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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417413번째 소울라이크 용사-40화 (16/280)

40화 본인 방금 막트하는 상상함

“데스비숍이군! 곤란하게 됐어!”

변경백이 낭패감 어린 얼굴로 씨근거렸다.

물론 나는 놈들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다. 불필요한 확인작업을 하는 대신, 나는 상황의 타개책을 강구하기로 했다.

‘침착하자. 지금부터가 진짜다!!’

우리 앞을 가로막은 데스비숍은 총 다섯. 전생과 똑같은 숫자다.

데스비숍들은 지팡이를 들어올렸다. 전생에서 들었던 주문을 그대로 읊기 시작한다.

스스슥. 지팡이 앞으로 시커먼 무언가가 꿀렁거리며 모여들기 시작했다.

―엘… 디아… 블로….

놈들이 일제히 주문을 영창하자 시커먼 기운이 우릴 향해 쏜살같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다섯 방향에서 날아온 시커먼 구체가 나를 압박한다.

나는 회심의 미소와 함께 재빨리 몸을 날렸다.

“두 번은 안 당해!”

꾸드드득! 시커먼 구체들이 주변을 살라먹으며 뒤틀린 소음을 냈다.

다행히 전에 당했던 기억이 워낙 강렬해서 피해낼 수 있었지만. 아무 전조도 없이 무엇이든 초토화시키는 검은 구체는 다시 봐도 섬뜩했다.

―엘… 디아… 블로….

하지만 데스비숍들의 영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는 혀를 차고 곧장 회피할 준비를 했지만, 이미 놈들의 시커먼 탄환은 내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전생의 기억이 오버랩된다. 순간 몸이 굳어버렸다.

죽는다.

제길, 또 이 상황이냐?

여기서 죽으면 잔류사념 회수도 못 하는데!

“해주(解呪: dispell)!”

내가 눈을 질끈 감은 것과, 전방으로 반투명한 막이 생성되어 탄환을 막은 것은 거의 동시였다.

피피핑! 귀를 찌르는 고음을 내며 탄환들이 거짓말처럼 허공에서 허물어졌다. 나는 퍼뜩 눈을 돌렸다.

거기엔 지팡이를 내쪽으로 향한 채 영창을 하고 있는 변경백이 있었다.

‘… 또, 똑같아?’

나는 문득 기시감을 느꼈다. 동시에 속이 메스꺼워졌다.

왜.

분명히 전번 도전보다 훨씬 발전했는데. 어째서 이 익숙한 상황이 반복되는 것인가.

가슴이 두방망이질치며 불안이 스멀스멀 기어올라가던 그 때.

“헤이스트! 스카이트 블레스!”

파아아앙! 내 몸에서 푸른빛이 연신 터지더니 몸놀림이 놀라울 정도로 가벼워졌다.

나는 얼떨떨하게 내 몸을 둘러봤고, 변경백은 지팡이 끝을 데스비숍들에게 돌리며 외쳤다.

“민첩성을 폭발시켰네! 가게! 이놈들을 처리하고 뒤따라가겠네!”

그는 내 대답은 듣지도 않은 채 데스비숍들에게 달려들었다.

투두두두! 그의 스태프 끝에서 무수한 광탄이 쏟아져 데스비숍들을 교란한다.

그 사이 대검으로 바꿔든 변경백이 가장 전방에 있던 한 놈의 가슴에 검을 힘껏 찔러넣었다.

“헌드레드 소드 피어스!”

백 개의 검날이 허공에 분산되어 일제히 쏟아진다.

데스비숍들은 일제히 시커먼 방어막을 둘러 그것을 막아내려 했으나. 끝내 마지막 몇 개를 버텨내지 못했다.

파파팍! 마력 검이 꽂히며 데스비숍들이 주춤거린다.

―그… 아아아.

변경백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곧장 한 놈의 앞으로 쏜살같이 달려가 검을 힘껏 내리쳤다.

