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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417413번째 소울라이크 용사-31화 (7/280)

31화 부활

나는 들고 왔던 마왕의 알을 슬그머니 파우치에 밀어넣었다.

그러고도 행여나 변경백에게 보일까 싶어 뒷짐 지는 척 등 뒤로 숨겼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최강의 4마왕이라면… 역대 소환됐던 마왕들 중에서 4위 안에 든다… 뭐 그런 소리지요?”

“그런 셈일세. 사실상 그 4마왕 중에서도 최강이고, 최악이지.”

변경백이 고개를 끄덕이며 진저리쳤다. 자연히 내 안색은 점점 파리해지다 못해 창백해져갔다.

“저… 최강은 그렇다 치는데, 최악은 또 뭡니까.”

“그녀는 어떤 수단을 사용해도 죽일 수가 없네. 이명 그대로 죽지 않기에 불사의 마왕이라 불리는 것일세.”

확실히 죽지 않는 적이라는 건 최악이라 칭할 만하다.

바퀴벌레가 해충 중에서도 이미지가 최악인 이유가, 죽여도 죽여도 끊임없이 튀어나오는 그 끈질김 때문인 것처럼.

그런데 지금 뭐라 그랬냐.

그녀?

“… 변경백님. 불사의 마왕이 여잡니까?”

“여자… 라고는 생각해 본적이 없네만. 일단 마족 암컷의 형상이라고 들었네.”

저 말은 증오스러운 마족이다 보니 여자로는 보이지 않지만, 일단 여자가 맞긴 하다는 소리인 것 같다.

내가 새로운 사실에 침음을 흘리고 있자니. 변경백은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며 내게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간만에 내게 알려줄 게 생겨서인지 꽤 신난 듯이 이야기했다.

“불사의 마왕. 그야말로 대륙 전체의 숙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아무리 죽여도 시간이 흐르면 언제 죽었냐는 듯이 부활한다네. 지금껏 수많은 역전의 용사들이 사력을 다해 불사의 마왕을 토벌했고, 불사의 마왕은 수없이 토벌 당했지.”

“그, 그렇군요.”

“허나 지금은 일시적인 평화가 찾아왔을지 몰라도, 불사의 마왕이 언제 부활하여 세상을 어지럽힐지는 아무도 모른다네.”

… 저는 알 거 같은데요.

아마 3일 뒤가 아닐까요.

나는 점입가경으로 흘러가는 변경백의 말에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변경백은 그런 내 상태를 눈치채지 못하고 침중한 목소리로 계속 말했다.

“불사의 마왕을 완벽하게 소멸시키는 방법은 아직 아무도 모르네. 어쩌면 불사의 마왕 본인조차 모를지도 모르지.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부활한 불사의 마왕이 예전의 강대함을 되찾기 전에 다시 척살하는 것밖에는 없네.”

“그렇… 군요.”

어쩐다.

이를 어쩌면 좋은가.

이런 미친 옘병맞을! 내가 대체 무슨 터무니없는 물건을 맡아버린 거야!!

나는 속으로 미친 듯이 오열하다가, 문득 변경백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요 변경백님.”

“왜 그러는가?”

“만약에요. 아주 만약에 말입니다.”

“그래. 만약에.”

“어떤 인간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그 불사의 마왕을 숨겨주고 있다고 해야 할지… 어쨌든 보호하고 있는 입장이라고 치면요. 그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상상이라도 끔찍한 가정이로군.”

변경백은 진심으로 소름끼친다는 얼굴로 양팔을 부볐다. 이 강대한 변경백조차 그런 현실은 감당할 수 없는 듯했다.

인상을 바짝 찌푸렸던 그는 곧 전처럼 진지한 얼굴로 돌아왔다.

그리고 한참을 생각하다,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적어도 내가 발견했다면 그 인간을 살려두진 않을 걸세.”

“…….”

“인류의 공적이 아닌가. 어떤 의미에선 마족보다도 위험한, 쳐죽여 마땅한 전 인류의 배신자지. 나는 그런 부류의 인간들을 뼛속 깊이 혐오하네. 자네도 알다시피 내가 당한 게 좀 있지 않은가. 하하하.”

