“… 오랜만? 네놈이 성하를 죽인지 고작 일주일 밖에 흐르지 않았다.”
실화냐. 나는 마족 누님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그래. 그렇군. 정상적인 사람의 기준으로는… 일주일 정도 흐른 게 맞구나.
나는 조금 멍해진 나머지 중얼거렸다.
“이야. 그러네 참. 누님이 너무 보고 싶었나봐. 그 사이… 한 두어달은 지난 줄 알았네.”
“… 네놈에겐, 죽음조차 단죄가 되지 못하는 모양이군.”
내가 연신 비아냥대자, 누님의 시선이 증오에서 혐오로 탈바꿈했다.
한낱 인간이 죽음 앞에서 이렇게 초연하다니. 이해할 수 없는 괴물을 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하다하다 마족한테까지 저런 눈빛을 받네.’
내가 정말 갈 데까지 가긴 했나 보군. 나는 고소를 머금었다.
곧 마족 누님은 내 태도에 아랑곳 않고, 제 혼자 중얼거린다.
“… 그래도 나는, 해야할 일을 할뿐이다.”
해야할 일이라. 지금 그녀가 해야할 일이라면?
나는 순간 의아함에 눈을 조금 크게 떴고. 직후 그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끄…!”
우드드득! 내 몸을 관통한 대검이 횡으로 내 몸을 갈랐다. 갈비뼈를 속절없이 부수고, 몸 밖으로 빠져나간다.
까마득해지는 시야로 장난감처럼 나뒹구는 내 장기들이 보인다.
빠르게 암전되었다.
* * *
[불사의 마왕, 루스티카 아스모데우스에 의해 회귀 고정축 강제 개변이 시행되었다.]
[불사의 회귀점이 갱신되었다.]
[일시 - 대륙력 1108년, 1월 13일, 02시 44분]
[장소 - 마르크트레스. 약속의 평원 상부지역, 소도시 케른 서부 관문]
얼떨떨하게 패널을 내려보는 내 앞에서, 루시가 천천히 맞닿았던 입술을 떼어냈다.
기분 탓인가. 핏기 없는 루시의 하얀 얼굴이 조금 붉게 물들어 있는 듯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상상 이상으로 무거운 침묵이다.
“…….”
“…….”
뭐냐. 갑자기 키스를 했으면 뭔 말이라도 해보란 말이다. 왜 그랬는지 설명을 하든가.
이 곱창난 분위기 어쩔 거냐고.
‘키스야 강제 회귀점 갱신 때문인 거 같은데….’
이유 자체는 대충 이해가 간다. 회귀점 갱신하려면 그런 귀찮은 조건이 붙어 있는갑지.
하지만 이어지는 묵언 수행은 왜 그러는 거지. 이런 어색한 침묵은 그녀답지 않다.
의아해하는 찰나. 루시가 땅이 꺼질 듯한 한숨과 함께 나를 올려다봤다.
“에효. 첫술에 배부를 생각이야 없었다만… 결국 이렇게 됐구만?”
“…… 뭐라고?”
나는 어리둥절하게 마주봤고. 루시는 내 표정을 보며 알만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타까움과 답답함이 뒤섞여 그녀의 얼굴에 떠있다.
“하아…. 용사. 지금부터 내가 하는 얘기 의심하지 말고 잘 들….”
루시가 떠벌거리기 시작한 직후. 그녀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깨끗이 허공으로 증발했다. 변신했던 외형도 순식간에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동시에 철퍼덕! 좀 많이 아파보이는 사운드와 함께 루시의 신형은 바닥에 속절없이 처박혔다.
“꺄욱.”
새된 비명이 바닥을 울린다.
잡아줄 새도 없었다. 평소라면 몸이 먼저 나가서 잡아줬겠지만… 그녀의 이상행동에 정신이 좀 멍해 있었기 때문이다.
“어. 괜찮냐?”
내가 걱정스럽게 물으며 다가가자, 루시는 괜찮다는 걸 온몸으로 어필하듯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새빨갛게 부어오른 이마를 매만지며 내게 말했다.
“에이이! 그,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용사! 네가 지금 무슨 작전을 구상하고 있든, 그거 바꿔라!”
“… 작전을 바꾸라고? 아니 왜. 아직 시도도 안 해봤는데….”
“너 벌써 한 번 죽었다! 실패했다고 이 화상아!”
쪽팔림을 어떻게든 무마하려는 루시의 행색이 처량해서 눈물이 쏟아질 정도였는데.
그녀의 입에서 나온 발언은 피눈물이 쏟아질 내용이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