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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417413번째 소울라이크 용사-87화 (63/280)

87화

“이건… 망토인가? 아니, 로브?”

나는 상자 안에 들어있던 물건을 들어올렸다.

스르륵. 시커먼 천이 손에 딸려 나온다. 아니, 천이 맞긴 한 건가. 굉장히 가볍고, 따듯하고… 또, 알 수 없는 부드러운 재질이 무척 신기했다.

나는 곧장 미미르의 눈을 발동시켰다.

[아이템 정보]

[명칭: 진화의 흑익(黑翼) (고유)]

[보정치: 힘 +20, 민첩 +20, 지능+20, 방어도 +1300]

[상세: 고유 아이템. 사신 운터드레드, 타나트닉스, 케이어시스가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특수 망토. 착용 시 전용 스킬을 획득한다. 사신의 계약자만이 착용할 수 있으며, 마기를 흡수하면 스스로 강해진다.]

[강화 가능 회수: 0]

“바, 바, 바, 방어도가 1300?!”

방어구에 힘, 민첩, 지능 스테이터스가 붙어 있는 것도 놀랍지만. 방어도 수치 자체가 일단 너무 높아서 눈알이 튀어나올 뻔했다.

‘무, 무슨 방어도가 내 체력이랑 비슷하냐!!’

제논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시스템화 방어구는 ‘방어도’에 따라 착용자를 방어한다.

방어구를 착용하면 ‘방어도’라는 수치가 체력에 덧씌워지는 느낌이랄까. 즉 맞을 때마다 피격 데미지가 일정량 줄어드는 것이 아니고. 배리어처럼 방어도 수치만큼의 충격을 완전히 막아준 다음에는, 특수 효과가 없는 일반적인 천 쪼가리나 금속쪼가리로 전락한다는 소리다.

물론 소진된 방어도는 신전에서 축성(祝聖)을 통해 수리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진화의 흑익’이 가진 방어도는 무려 1300.

이걸 착용하는 것만으로도, 사실상 내 체력이 2배 정도 높아진다고 보면 된다.

나는 들고 있던 망토를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사신들에게 홱 고개를 돌렸다.

“보, 보통… 내 레벨 대 방어구들은 방어도가 이정도인가?”

당연히 부정이 나오길 바랐다.

다른 방어구들도 죄다 이 정도 수준이라면. 지금까지의 내 고생이 너무 억울해지니까.

나는 입고 있던 후줄근한 셔츠와, 그 위에 너덜거리는 가죽 경갑에 시선을 돌렸다.

[명칭: 가죽갑옷]

[보정치: 방어도 +5]

[상세: 신출내기 용사에게 지급되는 기본 장비. 특별한 성능은 기대할 수 없다.]

[강화 가능 회수: 5]

방어도 5. 단 5!

진화의 흑익과 비교하면… 무려 260배의 차이.

앞의 추가 스탯은 보이지도 않는다. 방어도만 봐도 이미 260배다.

안 돼. 그러면 안 돼. 지금까지 260배 어렵게 살아온 나는 뭐가 돼.

절대 그럴 수는 없어. 이 X발… 세상이 나한테 그래선 안 되는 거라고.

내 절박한 바램대로, 다행히 사신 세 자매는 고개를 저었다.

“으음. 그렇지는 않아.”

“우리 세 명이 계약자를 위해 엄청 공들여서 만든 거거든.”

“다른 아신들의 특제 방어구들보다도 훨씬 좋아! 믿어도 돼.”

“계약자는 우리한테 특별하니까.”

“죽음의 냄새는 좋지만… 망가지면 안 되니까.”

“망가지지 않게 튼튼하게 만들었어.”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나는 가슴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흥이 붙은 사신들이 사족을 덧붙이고 말았다.

“다른 방어구는 기껏해야 그거의 절반 수준일 거야.”

“하지만 봐. 이건 계약자의 체력치랑 거의 비슷한 수준인걸.”

“대단하지? 응? 칭찬해줘.”

너희는 칭찬받고 싶었으면 그 말을 하면 안 됐다.

결국 내가 최소 130배 어렵게 살고 있었다는 걸 확인사살한 꼴이니까.

“인생은 똥이야….”

나는 망연자실하게 중얼거리며, 받은 망토를 그대로 몸에 둘렀다.

그러자 스스슥. 내 몸에 맞게 망토가 알아서 사이즈를 조절했다. 방어도 단 5!짜리 가죽갑옷에선 볼 수 없는 편의성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오오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망토의 일부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쭉쭉 늘어나더니. 내 상의와 하의를 빈틈없이 둘러쌌다. 시간이 잠시 지나자, 머리부터 발끝까지 은은한 흑색으로 깔맞춤한 패션이 자동적으로 완성되었다.

불편한 기색은커녕 굉장히 착용감이 편하다.

“오, 오오오….”

방어도 단 5!짜리 가죽갑옷 밖에 못 입어봤던 나는, 그 엄청난 비주얼에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직후 두둥, 하는 특유의 알림창 소리와 함께 패널이 연신 등장했다.

[진화의 흑익 전용 스킬 - ‘페이탈 쏜즈’가 개방되었다.]

[진화의 흑익 전용 스킬 ― ‘흑익’이 개방되었다.]

[스킬 정보]

[명칭: 페이탈 쏜즈 (fatal thorns) LV. 1]

[효과: 공격형 가시촉수 최대 10개 조작. 지속시간: 30초. 재사용 대기시간: 5분]

[상세: 진화의 흑익의 첫 번째 변신 형태. 망토를 가시 형태의 촉수로 만들어 조종할 수 있다. 공격력은 착용자의 스테이터스를 따르며, 가시의 수는 스킬 레벨에 따라 증가한다. 다른 변신 형태와 중복사용은 불가하다.]

