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죽을까 말까
“이번엔 무조건 나를 깨워라! 내가 기절하는 한이 있어도 무조건 깨워! 알겠느냐!”
“아, 알겠어. 그만 화 좀 풀라니까.”
나는 마왕의 신신당부에 약속하고 나서야 간신히 풀려날 수 있었다.
“…….”
“…….”
“…….”
파티의 분위기는 빈말로도 좋다고 할 수 없게 되었다.
루시는 33번이나 반복된 무한 츠쿠요미 때문에 넌더리가 난 상태고. 나는 내가 33번이나 여기서 부활했다는 사실 자체에 놀라서 생각을 정리하는 중이다. 그리고 설백은 뭐가 뭔지 모르겠으니 함부로 끼어들 수가 없다.
자연스럽게 우리 파티에는 무거운 침묵이 감돌고 있었다.
‘… 실감이 안 나네.’
할센베르크 전체에서 죽었다 부활한 게 23번이다.
그런데 그 때보다 10번이나 많이 죽었다고? 그것도 같은 회귀점에서만 33번?
전생의 나들아. 대체 무슨 짓을 당하는 거냐. 이제 좀 살만해졌다 싶었더니 왜 또 이런 시련이 나한테 찾아온 거냐고.
‘… 음? 가만.’
한참을 자괴감에 빠져있던 나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나는 슬쩍 떨어져 성큼성큼 걷는 루시에게 고개를 돌렸고. 이내 입을 열었다.
“야. 근데 좀 이상하다?”
“뭐가 이상하냐. 이상한 건 머저리 같이 계속 죽어대는 네놈이다.”
이 쌔기가 그새를 못참고 짤딜을 날려?
순간 볼이라도 잡아 당겨줄까 생각했지만. 34번째 내가 탄생하지 않으려면 그녀의 도움이 절실하다.
나는 일단 꾹 참고 용건을 내놓았다.
“내가 32번 죽고 33번째 살아날 동안. 너는 대체 뭐했냐?”
“뭘 하긴! 퍼질러 자고 있었다니까! 그러니까 나도 아직 네놈이 왜 그렇게 뒤져대는지 이유를 모르는 거 아니냐!”
“32번동안?”
“그래! 32번동안! 불만있냐!”
“그게 이상하다는 거야.”
“…… 뭣이?”
그제야 마왕이 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가에 의아한 기색이 가득하다. 설마 본인이 32번이나 겪으면서 그것도 눈치채지 못했단 말인가.
새삼 이 하얀 마왕의 지능이 어디까지 박살났는지 깨닫게 됐다.
“너도 당연히 알고 싶었을 거 아니냐. 대체 내가 왜 머저리같이 자꾸 쳐뒤지는지.”
“그래! 그래서 눈에 불켜고 지켜보려 했다! 그런데 이 빌어먹을 수마가 자꾸 몰려오는 바람에…!”
“내가 죽을 때면 32번이나 어김없이 퍼질러 잤다고?”
“그래! 32번이나 어김없이…!”
루시의 말꼬리가 점점 흐려지기 시작했다.
대신 그녀의 새빨간 동공이 천천히 크게 확장되었다.
“한 두 번은 몰라도 32번이나 그러면 그건 절대 우연이 아니지.”
“아, 아아…!”
거기까지 말하고 나서야 루시는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깨달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그녀의 추측을 긍정했다.
“넌 일부러 재워진 거야.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루시, 혹은 나의 죽음을 바라는 누군가에 의해서 말이다.
* * *
나는 곧바로 여관에 방을 잡았다. 전에는 어땠는지 몰라도 이번엔 돈을 좀 써서 세 사람이 각자 따로 방을 잡았다.
물론 방은 하나로도 충분하지만. 굳이 그렇게 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럼 정리해보자고.”
나는 지금 루시의 방에서 설백 몰래 대화하고 있었다.
