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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417413번째 소울라이크 용사-52화 (28/280)

52화

“… 말도 안 돼.”

다르다.

차원이 다르다.

언데드들을 도살할 때 보여주던 그 호쾌한 진격과는 또 다른 면모였다.

그래. 생각해보면 내가 훔쳐온 암살 스킬들은, 변경백의 것을 마이너 카피해 온 것이다. 애초에 스피드 쪽으로도 승부가 될 리가 없긴 하지.

'하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모든 에테르를 집어삼켰다.

거기다 지금은 밤이다. 게다가 보름달이 뜬 밤.

성녀의 문장 때문에 평소의 두 배에 가깝게 능력치가 상승해 있을 텐데.

그런데도 이렇게까지 차이가 난단 말인가?

더 소름 돋는 건.

지금 변경백은 자기 주특기인 마법은 아예 봉인해놓고 싸우고 있다는 점이다.

“으아아아!”

나는 마지막으로 발악하듯이 변경백에게 달려들었다.

무기도 뭣도 없이 두 주먹 불끈쥐고 달려드는 내 모습이 추하게 느껴졌는지, 변경백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쯤하지. 정용 군.”

부우웅. 변경백의 종베기가 작렬했다.

땅을 가를 기세의 신속함이다. 나는 바닥을 굴러 간신히 그것을 피해냈고. 무릎을 꿇은 채 그의 측면에서 몸을 바짝 웅크렸다.

“내가 무릎을 꿇은 건….”

그리고 나는 스프링처럼 튕겨나가 변경백에게 쏘아져 나갔다.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퍼억! 나는 주먹을 뻗었다.

물론 파육음은 내 주먹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어느새 검을 역수로 쥔 변경백이, 손잡이 끝 폼멜로 내 복부를 후려친 것이다.

“어, 크욱…!”

털썩. 순간 숨이 막힌 나머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순간 싸늘한 살기를 느꼈다. 나는 즉시 지면을 박차고 거리를 벌렸다. 경계태세를 갖췄다.

“수련(睡蓮).”

등 뒤에서 스킬의 영창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재빨리 백스텝을 밟으며 거리를 벌리려 했지만. 이내 행동이 정지했다.

'미친…!'

변경백이 다섯 명이다.

잔상처럼 일그러진 다섯 명의 변경백이 다섯 방향에서 동시에 내 등을 노리고 검을 찔러 들어오고 있었다.

마이너 카피인 연화의 원조스킬. 수련이다.

“자네와는 좋은 전우가 될 수 있을 줄 알았네. 정용 공.”

안타까운 목소리가 다섯 변경백의 입에서 동시에 튀어나왔다. 사실상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는 모습이었다.

그럴 법도 하지. 나는 지금 무기를 잃어버린 상태고. 완전히 등 뒤를 내줬다. 게다가 저 잔상 중 진짜를 파악할 방법도 알지 못한다.

그야말로 체크메이트인 것이다.

‘…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그제야 회심의 미소를 흘렸다.

내 짙은 웃음을 목격한 변경백이 순간 의아한 기색을 띄웠지만. 이미 늦었다.

나는 목청을 높여 외쳤다.

“루시! 지금이야! 시체한테 붙어!!”

“알겠다!”

나는 지금까지 숨죽여 대기하고 있던 마왕을 불러들였고. 마왕은 작전에 따라 곧장 도도도 달려가 백작 부인 곁으로 향했다.

“이런…!”

변경백이 아찔한 표정을 지었다. 마왕의 존재를 완전히 잊었던 모양이다.

당연하다. 내가 최선을 다해, 필사적으로 마왕의 존재를 잊게 만들었으니까.

내가 미쳤다고 안 그래도 승산없는 변경백을 그렇게 도발했겠냐?

‘작전은 성공했다!’

변경백. 미안하지만 나는 애초에 당신에게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은 요만큼도 하지 않았어.

난 애초에 못 이기는 싸움은 하지 않는 주의라서 말이야.

나는 백작 부인의 시체에 다가간 루시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곧장 스킬을 영창했다.

“연화!!”

그러자 스슥, 일순간에 시야가 급변한다.

내 앞에는 마왕이 얼떨떨하게 서 있었고. 손에는 내가 오면서 쥐어줬던 단검이 들려 있었다.

마왕은 화들짝 놀라며 갑자기 나타난 나를 쳐다보더니, 얼떨떨하게 손을 내밀었다.

“자. 받아라.”

“그래. 잘 해줬어.”

나는 피식 웃으며 그녀의 손에 들린 단검을 받아들었다.

내가 검을 놓친 것도 전부 설계된 것이었다. 변경백이 가장 방심할 그 순간을 노리기 위해 일부러 검을 놓았지.

그러나 베슬을 부수려면 마력 공격이 필요하고. 내가 가진 마력기술은 세븐 소드 피어스 밖에 없다.

그리고 세븐 소드 피어스는 검이 있어야지만 발동되는 검기류 기술이다.

그걸 위해 마왕에게 단검을 쥐어준 것이다. 이 마지막 일격을 먹이기 위해.

“아… 으… 그아.”

나는 단검을 백작 부인에게 겨누었다. 백작 부인은 자신의 미래를 직감하기라도 한 것처럼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에 인상을 조금 찌푸렸다. 하지만 단검에 마력 충전하는 걸 멈추진 않았다.

“안 돼! 멈춰! 그만둬!”

변경백이 무서운 기세로 나를 향해 돌진한다.

