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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417413번째 소울라이크 용사-41화 (17/280)

41화 하지만 어림도 없지

우우웅. 우웅.

특유의 공명음을 발하며 시커먼 기운을 흩뿌리는 마왕의 알. 그것을 눈에 담자 엘더리치의 안광이 흉흉하게 요동쳤다.

―… 이 기운… 이 느낌은…!

“알겠냐? 너희 사장님이시다.”

―오오… 우리의 군주. 지고로 존엄한 존재! 불사의 마왕이시여!!

엘더리치는 눈물이라도 쏟을 듯한 어조로 고개를 조아렸다.

다른 리치들도 처음엔 얼타나 싶더니 하나같이 머리를 조아렸다. 사회생활 잘하네. 나보다 낫군.

나는 신파극으로 급발진하는 리치들에게 차갑게 조소하며 말했다.

“들어라. 난 네놈들이 경외해 마지않는 불사의 마왕님을 수호하는 사람이다. 너희 사장님이랑 나는 계약으로 묶여 있어. 뭐하면 확인해 보든가.”

그 말에 고개를 치켜든 엘더리치가 나를 위아래로 스윽 훑었다.

솔직히 섬짓한 안광이 닿을 때마다 몸을 움찔거렸지만. 최대한 내색하지 않았다.

―호오… 놀랍게도 사실이로군. 천계의 끄나풀인 네놈에게서 존엄한 분의 냄새가 짙게 난다.

“그래. 그러니 너는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할 의무가 있어.”

―…….

“말해. 네 라이프포스 베슬은 어디 있지?”

드디어 승부수를 던졌다.

나는 눈에 힘을 주고 놈을 마주봤다.

이 습격 계획?

그래.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구라였다.

도망칠 생각? 애초에 없다. 이번 생의 내 목표는 애초에 엘더리치 살해도 아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이번 실험이 실패하든 성공하든, 나는 죽는다.’

그래서 일부러 아침 7시를 노려서 습격한 것이다.

‘단 하나. 네게서 이 답만 얻으면, 이번 생의 내가 할 일은 끝이야!’

나는 주머니에 넣어둔 펜과 종이의 감촉을 상기하며 긴장된 얼굴로 엘더리치를 쳐다봤다.

―…… 흐음…….

엘더리치는 한참을 침묵했다.

그러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 얼굴은 화색이 되었고.

―… 그렇군. 그런 식으로 나를 우롱하려 드는 것인가. 당돌한 살덩이로고.

엘더리치의 말이 끝나자 곧장 흙빛이 되었다.

피피피핑! 어떤 전조도 없이 엘더리치에게서 칠흑의 광선이 쏟아졌다.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비틀었다.

몇 발은 피했고, 몇 발은 옆구리와 허벅지를 관통했다.

“크아아아악!”

―가여운지고. 나는 존엄한 군주의 명이 아니면 그 누구의 명도 듣지 아니한다. 하물며 나의 약점을 캐내려는 수작이라니… 네놈의 속이 훤히 보이는구나 살덩이여.

“끄으으… 이런 제길!”

―그분의 은총을 입었다 하여 호가호위할 생각이었다면… 얕은 발상이었느니라.

엘더리치는 비명을 질러대는 내 앞에서 조롱하듯이 그렇게 말했다.

나는 이를 악물고 에테르를 집어 삼켰다. 새파란 빛이 뿜어져 나오며 몸의 상처들이 아물어갔다.

잠시 기다리니 다리가 다시 움직인다. 나는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다.

….

…….

…… 망할.

결과가 나왔다.

실험은 실패군. 놈은 내 말을 듣지 않는다.

“하.”

나는 이를 악물었다. 동시에 헛웃음을 흘렸다. 이젠 명백하게 내게 남은 선택지는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다.

죽음. 쫄딱 망한 이번 연극을 폐막할 시간이다.

나는 도전적인 시선으로 엘더리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야 해골.”

―무엇인가. 당돌한 살덩이.

“그러면. 마왕이 직접 너한테 물어보면, 알려줄 거냐? 네 베슬이 어디있는지?”

내 물음에 해골은 의문스럽다는 듯 연신 안광을 번쩍거렸다. 아마 내 질문의 의도가 파악되지 않기 때문이리라.

놈은 내게 한 걸음씩 다가오며 말했다.

―나는 그분 아래에서만 존재를 느끼고, 그분을 위해서 태어난 피조물. 그분이 나의 생명을 거둔다 이르시면, 나는 기꺼이 내 생의 정수가 담긴 보주를 바칠 것이다.

그렇다네.

마왕님 부화시켜서 직접 데려오면 불어주겠다 이거냐.

“오케이. 접수했다.”

나는 히죽 웃은 뒤 베스타크를 고쳐쥐었다.

