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투 머치 인포메이션
“… 이제야 이해가 가는군.”
그러자니 문득, 겁에 질린 살수들 앞으로 히크 할아범이 한 발짝 나왔다.
그는 가라앉은 눈으로 나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 아름다운 푸른 검기. 어디서 많이 봤다 했더니… 북방의 호랑이 할센베르크 변경백의 비전이 아닌가.”
들켰다.
이 작자. 한 눈에 내가 사용한 기술을 간파해냈다.
나는 위협 삼아 베스타크를 휘둘렀다. 피피피핑! 곧장 마력검이 나선을 그리며 히크를 향해 쏟아졌다.
“유성우를 보는 듯한 마력 칼날의 쇄도. 규모는 조금 작지만 확실하군.”
카카캉!
기대와는 다르게 마력 칼날은 허공에서 흩어져 버렸다. 조금 놀라서 히크를 노려봤다.
눈으로 쫓기 힘든 스피드였다. 히크 할아범이 일곱 개의 마력검을 일순간에 쳐내버린 것이다.
“그렇다는 건 자네가 바로 할센베르크 백과 함께 엘더리치를 사냥한 수수께끼의 용사라는 소리가 되겠지.”
단숨에 거기까지 간파당했군. 꼴에 정보상 수장이다 이거지.
나는 곧장 히크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더욱 세차게 검을 휘둘러 히크를 몰아붙였다.
“자네 같은 유명인을 못 알아보다니. 케른 상연회도 후계자를 들일 때가 된 모양이야.”
캉, 카카캉!
공방이 계속되는 와중에도 그는 계속해서 입을 놀렸고. 내가 악바리에 차서 마력검 7개를 그에게 발사한 그 순간.
히크는 내 검을 귀신같은 움직임으로 피해냈다. 직후 펄쩍 점프해 내게서 거리를 벌렸다.
도망은 무슨, 어림도 없지. 곧장 추격타를 날리려는 찰나.
“직접 보게 되어 영광일세. 엘더리치 슬레이어.”
그는 전처럼 내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부랑자 시늉을 할 때처럼 비굴한 인사가 아니다.
정보상의 마스터라는 명패가 어울리는 당당한 인사였다.
“나는 히크 토시오르. 뒷골목을 지배하는 정보상, 케른 상연회의 수장일세.”
나는 그 시점에서 더 이상의 싸움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상대가 정식으로 인사했다. 더 이상 싸울 마음도 없어 보인다. 주먹질 시간이 끝나고 드디어 대화의 시간이 왔다는 소리다.
나는 그제야 검을 내렸고. 뒷머리를 긁적이며 그에게 말했다.
“알고 싶은 정보가 좀 있습니다. 협조해주시죠.”
“자네 같은 거물 손님은 언제든 환영일세.”
히크는 짧은 인사치레와 의미심장한 웃음으로 대답했다.
* * *
나는 그의 인도에 따라 예의 판자촌에 돌아와 있었다.
정확히는 판자촌의 으슥한 곳에 자리한 어떤 판잣집에 들어왔고. 마법 전구 하나를 사이에 두고 히크와 마주앉은 상태다.
히크는 썩어빠진 나무탁상 위로 턱을 괴며 상체를 가까이했다.
“그래. 알고 싶은 게 무엇인가?”
“사람을 좀 찾고 있습니다.”
“사람이라.”
“이 주변에서 활동하는 붉은 머리 부랑자의 정보가 필요합니다.”
“붉은 머리 부랑자…?”
히크가 잠시 팔짱을 낀 채 손가락을 까딱이다가 입을 열었다.
“이 케른에 떠도는 실향민과 부랑자만 자그마치 2천이 넘네. 범위를 좁혀보게.”
“키는 제 목에 올 정도. 거적을 둘러서 잘 모르겠지만 체격은 꽤 큰 편이었습니다. 그리고 머리카락은 긴 편입니다. 후드를 써도 아래로 찰랑거릴 정도.”
“그래. 그 정도는 해줘야지.”
나는 손짓 발짓 섞어가며 놈의 인상착의를 설명했다.
히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옆에 대기하던 부관에게 눈짓했다. 부관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신속하게 종이에 무언가 적기 시작했다.
“그 외에는?”
“딱히 없습니다. 그냥 해당될만한 사람 리스트 다 뽑아주십쇼.”
“흐음….”
잠시 고민하는 히크. 그가 부관과 시선을 나누는가 싶더니 퍼뜩 말했다.
“우리야 편하고 좋긴 하네만. 조건에 부합하는 자가 당장 내 기억에만 열 명일세. 어떻게 판별할 셈인가.”
