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바퀴벌레
나는 눈을 떴다.
저물어가는 붉은 노을이 보였다.
“… 어.”
가만 있어 보자. 내가 왜 하늘을 보고 누워있지.
가만히 생각해보다가, 문득 강렬한 두통이 일었다. 동시에 지금까지 벌어졌던 일들이 일거에 머리맡으로 쏟아졌다.
“이런 망할….”
기억이 온전히 남아있다. 나는 그 사실을 깨닫고 욕지기를 씨근거렸다.
죽지 않았다. 마지막에 빨아재낀 에테르가 결국 나를 살린 모양이다. 너무 늦은 게 아니었나 싶었지만. 아무래도 고통으로 인해 혼절한 듯하다.
‘… 내가 사는 게 맞았나?’
우선 그런 의문부터 들었다.
죽어가던 그 시점에서는 ‘이대로 허무하게 끝낼 순 없다’라는 생각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에테르를 들이켰지만. 막상 살고 나서 생각해보니 좀 복잡하다.
차라리 죽고 나서 재시작하는 게 시간상 이득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계속 드는 것이다.
‘아, 아니… 그게 무슨 개소리야.’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자신에게 소름이 돋은 나머지, 나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흔들며 그 생각을 부정했다.
살아야지. 살 수 있으면 개똥밭 굴러도 살아야지. 미쳤냐 박정용?
죽는 게 쉽냐고 이 새끼야.
―흉마에 잠식되면 죽음에 거리낌이 없어진다. 자신의 죽음이든… 타인의 죽음이든.
루시의 목소리가 다시금 서늘하게 귓전을 때린다.
지금의 안일한 자신을 책망하는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그래. 마왕… 루시는!”
그리고 그제야 루시의 안전에 대한 것이 떠올랐다.
나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곧장 달리기 시작했다. 당연히 행선지는 케른 방향이었다.
투두두두! 오랜만에 마음먹고 전력질주를 하니, 맹수 부럽지 않은 속도가 나왔다. 뺨을 할퀴는 바람소리가 무서울 정도였다.
‘이 망할… 왜 이리 조용해!’
그리고 케른 인근에 다가간 나는 그것을 느끼고 속으로 씨근거렸다.
주위가 쥐죽은듯이 조용하다. 아직 해가 완전히 진 밤도 아닌데 이런 적막은 어색하기 그지없다.
시시각각 케른의 모습이 가까워져간다. 나는 불안하게 두근거리는 심장을 억지로 잠재우며 케른의 성문으로 진입했다.
“이게… 뭐야…!”
그리고 전율했다.
성문을 지키던 경비병들이 토막난 채 아무렇게나 굴러다니고 있었다.
팔 다리가 아무렇게나 꺾인 채 나동그라진 수많은 사람들. 부서진 짐마차와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뒤섞여 있었다.
온통 피로 점철되어 있다. 돌벽의 원래 색보다 피의 붉은색이 더 많을 정도다.
“이게 대체…!”
나는 망연자실하게 성문을 지나, 케른의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한동안 멍하니 주시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거리를 거닐었다.
폭풍에 휩쓸리기라도 한 것처럼 뿌리째 뽑혀나가 있는 나무들. 풍비박산 나버린 집채들과 흉물스럽게 흩어져 있는 건물의 잔해들.
그리고 시체.
마치 할센베르크를 떠올리게 하는, 엄청난 시체더미가 도처에 쌓여있다.
비교적 멀쩡하게 형체가 남아있는 시체가 있는가 하면. 사지가 갈가리 분해된 시체부터 곤죽이 된 시체. 그리고 시체라는 걸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로 뭉개져버린 무언가도 있었다.
‘폭발… 때문이 아니야!’
내가 직접 겪어봤기에 알 수 있다.
하얀 폭발의 여파로 이렇게 된 것이 아니다. 그 폭발에 휘말리면 기본적으로 모든 시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야 한다. 내 전생의 시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적어도 형체가 멀쩡한 사람들은 폭발 이후의 무언가 때문에 죽은 것이다.
“크… 으, 루, 루시!!”
발걸음에 박차를 가했다. 전력질주로 달려 케른을 가로지른 나는 곧 우리가 묵었던 여관의 앞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 한번 더 눈을 의심해야 했다.
‘없어?’
우리가 묵었던 여관이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사라진 것이다. 거기엔 시커멓게 그을린 폭발의 흔적과 거대한 크레이터만이 남아 있었다. 주변의 모든 것이 깔끔하게 사라져 있다.
직경이 족히 100미터는 될 법한 거대한 구덩이에서는 아직도 열기가 이글이글 올라오고 있었다.
“미친….”
엄청난 파괴력이다.
대체 무슨 짓을 하면 이런 거대한 구덩이가 생기지? 나는 이런 것한테서 도망치려 하고 있었단 말인가? 그런 생각이 드는 한 편.
‘하지만 이 정도면….’
생각보단 폭발이 약하다는 의문이 들었다.
폭발 자체가 케른을 전부 뒤덮지도 못할 정도의 파괴력이다. 다시 말하면, 케른을 탈출하면 이 폭발에서부터 도망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케른을 탈출하려 시도했던 전생의 나는 33번이나 실패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 우리 일행을 추적해서, 폭발이 일어났다?’
