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플렉스
“정용님. 이제 좀 괜찮으세요?”
“… 어. 그래. 고맙다.”
“아녜요. 괜찮아지셨다니 다행이에요.”
설백의 제안으로 우리는 케른의 중앙에 있는 광장에 온 상태였고.
나는 전망이 기가 막힌 분수대에 걸터앉아 쉬고 있는 중이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아니. 물론 나도 알고 있다. 회귀점이 갱신된 거지.
내가 궁금한 건 갑자기 무슨 일이 벌어졌길래 이 시점으로 회귀하게 됐냐는 거다.
이 시점에 특별한 전조는 없었다. 그나마 있던 불안요소인 미행자는 처리되었다.
알 수가 없다. 전생에 대한 정보가 너무 부족하니 답답하다.
다만 한 가지 추측할 수 있는 것은….
‘뭐 어떻게 대처할 수도 없을 정도로 기습적인 일이 일어난다.’
무려 내 손가락이 튀어나왔다.
어떻게든 망자의 함은 갱신시켜야겠고. 당장 뭔 조치를 취할 겨를도 없이 죽을 것을 예감하고 손가락을 잘라넣은 것이다.
이렇게 절박하게 몰릴 만한 일이라니. 상상도 안 된다.
아니… 솔직히 상상하고 싶지가 않다.
설백이 건네준 물을 한 잔 시원하게 들이키고, 천천히 펜을 끼적여 작은 쪽지를 만들었다. 망자의 함을 갱신시키기 위해서였다.
작업이 끝나고, 나는 옆에 앉은 설백을 가만히 쳐다봤다.
“응? 왜 그러세요 정용님?”
“아니… 아무것도.”
설백을 볼 때마다 뭔가 중요한 걸 잊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다.
지금껏 회귀를 하면서 이렇게까지 뒷맛이 찜찜했던 적은 없었는데. 대체 얼마나 중요한 사실을 잊었길래 이렇게 가슴이 답답하냐.
‘… 잔류사념. 회수해야지.’
원래는 어깨빵을 치고 간 싸가지없는 붉은 머리 부랑자를 쫓을 생각이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니 당면한 목표는 잔류사념의 회수로 긴급수정되었다.
대충 혼란스런 머리도 정리됐겠다.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는데.
“야 용사. 잠깐 나좀 보자.”
갑자기 옆에서 가만히 있던 루시가 나를 불러세웠다.
나는 손가락을 까딱이는 루시에게 다가갔고. 그녀는 내게 얼굴을 가까이 대더니 귓속말로 말했다.
“어떻게 된 거냐. 왜 자고 일어나니 시간이 돌아와 있는 게야.”
“… 어떻게 되긴.”
내가 죽은 거지. 그래서 시간이 돌아온 거고. 그걸 꼭 말해야 아냐.
내가 그런 눈빛으로 지그시 쏘아보자, 그걸 또 찰떡같이 알아들은 모양이다.
루시는 곧장 고개를 붕붕 저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네놈이 왜 죽었는지 설명을 해보란 말이다.”
“왜 죽었냐고…?”
이 새끼가 지금 나 놀리나.
나는 마왕의 머리에 꿀밤을 한 대 빠악, 시원하게 갈겼다.
“악! 아 왜! 왜 또 때려! 이 미친 폭력 용사야!”
“지금 불난 집에 부채질하냐? 나도 그걸 몰라서 이렇게 멍하니 있는 거 아냐.”
“아… 네, 네놈은 회귀하면 기억을 잃었지 참.”
“그래. 그래서 지금 그 기억 수복하러 간다.”
루시가 그 말에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깊은 깨달음을 얻은 표정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진짜 잊어버렸던 모양이다. 하긴, 내가 마지막으로 회귀한 게 벌써 한 달 전의 일이니. 잊어버릴만도 하다.
‘… 나도 잊고 있었을 정도니까.’
이 꺼림칙한 감각.
내가 잊어버린 미래… 아니.
내가 죽음으로써 ‘사라져버린’ 미래가 있다는 것을, 나만이 알고 있는 이 감각.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불쾌함이었다.
“가자 빨리.”
“그래. 알겠다.”
나는 멀뚱히 기다리는 설백의 앞을 질러 걸어갔고. 마왕도 머리를 쓰다듬으며 내 뒤를 얌전히 쫓았다.
오랜만에 이자나미의 심장을 발동시켰다. 우우웅, 하는 특유의 음침한 기동음과 함께 내 앞으로 희끄무레한 빛이 나를 인도한다.
