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3417413번째 소울라이크 용사-59화 (35/280)

59화

나는 양손에 베스타크와 에스파다를 꼬나쥔 채 에테르병을 갖다댔다.

스스스. 세 가지 힘이 내 몸을 타고 돌며 찬란한 빛을 뿜기 시작했다. 약발이 도는 걸 느끼자마자 지면을 박찼다.

‘세븐 소드 피어스!’

피피핑! 왼손의 에스파다에서 생성된 일곱 개의 마력칼날이 쏜살같이 날아갔다. 누님은 조금 당황한 듯했지만, 이내 침착하게 모든 검날을 쳐냈다.

누님의 얼굴에는 당황이 잔뜩 어려 있었다.

“버러지. 마력이 바닥났을 텐데… 어떻게 스킬을….”

“세븐 소드 피어스!”

왜긴 왜겠냐.

물의 에테르는 체력 뿐만 아니라 마력도 회복시켜주기 때문이지.

하지만 굳이 대답해줄 의리는 없다. 나는 아니꼽게 히죽거리며 연신 검만 휘둘렀다.

파지지직!

이젠 무영창으로도 능숙하게 쏟아져 나오는 마력의 칼날이 연신 누님을 향해 쏟아졌다.

“꼬우면 금수저 물고 이세계 전생하시든가!”

파직, 파지지직!

마력 칼날이 그녀의 검과 맞닿을 때마다 스파크가 번쩍인다.

그녀는 이번에도 어렵지 않게 내 공격을 전부 흘려냈다.

“한 번 더 간다!!”

이번엔 양손의 검을 동시에 휘둘렀다.

투두두두! 총 14개의 칼날이 누님을 잡아먹을 듯 사방에서 쏟아졌다.

역시 양손으로 쓰려니 그만큼 컨트롤이 힘이 부쳤지만. 나는 온 집중을 쏟아 마력 검날을 컨트롤했다.

“무의미한 짓을…!”

누님은 인상을 바짝 찌푸리며 이번에도 어렵지 않게 날아온 검날을 모두 쳐냈다.

카카캉! 7개의 마력 칼날이 그녀의 검과 부딪치며 속절없이 허공에서 으스러졌다.

“… 일곱 개?”

그리고 그 순간. 누님은 위화감을 눈치채고 눈을 부릅떴지만.

이미 늦었다.

나는 회심의 미소와 함께 스윽. 엄지로 모가지 긋는 시늉을 했다.

“물고 빠는 건 좋은데 말이다. 쟤가 약점이라고 굳이 광고할 필요가 있었나?”

“……!!”

그 순간 게임은 이미 끝나 있었다.

누님의 시야에서 사라졌던 나머지 일곱 개의 마력 칼날은 어느새 폴룩시우스의 배후까지 날아가 있었다.

누님의 얼굴에 뒤늦은 깨달음이 스쳤다.

“성하!! 도망…!”

누님이 아찔한 표정으로 황급히 몸을 돌렸고.

퍼버버벅!

둔중한 파육음이 터졌다.

폴룩시우스가 부릅뜬 눈으로 자기 배를 쳐다본다.

“…… 어. 헉.”

거대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 구멍 밖으로는 마력칼날이 빠직거리며 스파크를 날름거리고 있다.

질척한 검붉은 액체가 끊임없이 쏟아진다. 폴룩시우스는 철철 흐르는 자기 피를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폴룩시우스의 핏발선 시선이 천천히 등 뒤로 돌아갔다.

“말도… 안 돼… 어떻게… 마, 마력은… 사용하지 못했을 터… 이런 조작이… 대체, 어떻게…!”

“죽을 놈이 궁금한 것도 많다.”

나는 짧게 한 마디 내뱉고는 그대로 세븐 소드 피어스를 해제했다.

푸지직. 끔찍한 소리가 나며 폴룩시우스의 내장이 뻥 뚫린 구멍으로 쏟아져 나왔다.

폴룩시우스의 앙상한 몸뚱이가 바닥에 그대로 처박혔다.

“… 여신이여.”

짤막한 한 마디. 직후 폴룩시우스의 눈에서 빛이 사라졌다.

죽은 것이다.

“…….”

“…….”

싸늘한 침묵.

도망치던 용사들은 압도적인 급전개에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아무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상황을 삐빅. 상태창이 나타나 각인시킨다.

[제7753번째 마왕, 타락자 폴룩시우스가 처단되었다.]

[토벌에 참여한 모든 용사에게 파라이소 공용 금화 1000냥, 모든 스탯 +5을 부여한다.]

[기여도가 가장 높은 10인에게는 무작위 보물상자 특전을 부여한다.]

동시에 각자의 눈앞에는 또 다른 패널들이 떠올랐다.

[레벨 업!]

하나는 레벨업 패널.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163417413번째 용사 박정용의 기여도: 1위]

[무작위 보물 상자: ‘거인의 유물함’이 수여되었다.]

