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3417413번째 소울라이크 용사-76화 (52/280)

76화 추적

“아 잔말 말고 따라오라니까 그러네!”

“아니 이유나 좀 알고 가자고! 왜 그렇게 서두르는데!”

전생의 나한테 뜬금없는 낚시를 당해서 뒤숭숭한 지금.

나는 루시에게 손을 이끌려 여관이 모여 있는 거주지구까지 끌려왔다.

내가 연신 이유를 종용하자, 루시가 짜증난다는 양 언성을 확 높였다.

“낸들 아냐! 전생의 네놈이 시킨 일이다! 내가 하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란 말이다!”

“전생의 내가…?”

“그래! 말 안 들으면 패서라도 곧바로 여기에 데려오라고 했다!”

저게 뭔 개소리야. 난 곧바로 코웃음을 쳤다.

“내가 너한테 그런 말을 했다고? 소설을 써라. 그냥 네가 이 소설 작가 해.”

“저 저 얄미운 아가리 저거! 저걸 진짜 팰 수도 없고오…!”

루시가 분통 터진다는 얼굴로 연신 가슴을 두들긴다.

그래 뭐. 그렇게까지 데려가고 싶다는데 어디 속는 셈치고 가줘 보지.

나는 선심 쓰는 양 그녀의 이끌림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내 도착한 곳은 ‘약속의 쉼터’라는 중2병스런 이름의 여관이었다.

루시의 명령대로 나는 403호실 열쇠를 받아와 문을 땄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으아아아악!!”

그리고 거기서, 곤죽이 된 내 시신과 잔류사념을 발견했고.

비명과 함께 나자빠졌다.

“저, 정용님?! 갑자기 왜 그러세요!”

옆에서 소리치는 설백의 목소리가 머리를 윙윙 맴돌다 사라진다.

* * *

[아이템 발동 - 이자나미의 심장]

[전생의 잔류사념을 획득했다.]

[전생에서 실전한 능력치가 없어, 능력치를 수복하지 못했다.]

[전생에서 실전한 스킬이 없어, 실전스킬을 수복하지 못했다.]

[전생의 기억을 모두 수복했다.]

“크아아아, 끄으으!!”

이자나미의 심장을 발동시킨 뒤. 한동안 피바다가 된 여관방을 굴러다녔다.

시체가 잿더미가 되어 공중에 흩날린 다음에야 통증이 멎었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비틀비틀 걸어가, 침대에 걸터앉았다.

“후우…… 이, 일단 작전 성공이다.”

고통이 가라앉자, 나도 모르게 웃음부터 나왔다. 성취감에서 나오는 웃음이었다.

전생의 나는 역할을 충분히 다 해줬다.

망자의 함에 적절한 낚시를 넣어 부랑자의 정체를 확정짓는 데 성공했고. 놈의 거처는 물론이고 계획과 영향까지 알아냈으며. 추가적으로 내 일행의 소재까지 파악했다.

나답지 않게 오랜만에 열일했다. 장하다 박정용.

‘나도 전생에 부끄럽지 않게 해야지.’

적어도 악의를 품고 루시를 재운 그 놈.

제논의 정체를 아는 이상, 놈만큼은 내 선에서 박살내 주고 싶다.

아니. 반드시 그래야 한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시간이 없다.’

복수든 조사든 내게 허락된 시간은 오늘 하루. 촉박하다. 망설이고 고민해도 행동하면서 해야 한다.

갈 곳도 정해져있고, 목적도 확실하다면. 남은 건 행동뿐이다.

“가볼까.”

나는 곧장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아니.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문을 열자 눈앞에 떡하니 서있는 설백 때문에 식겁한 나머지 걸음을 멈췄다.

나는 얼떨떨하게 입을 열었다.

“… 설백? 왜 거기 서 있냐.”

“예? 아, 그게….”

설백은 순간 머뭇거렸지만, 이내 고개를 휘젓더니 천천히 물어왔다.

“저, 아까 갑자기 소리지르셨잖아요. 어디 안 좋으신 게 아닌가 하고….”

“아. 그거….”

내가 전생의 시체를 보고 비명을 질렀을 때, 설백은 그 자리에 있었다.

이걸 또 어떻게 변명하면 좋지. 골치 아픈 상황에 머리를 굴렸다.

“음… 그게 말이야.”

나는 정말이지 변명에는 재능이 없다. 전생과 현생 합쳐서 이렇게 당황스러운 때는 처음이다.

내가 기억 못하는 전생의 나들아. 너희도 이런 상황 겪었냐? 대체 어떻게 대처했냐. 제발 정답 좀 알려주라.

결국 나는 설백의 열렬한 눈빛에 못이겨 천천히 대답했다.

“그냥 뭐 별거 아니야. 헛것을 잠깐 봐서.”

“헛것이요?”

“요즘 마왕이 우리 주변에서 자주 나타났잖아? 꼴에 안 어울리는 용사짓 열심히 했더니 피로가 쌓인 거지. 오늘 하루 동안은 여기서 푹 쉬자고.”