나는 한동안 그 빛이 이끄는대로 멍하니 발걸음을 옮겼다.
“저… 정용님.”
그러자니, 문득 지금까지 입을 닫고 있던 설백이 말을 걸어왔다.
나는 눈썹을 튕기며 설백을 쳐다봤다. 그녀는 굉장히 할 말이 많은 얼굴로 우물쭈물거리고 있었다.
나는 가만히 쳐다보다 물었다.
“…… 똥 마렵냐? 기다려줘?”
“네?! 아, 아니요! 가, 갑자기 뭔 미친 소리세요 정용님도!!”
똥 마려울 수도 있지 미친 소리까지야. 요 근래 미친놈 소리를 자주 듣는군.
경기에 가까운 반응에 나는 식겁했고. 설백도 자기가 오버했다는 걸 깨달았는지 이내 헛기침을 하며 표정을 정리했다.
“그, 그게 아니고… 정용님. 전부터 뭔가… 저한테 숨기는 게 있지 않나 싶어서….”
순간 뜨끔했다.
나는 마왕과 슬쩍 시선을 교환했다. 마왕은 멍하니 하늘의 구름을 보고 있었다.
그래. 저 새끼가 뭐 생각이 있을 리 없지. 내가 어리석었군.
나는 일단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 변명부터 하기로 했다.
“숨기긴 뭐를. 내가 숨길 게 뭐가 있다고.”
“하지만 방금만 해도…!”
설백은 곧장 반박을 위해 입을 열었다. 열었지만.
이내 전에 지어보이던 할 말 많은 표정으로 돌아와 우물쭈물 하더니. 이내 입을 닫아버렸다.
그리고 고개를 젓고 쓰게 웃는다.
“아니. 아니에요. 제가 과민했어요. 가요.”
“…… 그래.”
거짓말을 하려니 양심이 찔렸지만.
어차피 말해도 믿어주지 않을 소리다. 증거도 보여줄 수 없으니 설명할 방법도 궁색하다.
상대가 믿지도 않을 진실을 주장하다 미친놈취급 받는 건 지긋지긋하다. 호구잡히면 가장 많이 하는 게 그런 짓이니까.
‘여기다.’
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걸었더니 어느새 이자나미의 심장이 가리키는 장소에 도착해 있었다.
케른에서 가장 호화롭고 거대한 여관이었다.
이름은 ‘약속의 쉼터’. 뭔가 중2병스런 이름이다.
‘경비가 제일 삼엄하다.’
나는 여관의 경비원 레벨을 훑어본 뒤. 전생의 내가 한 발상을 유추할 수 있었다.
박정용 이 새끼 이거, 이 여관에서 존버하려다 뭔가에 죽었나 보다. 싸우다 죽었으면 억울하지라도 않지. 추하게 이게 뭐냐.
나는 한숨을 내쉬며 방을 빌리기 위해 여관의 프런트로 다가갔다.
거기서, 나는 한 가지 재미있는 생각을 떠올렸다.
‘… 한 번 맞춰볼까.’
전생의 나는 과연 몇 번 룸에 묵었을까.
일단은 전생의 나다. 어차피 동일인물인데, 그러면 고르는 방도 똑같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었다.
좋아. 정했다. 나는 프런트의 직원에게 말했다.
“201호실 하루 숙박이요.”
“… 예? 저희 여관엔 201호실이 없는데요.”
“…….”
나는 그렇게 개쪽을 당한 뒤 마왕과 설백에게 돌아왔다.
자, 그럼 이제 정답 공개의 시간이다. 나는 곧장 마왕에게 물었다.
“야 루시.”
“음?”
“전생의 나는 몇호실에 묵었냐?”
“403호.”
“…… 틀림없어?”
“그것도 기억 못 하겠느냐. 바로 오늘 일어날 일이구만.”
나는 그렇게 두 번째 개쪽을 당하며 프런트에서 403호 열쇠로 바꿔왔다.
호수만 틀렸으면 모르겠는데 층수까지 완전히 틀릴 줄이야. 새삼 ‘무작위 선택’은 ‘운명’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여기군….’
그리고 문제의 403호실 앞.
나는 마른 침을 꿀꺽 삼킨 후 천천히 문을 열고 들어갔다.
끼이이. 천천히 문이 열렸고. 널찍한 방 한 가운데엔 잔류사념이 떡하니 남아있다.
그리고, 내 시체는…….
“으. 흐아아아아악!!!”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엎어졌다.