콰아앙! 검은 데스비숍을 둘로 가르고 땅을 내리쳤다. 지축이 여기까지 울려왔다.

‘… 아니야. 확실히 다르다.’

나는 변경백의 호쾌한 움직임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같긴 뭐가 같아. 전과 달리 변경백은 지금도 펄펄 날고 있다.

저건 죽음을 각오한 마지막 육탄돌격이 아니다.

정말 저 많은 데스비숍을 처치하고 날 따라올 자신이 있는 거다!

레이라의 시선끌기. 그리고 설백의 보조로 내가 변경백의 발목을 덜 잡게 된 게 확실히 효과를 보고 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그렇다고 믿어야 해!’

나는 이를 악물며 결심했고. 그 사이 변경백은 또 다른 데스비숍의 골통을 박살냈다.

그는 한 놈을 처리하기 무섭게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필사적으로 외쳤다.

“어서! 황금 같은 시간을 낭비하지 말게!”

“어, 아, 알겠습니다!”

나는 그제야 퍼뜩 고개를 끄덕이곤 완전히 내게서 시선이 멀어진 데스비숍들 사이를 지나쳐 갔다.

변경백의 강력한 마법으로 강화된 내 속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언데드들이 공격하려다 내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모두 허탕을 칠 정도였다.

―그… 우. 살덩이… 숨쉬는… 살덩이.

하지만 그런 나라도 유령 기사들의 검격까지는 무시할 수 없었다.

수십은 돼 보이는 유령기사가 전방에 포진해 있었다. 그들이 사방을 둘러싸고 나를 조여들어오며 검격을 흩뿌렸다.

“어딜!”

처음에는 종횡무진 이동하여 검격을 피해냈지만, 한계가 있었다, 그들은 지능적으로 나를 몰아넣으며 점점 포위망을 좁혀들었다.

“치잇!”

결국 나는 검을 역수로 쥐었다.

그리고 진영의 중앙으로 향하는 가장 최단 루트를 탐색했다.

'저기다.'

순간 머리맡이 번득였다. 활로가 보였다.

마력이 후달리는 나로서는 웬만하면 마력을 온존하고 싶었는데, 이러면 어쩔 수 없지!

‘연화!’

나는 곧장 유령기사 한 놈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스킬을 발동시켰다.

스슷, 하고 몸이 딸려나가는 느낌과 동시에 풍경이 급변한다. 나는 그 느낌을 채 느낄 새도 없이 역수로 쥐었던 검을 그대로 바닥에 꽂았다.

“지뢰진!”

쿠구구구!

지축이 사정없이 요동쳤다. 주변에 있던 무수한 유령기사들은 일제히 비틀거렸다.

나는 그 틈을 타 놈들 사이로 요리조리 빠져나갔다. 잠입 스킬을 사용했기에 놈들은 좀처럼 나를 쫓지 못했다.

이것이 내가 숨겨왔던 비장의 스킬 콤보.

이름하여 은신 빤스런 콤보다.

―놓치지… 않는다….

―쫓아라… 그분에게… 가려 한다….

유령기사들이 투구 속 흉광을 번들거리며 나를 뒤쫓기 시작했다. 그 뒤로 수많은 언데드들이 따라붙고 있었다. 그 수는 백을 족히 넘기고 있었다.

완전히 몰이사냥 하는 어그로꾼 꼴이군. 심각한 와중에도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주인님을… 지켜라….

―나의 권속들이여… 일어나라….

그리고 나는 드디어 미친 듯이 질주하던 발놀림을 멈췄다.

“이놈들은….”

내 앞에는 시커먼 로브를 뒤집어 쓴 해골들이 주르륵 서있었다.

확인은 안 해봤지만, 나는 반쯤 확신한 채 검을 고쳐쥐었다.

아마 이놈들이 바로 리치일 것이다.

―숨쉬는… 살덩이를… 죽여라….

리치들은 여기까지 침입해온 내 존재를 용납할 수 없는 듯했다.