[명칭: 흑익 LV. 1]

[효과: 부력 부여. 비행 가능. 지속시간: 1분. 재사용 대기시간: 30분]

[상세: 진화의 흑익의 두 번째 변신 형태. 거대한 날개로 변해 잠시간 비행을 가능하게 한다. 체공 시간은 스킬 레벨에 따라 증가한다. 다른 변신 형태와 중복사용은 불가하다.]

“오오오, 오오, 오오오…!”

방어도 단5! 짜리 가죽갑옷에선 볼 수 없는 특수 성능에 졸도할 것 같다.

너무 기쁘다. 공수합일의 고성능에 성장형 장비. 이런 완벽한 장비라니. 이런 걸 받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최고의 선물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어라. 나, 왜 눈물이…?”

나는 결국 그 자리에 엎어져서 땅을 치고 오열했다.

개고생한 과거의 나에게 바치는 진혼곡이었다.

* * *

“힘내 계약자. 우리가 잘못했어.”

“그래. 미안해. 이제 그만 기운 내.”

“그, 계약자. 전직하자 전직!”

하얗게 불태운 채 멍하니 허공만 보는 나. 사신들이 안절부절하다가 그렇게 말을 걸어왔다.

전직. 그래. 전직해야지.

애초에 그것 때문에 바쁜 시간 쪼개서 신전까지 왔던 거니까. 지나간 일 가지고 언제까지나 허탈해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가까스로 정신을 추스르고 사신들을 마주봤다.

“그래. 전직… 나는 어떤 클래스로 전직할 수 있지?”

“흑기사.”

“나이트스토커.”

“에니그마.”

세 사신은 돌아가며 한 마디씩 내뱉었다. 아마 그렇게 세 개가 내가 전직할 수 있는 클래스인 듯하다.

설명을 요구하려 하기 무섭게, 두둥. 사신 자매의 앞으로 알림창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사신 자매들이 미리 설명 패널을 준비해놓은 모양이다.

[클래스명: 흑기사]

[상세: 사신의 총애를 받은 자의 전직 클래스. 높은 방어력과 높은 공격력이 주무기로, 대인격투에 강점을 보인다.]

[클래스명: 에니그마]

[상세: 사신의 총애를 받은 자의 전직 클래스. 저주, 환술을 비롯한 각종 보조계 마법이 주무기로, 대규모 및 다대일 전투에 강점을 보인다.]

[클래스명: 나이트스토커]

[상세: 사신의 총애를 받은 자의 전직 클래스. 높은 민첩성을 기반으로 암습 및 잠입에 특화된 클래스로, 특수전에 강점을 보인다.]

이건 사실 고민할 것도 딱히 없었다.

보아하니 직업의 바리에이션 자체가 힘, 민첩, 지능 중점 별로 하나씩 등장하는 모양인데. 나는 성격상으로나 현재 스테이터스 상으로나 선택의 여지가 없다.

“나이트스토커로 하겠어.”

나는 대수롭잖게 곧장 직업을 정해버렸고. 그 빠른 결단에 사신 세 자매는 흠칫 놀랐다.

그리고 이번에도 제들끼리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와아. 결정 빠르네. 이번 계약자는 그 사람이랑은 다르구나.”

“그러네. 흑기사가 아니네.”

“당연히 흑기사일줄 알았어. 그 사람이랑 느낌이 비슷하니까.”

그들이 신나서 떠드는 말에 나는 순간 눈썹을 틀어올렸다.

“… 그 사람? 나 말고도 너희한테 전직을 받은 사람이 있었단 말이야?”

내 말에 세 사신이 눈을 잠시 끔벅이더니. 이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반짝이는 눈동자는 그 때를 상기하듯 멀어져 있었고. 또 즐거워보였다.

“있었다고 할까… 애초에 그 사람은 만났을 때부터 흑기사였지.”

“계약자. 너랑 엄청 비슷한 사람이었어.”

“마녀의 기사였거든.”

잠깐만. 누구라고?

순간 사고가 정지했다. 시선은 본능적으로 허리춤의 쌍검에 닿았다.

마녀의 기사 한. 또 그 이름이 나왔다. 대체 놈은 뭐하는 자식이지? 왜 이렇게 내 가는 길마다 사사건건 이름이 들려오는 거지?

우연? 아니. 단순한 우연이라기엔… 빈도가 너무 잦지 않나?

“마녀의 기사는… 대체 어떤 놈이야?”

복합적인 의미를 담아 질문했다. 솔직히 질문한 나조차도 정확히 뭘 알고 싶은 건지 말하라면… 확답할 자신이 없다.

그리고 그런 내 질문에 세 사신은 동시에 히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지금껏 보여주던 순수한 웃음과는 어딘가 다른, 진짜 사신다운 웃음이었다.

“말했잖아 계약자. 너랑, 아주 비슷한 사람.”

“어떻게 보면 지금의 용사 시스템을 만든 일등공신이지.”

“마녀를 지켜주기 위해 세상을 적으로 돌린 사람. 로맨티스트야.”

대답은 천차만별이었지만. 하나같이 의미심장했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어딘가 끈적한 느낌이 드는 그녀들의 시선에서 눈을 돌렸다.

더 파고 들면 안 된다. 본능이 그렇게 경고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본능에 따랐다.

“… 빨리 전직이나 시켜줘.”

그래. 마녀의 기사고 나발이고, 뭐 그리 중요하겠냐. 지금 내 코가 석자인데.

내가 화제를 돌리자, 사신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눈을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기분 탓인가. 유난히 그녀들의 눈이 번들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럼.”

“시작해볼까?”

“계약자의 전직 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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