[기여도 1위 특별보상: 금화 1000냥을 추가로 얻었다.]

아마 나를 포함해 10명만 받았을 특전 아이템에 대한 패널이었다.

보상이 나왔다. 즉, 토벌이 완료되었다.

“끝… 난 거야?”

그제야 모두 실감이 들었는지 장내가 술렁거린다.

술렁거림은 곧 웅성이는 소란으로, 그리고 소란은 곧 기쁨의 함성으로 바뀌었다.

탱그랑. 용사고 수비병력이고 할 것 없이 무기를 집어던지며 얼싸안았다.

“이, 이겼다아아!”

“살았어! 살았다고!”

“우와아아아!!”

분위기가 일순간에 반전되었다. 상갓집 같던 분위기는 어느새 축제 분위기가 되어 있었다.

내가 유유자적하게 마왕의 시체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이자니.

문득 찢어지는 비명이 울려퍼졌다.

“아… 아…! 아아! 아아아! 성하! 나의 교황 성하!!!”

고혹적이면서도 소름끼치는 변조된 목소리.

보라 피부의 누님이 아찔한 얼굴로 폴룩시우스의 주검에 달려가는 모습이 비쳤다.

그러고 보니 마왕이 죽어서 슬퍼할 사람이 여기서 딱 하나 있었군. 나는 가늘게 뜬 눈으로 그 광경을 가만히 주시했다.

순간, 누님을 포착한 나의 시선이 어느 때보다도 날카로워졌다.

“… 큿!”

허겁지겁 달려가던 누님이 일순간 제동을 걸었다. 그리고 시커먼 투기를 대검에 결집시켜 냅다 휘둘렀다.

쩌어엉! 엄청난 굉음과 함께 투기가 폭발했다.

그 앞에는 양손의 흑백 쌍검을 내지른 내가 어느새 등장해 있었다.

누님은 내 얼굴을 눈에 담더니 이를 뿌득, 시원하게 갈았다.

“네… 이놈…!”

끼기긱, 끼긱.

맞부딪친 대검과 쌍검이 찌뿌등한 염을 토했다.

씨익. 나는 입가가 비틀어 올렸다.

“연화를 막아내다니. 주인보다 개새끼가 한결 낫네?”

퍽이나 대견하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일격사 당해버린 자기 주인을 비웃는 행색. 누님의 얼굴이 대번 분노로 일그러졌다.

“그 입, 닥쳐라…!”

“들어주지 않을 부탁은 시도도 말고. 협박을 하려면 힘으로 해야하는 법이야 누님.”

구구구구. 우리가 내뿜는 투기가 선명한 실체를 가지고 공기를 진동시켰다.

그 엄청난 압박감에 축제분위기도 다시금 사그러들었다. 떨거지 용사들도 아직 끝이 아니라는 걸 실감한 것이다.

“크… 으…!”

하지만 누가 유리한지는 극명하게 보였다.

나의 놀랍도록 태연한 표정과, 그에 대비되게 초조한 얼굴의 누님.

나는 그 원인을 대충 알기에 눈썹을 튕겼다.

“옆구리의 상처가 슬슬 시릴 때가 되기도 했지?”

“닥쳐라…!”

누님은 괴로운 표정으로 점점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이미 그 시점에서 싸움의 향방은 결정되어 있었다.

“흐.”

나는 그런 누님을 보며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동정도 조롱도 아니었다. 그저 순수한 자비심을 담은 웃음이었다.

“내가 지금 좀 바쁘거든. 앞으로 내 앞에 나타나지 않기만 해주면 죽이진 않을게. 딜?”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천천히 주문을 영창했다.

치지지징. 주변의 공기가 흔들린다. 동시에 내 쌍검 옆으로 14개의 마력 칼날이 둥둥 떠올라 누님의 사지를 겨냥했다.

누님은 식은땀을 흘리며 그것을 가만히 쳐다보다, 이내 입술을 피나도록 깨물었다.

“… 반드시… 복수하리라… 두고 보자 용사놈들… 특히 네놈. 검은 머리 용사. 기억해두겠다!”

“꼬리 만 개새끼 대사치곤 너무 진부하네.”

나는 경멸을 담아 혀를 한 번 찼다.

그러든 말든. 곧 그녀의 몸은 새카만 투기에 휩싸이더니 그대로 모습을 감췄다.

긴장 속에서 지켜보던 관중들도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흐아아.”

털썩. 문득 옆에서 설백이 주저앉았다.

내 안에 깃들어있던 기룡이 화들짝 놀라 설백에게 날아가 엉겨붙는다.

“새, 생각보다 엄청 치열했네요. 쪽수에서 상대도 안 되길래 쉬운 적일 줄 알았는데….”

설백은 멋쩍게 웃으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일어서려고 애쓰다 다리가 풀려 주저앉길 반복했다. 긴장을 많이 한 모양이다.

