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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417413번째 소울라이크 용사-83화 (59/280)

83화

제나를 회유하는데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예상한 나였지만. 그 뒤로는 의외로 순조로웠다.

“네. 그런 일이라면… 저, 따라갈게요.”

“으헤힝?”

“오빠가 저를 위해 무리하고 있다는 건… 저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으니까….”

어찌보면 당연할 수도 있다.

지금 얘랑 만나는 것만 세번째다. 나는 제나가 오빠인 제논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물론이고. 그녀를 구슬리는 데 가장 좋은 수단이 뭔지도 전부 알고 있다.

“이, 이걸 전부… 제가 먹어도 돼요?”

“그래. 너 먹으라고 산 거니까.”

“와아….”

그래서였을까. 고급 레스토랑(히오스 아니다)에서 상다리 부러지도록 차려진 음식 앞에서, 제나는 익숙한 반응을 했다. 저저번의 전생과 거의 판박이다 싶은 반응이었다.

제나는 얌전하게 외관과 달리 게걸스럽게 음식들을 해치우기 시작했고. 나는 그런 그녀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피식 웃었다.

“네 오빠가 모르는 사람이 맛있는 거 사준다고 해도 따라가지 말라고 안 하든?”

내 말에 제나의 수저와 포크가 잠깐 멈췄다. 얼떨떨하게 나를 올려다보던 그녀가 입에 있던 음식을 삼키더니, 배시시 웃었다.

“오빠는… 모르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하. 그건 그렇지.”

“게다가… 저희 오빠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

“같이 살고 있던… 저보다도 더요….”

제나에게는 이미 제논이 위험한 일에 말려들어 있다고 이실직고 해놓은 상태다.

처음엔 믿지 않았던 제나였지만. 내가 각종 정황증거를 대며 압박하자 결국 믿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 역시 마음 속 어딘가에선 불안과 의심을 계속 품고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엿다.

애초에 그걸 아니까, 나도 단도직입적으로 본론을 꺼낸 거고 말이다.

‘됐어. 여기까진 좋고.’

분위기가 좋다. 제나도 내게 우호적인 스탠스다. 이제 진짜 용건을 꺼낼 때가 왔다.

나는 그녀에게 상체를 조금 가까이 가져가며 입을 열었다.

“너를 이렇게 데려온 건 말이다. 너한테 부탁이 있어서야.”

“부탁…?”

“네 오빠를 막아줘. 그리고 우리한테 협력할 수 있도록 설득해줘.”

주사위는 던졌다. 반응은 아마 지금까지 겪었던 제나의 성격상 부정적이겠지.

아니나 다를까. 제나는 크게 떴던 눈을 축 늘어뜨리며 고개를 떨궜다.

“저, 저는 약한데다 오빠한테 보호만 받는 입장인데… 제가 어떻게 오빠를….”

“그놈을 말로 설득할 수 있는 건 너뿐이야. 그런 변태 시스콘쉑… 아니. 여동생을 끔찍이 아끼는 제논한테는 네 말 외에는 다 들리지도 않는다고.”

“저뿐이라고요?”

“그래.”

이건 진짜다. 동생을 위해서 궂은 일, 구린 일, 사람 담그는 일까지 마다않는 놈이다. 그런 새끼가 남의 말 들어서 그짓을 멈출 것 같지는 않다.

그러니 놈이 필사적으로 지키려 하는 본인, 제나의 설득이 아니면 제논을 멈출 수 없다.

‘불사교가 그놈에게 뭘 약속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제나의 안전이나 미래에 대한 거래일 게 분명하다.

그 거래 자체는 회귀점 갱신 이전에 이미 성사돼 있는 상황이다. 그러니 거래 자체를 막는 것이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최소한 파기시켜야 한다. 내 선에서 가능한 부분이라면, 불사교가 약속했던 거래 조건을 대신 이뤄줘서라도 말이다.

‘어느 정도 양보는 각오하고 있다.’

그만큼 그놈은 지금 내가 세운 계획에 있어서 중요한 부품이고. 방치할 경우 무척이나 성가신 걸림돌이다. 놈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만큼 더더욱 말이다.

다만….

“안 돼요… 오, 오빠가 제 말을… 들어줄 리가 없어요… 못하겠어요….”

그래. 만약 이런 상황이 된다면, 죽도 밥도 안 된다.

제나가 설득을 포기한다라. 나는 숨을 깊게 내쉬고 주위를 훑었다. 옆 테이블에서 숨죽이고 이쪽을 지켜보는 설백과 마왕의 모습이 얼핏 보였다.

나는 잠시 생각한 뒤. 히죽, 조금 잔인하게 입술을 비틀었다.

“그러면 난 네 오빠를 죽일 거다. 제나.”

“!!”

“그놈은 말이다. 지금 완전히 정신 나간 짓에 가담하고 있어. 너 하나 보호하겠다고, 이 도시 전체를 몰살시킬 수 있는 재앙을 방조하고 있다. 그 몰살 대상엔 나도 포함되고.”