그것밖에 생각할 수 없다.
나는 거대한 구덩이 안을 가만히 살펴보며 그런 결론에 이르렀다.
어느 순간.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황급히 주위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루시!! 야 마왕! 살아있으면 대답해!!”
나는 허겁지겁 사방팔방을 뛰어다니며 폐허를 뒤지고 다녔다.
내가 내지른 비명이 크레이터에 메아리쳐 울린다. 폭발의 여파가 미치지 않았던 입구 부근은 그마나 마을 비슷한 형체라도 남아 있었지만. 이곳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다.
덕분에 사람 찾기가 어렵진 않았다.
‘이런 망할… 진짜로 죽어버린 거야?!’
아득한 절망감이 자꾸 몸으로 스민다. 나는 애써 부정적인 생각들을 물렸다.
일단 찾는다. 이 케른을 샅샅이 뒤져보고 발견하지 못하면, 그 때 가서 낙담해도 늦지 않는다.
“… 어.”
그렇게 구덩이 주변을 샅샅이 뒤지던 내 눈에, 드디어 사람 비슷한 무언가가 발견되었다.
나도 모르게 우뚝 걸음이 멈췄다. 한동안 그것을 뚫어지게 주시하다, 비척비척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
그것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목이 없는 시신이다. 온몸에 크고 작은 생채기가 나 있고 팔다리가 뒤틀려 있었다. 순간 마왕의 것이 아닌가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사람 형체도 못 알아볼 수준이었지만. 내가 알아본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 아란.”
시신의 주위를 연신 배회하는 투명한 새끼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란을 가만히 쳐다봤고. 아란 역시 나를 똑바로 마주보다가, 이내 하늘을 향해 입을 벌렸다.
―구우우우우!!!
아란이 구슬픈 목소리를 뿜어내자 사방으로 광풍이 몰아닥쳤다.
파슷. 볼과 손등 따위가 칼바람에 베여 피를 뿜어냈다. 하지만 도망치지 않았다.
“하이고… 옘병할.”
그 슬픔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니, 왠지 나까지 위로 받는 느낌이 드는 한편. 어떻게든 저 불쌍한 용가리를 위로해주고 싶다는 감상이 들었다.
나는 힘없는 웃음과 함께 아란에게 성큼성큼 걸어갔다.
“네 주인 죽었어. 그만해.”
―키이이익! 키아아악!!
“보아하니 내 주인도 죽은 거 같거든. 어쩌다 보니 같은 신세구나.”
―…….
“지랄 그만하고 내려와라. 그런다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진 않아.”
그건 아란도 아란이지만 나 자신한테 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제야 난 포기했다. 지금 이 거지같은 상황을 드디어 머리가 받아들였다.
―끼이잉… 크우우….
아란이 슬프게 울면서 천천히 날개짓을 했다. 천천히 하강한 아란은 내 어깨에 앉더니 그대로 볼을 비비적거리기 시작했다.
털썩. 나도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가만히 설백의 시신을 내려다봤다.
“이, X발….”
이게 아닌데.
왜 이렇게 된 거지. 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 빌어먹을, 족같은 세상 같으니. 대체 나한테 뭘 바라는 거야.
‘과거로 돌아가면….’
습관적으로 허리춤의 검에 손에 갔다. 하지만 이내 우뚝 멈췄다.
아직 나는 루시의 생사를 알지 못한다.
만약 루시가 죽어서 알로 돌아간 상태라면, 수호자 계약이 파기되고 나는 부활할 수 없다. 죽음이 재도전을 뜻하지 않는다.
게임 오버. 진짜 마지막 죽음이 될지도 모른다.
“이… 씨… 발….”
그 사실을 깨닫자 검 손잡이에 올려놓은 손이 걷잡을 수 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나는 괜히 혼자 욕을 씨근거리며 설백의 손을 가만히 들어올렸다.
퍼서석. 그녀의 손은 모래성처럼 으스러졌다.
그러자 내 손엔 색이 바랜 시커먼 반지 하나만이 남게 되었다.
“이건….”
반지다.
설백이 랜덤 상자에서 뽑아왔다는 반지다. 두 번째 회귀점 갱신을 일으켰던, 바로 그 반지.
나는 그것을 멍하니 쳐다봤다. 그러자 언제나 그랬듯 상태창이 떠올랐다.
[아이템 정보]
[명칭: 이스그라드의 전조]
[보정치: ???]
[상세: 이미 아스타르트의 파편을 소환했다. 지금은 기능을 잃었다.]
[강화 가능 회수: 0]
‘뭐지?’
멍한 와중에도 눈이 번쩍 뜨였다.
바뀌었다. 내가 기억하던 그 물음표 투성이의 상세설명이 아니었다.
역할을 다하고 기능을 잃었다고.
상세 설명에 의하면… ‘아스타르트의 파편’이라는 걸 소환했다는 모양이다.
나는 그제야 두 번째 회귀점 갱신을 떠올렸다.
“아… 아아!!”
아차 싶었다.
