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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417413번째 소울라이크 용사-35화 (11/280)

35화 1트 (first try)

“당신 정신 나갔나요?”

내가 계획을 말하기 무섭게 레이라는 차가운 목소리로 일축해 버렸다.

말 한 번 빡세게 하는군. 네 주인님인 변경백도 “실현은 어려우나, 가능성은 있을지 모르겠군.”이라고 순화해서 말해줬는데 말이야.

내가 뭐가 문제냐는 듯이 빤히 쳐다보자, 레이라는 기가 막히는지 콧방귀를 뀌며 몰아붙였다.

“쉽게 말해서. 제가 언데드 군단을 뚫고 나갈 활로를 뚫고. 주인님과 당신이 엘더리치에게 도달한 뒤. 당신은 그 ‘특별한 힘’을 사용해서 엘더리치의 라이프포스 베슬 위치를 알아내겠다는 말인가요?”

“요약 잘하네. 맞아. 바로 그거야. 어때?”

“미친 소리.”

레이라는 진심으로 기가 찬다는 양 대차게 조소했다.

그녀는 손가락 세 개를 펴 들더니 내 앞으로 들이밀었다.

“첫째. 일단 저는 언데드 군단을 꿰뚫을 활로를 만들만한 힘이 없어요.”

“괜찮아. 활로는 변경백님이 알아서 뚫을 거야. 넌 너무 변경백님에게 시선이 몰리지 않게 분산만 시켜주면 돼.”

이 부분에 대해서는 레이라도 할 말이 없는 듯했다.

아마 주인의 힘을 잘 알고 있으니 그런 거겠지. 그녀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고 다음으로 넘어갔다.

“둘째. 당신에게 있다는 그 ‘특별한 힘’을 믿을 수가 없어요.”

“그건 나도 설명 못해. 믿고 싶으면 믿고, 말고 싶으면 말아.”

“… 후우.”

내가 너무 당당하게 나오니 할 말이 없는 듯했다.

당연하지. 나는 오히려 턱을 치켜들며 그녀에게 말했다.

“애초에 이 작전에 너희들의 리스크는 없어. 변경백님 본인이 그랬다고. 엘더리치를 죽이진 못하지만 진영의 중앙까지 진입했다가 나오는 것 정도는 된다고.”

정확히는 ‘진입해도 엘더리치를 죽이는 건 불가능하고 리치를 몇 마리 처리할 수 있다’라고 말했지만. 그게 그거지.

내가 당당하게 말하자 레이라는 마지막 남은 손가락으로 나를 척, 가리켰다.

“네. 세 번째는 바로 그거예요.”

“뭐가?”

“당신 혼자 리스크를 너무 짊어져요. 그게 수상해요.”

그 말에 나는 눈썹을 퍼뜩 치켜세웠다.

양보해줘도 지랄이네 이제. 나는 조금 언성을 높였다.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누구 좋으라고?”

“모르죠. 하지만 당신이 말한 그 ‘특별한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몰라도. 제가 보기에 이 계획이 실패하면 당신은 반드시 죽어요. 도망칠 구석이 어디에도 없으니까.”

“애초에 죽을 각오로 안 하면 못할 일이니까 그렇지.”

“… 그거야 그렇지만… 나는 세상에 공짜 호의만큼 위험한 게 없다는 걸 잘 알거든요.”

레이라는 대놓고 추궁의 눈초리를 뿌렸다.

뭐, 의심쩍은 부분이 많은 계획이니 의심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수롭잖게 대꾸했다.

“왜 공짜야. 그 대가로 난 변경백님을 샀다니까.”

“아까도 궁금했는데. 그게 대체 무슨 소리죠?”

“말 그대로 내가 요한 폰 할센베르크 변경백의 목숨을 샀다고. 이 계획이 성공해서 엘더리치 목을 따면. 나중에 내가 필요할 때 불러서 부려 먹을 생각이야. 개쩔지?”

“…….”

레이라는 황당하다는 듯이 입을 벌리고 나를 쳐다봤다. 그래 백날 봐라. 그런다고 내 얼굴이 뚫리나.

그녀는 한참 동안 엄지를 깨물고 생각에 잠겨 있다가, 결국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 아무리 생각해도 말도 안 돼요. 거절하겠습니다.”

“아니, 야! 너희 주인님은 이미 한다고 했다니까? 근데 네가 안 한다고?”

“망상도 그 정도면 병이에요. 나중에 진찰이나 받아보세요.”

“야. 그러지 말고 좀. 응?”

나는 그렇게 레이라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짜악. 그녀는 코웃음치며 그 손을 힘껏 쳐버렸다.

“주인님은 오늘 밤 제가 설득시킬 거예요. 잠꼬대는 제발 자면서 해주시길.”

그리고 주방을 나가 성큼성큼 변경백이 있는 알현실로 향했다.