곧장 스태프를 휘두르더니 땅가죽을 뚫고 덩치가 산만한 언데드들이 쏟아져 나왔다. 몸을 여기저기 기워 붙인 흔적이 섬뜩했다.

―…….

그리고 나란히 선 리치들의 중앙. 나는 시선을 흩뿌리다 눈을 부릅떴다.

다른 해골보다 유난히 덩치가 크고 꺼림칙한 기운을 흩뿌리는 놈이 하나 있다.

‘… 저 놈이다.’

해골 속의 안광도 유난히 붉게 빛났고, 스태프를 장식한 해골도 수정으로 만들었는지 하얗게 번들거렸다.

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리고, 방광에 힘 풀리는 본능적인 공포가 일었다.

나는 곧장 미미르의 눈을 발동시켰다.

[몬스터 정보]

[명칭: 엘더리치(elder lich)]

[체력: ??? 마력: 3085/3085]

[힘: 3 민첩: 22 지능: 335]

[상세: 언데드의 수장인 리치 중에서도 독보적인 마력을 지닌 리치. 오랜 기간을 살아 현자 이상의 지식과 지혜를 보유했다.]

역시. 딱 봐도 최종보스 같더라니, 최종보스 맞았다.

나는 다른 놈들도 하나씩 확인해봤다. 모든 리치들이 스탯을 확인할 순 있었으나 체력 스탯만은 식별되지 않았다.

아마 변경백이 말했던 라이프포스 베슬을 부숴야만 죽일 수 있으니 정확한 체력치가 파악되지 않는 것이리라.

‘쉽게 생각해라 박정용. 저건 기믹 보스야.’

기믹 보스(gimmick boss).

게임에서 통상적인 공격이 잘 통하지 않고, 특정한 방법을 취해야만 쉽게 공략할 수 있는 보스들을 말한다.

이런 보스들은 정공법으로 격파하려면 굉장히 난해하다는 것이 특징이지만.

또한 그렇기 때문에 기믹만 파악하면 난이도가 급감한다는 특징도 있다.

쉽게 쉽게 생각하자.

라이프포스 베슬이라는 약점만 알아내서 파괴하면 쉽게 죽일 수 있는, 그냥 기믹 보스일 뿐이다.

나는 끊임없이 자기암시를 걸어 공포를 이겨내려 했다.

내가 새삼 긴장을 차곡차곡 채워넣고 있는데, 별안간 엘더리치가 안광을 번득이더니 천천히 해골을 달그락거렸다.

―… 숨쉬는 살덩이, 네놈은 대체 정체가 무엇인가.

나는 우선 놀랐다.

언데드 특유의 나무 긁는 소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제법 깔끔하고 뭉개지지도 않는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과연 썩어도 준치라고, 꼴에 현자 리치라서 다른 놈들처럼 말을 더듬지는 않는 건가.

모처럼 저쪽에서 대화를 걸어주니, 싸울 생각이 없는 나로서는 땡큐였다. 나는 위태롭게 웃으며 그 말에 대꾸했다.

“나? 너 죽이러 불려온 용역 깡패다 새꺄.”

―제2계의 끄나풀인가… 아니. 그것뿐만이 아니군. 숨쉬는 살덩이. 네놈에게서 나는 냄새는 우리와 비슷하다.

“…….”

―굉장히 익숙한… 그리고 경외로운… 또한, 그리운 기운이로다. 숨쉬는 살덩이. 네놈은 대체 무얼 숨기고 있나.

놀랍군.

놈은 나의 정체에 대해 거의 파악하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가진 물건의 정체를 파악하고 있다고 해야 하나.

과연 일찌감치 알아채고 반격을 안 할만도 하다.

‘그렇다면 얘기는 더 편하지.’

나는 히죽 웃으며 배낭에 넣어뒀던 문제의 알을 꺼냈다.

이제 커지다 못해 내 몸통만한 크기를 자랑하는 알이 그곳에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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