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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417413번째 소울라이크 용사-77화 (53/280)

77화 격돌

우리는 케른을 나와, 곧장 서쪽으로 향했다.

케른을 포함한 이 일대는 ‘약속의 평원’이라는 거대한 평야지대에 존재하는데, 이 평원 서쪽 끝자락에는 시험의 장도 하나 있다.

시험의 장막 게이트 때도 ‘약속의 평원’ 시험장이 불렸던 기억이 있다. 내가 시험의 장막에 떨어진지 얼마 되지 않았을 시절에 마감됐던 곳이라 똑똑히 기억한다.

[163417413번째 용사 박정용의 현재 위치]

[마르크트레스. 약속의 평원 서부, 시험의 장 ‘약속된 재림’ 부근]

나는 미미르의 눈 패널에 표기된 지도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인적 하나 없는 새파란 초원이 시야에 한가득 들어온다. 만족스러운 목소리가 절로 나왔다.

“한산하고 좋네. 누구 하나 담가도 모르겠어.”

이곳까지 찾아온 이유는 간단하다. 방금 내가 입으로 직접 내뱉었다.

이곳은 비교적 일찍 마감된 시험장이다. 그만큼 시험의 내용이 할센베르크처럼 어렵진 않았을 거다.

다시 말해 이미 웬만한 용사들은 시험이 끝났을 것이고. 현재 이곳만큼 한가하고 인적이 뜸한 곳도 없다.

케른이랑 그리 멀리 떨어지지도 않았으니, 우리끼리 밀담 나누기엔 안성맞춤이지.

“자. 뜨거운 육체의 대화 시간이다.”

나는 적당한 곳에서 자리를 잡고 곧장 쌍검을 뽑아들었다.

촤아앙! 양손에 들려 나온 베스타크와 에스파다. 그리고 내 양쪽으로 뻗은 새파란 마력칼날들이 위험한 울림을 토해냈다.

“아가리 꽉 물어라!!”

나는 호기롭게 소리치며 곧장 지면을 박찼다.

콰아앙! 지면이 움푹 파이며 쏜살 같이 몸이 튕겨나갔다. 이미 레벨이 100대 후반까지 치솟은 지금에 와서 이 정도 피지컬은 우습다.

“머가리이이!”

나는 공중에서 풍차처럼 회전하며 제논에게 검을 수직으로 내리꽂았다.

쇄애액! 회전력과 추진력이 더해져 벼락처럼 쏟아지는 에스파다. 제논은 그 순간까지도 가만히 그 자리에 있었다.

이건 피할 수 없다. 반으로 쪼개지는 제논의 영상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그 순간.

“… 어떻게 내 거처를 알아낸 거냐.”

그런 목소리가 등 뒤에서 울렸다. 그것도 꽤나 멀찍이서.

정신차린 순간 이미 제논의 모습은 눈앞에서 사라져 있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순간 벙찌고 말았다.

‘아니?!’

나는 당황을 잔뜩 머금고 퍼뜩 등 뒤를 돌아봤다.

약 1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제논이 서있다. 내가 내리칠 때 보였던 자세 그대로였다.

“… 궁금하면 힘으로 알아내 보던가.”

내가 이런 쪽으로 지는 걸 좀 싫어한다.

나는 곧장 되받아쳐주며 다시금 놈에게 공격을 준비했다.

‘연화!’

스슷. 몸이 쏠리는 느낌과 함께 순식간에 시야가 요동친다.

정신차렸을 땐 제논의 거적때기를 두른 뒷모습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생각할 틈도 아깝다. 나는 곧장 양손의 쌍검을 x자로 휘둘렀다.

“잡았다!”

내가 외친 직후. 눈앞에서 제논의 신형이 거짓말같이 증발했다.

휘잉. 내가 휘두른 검이 파공성을 남겼다.

이로서 두 번째. 나는 얼떨떨하게 그것을 지켜봤고.

“내 목적을 이미 알고 쫓아온 건가?”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런 목소리가 등 뒤에서 울렸다.

두 번이나 꼼짝없이 등을 내줬다. 분명히 제논의 레벨은 나보다 낮았을 텐데.

솔직히 좀 충격을 먹었다.

‘이런 X발… 뭐지?’

이게 그 유명한 판타지 클리셰.‘어딜 공격하는 거죠? 그건 제 잔상입니다만’이라는 기술인가.

이거 직접 당하니 상상 이상으로 불쾌하구나. 망할.

‘빠르게 움직인다는 느낌은 아닌데….’

그건 제논의 스펙을 내가 알고 있기에 화실하다. 내 육안으로 도저히 따라붙지도 못할 스피드는 변경백 정도는 돼야 가능한 일이다.

‘애초에 근육의 움직임이 없어.’

아무리 빠른 움직임이라도 미세한 사전 동작은 반드시 있다. 하지만 그런 게 전혀 없다.

그리고 뭔가 아까부터 위화감이 든다. 그것도 아주 불쾌한 위화감이.

‘시험해볼까.’

나는 어금니를 갈아붙이고 곧장 마력을 끌어모았다.

키이잉! 마력검들이 울음을 토해내며 나선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세븐 소드 피어스!”

피피피핑! 나는 마력검들을 일제히 사출시켰다.

날카로운 파공성과 함께 마력검이 제논의 신형을 향해 날아간다. 그리고 14발이 모두 명중했다.

좋아. 뚫었다! 주먹을 불끈 쥐는 그 순간.

“내 질문에 대답해라.”

