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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417413번째 소울라이크 용사-84화 (60/280)

84화 엇갈림

“세스나… 물색 머리의 여자라고 하셨죠? 그 외에 특징은 있나요? 아니면 소재가 짚이시는 곳은요?”

설백은 갑작스러운 내 부탁에도 일언반구없이 따라줬다. 오히려 세스나의 특징을 내게 되묻기도 했다.

나는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당황했지만. 일단 세스나의 인상착의를 떠올리며 차근차근 대답했다.

“음… 복장이 바뀌지 않았다면 하얀 원피스를 입고 있을 거야. 그리고 요리를 배울 수 있는 장소. 아니면… 음식이 맛있기로 소문난 식당 주변을 잘 찾아봐. 분명 거기에 있을 테니까.”

“시, 식당…? 예에… 이, 일단 알겠어요.”

설백은 내 요구가 당최 이해가 안 되는지 고개를 연신 갸웃거렸다.

그래. 쓸만한 전투원 찾아오는 줄 알았더니, 식당에서 찾으라 들으면 당황스럽겠지. 나 같아도 이해 안 되겠다.

“그… 의심가는 건 이해하는데, 일단 내가 말한 대로 찾아줘. 부탁할게 설백.”

“의, 의심이라뇨! 그, 그게 아니고 좀 특이하다 싶었을 뿐이에요!”

설백은 고맙게도 그렇게 말해줬다.

근데 설백. 사실 나부터가 좀 의심스러워. 굳이 그런 입발린 소리 안 해도 된다.

‘일단… 전생에서 제나가 분명히 말했으니까.’

세스나는 현존 최고 난이도 시험인 ‘망자의 계곡’을 누구보다 빠르게 통과했다. 아마 기본적으로 나사가 빠진 애라 그렇지, 전투력 자체는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아마도.

설백은 내가 내린 임무를 혼자 되뇌이는가 싶더니. 다시 퍼뜩 나를 올려다봤다.

“그리고요? 세스나라는 분을 찾고 나면… 저는 무얼 하면 될까요?”

“세스나를 찾아오면….”

나는 거기까지 말하고 고개를 저었다.

전제가 잘못됐다. 세스나를 찾든 못 찾든, 설백이 다음에 할 일은 같으니까.

“세스나를 찾든 못 찾든. 오늘 자정이 지나기 전까지는 반드시 약속의 평원에 가. 제논은 다시 내가 있는 곳으로 돌아오게 하고… 설백. 너는 약속의 평원에서 대기하면서, 네가 사용할 수 있는 최강의 방어 기술을 자신한테 걸어 놔.”

“최강의 방어 기술….”

나는 속사포처럼 떠벌렸고. 설백은 내 얘기를 따라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이해하려는 행색이었다.

아마 전에 사정설명을 대충 해줘서, 내가 왜 그런 일들을 시키는 건지 좀처럼 이해가 안 될 것이다.

설백은 결국 도저히 궁금해서 못 참겠는지, 조심스럽게 질문을 꺼냈다.

“약속의 평원…? 케른 서쪽에 있는 그 폐쇄된 용사 시험장 말인가요?”

“그래.”

“하지만 거기는 지금 용사 시험이 완전히 끝나서 아무도 없을 텐데요?”

“그러니까 거기로 가라는 거야.”

그 새하얀 폭발은 반지의 위치를 추적해서 일어난다.

때문에 폭발이 일어나는 순간, 사람이 전혀 없는 약속의 평원에 설백이 위치해야 한다.

그래야 도시와 사람들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

“설백. 네 방어 스킬은 폭발을 충분히 견뎌낼 수 있어. 이건 확실하니 믿어도 좋아.”

“아… 네에.”

전생에서 하얀 폭발이 일어났던 순간. 설백에게 루시를 보호하도록 부탁했을 때, 내가 다시 회귀했던 게 가장 큰 증거다.

루시가 방어스킬을 사용해도 죽었으면, 불사의 계약이 파기돼서 나 역시 폭발로 죽었을 테니까.