나는 피식 웃으며 설백에게 손을 내밀었고, 설백은 흠칫 주저하다가 조심스레 내 손을 잡았다.

“고, 고맙습니다 정용님….”

“나야말로 고맙다. 덕분에 살았어.”

빈말이 아니다. 아까는 정말 설백 덕분에 이길 수 있었다. 기룡이 없었으면 아마 누님한테 피지컬로 밀렸을 거다.

내 말에 설백은 퍼뜩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입가를 씰룩거리며 고개를 연신 붕붕 저었다.

“아녜요. 아직도 은혜를 갚으려면 멀었어요. 좀 더! 좀 더 저한테 의지해주세요 정용님. 에, 에헤헤.”

“… 음? 뭐… 그, 그래.”

나 가끔 얘가 이렇게 알 수 없는 행동을 할 때가 제일 무섭더라. 나는 혼자 히죽거리기 시작한 설백에게서 조금 몸을 물렸다.

그러자니 턱, 옆에 멍하니 서있던 마왕과 부딪쳤다. 마왕은 즉각적으로 나를 째려보더니 퉁명스레 입을 열었다.

“뭐냐. 용건없으면 괜히 건들지 마라 용사.”

“어, 그래.”

루시는 아까부터 기분이 별로 안 좋아 보인다.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용사들의 시체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뭐라 혼자 중얼거리고 있다.

쟤의 사고방식은 알아서 좋을 게 없지. 오히려 조용하니까 좋군. 그대로 냅두도록 하자.

‘뭐. 어쨌든… 이걸로 11번째던가.’

11번째.

이걸로 한 달 만에 마왕을 11번째 토벌했다.

얼마나 마왕이 자주 등장하는지 대충 감이 올 거라 믿는다.

거짓말 안 하고. 거의 포x몬스터 수준이다.

‘뭐… 경험치랑 돈은 잘 벌려서 좋긴 한데….’

적어도 마왕 사냥이 좋은 돈벌이이자 경험치 앵벌이가 되는 건 확실하다.

나는 오랜만에 나와 설백, 그리고 루시의 상태까지 한꺼번에 훑었다.

[명칭: 박정용]

[별칭: 163417413번째 정식 용사. 마왕의 알 수호자. 불사에 종속된 자]

[LV. 154]

[체력: 1220/1220 마력: 450/450 신체상태: 정상]

[힘: 166 민첩: 239 지능: 51 히어로 센스: 16]

[남은 능력치 포인트: 9]

[명칭: 설백]

[별칭: 154829771번째 용사, 눈(雪)의 기공사]

[LV. 106]

[체력: 370/370 마력: 1010/1010 신체상태: 정상]

[힘: 23 민첩: 31 지능: 133 히어로 센스: 8]

[몬스터 정보]

[명칭: 불사의 마왕 ― 루스티카 아스모데우스]

[체력: ???/??? 마력: 0/0]

[힘: ??? 민첩: ??? 지능: ???]

[상세: 마녀 디아나가 남긴 진정한 혈육이자 유일한 자손. 불사의 계약을 통해 일생을 함께할 수호자를 간택하며, 현 수호자는 163417413번째 용사 박정용이다.]

‘그 잔챙이 하나 잡아서 3레벨 업이라니.’

난이도만 봐선 엘더리치의 발톱 때만도 못한데. 설백이 95레벨 정도에서 바로 106레벨이 되었다.

주는 경험치 양은 엘더리치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라는 소리다.

‘게다가 돈도 잘 벌린다.’

금화 1000냥이면 농담 안 하고 나와 설백, 마왕까지 세 명이 1년은 놀고먹을 수 있는 양이다.

그걸 벌써 11번째 끝낸 상태니 사실 이미 10년은 놀아도 될 돈이 수중에 있는 상태이고. 방금처럼 기여도 보상 받은 것까지 합치면 최소 15년은 먹고살 수 있다.

‘그래도 좀 작작 쳐나왔으면 좋겠다 제발….’

덕분에 방금 같은 잔챙이 마왕 상대하는 법은 벌써 익숙해지긴 했다만.

그래봐야 쪼렙존 여포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나는 아직 나보다 레벨이 높은 마왕은 만나본 적이 없다.

미네르바가 편의를 봐줘서 비슷한 레벨의 마왕한테만 붙여주는 건지. 언제나 나와 비슷한 수준의 마왕이 있는 곳으로 불려가곤 했으니까.

이걸 좋아해야 할지 싫어해야 할지 모르겠다.

“에효. 가던 길이나 가자 설백.”

“아, 네!”

복잡한 생각은 거기까지. 난 일행들을 채근해 곧장 그 자리를 떠났다.

이제 마르크트레스까지, 앞으로 한 나절도 채 남지 않았다. 빨리 이 지긋지긋한 국가를 좀 벗어나고 싶었다.

그렇게 우리는 폐허가 된 마을을 뒤로하고, 다음 마을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