생각해보면 이것부터 설백에게서 빼앗았어야 했다.
마지막 회귀점에만 신경이 집중된 나머지 이 반지를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어쩌면 제논 같은 피라미보다도 이 반지가 더 큰 열쇠였을지도 모르는데.
‘한 번만.’
이제 정말 코앞이다.
딱 한 번만 더 기회가 있었다면.
그러면 이번에야말로, 진상이 손에 잡힐 것 같은데.
“이제와서 다 뭔 소용이야.”
결국 나는 허탈하게 웃으며 아란의 머리만 쓰다듬어줬다.
34번에 걸쳐 뭐 빠지게 뛰어다닌 결과가 이거다.
할센베르크 이상의 폐허가 된 도시.
어째선지 폭발에서 휘말리지 않은 사람들마저 몰살당했고.
설백이 죽었고, 루시도 죽었다.
나답지 않게 나름 열심히 했는데.
말 그대로 죽을 때까지 열심히 하고 나니, 남은 건 결국 나 혼자뿐이다.
지독한 공허감과 외로움이 노도처럼 일거에 몰려왔다.
“불사의 마왕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이렇게 쉽게 뒤져버리면서.”
그리고 뭐가 불사의 마왕 수호자냐. 이렇게 쉽게 죽게 놔둘 거면서.
자조 어린 미소를 띄우며 자학에 빠져들었다.
“거기 청년. 그 계집과 아는 사이인가?”
등 뒤에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사람 목소리가 들릴 거라곤 생각조차 하지 못했기에 나는 깜짝 놀랐고. 반사적으로 뒤를 쳐다봤다.
그러자 거기엔, 사내가 하나 있었다.
“자네도 불사교도인가?”
고요하게 살의를 불태우는 붉은 눈.
온통 피로 새빨갛게 젖은 은색 장발.
자글자글한 흉터 아래로 성성한 수염. 그리고….
“보아하니 찾는 것은 당연히 이것… 불사의 마왕이겠지?”
루시. 불사의 마왕이다.
온몸을 축 늘어뜨린 루시가 사내의 품에 안겨 있었다.
나는 순간 숨도 못 쉰 채 루시와 사내를 번갈아 쳐다봤고. 그런 내 반응을 가만히 살펴보던 남자는 히죽, 입꼬리를 올렸다.
“우선 자네가 그 검은 머리 계집과 지인이라는 전제하에 몇 가지 묻지.”
“…….”
“그녀를 제물로 바쳐서 이스그라드의 전조를 발동시키고. 이 땅에 재앙을 가져온 게 자네인가?”
“…….”
“시민들을 학살하던 불사교도 몇 명을 심문해 봤네만, 아무것도 모르더군. 하지만 자네는 달라 보여. 이 사태에 대한 해답을 알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네.”
“…….”
“대답해주게. 난 인내심이 많지 않아.”
사내의 재촉에도 나는 입을 굳게 닫고 있었다.
정확히는 닫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지금 상황이 이해 안 되는 건 매한가지였으니까.
오히려 사내의 발언으로 내가 알게 된 사실도 있었다.
‘제물로 바쳐…? 이스그라드의 전조? 재앙을… 일으킨다고?’
내 눈이 깨달음으로 점점 크게 뜨였다.
반지. 역시 반지가 문제였다.
그 폭발은 나도 아니고, 마왕도 아니고, 설백을 노린 것도 아니었다.
반지. 저 이스그라드의 전조라는 반지가 모종의 효과를 일으켜 그 새하얀 폭발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폭발을 못 피하지.
폭발의 진원지를 가지고 이동하는데 폭발에서 벗어날 수 있을 리가 없지.
“묵비권인가. 전부 긍정으로 받아들이겠네.”
그리고 인내심이 많지 않다는 자기소개를 증명이라도 하듯.
사내는 천천히 불사의 마왕… 루시를 설백의 옆에 가지런히 눕혀 놓고, 곧장 내게 달려들 자세를 취했다.
철그렁! 사내의 오른손을 감싼 묵빛 건틀릿이 피를 머금어 붉게 번들거린다.
“마녀에 관한 건 모두 처단한다. 마녀사냥꾼 적랑의 이름을 걸고.”
적랑. 적랑이라고?
사내가 밝힌 그 이름에 나는 기시감을 받았다.
어디선가, 가까운 과거에 분명히 저 이름을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윽!”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곧 온몸을 뭉개버릴 듯이 쏟아지는 살기의 폭풍에 나는 반사적으로 검을 뽑았다. 반대편에서 사내가 이죽거리며 점차 다가오고 있었다.
그야말로 야수 같은 웃음. 간담이 서늘해지는 살기가 서려 있다.
나는 그 순간 직감했다.
‘죽는다.’
직감이 현실이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순간 그의 신형이 깜빡인다 싶더니, 이미 내 등 뒤에서 나타난 것이다.
퍼억! 둔탁한 파육음이 온몸을 뒤흔들었다.
“크… 악…!!”
내 생의 마지막 시야로 보이는 것은, 내 가슴을 뚫고 나온 철제 건틀릿.
그리고 그 손에 들려있는 나의 새빨간 심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