나는 설백의 어깨를 두들기며 짐짓 유쾌하게 말했다. 너털웃음을 흘린 뒤 빠르게 그녀를 스쳐지나가려 했다.

하지만 턱. 곧장 내 소매를 붙드는 설백 때문에 걸음은 곧장 멈췄다.

“그건 거짓말이죠? 정용님.”

“…….”

나도 모르게 입을 콱 다물었다.

설백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눈을 마주봤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녀는 몰라서 묻는 게 아니다. 내 말이 거짓말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설백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맴돌기 시작했다.

“정용님과 몇 달을 함께 하면서 저도 배운 게 있거든요.”

“… 뭘?”

“정용님은 힘든 일이 있을수록 내색을 안 하는 분이잖아요. 웃으면서 농담을 하고. 얼버무리죠. 꼭 주변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을 속이려는 것처럼.”

“…….”

“지금 정용님처럼요.”

자기를 속인다. 그 말에 심장이 따끔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설백이 똑바로 나를 직시하고 있다. 나는 그 눈빛을 가만히 마주하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버렸다.

한참을 고민했다.

하지만 역시 아니다. 시공회귀의 비밀은 남한테 밝힐 수 없다.

나는 책임감이 강한 사람은 아니지만. 최소한 남한테 피해주기는 싫어하는 사람이다.

“그런 거 아니야. 진짜 좀 피곤해서 그런 거뿐이라니까.”

“…….”

“아 그래. 부탁이라면… 하나 있어.”

“부탁?”

설백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는 시선을 던졌고. 나는 그녀에게 용건을 들이밀었다.

내가 생각해도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혹시나 뭔가… 오늘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긴다면. 다른 누구보다도 꼭 루시부터 보호해줘.”

“심상치 않은 일? 어떤… 일을 말하시는 거예요?”

“그건….”

나는 거기서 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미치겠군.

마왕과 내가 동시에 사망하면 더 이상의 부활은 없다. 그 의문의 폭발이 일어났을 때, 행여나 내가 옆에 없는 경우를 위한 보험이었는데.

… 이건 좀 자충수였을지도 모른다.

“말해주실 순 없나요?”

설백의 눈썹이 팔자로 찌그러진다. 안타까운 감정이 절절히 묻어나는 얼굴이었다.

“네. 알겠어요. 혹시나 힘든 일이 생기시면… 말씀해주세요. 꼭이요.”

“… 그래. 고맙다 설백.”

설백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힘없이 나를 등지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복잡한 심정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그러자니. 설백이 별안간 우뚝 멈춰선다.

“… 정용님. 요즘 거울 보신 적 없죠?”

그런 물음이 날아왔다.

나는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얼떨떨하게 대답했다.

“그렇긴 한데. 왜?”

“… 한 번 보시는 건 어때요?”

“그, 그래.”

내 대답을 들은 설백은 유령처럼 흐느적거리며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쾅. 문이 닫히고,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

한 시가 바쁘긴 하지만. 설백이 그 상황에서 던진 말이다.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니 거울이나 한 번 보고 가기로 했다.

나는 내 방으로 돌아가 전신 거울 앞에 섰고.

“하.”

나도 모르게 너털웃음을 흘렸다.

퀭하게 패인 눈과 서늘하게 날이 선 눈빛.

못본 사이 바싹 마른 볼과 갈라진 입술.

당장이라도 사람 하나 찢어죽일 법한 흉흉한 살기를 풍기는 폐인이 하나 서있다.

이런 몰골로 아무 일도 없다니. 내가 반대 입장이었어도 황당하긴 했겠네.

그런 생각에 웃은 것이다.

* * *

‘세 번째 골목. 여덟 번째 판자집.’

바로 여기다.

미로처럼 얽혀있는 판자촌을 뒤적여, 나는 전생의 기억 속 판자집 앞에 도달했다.

제나와 그 오빠인 제논이 사는 집. 그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나.

‘시간은… 아직 충분하고.’

하늘을 보니 해가 머리 위에서 쬐고 있었다. 정오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이 정도면 정말 시간을 많이 단축했군. 스스로가 자랑스러워질 정도다.

그런 생각과 함께 어떻게 제논에게 접근할지 가만히 생각을 하고 있는데.

“다녀올게 제나. 늦을 거니까 먼저 자고.”

“응… 다녀와 오빠.”

삐거덕. 판자집의 문이 먼저 열려버렸다. 나도 모르게 온몸이 얼어서 꼼짝도 못했다.

화기애애하게 인사를 나누며 밖으로 나서던 제논이 우두커니 서 있는 나를 눈에 담았다.

그야말로 갑분싸. 한동안 침묵이 오갔다.

“…….”

“…….”

제논과 나, 둘 중 누구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다. 나는 너무 갑작스럽게 맞닥뜨린 사태에 당황한 거고. 제논은 내 얼굴을 보고 놀란 것이다.

그렇겠지. 방금 전에 저주 걸려고 어깨빵 치고 왔던 놈이 집까지 쫓아온 셈이니까.

“너. 나 알지?”