그걸로 모자라서 손발을 허우적거려 최대한 뒤로 물러났다.
“저, 정용님?! 이, 이번엔 또 왜 그러세요! 네?!”
설백이 안절부절하면 공포에 빠진 내 어깨를 쥐었다. 나는 떨리는 눈으로 설백의 눈을 가만히 쳐다봤다.
그래. 안 보이는군.
설백한테는 보이지 않는구나. 지금 403호 안에 펼쳐진 광경이.
… 나한테만. 나한테만 보이는 환상인 것이다.
‘후우. 제길… 지, 진정하자.’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진정되었다.
난 그제야 천천히 숨을 몰아쉬었고. 한 층 차가운 머리로 방 안을 쳐다볼 수 있었다.
온통 핏방울로 칠해진 새빨간 방.
벽이며 천장이며 덕지덕지 붙은 크고 작은 살덩어리.
완전히 으스러져 형태만 남은 뼛조각들.
‘이런… 미친….’
육편과 장기가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나마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머리뼈에는… 내 얼굴로 추정되는 피부가 덜렁거리며 붙어 있다.
… 아마 저거라도 아니었으면, 이게 내 시체인지도 몰랐을 거다.
“으… 이, 이건 아무리 나라도 좀 그렇군.”
루시가 질색을 하며 고개를 슬쩍 돌릴 정도의 광경이다. 말 다했지.
루시가 저정도인데 당사자인 나는 어떻겠냐고.
내가 정신을 차리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 * *
[아이템 발동 - 이자나미의 심장]
[전생의 잔류사념을 획득했다.]
[전생에서 실전한 능력치가 없어, 능력치를 수복하지 못했다.]
[전생에서 실전한 스킬이 없어, 실전스킬을 수복하지 못했다.]
[전생의 기억을 모두 수복했다.]
“끄으으으윽!!”
내가 정신을 차리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당연히 설백을 밖에 세워놓고 잔류사념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설백은 다행히 말없이 내 요구를 들어주었다. 여전히 할 말 많은 표정이었지만. 그녀의 얼굴엔 어떤 체념이 깃들어 있었다.
“크하악! 허억… 허억….”
노도처럼 밀려들어온 죽음의 기억이 끝난 뒤. 나는 지금껏 그랬듯이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뿌드득.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이를 가는 것이었고.
“X발, 대체 뭐야!”
두 번째로 한 일은 욕을 박으면서 괜히 바닥을 후려치는 것이었다.
콰자작! 나무 바닥이 부서지며 주먹이 파고들었다.
이런. 내가 강해진 걸 깜빡했군. 나중에 티 안나게 가려놔야겠다.
‘아니 그런데… 정말 뭐였지?’
나는 곰곰이 죽었던 당시를 떠올려봤다.
거대한 폭발. 새하얀 빛이 터져나오며 천천히 다가오던 충격파를 기억한다.
핵폭탄이 터지면 그런 느낌일까 싶은 압도적인 무언가였다.
그것 외엔 아무것도 모른다. 눈 깜짝하니 나는 이미 시공회귀 된 상태였고.
전생의 나는… 직접 봤다시피 전자레인지에 돌린 계란 꼴이 되었으니까.
‘아무것도 모른다면….’
정보가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면 적어도, 지금 당장 할 일은 확실해졌다.
나는 곧장 방문을 벌컥 열고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멀뚱히 서있던 설백의 앞에 섰다.
“정용님…?”
“설백.”
“아, 넷!”
내가 진지하게 어깨를 붙잡고 말하자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 전부터 느낀 거지만 얘는 왜 내가 진지하게 대화 좀 할라 치면 눈을 감냐? 무협 소녀의 감성이란 참으로 어렵군.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입을 열었다.
“지금 당장 이 도시를 뜨자.”
감겨 있던 설백의 눈이 번쩍 뜨였다.
“…… 네?”
“짐싸. 당장 출발할 거니까.”
“… 네? 네에에?!”
“루시. 가자. 수도까지 직행할 거니까 각오해 두고.”
“아니 잠깐만요! 잠깐만요 정용님?!”
여관방을 잡은지 고작 15분. 고급진 대리석 바닥의 냄새 좀 맡았나 싶었더니, 개뜬금 도시 이탈 선언.
완전히 FLEX해버리는 나의 모습에 설백은 어찌할 바를 몰랐고.
“아우… 하… 아이 참… 정말…. 휴우….”
그저 입을 벌린 채 어버버거리며, 내 뒤를 쫓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