“다 비법이 있습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시구요.”
“… 크흐. 날 찾아낼 때처럼 말인가?”
“그렇다고 해두죠.”
히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부관에게 귓속말을 날렸다. 부관은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신속하게 밖으로 나갔다.
덜컹. 문이 닫히자 히크가 다리를 모로 꼬며 의자에 상체를 기댔다.
“잠깐 기다리게. 부관이 리스트를 뽑아줄 걸세.”
“최대한 빨리 부탁해요.”
“최선을 다하지.”
그리고 그 순간. 나는 히크의 눈빛이 유난히 날카로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다음에 나온 그의 발언을 생각하면 착각은 아닐 것이다.
“그 동안 정보값이나 정산하도록 하지.”
“네. 저도 공짜로 받을 생각은 없습니다. 돈을 원하십니까?”
“정보에는 정보. 나는 자네가 가진 정보를 원한다네.”
“음….”
좋아해야할지 싫어해야할지 애매하다.
돈 굳었다고 마냥 좋아하기엔, 내 정보를 팔아넘기는 게 잘하는 짓인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카사스인지 뭔지가 내게 했던 경고도 있으니 말이다.
나는 뒷머리를 긁적이는 한 편.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질문에 따라 판단해보고 대답하죠.”
“관대한 판단을 바라겠네.”
히크는 능글맞게 웃으며 농담으로 받아쳤다.
이내 초승달처럼 휘어진 그의 눈이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요즘 이쪽 업계에 아주 뜨거운 감자가 하나 있네.”
“그렇습니까.”
“할센베르크에서 시작된 한 용사의 전설적인 무용담. 그의 명성이 발빠른 정보통에 의해 더듬더듬 마르크트레스까지 전해졌지. 아직 아는 자는 일부 높으신 이들뿐이지만… 뭐, 세계 방방곡곡이 아는 것도 시간문제라고 보네.”
“…….”
대충 대답하던 나는 그 대목에서 입을 콱 다물었다.
X발 저거 나잖아. 나일 수밖에 없잖아. 최근에 할센베르크에서 나온 용사라곤 나랑 설백 밖에 없는데. X발 내가 아니면 더 이상하잖아.
절찬리에 당황하고 있는 와중. 히크가 턱을 괴며 던진 한 마디는 내 혼란을 가중시켰다.
“그래. 그런 자네가 마족과 결탁해 세상의 질서를 무너뜨리려 한다는 소문이 있네.”
“뭐가 X팔 어쨌다고요?”
“그게 사실인가… 라고 물어보려 했다만 방금 반응으로 충분하네. 고맙군.”
히크는 내 황당함을 가득 담은 욕설에 당황하는 한편. 예의 능글맞은 웃음과 함께 종이를 끼적이기 시작했다.
흘깃 살펴보니, 우리의 대화를 그대로 필사하려는 듯했다.
“자네가 불사의 마왕과 손을 잡고 있다는 소리는 그럼 허황된 소문인가?”
“… 그건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노코멘트. 알겠네.”
히크는 고개를 끄덕이나 싶더니. 이내 종이 한 구석에 적는다.
나는 몰래 슬쩍 훔쳐봤다.
―질문: 불사의 마왕과 손을 잡았는가?
―대답: 반쯤 긍정
“아니 할배 엿장사 하세요? 줫대로 쓸 거면 저한텐 뭣하러 물어봅니까?”
이 늙은이가 실시간으로 역사왜곡을 하네. 떼놈이냐? 왜놈이냐?
내가 경계심을 한껏 담아 노려보자 히크는 그제야 종이를 슬쩍 숨겼다. 그리고 손사래를 치며 변명을 주워섬겼다.
“하핫, 강하게 부정하지 않길래 당연히 긍정으로 받아들였지.”
“성범죄자 사후진술 같은 소리 마시구요. 바꿔주십쇼. 노코멘트라니까요.”
“알겠네 알았어. 이해를 좀 해주게. 내 상식으론 그런 끔찍한 소문에 화내지 않는 이들은 불사교도 밖에 없어서 그랬네.”
“… 불사교도?”
모르는 단어가 등장했군. 굉장히 자연스럽게 말한 걸로 봐서는 상식선의 단체인 듯한데.
내가 묻는 시선을 던지자 히크는 눈썹 하나 까딱않고 흔쾌히 가르쳐줬다.
“마녀 디아나의 추종자들일세. 이 파라이소에서 용사를 모두 축출해 디아나의 재림을 노리는 자들이지.”
“아하. 뭐 마족들의 집단인가 보죠?”
“인간들의 집단일세.”