“문제는 아란의 몸이 하나뿐이라 방어 인원 역시 한 명이라는 건데… 그건 폭발에 휘말릴 사람을 너 하나로 줄이면 되는 문제잖아?”

“아! 그, 그래서 저만 약속의 평원에….”

“그래. 그런 거지.”

이렇게만 되면… 일단 폭발 대책은 완벽하다고 볼 수 있다. 설백도 그제야 납득이 되는지 혼자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얼굴이 밝아진 설백과 다르게 나는 조금 그늘이 졌다.

‘그 폭발은 사건의 시작에 불과해.’

그래서 설백과 내가 찢어져서 움직이는 것이기도 하다.

그 폭발을 일으킨 당사자들인 불사교. 그리고 놈들이 설백을 제물로 바쳐 소환하려 한다는 4마왕 중 하나, 아스타르트.

이 굵직한 놈들이 남아있다.

전생에서 폭발에서 살아남았던 시민들까지 모두 죽어있었던 점을 봐서, 적어도 불사교도들이나 소환된 아스타르트. 둘 중 하나가 폭발 이후에도 케른에서 활개치고 다닌 것이 분명하다.

아스타르트의 소환은… 설백의 죽음을 막아서 어떻게 저지한다 치자. 그래도 케른에 숨은 불사교 놈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놈들이 본체다. 본체를 놓치면 죽도 밥도 안 된다.

‘전생에서는 변경백 친구라도 와줬다만….’

이번 생에서 내 계획대로 돌아간다면… 아마 적랑의 힘은 빌리지 못할 것이다.

전생의 대화를 떠올려 보면. 그는 타지에 있다가 소식을 듣고 케른으로 달려온 것으로 추측된다. 즉, 현시점엔 케른에 없다.

그리고 이번 생엔 케른에서 참극이 일어나지 않을 예정이니, 적랑이 소식을 듣고 케른으로 달려올 일도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더더욱 제논의 힘이 필요해.’

저 성능 좋은 드랍쉽(?)이 있어야 설백을 수도 및 약속의 평원으로 이동시킬 수 있고. 놈은 거래처였던 불사교의 정보를 적게나마 알고 있다.

최소한 케른에 숨은 불사교도 놈들의 대략적인 규모나 무력 수준 정도는 알고 있겠지.

지금은 그것만이라도 좋다. 뭐라도 좋으니 적에 대한 정보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 첫걸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는 초조하게 레스토랑 입구를 빤히 주시했다.

“여봐라 용사. 나도 뭐 하나만 물어보자.”

그러자니 지금껏 가만히 있던 루시가 내 옷깃을 꾹꾹 잡아당겼다.

별일이군. 아까부터 시큰둥하고 말도 없길래 상황 돌아가는 데 관심 없는 줄 알았더니.

나는 눈을 끔벅이며 루시를 마주봤다.

“뭔데 갑자기.”

“저 시뻘건 뾰족귀 놈년들. 저대로 둘만 내버려둬도 되는 게냐?”

“그게 뭔 소리야.”

“이렇게 우리가 멀찍이 있으면 도망가는 거 아니냐 이 말이다. 나라면 그리 할 것 같다.”

“그럴 줄 알고 제나한테는 이미 추적기를 붙여놨지.”

헛. 거기서 일단 마왕이 숨을 삼켰다. 그렇게까지 준비해왔을 줄은 몰랐다는 얼굴이다.

아무렴. 내가 씀씀이가 호구여서 그렇지, 각 잡고 일할 땐 나름 똑부러진다 이거야.

마왕은 눈매를 좁히며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으려 노력했다.

“그 커다란 뾰족귀는 순간이동을 할 수 있다고 했잖아! 케른 밖으로 나가면 추적기고 뭐고 다 소용 없는 거 아니냐!”

“그건 아닐걸?”

“… 아니라고?”

내가 즉답하자 루시는 눈썹을 틀어 올렸다.

직후 이유를 궁금해하는 눈빛이 쏟아졌기에, 나는 곧바로 이유를 댔다.

“제논은 오늘 임무를 달성하기 전까진 절대 케른을 빠져나가지 못해.”

“그, 그걸 네가 어떻게 아느냐?”