“그, 그럴 수가….”

“그런 꼬라지는 봐줄 수가 없어. 네가 설득을 포기하거나 실패하면. 그 자리에서 네 오빠 모가지를 잘라 버릴 거다.”

그래. 회유가 안 되면… 협박을 하는 수밖에 없다.

제나가 깜짝 놀라 고개를 퍼뜩 들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설백도 마찬가지다.

제나는 떨리는 눈으로 나를 가만히 쳐다봤다. 하지만 곧 숨을 삼키며 신음을 흘렸다.

내 눈을 보고 진심이라는 걸 깨달은 것일 테다.

“그, 그럴 수가… 오, 오빠가 없으면 저는…!”

“얼마 못가 죽겠지? 나도 알아. 그러니까 하는 말이야.”

“네…?”

“네 오빠나 너나 살고 싶으면, 반드시 설득을 성공시키라는 소리라고.”

물론 이건 허세다.

나는 전생에서 제논에게 압도당했다. 원인은 알 수 없지만… 레벨 차가 꽤 남에도 불구하고 나는 제논을 이기지 못한다.

하지만 제나는 그 사실을 알 턱이 없다. 그러니 이런 협박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

“어때. 이제 좀 설득이 될 것 같아?”

나는 최대한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물었고. 제나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서 날아오는 시선이 따갑다. 고개를 돌려보니 설백이 굉장히 충격 받은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나는 쓴웃음과 함께 외면했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야.’

난 원래 머리 쓰는 거 잘 못한다. 아니, 잘 안 한다.

몸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우선 몸으로 때우는 스타일이다. 이런 치졸한 방식은 나도 좋아하진 않는다.

좋아하진 않지만. 써야할 때라면 쓰는 데 주저하지도 않는다.

‘설백. 너는 전생의 네 시체를 보지 않았으니까….’

그 실망스런 얼굴 자체가 잘린 채 나뒹구는 꼴을 직접 보지 않았으니까. 아란이 슬프게 꺽꺽거리는 소리를 듣지 않았으니까. 내 행동에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거다. 그 모습을 봤다면… 네가 날 비난할 수 있을 거 같아?

그렇게 시원하게 말해버리고 싶지만. 가까스로 삼켰다.

“하, 하지만….”

혼자 뒤집힐 것 같은 속을 정리하고 있자니. 제나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나는 다시 그녀에게 신경을 집중했다.

“저희 오빠가 지금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오빠를 만나지 못하면 설득을 할 수가 없지 않나요?”

“아. 그건 간단해.”

“간단…? 오빠가 어디 있는지 아세요?”

“아니. 알 필요 있나. 여기로 부르면 되는걸.”

“예…?”

나는 어리둥절한 제나의 손목을 슬쩍 낚아챘다.

방금 전의 협박 때문에 움찔거리며 위축된 제나였지만. 호기심 때문인지 내 손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따끔할 거다.”

“네…? 앗!”

나는 그대로 제나의 손등을 고정하고. 식사용 나이프를 다른 손에 쥔 다음, 제나의 손등을 슬며시 긁었다.

파슷. 그녀의 손등이 얕게 갈라지며 핏줄기가 빈 접시 위로 뚝뚝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이, 이게 대체… 아, 아파요!”

제나가 피 흐르는 손을 보더니 손을 빼기 위해 저항하기 시작했다. 나는 순순히 놔줬다.

나는 의자에 상체를 기대고 편하게 앉아 느긋하게 제논의 등장을 기다렸다.

‘어차피 해야할 일은 다 했으니까.’

제논은 곧 재앙이 일어날 이 위험천만한 도시에서 동생을 미리 피난시키지 않았다.

왜? 일단 텔레포트를 할 수 있고. 동생의 위험을 알아차릴 안전장치가 있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그 판잣집엔 아무것도 없었어.’

그렇다면 동생 본인의 몸에 안전장치가 있을 테다.

이를 테면 동생에게 위해가 가해지면 제논에게 신호가 가는 시스템이라던지. 뭐, 그런 걸 예상하고 벌인 일인데.

“제, 제나! 무슨 일이야! 다친 거야? 어쩌다가!”

파지지직!

레스토랑 한복판에서 공간이 찢어진다. 동시에 절규에 가까운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공간을 찢어발기고 거기서 튀어나온 것은 붉은 머리의 엘프 미남자. 제논이었다.

“딱 맞았죠? 지렸죠?”

나는 쾌재를 불렀고. 즉시 들고 있던 나이프를 제논을 향해 던졌다. 기본적으로 힘 수치가 높다보니 비수처럼 날카롭게 날아갔다.

카아앙! 물론 제논은 허리춤의 단검으로 어렵지 않게 그걸 쳐냈다.

“안녕 친구. 오늘 거리에서 어깨빵 당한 뒤로 두 번째 만남인가?”

제논의 눈동자가 그제서야 제나에게서 떨어져 내게 닿는다.