그녀는 아직도 자신이 누군가에게 농락당했다는 사실에 충격먹은 듯했지만. 나는 아랑곳 않고 떠벌리기 시작했다.
“일단 내가 죽는 일시는 바로 오늘 밤. 네가 잠드는 게 대충 12시 전후라고 했으니 정확히는 내일 새벽 언저리라고 보면 되겠지. 여기까진 맞냐?”
“… 그, 그래.”
“좋아.”
루시는 33번에 이르는 오늘의 반복을 모두 내게 말해준 상태였다.
적어도 기억력이 좋다는 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녀는 33번에 이르는 내 전생의 경험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도 내가 직접 겪는 것처럼 생생하게.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33번 오늘을 반복한 내게서는 이렇다할 일관성을 찾기가 힘들었다.
“어떤 때는 수도를 향해 미친 듯이 서둘렀고. 잔류사념 찾을 때도 있었고. 어떤 때는 팔자 좋게 여관에서 묵다가 죽을 때도 있었다고?”
“그래. 게다가 수도 방향뿐만이 아니다. 사방팔방 안 가본 방향이 없을 정도이니라.”
“그건 또 뭔 미친 소리래. 가는 방향이 그때그때 달라? 왜?”
“낸들 아느냐? 네놈이 주둥이 꾹 닫고 말을 안 해주는데. 내가 아니고 네가 한 일이다, 너!”
“쓰읍.”
루시가 원망스러운 기색으로 나를 째려봤다.
‘내가 이렇게 협조적인데 넌 왜 이렇게 비협조적이냐. 자살카페 정회원이냐?’라고 묻는 눈빛.
뭐라 할 말이 없군. 나는 곧장 망자의 함을 꺼내고 보험 갱신부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루시한테 선조치 후보고 해라. 사소한 것도 무조건 해라.]
꼰대 마냥 꼬장꼬장하게 메모를 우겨넣으며 나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루시의 말에 따르면 전생의 나는 잔류사념을 회복하지 못했다고 한다. 정확히는 할 생각조차 없어보였다고 했다.
그렇다는 건. 전전생의 나는 망자의 함을 갱신하지 못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망자의 함도 갱신 못 할 정도로 기습적인 무언가가 발생하는 거야.’
내 행보에 일관성이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다.
내가 나의 죽음을 눈치채지 못한다. 나중에 루시에게 전해듣는다 쳐도, 그 심각성을 알지 못한다.
아무리 전생의 나라지만. 내가 직접 전하는 나의 위기와 남이 전하는 나의 위기는 온도차이가 심하다.
‘… 한 번 연결이 끊기고 나니 속수무책으로 계속 끊긴 거지.’
잔류사념이 계속 멀리 떨어지는 것도 미싱링크가 생기는 데 한몫했다.
전생의 나는 이 케른을 어떻게든 탈출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그 판단을 내리는 과정은 대충 알만하다. 다 같은 내가 한 추리니까.
하룻밤 사이의 갑작스러운 죽음.
멀리서 발견된 잔류사념.
이 두가지 요소로 전생의 나들은 이런 추리를 했을 것이다.
‘전생의 나는 도망치려 했다. 케른 근방에서 저항할 수 없는 사건이 터지기 때문이다.’
그게 정확히 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최대한 케른을 벗어나야 한다. 그러니 지금 당장 움직인다.
잔류사념을 발견해서 사인을 정확히 알든, 아니면 모르든. 결국 나는 이곳을 탈출하려 할 것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발상도 기껏해야 그 정도다.
‘그래서 내가 여러 방향으로 탈출을 시도했던 거군.’
아마 루시에게 타임 리미트를 전해들은 나는 마음이 급해졌을 거고. 잔류사념의 회복을 포기했을 확률이 높다.
그러니 당시의 내가 알 수 있는 건 전생의 내가 죽은 위치뿐이다.
그 위치의 반대방향으로 무조건 멀리 가려고 했던 거겠지. 그러다보니 중구난방으로 여기저기 쏘다닌 형국이 된 것이다.