그 서늘한 칼날을 한 번 보고 침을 꿀꺽 삼켰다.

“나중에 딴 말하면 뒤진다.”

데려와 주지.

이 진상손님 같은 새끼. 사장 불러와주길 바라나 본데, 정 바란다면 데려와줄게.

그 때도 이렇게 날 홀대할 수 있나 보자.

“모가지 빡빡 씻고 기다려라. 불사의 마왕님 끌고 올라니까.”

내 말에 그는 가소롭다는 듯이 낮은 웃음을 흘렸다. 처음으로 내 앞에서 보여주는 웃음이었다.

―크흐흐.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살덩이여.

“뭐 인마?”

―이제부터 그분의 옥체는 내 친히 보좌할 것이다. 영광스런 부활을 내 눈으로 직접 목도할 것이다. 네놈은… 더 이상 필요 없다.

“허어. 그러슈?”

―그동안의 노고는 치하해주마. 당돌한 살덩이여.

엘더리치는 말을 마침과 동시에 주변의 다른 리치들에게 눈짓했다.

그리고 천천히 내 앞에 놓인 알을 향해 다가왔다.

우우웅.

공명음이 들린다. 직후 누더기 시체 거인이 일제히 내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또한 리치들의 손아귀에서 데스비숍들이 사용하던 칠흑의 구체가 시커멓게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오오오….

―엘… 디아블로….

끝이군. 나는 체념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수확이 없지는 않았다.'

나는 마지막으로 주머니를 뒤져 펜과 종이를 꺼냈다.

거기에 글자를 하나씩, 또박또박 새겨넣고 망자의 함에 넣었다.

내 행색을 가만히 쳐다보던 엘더리치가 문득 물었다.

―왜 웃고 있나. 죽음 앞에서 실성했는가?

이런. 나도 모르게 실실 쪼갰나 보다.

나는 황급히 표정관리를 하고 검을 들어올렸다.

‘이런 자살법은… 지구에서 내가 제일 극혐하는 방식이었는데.’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나는 힘껏 베스타크를 내 목으로 밀어 넣었다.

―… 뭣이?

순간적으로 세상이 느리게 흘러가는 듯했다.

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엘더리치의 안광이 유난히 폭사되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또 보자. 띠꺼운 해골바가지 새꺄.”

부탁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다음 생의 나, 부디 네 대에서 끝낼 수 있기를.

푸직.

그런 소리를 끝으로 순식간에 암전되었다.

* * *

[불사의 회귀점이 갱신되었다.]

[일시 - 미텔란트 왕국력/547년, 12월 21일, 아침 7시]

[장소 - 할센베르크 영지 북쪽 변경, 눈의 평원]

[알림 - 불사의 마왕이 부화에 임박했다.]

[알림 - 불사의 마왕이 완전히 부활할 때까지 12시간에 한 번씩 회귀점이 갱신된다.]

시간이 되었다. 나는 곧장 마지막 준비를 시작했다.

“웬만하면 이걸 볼 일이 없길 바라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배낭을 뒤져 망자의 함을 꺼냈다. 그리고 눈을 크게 떴다.

[아이템 정보]

[명칭: 망자의 함]

[알림: 아이템 갱신 - 전생에서 망자의 함 저장 아이템이 갱신되었다.]

“…… 얼씨구.”

한참을 멍하니 있던 나는 불길한 빛을 뿜는 망자의 함을 열어봤다.

거기엔 내가 방금 넣으려 했던 쪽지가 이미 들어있었고. 그 위로 휘갈긴 또 다른 쪽지가 들어있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두 쪽지를 펼쳤다. 거기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하지 마라. 묻지 말고 그냥 하지 마. 씨알도 안 먹힌다.

그것은 내가 방금 넣으려 했던 쪽지였다.

혹시나 이번 실험이 실패해서 죽고 나면, 다음 생의 내가 무의미한 도전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넣은 것이었다.

―알. 절. 대. 부. 화. 시. 켜.

그리고 다음 것은, 아마도 실패한 내가 최후의 순간에 남긴 유언.

알을 부화시키라고.

그것도 절대로 부화시키라고.

한 글자씩 또박또박 띄어서 써놨다.

“저… 정용님?”

“이보게, 정용 공.”

내가 멍하니 있자 다른 이들이 나를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며 불렀다. 나는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리고 그들을 쳐다봤다.

세 사람은 만전태세의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지시만 내려주게. 언제라도 움직일 준비가 되어 있네!”

변경백이 믿음직하게 웃으며 그렇게 말한다.

나는 한참을 생각하가다,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러면.”

세 사람은 긴장 어린 얼굴로 내 입을 주시했고. 나는 박수를 치며 말했다.

“집 가서 발 닦고 한숨 때리죠.”

세 사람은 동시에 입을 쩍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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