미안하지만, 이미 마력은 모두 모였다. 나는 변경백에게 안타까운 시선을 한 번 던진 뒤. 단검을 망설임없이 백작 부인의 가슴에 꽂았다.

파각! 붉은 브로치가 관통되며 속절없이 부서져 나갔다.

“세븐 소드 피어스!!”

일곱 방향에서 날아온 마력의 칼날이 백작부인을 완전히 꿰뚫었다.

흔적도 없이 갈기갈기 갈라진 백작 부인의 시체로 푸른 스파크가 튀는가 싶더니.

파아아앙!

눈부신 붉은 빛이 그녀의 안에서 폭사되었다. 그 안에 숨어있던 새빨간 보석이 마력검에 꿰뚫린 채 파들파들 떨리고 있었다.

“이, 이럴 수가… 저건…!”

변경백이 보석을 눈에 담더니,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돌진을 멈췄다. 그리고 말을 더듬었다.

아마 마법사인 변경백이 나보다 잘 알 것이다. 백작 부인 안에서 등장한 저것이 어떤 것인지를.

― 이럴 수가… 나의 베슬이… 안 돼… 나의 군주… 검은 태양이시여…! 자비, 자비를 내게…! 크아아아악!!

동시에 엘더리치의 비명 소리가 알현실에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구질구질한 삼류 악당 같은 대사나 내뱉고 자빠졌다. 너는 그런 감성이니까 이렇게 일찍 생을 마감하는 거다.

나는 다시 한 번 단검에 마력을 실어 스킬을 영창했다.

“세븐 소드 피어스!!”

파파파팍! 다시금 보석에 새파란 마력검이 꽂혔다.

미친 듯이 진동하던 붉은 루비는 충격을 견디지 못했는지, 이내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눈이 멀 것만 같은 붉은 빛이 쏟아져 나왔다. 온 알현실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크윽!”

변경백도 나도 마왕도 눈을 감고 그 섬광이 끝나길 기다렸다.

― 끼야아아악!

― 그아아아악!

― 게악! 갸아아악!

기나긴 섬광 속에 언데드들의 비명소리가 끊임없이 울린다.

알현실에서도, 멀리 지하에서도. 그리고 성 밖 어딘가에서도 한파에 섞여 비명이 들려오는 듯했다.

그러는 와중에 내 귓가에는 한없이 이질적인 팡파레 소리도 연신 섞여 들려왔다.

[레벨 업!]

[레벨 업!]

[레벨 업!]

….

그리고 일순간에 섬광이 잦아들었다.

비명도 멎었다. 나와 마왕은 천천히 눈을 떴다. 변경백은 한 템포 늦게 눈을 떴다. 그리고 주변에 펼쳐진 광경을 목격하고는, 눈을 부릅떴다.

“이건….”

주변의 모든 언데드들이 새하얀 잿가루가 되어 있었다.

언데드의 신음만 가득했던 알현실은 새하얀 잿가루로 뒤덮여 마치 눈이 소복이 쌓인 듯했다.

“주, 주인님! 방금 그건 뭐죠? 엄청난 소리가 났는데…!”

“정용님! 괜찮으세요?!”

덜컹! 때마침 알현실 문을 박차고 들어온 건 레이라와 설백이었다.

두 사람은 알현실의 풍경을 눈에 담고는 변경백과 마찬가지로 몸을 굳혔다. 얼떨떨한 얼굴의 레이라가 주저앉은 변경백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언데드들은? 이 잿가루들은 모두 뭐죠?”

“뭐긴. 엘더리치가 죽은 거지.”

멍하니 넋이 나간 변경백 대신 내가 대답해줬다.

레이라는 눈을 부릅뜨며 나를 쳐다봤다.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다.

그래 믿지 마라. 어차피 이제 믿기 싫어도 믿어야 될 테니까.

“아이고 아이고. 나 죽겠다….”

때마침 에테르의 효과가 몸에서 사라져 갔다. 순식간에 탈력감이 찾아온 나는, 끈 떨어진 인형처럼 주저앉았다.

마왕이 그런 내 옆으로 쫄래쫄래 다가왔다.

“이번엔 배신 안 했느니라. 혁혁한 공을 봐서 전의 과오는 없던 일로 하자꾸나.”

“그래그래. 잘했다. 장해.”

“음후훗!”

어차피 이번 생의 내가 당한 것도 아니고. 애초에 기억도 안 나고 뭐.

용서해주기로 하자. 이번 작전에 마왕의 공이 컸던 것도 사실이니까.

허탈하게 웃으며 대꾸하던 나는 어느 순간 풀썩. 고꾸라졌다.

“… 얼씨구.”

나는 당연히 일어나려 했다.

그러나 틀렸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눈꺼풀을 들고 싶은데, 이것도 틀렸다. 사지가 꿈쩍도 않는다.

눈이… 점점 감긴다.

“정용 공! 정신차려 보게. 정용 공!”

“꺄악! 정용님! 왜 이러세요… 기룡! 어서 정용님을…!”

“이런… 탈진이 심해요. 주인님. 어서 회복마법을….”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점점 멀어진다. 몸이 붕 뜨는 느낌이다.

나 진짜 왜 이러냐. 설마 여기서 죽냐?

아 제발. 어떻게 죽인 엘더리치인데. 설마 그 똥고생을 다시하라고?

“아 제발… X까는… 소리… 하지….”

중얼거리던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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