“… 새끼 츤츤대긴.”

어쩔 수 없군. 배우는 다 모이지 않았지만, 이대로 진행하는 수밖에 없다.

이제 해피엔딩 나올 때까지 반복될, 궁상맞은 연극의 막을 올려보자.

* * *

이른 아침.

눈과 얼음의 평원과, 그 구석에 솟은 언덕 위.

아래로는 언데드 군단이 우글거리는 모습이 한 눈에 보인다.

나는 증오가 덕지덕지 들러붙은 눈으로 언데드들을 바라보던 변경백에게 말했다.

“에… 그럼 작전을 다시 한 번 설명하겠습니다. 대충은 알고 계시죠?”

“물론이네.”

“좋습니다.”

나와 변경백은 둘이서 습격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당장 설백은 몸이 아직 완치가 안 된 상태고. 레이라는 내 제안을 거절했다.

결국 나와 함께 이 작전을 수행해줄 전사는 변경백 밖에는 없었다.

‘… 사실 변경백 한 명으로는 조금 불안하긴 하지만….’

그래도 가장 든든한 국밥맨(?)을 영입한 게 어디냐. 레이라가 변경백마저 못 나오게 설득한다 그러더니, 그나마 그게 실패해서 다행이었다.

한숨을 쉰 나는 우선은 변경백을 보며 말했다.

“변경백님은 무조건 앞장서서 길을 뚫는 것만 신경써 주십쇼. 길을 뚫어서 엘더리치가 있는 곳까지 도달한 다음엔, 왔던 길 그대로 돌아가서 도망가세요. 저는 신경쓰지 않아도 됩니다.”

“… 정용 공. 역시 그럴 수는 없네. 나도 자네와 함께 끝까지….”

변경백은 주저하는 기색으로 말을 꺼냈다.

나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선수를 쳐서 끊어 버렸다.

“변경백님은 행여 작전이 실패했을 때를 대비하셔야죠. 변경백님이 전사해 버리면 할센베르크도 끝장이라면서요.”

“하지만 정용 공. 나는 마법사 이전에 무관이고, 군인일세. 우리 미텔란트의 군인은 정의를 위해 싸우고, 불의를 보면 도망치지 않으며….”

그 후로도 ‘미텔란트 참군인의 복무신조’ 뭐 어쩌구를 장장 10분 동안 들어야 했다.

나는 결국 참다못해 ‘성에 남은 두 레이디를 지켜야 할 것 아니냐’라는 말로 구워삶았다.

“… 알겠네. 그렇게 함세.”

변경백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옘병. 레이디 한 마디에 껌뻑 죽어버릴 줄 알았으면 진작에 이렇게 구워삶을걸. 얘기가 쓸데없이 길어져 버렸다.

“그럼 슬슬 준비하시죠. 셋 세면 같이 나가는 겁니다.”

“… 알겠네.”

마음의 준비를 마치고 나갈 타이밍만 기다리고 있는데.

문득 변경백이 물었다.

“하나 물어볼 게 있네만.”

“음? 뭡니까.”

“왜 하필이면 지금 시간으로 정한 겐가?”

“아. 그건 왜나면….”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지.

지금 시간으로 정한 이유가 두두둥, 하는 서늘한 소리와 함께 눈앞에 나타났다.

나는 히죽 웃으며 중얼거렸다.

“보험 갱신 때문입니다.”

[불사의 회귀점이 갱신되었다.]

[일시 - 미텔란트 왕국력/547년, 12월 20일, 아침 7시]

[장소 - 할센베르크 영지 북쪽 변경, 눈의 평원]

[알림 - 불사의 마왕이 부화에 임박했다.]

[알림 ― 불사의 마왕이 완전히 부활할 때까지 12시간에 한 번씩 회귀점이 갱신된다.]

시간이 되었다.

나는 곧장 마지막 준비를 시작했다.

‘웬만하면 이걸 볼 일이 없었으면 좋겠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배낭을 뒤져 망자의 함을 꺼냈다.

거기에 미리 준비해 놓은 쪽지 한 장을 넣었다. 뚜껑을 닫자 불길한 빛을 한 번 뿜고 망자의 함은 잠잠해졌다.

“좋아.”

이젠 돌격할 일만 남았다.

나는 곧장 에테르를 들이켰다. 혹시나 나중을 위해서 일단 바람과 땅의 에테르를 하나씩만 들이키기로 했다.

몸 주위를 맴도는 가벼운 감각을 음미한 뒤, 곧장 변경백에게 눈짓했다.

“갑시다, 변경백님!”

“알겠네!”

우리는 동시에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언덕의 끝자락을 힘껏 박찼다.

“으어어어!”

“하아아압!”

괴성과 기합을 지르며 평원 아래로 수직낙하한 우리는 그대로 콰앙, 지면에 착지했다.