나는 히죽 웃으며 제논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턱. 둔탁한 소리와 함께 제논이 눈을 부릅떴다. 날아가던 참새 불알이라도 본 행색이다.

“네… 네, 네가 왜 여기….”

혼란과 당황이 뒤섞인 목소리가 새어나온다. 얼핏 공포도 들어있었다.

흘깃. 제논의 시선은 집 안에 있던 제나에게 향했다. 그의 이마에 식은땀이 실시간으로 줄줄 흐르기 시작한다.

“… 오빠? 밖에 누구야?”

그러자니. 제나가 슬그머니 제논의 뒤에 붙어 빼꼼 쳐다본다.

제나는 의심과 경계 어린 눈빛으로 나를 가만히 뜯어보다가. 이내 놀란 표정을 했다.

“어? 다, 당신은….”

제나의 얼굴에 깜짝 놀란 기색이 스친다.

아하. 시간이 돌아와서 기억도 없겠군. 그녀 입장에선 첫 번째 재회일 테다.

나는 빙긋 웃으며 제나에게 손을 휘적여줬다.

“오랜만이다. 시험의 장막 이후로 처음이던가?”

“아…!”

제나는 그제야 자기가 잘못 본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는지 퍼뜩 맞인사를 했다. 그녀도 오랜만에 보는 아는 얼굴에 반가워졌는지 희미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제, 제나. 안으로 들어가 있어.”

그리고 그 모습이 어지간히 아니꼬웠는지. 제논은 곧장 제나를 만류하며 집 안으로 밀어넣으려 했다.

당연히 제나는 눈을 끔벅이며 반문을 한다.

“어… 왜? 저 사람 기억 안나 오빠? 그, 시험의 장막에서 개구리 아저씨랑 같이 있던 그 사람이야. 맨날 밥을 챙겨먹던….”

“알아. 나도 알아. 일단 지금은 아무것도 묻지 말고 들어가줘, 제나.”

“아니, 하지만….”

“어서! 들어가 있어!!”

결국 제논은 표정을 험악하게 찡그리며 일갈했다.

“아, 알았어. 그럼….”

제나는 단박에 어깨를 움츠리며 의기소침해졌다. 그녀가 풀죽은 얼굴로 천천히 집 안으로 몸을 숨긴다.

“… 큿.”

제논은 그것을 지켜보며 미안해 죽겠다는 얼굴이었지만. 이내 외면하며 침묵을 유지했다.

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제논의 귓가에 속삭였다.

“지금부터 우리 대화를 좀 하자.”

그래. 귀신한테라도 홀린 기분이겠지.

추적은 분명히 완벽히 따돌렸는데 내가 대체 어떻게 여기 있는지 궁금하겠지.

하지만 궁금한 게 많은 건 너뿐만이 아니다 제논. 나 역시 너한테 묻고 싶은 게 산처럼 쌓여있단다.

“무, 무슨….”

“뒤에 계신 공주님이 들으면 곤란할만한 얘기들.”

“!!!”

“무슨 얘기인지는 네가 더 잘 알 거고.”

나는 대놓고 협박을 했다. 제논 역시 대놓고 나를 적대적으로 노려봤다.

하지만 그는 이내 내 시선이 자기에게 있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그의 눈이 천천히 내 시선을 쫓는다.

그리고 그 끝에 숨어있는 제나를 알아챈다.

그의 시선에서 증오가 가득 담긴 살기가 쏟아져 나왔다.

“너… 이새끼… 대체 무슨 꿍꿍이를…!”

“허.”

그 대사를 네가 먼저 친다고? 지나가던 개새끼도 박장대소 하겠다 새꺄.

나는 분노로 이를 박박 가는 그에게 같이 분노하는 대신,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별 거 아니야. 진짜 그냥 대화를 좀 하고 싶을 뿐이지.”

“웃기지 마라. 네놈과 나눌 대화 따윈…!”

“아가리로 대화한다고 한 적 없다. 김칫국 처먹지 마.”

나를 죽인 놈과 느긋하게 대화나 나누고 싶지 않다. 그럴 시간도 없다.

누가 입으로 대화한다 그랬냐. 뜨거운 육체의 대화(?)를 좀 나누고 싶을 뿐이다. 오우야.

나는 목 관절을 까딱이며 골목 반대편 통로를 가리켰다.

“따라와라. 일단 내 33목숨 분량만 맞자.”

“…….”

“너도 배빵 쳐맞고 빌빌대는 꼴 동생한텐 보여주기 싫지?”

그는 한사코 침묵을 유지했지만. 나는 그를 뒤로한 채 먼저 성큼성큼 골목길을 걸어나갔다.

여기선 보는 눈이 너무 많다. 이 말은 나에게도 제논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서로 보여주기 싫고 들려주기 싫은 게 많은 입장이다. 그도 내게 묻고 싶은 게 많을 테니 나를 따라올 수밖에 없다.

“… 제길…!!”

아니나 다를까. 짧은 욕지기와 함께 제논은 결국 먼발치서 나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처벅처벅. 등 뒤에서 울리는 둔탁한 발소리에, 나는 회심의 미소를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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