이번엔 오히려 내 코앞에 퍼뜩, 제논의 신형이 등장했다.

당황한 나머지 숨을 삼켰지만. 오히려 이건 좋은 기회다. 나는 위태롭게 웃으며 검을 놈에게 내질렀다.

“하앗!”

짧은 기합성과 함께 날아간 베스타크는 놈의 몸을 분명히 관통했다.

하지만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그냥 허공을 통과하는 느낌이 드는가 싶더니, 제논이 홀연히 사라졌다.

‘역시.’

나는 당황을 숨긴 채 펄쩍 뛰어 황급히 거리를 벌렸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제논이 사라진 방향을 가만히 쳐다봤다. 한참 뒤에 멀찍이서 제논이 다시 재구성 되듯이 그곳에 등장한다.

‘… 저건 환영이다.’

눈앞에 보이는 제논의 모습도 짝퉁일 것이다. 그러니 이런 허공에 삽질하는 위화감이 드는 것이다.

나는 입술을 깨물고 간과하고 있던 사실 하나를 떠올렸다.

‘저놈은 마법사였어.’

그래. 생각해보니 놈은 루시에게 저주 마법을 걸었었다. 왜 나는 제논이 당연히 육체파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 멍청하면 역시 몸이 고생한다니까.

나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왜 간만 보고 앉아있어. 요리사 꿈나무냐?”

“질문에 대답해라. 내가 네놈에게 접근했던 목적을 이미 알고 있었나.”

“불사의 마왕님을 잠자는 공주님으로 만들어야 돼서?”

“…!!”

“면상 보니 딱 맞췄네. 이 개새끼야.”

나는 사납게 웃으며 다시 달려들 준비를 했다. 그제야 제논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거적때기를 뒤집어써서 잘 보이지 않지만. 놈의 얼굴에는 당황이 어려 있었다.

“설마. 전부 알고 여기로 찾아온 건가?”

“… 알아? 뭘.”

“그들의 목적. 지금부터 일어날 일… 아니. 뭐든 좋다. 네놈…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나.”

이건 좀 의외였다.

나는 오히려 판을 깔아주면 제논 쪽에서 내게 달려들 줄 알았다.

그렇게나 대놓고 도발을 했다. 놈이 끔찍이 아끼는 여동생까지 이용해 성질을 긁었다.

‘오호. 무슨 상황이야 이건.’

그런데 웬걸. 놈이 오히려 내게 대화를 청하고 있다. 내가 어떻게 정체를 알아냈는지가 어지간히도 궁금했던 모양이다.

나는 기가 찬 나머지 헛웃음과 함께 말했다.

“네 생각보단 훨씬 많은 걸 알고 있을 거다.”

“말도 안 돼. 나는 실수 따윈 저지르지 않았어. 대체 어느 부분에서 정보가 흘러간 거냐….”

“지금의 너는 죽었다 깨어나도 알 수 없는 부분에서.”

아무렴. 이미 사라진 미래의 제나가 알려줬다 그러면 네가 잘도 믿겠다.

나는 쌍검으로 놈의 목 언저리를 휘적거렸다. 쓸데없이 아가리 놀리지 말라는 의미였다.

“닥치고 무기나 뽑아. 한 따까리 하자고.”

“…….”

“대화를 하든 그랜절을 받든 그 다음이다.”

제논은 갑자기 침묵을 지켰다. 나는 거기서 눈썹을 순간 꿈틀거렸다.

제논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것을 느낀 것이다.

“… 아니. 네놈은 그들의 계획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군.”

그리고 내가 달려들기 직전의 순간. 제논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찔끔했다. 하지만 나는 허세를 부리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마음대로 해석하라는 의미였다.

그러는 한 편. 나는 새롭게 깨달은 사실 하나에 가슴이 서늘해졌다.

‘그들이라고?’

놈은 혼자가 아니다.

단체이거나,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움직이거나. 최소한 동업자가 있다.

‘그렇다는 건….’

결국 제논만 족치면 되는 일이 아닐 가능성이 커졌군. 나는 골치아프게 돌아가는 상황에 혼자 혀를 찼다.

나를 가만히 노려보던 제논의 얼굴에서 의문이 스쳐지나갔다.

“그래. 놈들의 계획 전체가 들통났다면 네놈이 케른 밖에 혼자서 나올 리가 없지.”

“뭐라고?”

저건 또 무슨 소리냐.

계획을 알고 있으면 내가 케른을 혼자서 나올 리가 없다?

그렇다면 설마… 놈들의 계획을 저지하려면, 나 혼자 케른에서 나가면 안 된다는 소리?

불길한 예감이 가슴 언저리를 스멀스멀 기어갔다.

“오히려 감사해야겠군. 덕분에 의뢰를 생각보다 빨리 끝내겠어.”

제논은 비릿한 웃음과 함께 말을 맺었다. 동시에 손가락을 번쩍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나도 모르게 시선이 거기로 따라갔다.

피이잉-! 그의 손가락 끝에서 빛의 구체가 하늘로 발사됐다.

“무슨….”

“내 행동은 예측한 주제에 목적도 정확히 모르는 모양이군. 역시 기묘한 놈이야.”

제논이 중얼거림과 동시에 파앙, 하고 하늘이 밝게 빛을 뿜었다. 제논이 쏘아올린 그 빛의 구체가 터진 것이다.

불꽃놀이? 아니. 비슷하지만 저건 아마….

‘신호탄.’

제논은 지금, 누군가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두근, 두근. 심장이 요동치는 소리가 뇌를 뒤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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