“여동생이 불사교의 볼모로 잡혀 있으니까.”

“헤에…? 그건 또 어떻게 알았느냐.”

“그야 뭐 이 존나 멋진 박정용님의 놀랍고 날카로운 직감과 통찰?”

“지랄과 염병….”

나는 길바닥의 돌을 툭툭 차올리며 상념에 빠졌다.

내가 이 사실을 처음 추측했던 건, 전생에서 제논이 중얼거렸던 마지막 한 마디 때문이었다.

―기다려 제나… 이 일만 끝나면… 아무도 너를 건드리지 못해….

다시 말하면 지금은 누군가 건드리고 있다는 소리다.

그 땐 다 죽어가서 그런 생각을 못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렇더라. 거기까지 유추하고 나니 견적이 쫙 나왔다.

진부하기 짝이 없고, 그래서 더욱 현실적인 전말이 그려졌다.

‘이러면 제나가 폭발 직전까지 케른에 있어야 하는 이유도 설명되지.’

모종의 이유와 방법으로 불사교가 제나의 목숨줄을 쥐고 있다.

그래서 제논은 지금까지 불사교의 더러운 의뢰를 강제적으로 따르고 있었다.

그리고 불사교는 이번 의뢰를 마지막으로 제논과 제나에게 자유를 약속했다.

뭐 대충 이런 흐름이겠지.

―이번 일을 제대로 마친들, 불사교가 네 여동생을 풀어줄 거 같냐?

내가 레스토랑을 나오기 직전, 제논에게 던진 한 마디는 바로 그런 의미였다.

선택 잘해라. 네가 지금 잡고 있는 동아줄은 썩어빠진 동아줄이다. 동생한테 일침 좀 맞고 정신차려라. 그렇게 경고한 것이다.

내가 추측한 것을 그대로 말해주니, 루시의 얼굴에 상당한 경악이 새겨졌다.

“거, 거기까지 생각하다니… 요, 용사. 네놈… 마냥 상병신은 아니었던 게냐?”

“원래부터 너보단 똑똑했다. 싸가지 없는 주둥이 2주 압수.”

“아가가가! 아, 아게따! 알겠다! 알게쓰니 볼 잡지 마라아앗!”

결국 이번에도 루시와 나의 대화가 볼 꼬집기로 끝나고. 신나게 상하좌우로 그녀의 볼을 유린하던 그 순간.

끼이이익. 긴 소음과 함께 레스토랑의 출입문이 열렸다.

‘드, 드디어!!’

나와 설백, 그리고 마왕의 시선이 동시에 입구로 쏠렸다. 새빨간 적발의 남매가 우리 쪽으로 다가오고 있다.

나는 곧장 루시의 볼을 놓고 두 사람을 살폈다.

‘결과는…!’

나는 가장 먼저 제나의 안색을 살폈다.

긴장이 풀린 기색이 역력했던 제나가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힘겹게 웃으며 브이를 그렸다.

성공. 성공이구나.

됐어. 계획대로다. 시작이 순조롭다! 나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 박정용. 나는 아직 너를 믿지 않는다.”

내가 혼자 뛸 듯이 기뻐하는 꼴이 보기 싫었는지, 가까이 다가온 제논은 그런 말로 서두를 끊었다. 덕분에 내 흥분은 짜게 식었다.

나는 멋쩍게 웃으며 일단 제논의 기분을 맞춰주기로 했다.

“뭐, 믿지 마. 안 믿어도 돼. 대신 시키는 거나 잘 해주면 돼. 딜?”

“…… 알겠다. 그쪽의 조건은 그게 다인가?”

“그게 다다. 그쪽의 조건은?”

“이쪽의 조건도 단 하나다. 제나의 안전에 대한 철저한 보장. 그것뿐이다.”

“…….”

정말 골수 척수까지 제나로 가득찬 역겹맥스 시스콘 새끼군요. 이 정도면 역겨움을 초월해서 경외롭습니다.

나는 능글맞게 웃었다. 시선은 제논의 옆에 꼭 달라붙어 있는 제나에게 있었다.