순간 제논이 눈을 터질 듯이 부릅떴다가, 걷잡을 수 없이 떨기 시작했다.

“너는…!”

하지만 갑자기 허공에 등장한 것도 모자라 단검을 빼든 시점에서, 주위의 이목이 이쪽으로 왕창 쏠렸다.

술렁대기 시작하는 주변의 손님들. 그 소란을 의식한 것인지, 제논은 내게 덤벼들지 못했다. 다만 혀를 차며 거적때기의 후드를 깊게 눌러쓸 뿐이다.

나는 혼란스러워하는 제논에게 삿대질을 했다. 내 손가락 끝에는 제나가 있었다.

“네 동생이 너한테 할 말이 좀 있대.”

“……?!”

“그래서 대화의 장을 좀 마련해주려고 불렀다. 이름하여 제1회 제논네 가족회의 개최!”

“무슨 개 같은 소리를…!”

제논은 설마 싶은 얼굴로 제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제나가 절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제논의 얼굴에는 한층 혼란이 뒤석이는 한편. 단검을 든 손에서 힘이 점점 풀리고 있었다.

나는 그런 두 사람을 내버려둔 채, 일행인 마왕과 설백을 데리고 레스토랑에서 유유히 빠져나가기 시작헀다.

아니. 나가기 직전.

나는 제논을 스쳐지나가며, 그의 귓가에 대고 한 마디를 남겼다.

“이번 일을 제대로 마친들, 불사교가 네 여동생을 풀어줄 거 같냐?”

제논이 숨 삼키는 소리가 들려온다. 어깨가 격렬하게 떨리는 것이 보인다.

대충 찍어봤는데 정답이었던 모양이군. 운이 좋았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러면 진짜 밀착감시할 이유도 완전히 사라지는군. 마음 편히 대기해도 되겠어.

“편하게 담소 나누시고 끝나면 말해주쇼. 방해꾼은 나가 있으려니까.”

“잠깐! 거기 서!!”

제논은 곧장 따라붙으려 했지만. 제나가 그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오빠 안 돼… 가지 마!”

“제나! 대체 왜…!”

“가지 마… 부탁이야… 할 말이 있다는 건… 진짜니까….”

“…….”

저나의 절박한 행색이 먹힌 건지, 제논은 이를 악물면서도 어쩔 수 없이 제나의 옆에 앉았다.

‘나이스다 제나. 그 기세로 설득도 성공시켜 주길 바래.’

네가 못하면… ‘제논네 가족회의’는 10회, 50회, 100회까지 주구장창 이어질지도 모르거든. 몇 회를 하든 너희에겐 1회로 기억되겠지만, 나는 지옥이라고.

나는 쓰게 웃으며 두 사람을 남겨둔 채 레스토랑을 빠져나왔다.

밖으로 나온 직후. 가만히 따라붙던 설백이 걱정스럽게 레스토랑 안을 쳐다봤다.

“괜찮을까요? 설득… 할 수 있겠죠?”

“해야지. 안 그러면 둘 다 죽을 텐데.”

“그, 그런….”

10회, 50회, 100회 가족회의도 수포로 돌아가면. 그 때부턴 제논 공략의 트라이에 들어가게 되겠지.

10회, 50회, 100회… 그것도 안 되면, 될 때까지.

이번 생은 살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의 결국의 결국엔 제논은 내 손에 뼈를 묻게 될 거다.

‘그리고 지금 네가 신경쓸 건 그쪽이 아니라고.’

남의 목숨이 뭐가 그리 중요하냐 설백. 우선 네 안전부터 신경을 쓰란 말이다.

설득이 실패하면. 내 계획이 실패하면… 죽는 건 제논이나 제나뿐만이 아니야. 너도 죽는다고.

나는 설백의 모습에 한숨을 잠깐 흘린 뒤. 그녀에게 말했다.

“어쨌든. 이건 설득이 성공한다는 걸 전제로 하는 말인데.”

“아, 네?”

“지금부터 네가 해야 할 일을 말해줄게.”

“아, 네!”

드디어 자기 역할이 찾아와서인지 설백은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 모습에 피식 헛웃음을 흘리고, 곧바로 얼굴을 진지하게 고친 뒤 말했다.

“설백. 지금부터 너는 나와 별개로 행동한다.”

“어, 네…?”

“제논이 우리편이 되면, 곧장 제논의 텔레포트를 이용해서 수도로 가는 거야. 알았어?”

“갑자기 수도는 왜….”

“사람을 찾아야 해. 그리고 그 사람을 이리로 데려와 주면 돼.”

“사람…?”

그래. 사람.

지금 내 사정을 들으면… 아니. 사정을 듣지 않아도 내 일이면 곧바로 달려올 만한 사람.

아니지.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로봇.

‘시험의 장막에서 나눠줬던 밥값할 시간이 왔다…!’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여인의 마지막 모습을 곱씹은 뒤. 설백에게 또박또박 말했다.

“이름은…. 세스나. 세스나라는 물색 머리의 여자를 찾아와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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