스르릉! 검을 뽑아들었다. 우리가 수많은 언데드 무리들을 향해 맹진한 것은 거의 동시였다.

“가즈아아아아!”

“하아아아압!”

서걱, 파각, 스스슥!

하나의 쐐기처럼 우리는 진형의 중앙으로 파고들어갔다. 파육음이 연신 울리며 우리들의 진격을 알렸다.

뒤늦게 우리의 존재를 알아챈 언데드 무리가 나무 긁는 소리를 내며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쿠에아아악!

―키아아악!

언데드답게 지휘체계가 없는 단순한 공격이었지만. 이놈들에겐 공포나 당황 같은 개념 역시 없었다.

때문에 기습적으로 치고 들어온 우리들에게 우왕좌왕하지 않고, 올곧게 우리의 생살을 씹어먹으려 일제히 달려들고 있었다.

“으음! 역시 엄청난 수로군!”

앞서 나가며 섬전처럼 언데드들을 베어 넘기던 변경백이 문득 외쳤다. 나도 연신 언데드들을 베어넘기고 있었지만 실감이 나고 있었다.

‘제길… 벌써 느려졌어!’

앞을 메우는 언데드들은 점점 빽빽해지고, 우리의 진격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갔다.

결국 변경백은 혀를 찬 뒤 허리에 찬 지팡이를 꺼내들었다. 비장의 수단이었던 마법을 벌써 쓰게 될 줄이야.

“아발란치! 에테르 볼케이노!!”

사방에서 새파란 전광과 마법의 빛무리가 일어났다. 땅이 춤을 추고 하늘이 쪼개지는 굉음과 함께 언데드들이 터져나갔다.

“헌드레드 소드 피어스!!”

그러는 와중에 빛살처럼 움직이는 변경백과, 그 뒤를 보조하는 내가 분투하고 있었지만.

이미 수 분 째, 우리는 거의 같은 곳에서 정체한 채 한 발자국도 진격하지 못하고 있었다.

“허억… 후우.”

“하아. 하아…!”

변경백의 숨은 거칠어져 있었다. 나는 말할 것도 없다.

어느새 진격은커녕, 앞길을 막아서는 언데드들을 베어 넘기기에도 바빴다.

아니. 오히려… 점점 밀리고 있다. 언데드가 사방에서 쏟아진다. 퇴로조차 막혔다.

중공군 상대하던 유엔군이 이런 심정이겠거니 싶었다.

―갸오오오….

―키엑… 그에에엑!

큰일이다. 아직 엘더리치는 고사하고 수뇌급 개체조차 나오지 않았다. 벌써 이렇게 정체되다니. 예상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났다.

나는 밀려드는 초조함에 입술을 깨물었다.

“엎드리시게 정용 공!”

그 때였다.

별안간 변경백이 앞에서 달려드는 구울 다섯 마리를 동시에 베어넘기더니, 이내 검을 집어넣고 허리춤에 차고 있던 지팡이를 꺼내들었다.

지팡이 앞에 붙은 새빨간 보석이 시퍼런 번개를 낼름거리기 시작했다.

“로터스 렐람파고!”

파지지직!

순간 눈이 멀 것만 같은 섬광과 함께 굵직한 번개줄기가 수십 가닥으로 뻗어나갔다.

번개는 공기와 언데드들을 태우며 세상을 지지기 시작했다. 도처에서 비명과 살갖 터지는 소리가 울린다.

“세, 세상에….”

지금까지 변경백이 사용했던 마법과는 차원이 달랐다.

지금까지 봤던 마법이 광역 마법이었다면, 이건 초광대역 마법이라 불러야 할까.

반경 100미터 가량에 있던 언데드들이 일거에 구운 오징어가 되었다. 주변의 모든 땅이 시커멓게 타버린 모습을 보면 이곳이 방금 그 얼음평원이 맞나 싶을 정도다.

“아따 선생님! 기가 맥히는구만요!”

나는 변경백에게 엄지를 치켜세웠고. 변경백은 힘겹게 웃으며 스태프를 다시 허리에 꽂았다. 그리고 숨을 죽을 듯이 몰아쉬었다.

“후우… 후욱. 고, 고대마법은 역시 만만치가 않군.”

방금 그것이 고대마법이라는 듯하다.

과연.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이 거짓말은 아닌지, 효과가 절륜했다.

나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는 휑하니 뚫린 전방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베스타크를 쉴 새 없이 휘두르면서, 호기롭게 외쳤다.

“아직 멀었습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갑시다!”

“…….”

그제야 나는 이변을 눈치챘다.

변경백이 너무 조용했다.

“… 변경백님?”

나는 그제야 뜀박질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고. 그대로 눈을 부릅떴다.

변경백은 땅에 주저앉은 채 여전히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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