“역시 네가 생각해 봐도 불사교가 네 동생을 풀어줄 것 같지가 않지? 밑져야 본전인데 정용코인 한 번 탑승해야겠다 싶든?”

“…….”

“사회초년생들이 보통 너 같은 수순으로 블랙기업에 코 꿰이지. 호구 같긴.”

“… 블랙기업… 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호구라는 말에는 반박할 길이 없군.”

처음에 어떤 경위로 두 사람이 불사교와 접촉했는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지구에서 악덕기업, 다단계들이 개인을 사로잡는 경위는 대부분 비슷하다.

우선은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영입시킨다. 약점을 잡는다. 열심히 일하면 약점을 묻어주겠다고 회유한다. 열심히 일할수록, 회사가 시키는 불법적인 일에 물들어 발을 빼기 힘들어진다. 죽을 때까지 일한다. 그러다 회사에 위기가 오면, 가장 먼저 고기방패로 쳐내진다.

그러면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약점은… 폐기된다.

호구 근성은 유전인 건지, 우리 아버지가 그렇게 병신 같이 살다가 죽었다.

그래서 이런 수법은 아주 낯이 익다. 역겹도록 익숙하다.

‘그 때 아버지의 약점은….’

이런. 지구의 안 좋은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려고 한다. 나는 혀를 한 번 차고 잡생각을 물려버렸다.

“박정용. 말했듯이 나는 아직 너를 믿지 못한다. 그러니 네가 동생을… 제나를 확실히 지킬 수 있다는 증거를 보여주지 않으면… 나 역시 협조하기 어렵다.”

“증거라.”

미안. 사실 그런 거 없다.

제나를 확실히 지킬 수 있냐고? 낸들 아냐. 당장 내 목숨도 못 지켜서 빌빌대고 있는 마당인데. 아마 이번에도 사이좋게 케른에 뼈 묻지 않을까?

생각은 그렇게 했지만, 당연히 그대로 내뱉을 순 없다. 나는 제논의 어깨를 두들기며 믿음직한 어조로 말했다.

“장기적인 사안은 단기적인 사안을 먼저 해결하고, 그 때 논의하자고. 우선은 당장 닥친 아스타르트 소환부터 막고. 오케이?”

“아, 아스타르트까지 알고 있다니… 불사교 놈들이 정보를 함부로 흘렸을 리도 없는데… 대체 네놈은….”

제논의 표정이 귀신에 홀린 것처럼 흐리멍텅해졌다. 나를 쳐다보는 눈에는 공포에 가까운 호기심이 새겨져 있었다.

아무렴. 동생 말에 홀라당 넘어가서 꼬리 말고 나온 주제에, 아까부터 가오 챙기려고 발악을 하는데. 그래 뭐, 챙겨라.

‘나한테 굽히고 들어오는 게 자존심이 상할 테니, 그거라도 챙겨야지.’

나는 이미 전생에 제논한테 있는 쪽 없는 쪽 다 털려서 챙길 자존심이 남지 않았다.

그래서 괜히 자존심 세워 그에게 대항하는 대신. 실리를 좀 더 추구해보기로 했다.

“이젠 나도 너한테 몇 가지 좀 묻자.”

“… 불사교의 목적 같은 자세한 건 나도 모른다. 그런 쪽으론 물어도 딱히 도움을 줄 수 없어.”

“아 그래. 알만한 것만 물어볼 거니까 쫄지 마시고.”

어김없이 찾아온 질문 타임이다. 내가 그에게 물어본 것은 총 세가지다.

첫째. 케른에 숨어든 불사교도의 대략적인 규모와 무력 수준.

둘째. 아스타르트 소환의 정확한 발동 조건.

셋째. 제논과 박정용이 싸우면 누가 이기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 마지막 건 어디까지나. 패인을 분석하고, 내가 놓친 점을 수정하여, 전력을 증강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던진 생산적인 질문이다.

제논의 약점을 캐내서, 다음 생에 혹시 한판 붙으면 내 발 아래서 질질 짜게 만들어주지, 같은 생각으로 내뱉은 질문은 절대 아니다.

… 난 언제나 실리를 추구한다.

그렇고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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