“뭐시기요?”
“마족의 꼬임에 넘어간 자. 타락한 용사들. 잃어버린 돈과 지위를 쫓는 자. 힘과 영생을 바라는 자. 각자의 이유로 마녀의 재림을 바라는 인간들의 집단. 그게 불사교일세.”
“…….”
전에 엮였던 카사스라는 단체도 그렇고. 불사교도 그렇고.
이쪽 세상의 알력다툼도 나름 골치 아프게 꼬여있는 모양이다.
세계관은 ‘태초에 천족과 마족이 싸웠고~’ 수준에서 끝나면 얼마나 좋냐. 이해하기 편하고 받아들이는 쪽도 그러려니 하잖아.
입맛을 다시고 있으려니, 문득 히크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다음은 불사교와의 연관성을 질문하려 했네만. 방금 그 모습이 연기 같지는 않으니 답은 나왔군. 다음으로 넘어가지.”
여기서 히크의 눈빛은 지금까지보다도 한층 날카로워졌다.
그는 상체를 한껏 내게 당기며 낮은 목소리로 물어왔다.
“엘더리치를 사냥한 건 정말 자네가 맞나?”
“예.”
“할센베르크 백과 단 둘이서 사냥에 성공했다고 들었다. 이건 사실인가?”
“아뇨. 제 일행 여자 하나랑, 레이라라는 시녀도 도왔습니다. 총 네 명이네요.”
“호오. 그건 처음 듣는 귀한 정보군. 그러면 어떻게 사냥했지?”
“기업비밀이요.”
“이런…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좀 아쉽군.”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즉답세례. 그 기세에 질문했던 히크조차 조금 놀랄 정도였다.
아무렴 내가 잡은 거 맞아서 맞다고 하는데 누가 뭐라 하겠냐.
히크는 기록을 이어나가며 흐음, 흐음 하고 연신 탄성을 흘렸다.
마지막 한 줄까지 작성한 그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흥미로운 정보로군. 정보값으로는 차고 넘칠 정도야.”
“그러시다니 다행이네요.”
“마지막으로. 이건 그냥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묻는 건데 말일세.”
“뭔가요.”
히크가 문득 펜 깃을 슬쩍 들어 내 턱을 가리켰다.
위협의 기색은 없었지만 나도 모르게 침을 한 번 삼켰다.
“자네는 아신의 편인가? 아니면 마녀의 편인가?”
나는 히크의 의중을 파악해보려 했지만 실패했다. 정보상의 마스터쯤 되는 양반이니 표정이 쉽게 읽힐 리 없긴 하지.
일찌감치 포기한 나는 본심대로 말했다.
“이기는 편이요.”
“… 하핫.”
너털웃음을 흘린 히크가 이내 펜을 치웠다.
작성한 양피지를 둘둘 말아 소매에 정리하더니 히죽 웃으며 한마디 했다.
“지금껏 만난 용사들 중 가장 믿을만한 대답이었다. 엘더리치 슬레이어.”
* * *
“이 중에 하나라는 거지.”
나는 히크에게서 받은 리스트를 살피며 부랑자 촌락을 살피는 중이었다.
리스트에 기재된 사람은 35명. 35명의 이름과 인상착의. 무력 계급. 그리고 거주지까지 상세하게 적혀있었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상세할 줄은 몰랐다. 일 잘하네 그 양반들. 새삼 혀를 내둘렀다.
‘… 다 둘러볼 수 있을까?’
나는 하늘을 쳐다봤다.
이미 땅거미가 내려앉고 별이 떠오르고 있었다. 생각보다 정보상에서 보낸 시간이 길었던 것이다.
밤이 찾아온다. 타임 리미트가… 점점 임박해 온다.
‘12시 전에는 여관으로 돌아가야 해…!’
신데렐라도 아니고 뭐하는 짓인가 싶지만 어쩔 수 없다.
기억을 이어가기 위해 사념을 일정한 장소에 남겨야 한다. 또 설백에게 루시를 지키도록 부탁하기 위해서라도 여유가 있게 돌아가는 게 좋다.
심장이 옥죄는 듯하다. 지금껏 애써 무시해왔던 불안감과 초조함이 몸을 휘감는다.
‘궁상 2주 압수다 박정용.’
그만하자. 불안할 틈이 있으면 움직여야 한다.
죽을 것 같아도 지금 움직이면, 열 번 죽을 거 한 번 죽을 수 있다.
‘찾아낸다.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그래봐야 몇 시간 남은 짜투리 목숨이긴 하지만.
나는 비릿한 웃음과 함께 이 잡듯이 판자촌을 뒤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