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순간 눈앞이 아찔해졌다.
나는 허겁지겁 방향을 틀어 변경백에게 달려갔다.
“아니! 괘, 괜찮으십니까?”
“나, 나는 괜찮네. 잠시 현기증이… 쿨럭!”
변경백이 손사래를 치다가 격한 기침을 토해냈다.
후두둑. 피가 쏟아진다. 기침이 공기 반 핏줄기 반이었다. 그 순간 직감했다.
‘…… 실패군.’
끝났다. 이건 더 이상 싸울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이고 있었던 것이다.
“… 아… 그…!”
괜찮냐고 물어보지도 못했다.
변경백은 분명히 괜찮다고 할 것이다. 자기 몸이 박살나든 둘로 쪼개지든, 작전을 속행하자고 하겠지. 그런 남자니까.
결국 나는 주먹을 틀어쥐고, 무력감에 입술을 깨물었다.
“… 죄송합니다. 제가 무능해서….”
변경백은 뭔 말을 하냐는 듯이 쳐다본다. 웃으려고 한 듯했지만, 이내 그 얼굴도 고통으로 찌그러졌다.
‘이 X발. 이런 개같은 경우가…!’
착각을 해도 정도껏이고. 김칫국을 빨아도 유분수지.
내가 변경백의 보조를 맞추고 있다? 개지랄. 그가 여기까지 나를 보호하며 멱살 잡고 끌고 온 것뿐이다.
‘나는 유모차 타고 둥가둥가 이끌려왔을 뿐이잖아!!’
그에게 너무 많은 것을 의지하고 있었다.
그것 때문에, 변경백의 체력이 이렇게 일찍 동나버렸다.
그것을 깨달았고. 깨달았을 땐 이미 늦은 상태였다.
어쩐지 상식이 파괴될 정도의 강력함이더라니. 그런 기술이 대가가 없을 리가 없지. 내가 어리석었다.
나는 곧장 변경백을 부축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돌아가죠! 지금이라면 아직 살아 돌아갈 수도…!”
“…… 아니.”
변경백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검을 고쳐쥐려 했다.
칼 끝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다. 허세도 정도껏 부려야지. 나는 희망을 갖자고, 괜한 고집 부리지 말고 도망치자고 말하려고 했다.
―숨쉬는… 살덩이들… 이곳까지… 찾아오다니….
시커먼 주교 복장에 해골 스태프를 든 좀비들이, 변경백의 시선 끝에서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데스비숍이군… 곤란하게 됐어….”
변경백이 낭패감 어린 얼굴로 씨근거렸다.
데스비숍? 그러고 보니 변경백이 전에 한 번 말해줬던 기억이 난다.
나는 놈들을 황급히 살폈다. 인상착의와 비슷하다. 나는 곧장 미미르의 눈을 발동시켜 놈들의 상태창을 훑었다.
[몬스터 정보]
[명칭: 데스비숍]
[체력: 237/237 마력: 1379/1379]
[힘: 8 민첩: 14 지능: 213]
[상세: 고대 신성국 슈엘츠의 타락한 주교들을 부활시킨 저주받은 사도. 흑마법 중에서도 강력한 공격마법과 저주를 자유자재로 사용한다.]
‘마법사인가!’
생긴 것부터 마법사라고 광고하긴 했다만.
어쨌든 변경백 말마따나 성가신 상황인 건 확실했다. 우리 앞을 가로막은 데스비숍은 총 다섯. 스테이터스만 봐선 지금의 나는 한 마리도 버거운 상대다.
데스비숍들은 지팡이를 들어올리며 생전 처음 들어보는 말을 웅얼거리고 있었다. 지팡이 앞으로 시커먼 무언가가 꿀렁거리며 모여들기 시작했다.
―엘… 디아… 블로….
놈들이 일제히 주문을 영창하자 시커먼 기운이 우릴 향해 쏜살같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다섯 방향에서 날아온 시커먼 구체의 압박에 나는 재빨리 몸을 날렸다.
파스스스! 옆구리의 옷깃이 조금 닿았다 싶었는데, 그 검은 구체는 탐욕스럽게 내 옷을 빨아들이나 싶더니 살갗까지 조금 갉아먹었다.
“크으으!”
나는 생살이 뜯기는 고통에 신음을 흘렸다.
옆구리를 쳐다보자 놀라울 정도로 예리하게 절단된 옆구리에서 피가 쏟아지고 있었다. 마치 그 부분만 정확하게 절단기로 도려낸 듯했다.
나는 곧장 에테르를 들이켰다. 청량감과 함께 아픔이 가시고 상처가 빠르게 아물었다.
―엘… 디아… 블로….
하지만 데스비숍들의 영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는 혀를 차고 곧장 회피할 준비를 했지만, 이미 놈들의 시커먼 탄환은 내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죽는다.
제길, 이렇게 허무하게?
아직 최종보스는 만나보지도 못했는데!
“해주(解呪: dispell)!”
내가 눈을 질끈 감은 것과, 전방으로 반투명한 막이 생성되어 탄환을 막은 것은 거의 동시였다.
피피핑! 귀를 찌르는 고음을 내며 탄환들이 거짓말처럼 허공에서 허물어졌다. 나는 퍼뜩 눈을 돌렸다.
“크허억!”
거기엔 검을 지팡이 삼아 간신히 서 있는 변경백이 있었다.
“… 변경… 백.”
본능적으로 알았다. 눈앞의 투명한 막은 변경백이 만들어낸 것이며. 그가 지금 마지막 불꽃을 쥐어짜고 있다는 것을.
나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변경백님! 저, 저는 괜찮습니다! 진짜 괜찮으니까 방어막 풀고 도망가십쇼! 어서요!!”
“…….”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내게로 천천히 다가오더니. 턱, 무언가 내게 건넸다.
나는 얼떨떨하게 받은 물건을 쳐다봤다.
“이건….”
“언젠가 말해준 적이 있었지. 그게 바로 룬일세.”
“룬? 이게요?”
변경백이 내게 건넨 것은 알 수 없는 글자가 새겨진 작은 돌멩이였다.
오색으로 빛나는 그것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자니. 변경백이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한다.
그의 입을 타고 흐르는 핏줄기가 유난히 선명하다.
“공간을 다루는 마법은 극소수만이 다룰 수 있는 비전일세. 나 역시 흉내만 낼 수 있을 뿐이지. 사실은… 그건 최후의 최후가 닥쳤을 때 내가 쓰려고 한 물건이었네.”
“아니, 아까부터 무슨… 그보다 얼른 도망을…!”
“그건 텔레포트 마법이 저장된 룬일세.”
“!!”
“두 레이디를 할센베르크에서 피난시켜 주게. 부탁하네 정용 공.”
변경백은 더 이상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내 손 위에 올라와있는 룬을 한 번 만지작거리더니.
망설임없이 등을 돌려 데스비숍들을 마주봤다.
“… 윽!”
파아아앙!
순간 룬이 눈부신 빛을 내뿜었고, 익숙한 현기증이 찾아왔다. 시험의 장막에서 게이트를 탔을 때와 똑같은 감각.
‘순간이동… 텔레포트!!’
눈앞이 이지러지며 내 몸이 마법진에 삼켜진 것과, 변경백이 데스비숍들을 향해 달려간 것은 거의 동시였다.
“미안해하지 말게. 덕분에 한 때나마 할센베르크의 미래를 꿈꿨으니.”
시야에서 사라지는 변경백의 한 마디가 귓가에서 맴돌았다.
정신이 아득해졌고. 변경백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