‘이대로는 안돼.’
작전. 살아남기 위한 철저한 작전이 필요하다.
내가 33번이나 죽었다 살아난 이유? 결국은 정보가 부족해서이다.
내가 어떻게 죽었는지. 왜 죽었는지. 일단 그 정보부터가 없으니 올바른 대처법도 제대로 모르고. 그러니까 궁여지책으로 짜낸 대책이 안 먹히면서 어이없는 죽음만 반복된 거다.
‘궁여지책으로 벗어날 수 없는 죽음이라 이거지.’
그렇다면 남은 건 철저한 계획뿐이고. 철저한 계획을 세우려면 더더욱 정보가 필요하다.
정보를 모으기 위해서는 잔류사념의 위치를 고정해야 한다.
그리고 잔류사념의 위치를 고정하기 위해서는….
“야. 루시.”
“뭐냐. 갑자기 진지해져서는.”
“앞으로 몇 번 더 죽을 거니까 알아둬라.”
룸서비스로 온 과일주스를 마시던 루시.
그녀의 입에 있던 주스가 잔으로 주르륵 쏟아져 원상복구가 되었다.
햇반 한 공기 뚝딱할 광경이다.
“뭐가 어쨌다고?”
“이 여관에 알 박고 활동할 거다. 내가 죽는 원인. 그 원인의 원인. 그 원인의 원인의 원인까지 밝혀낼 거니까 그렇게 알아둬.”
“… 아, 아니… 아니. 잠깐만….”
“다음 생의 나한테도 일단 이 여관에 방부터 잡으라고 말해. 말 안 들으면 두들겨 패서라도 잡게 시켜. 그리고 무조건 망자의 함부터 읽으라고 해. 그리고 또….”
“잠까아안! 좀 기다려 보라고 용사!”
물론 루시의 발악 따윈 사뿐히 즈려밟아 버렸다.
“나한테 오늘을 몇 번이나 더 겪게 해야 직성이 풀리겠느냐!”라며 소리치는 루시. 나는 노발대발하는 그녀에게 상큼하게 미소를 날려줬다.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자.”
꼴에 어디서 본 명언을 미소와 함께 날리는 나. 역겨움 수치가 극상에 이를 거라고 자부한다.
예상대로 루시는 내 뻔뻔한 태도에 질렸다는 듯 침대로 침몰해 버렸다.
덜컹. 나는 그녀를 내버려둔 채 방문을 닫았고. 곧장 내 방으로 돌아왔다.
“그럼….”
미소는 씻은 듯이 사라져 있었고. 애써 참고 있었던 식은땀이 줄줄 새어나왔다.
센척하기도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방금까지의 ‘죽음 따위 아무렇지 않아’ 모드를 연기했던 나 자신을 상기하며 비웃음을 흘렸다.
‘바로 움직이자.’
한 번이라도 덜 죽고 싶으니까. 낭비할 시간은 1초도 없다.
나는 곧장 머리를 팽팽 굴리며 케른의 거리를 쏘다니기 시작했다.
전생의 나들은 혼자 움직였을까. 아니면 모두와 같이 움직였을까.
적어도 지금부터 내가 할 일들을 생각하면 혼자가 훨씬 편한 건 자명하다.
‘생각해야 해.’
어떤 시도를 하고 어떤 선택을 하든 32번의 나는 모두 나였다. 하지만 모든 내가 전부 실패했다.
그러니까 지금의 나는, 전의 내가 못할만한 발상을 떠올려내야 한다.
일차원적인 발상을 넘고. 그 일차원적인 발상을 넘는 나를 넘어 그 너머까지 생각한다.
‘좋아. 정했다.’
그렇게 우선적으로 할 일이 심사숙고 끝에 정해졌고.
나는 신속하게 몸을 움직여 케른의 음습한 골목길로 천천히 녹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