변경백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을 맺었지만. 나는 입꼬리도 씰룩거릴 수 없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칠해졌다. 눈앞이 아찔해서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는다. 변경백이 여전히 뭐라 말하고 있는데 귓가에서 뭉개져서 들리지도 않았다.

아 X발. 더는 안 되겠다. 토할 거 같다.

나는 그 자리에서 곧장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가, 가, 감사했습니다. 아이고 졸려! 너무 졸려! 저 가서 좀 자보겠습니다!”

“으, 으응? 그러게나….”

나는 변경백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속력으로 뛰쳐나가고 있었다.

* * *

다음 날. 나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방 밖으로 나왔다.

어젯밤엔 거의 뜬 눈으로 지샜다. 그런 충격적인 사실을 들은 데다, 더 충격적인 내 상황을 알아버렸으니 잠이 오는 게 이상하지.

게다가 오늘 아침에 일어나 보니 어제 봤던 꺼림칙한 패널이 또 눈앞에 뜨는 게 아닌가.

[불사의 회귀점이 갱신되었다.]

[일시 - 미텔란트 왕국력/547년, 12월 19일, 오전 7시]

[장소 - 할센베르크 성, 기사 루드릭의 방]

[알림 - 불사의 마왕이 부화에 임박했다.]

[알림 ― 불사의 마왕이 완전히 부활할 때까지 12시간에 한 번씩 회귀점이 갱신된다.]

그걸 보니 정신이 번쩍 들어서 늦잠도 못 잤다.

지금 자고 있을 짬이냐? 그렇게 나를 닦달하는 것 같아서 말이다.

“인류의 공적이라….”

나는 어젯밤 변경백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내가 마왕의 알 수호자라는 게 들키는 순간 내 타이틀이 그걸로 변한다 이거지? 다시 생각해 봐도 이쪽 세상의 내 인생은 오질나게 다이나믹하군. 우라질.

‘그래도 뭐, 이제야 좀 아귀가 맞네.’

예를 들면 갑자기 알이 부화 직전의 상태까지 자라난 이유라든지.

굳이 미네르바가 폐지됐던 시험까지 부활시켜가면서 나를 여기로 보낸 이유라든지.

이런 것들은 어제 대화로 확실히 알게 됐으니. 수확이 없진 않았다.

‘내가 여기로 온 게… 전부 의도된 일이었군.’

미네르바는 북방의 언데드 군단과 불사의 마왕이 모종의 상호작용을 할 거라는 걸 예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알은 그녀의 예상대로 상호작용을 한 것이다.

내가 불사의 마왕의 권속을 죽이면, 그 기운을 알이 흡수하는 형태로 말이다.

즉 미네르바를 비롯한 천계의 양반들은 나를 통해서 알이 어떤 형태로든 변화하는 걸 노리고 있었다.

그것이 빠른 부화로 이어질 거라고 예상했는지는 모르겠다.

“… 그렇단 말이지?”

번쩍. 나는 머리맡에 치닫는 발상 하나에 미간을 잔뜩 모았다.

떠올랐다. 이 성을 탈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이 계획대로만 된다면, 이 땅에 일시적으로나마 평화를 불러올 수도 있는 데다. 레이라나 변경백과의 사이도 틀어지지 않은 채 스무스하게 탈출이 가능하다.

변경백에게도 레이라에게도, 나와 설백에게도 가장 이상적인 결과를 불러올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가능성이 적은데. 가능할까?’

순간 그런 의심이 치고 들어왔지만, 이내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힘들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도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러면 충분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난 일단 죽지도 못하는 불사신이잖아.

완전히 불가능하지만 않다면 내게 불가능은 없다.

나는 파우치 안에서 맥동하는 알을 만지작거리며 도전적인 웃음을 띄웠다.

‘까짓 거 다시 도전하면 그만이지.’

도전해주겠다. 가장 이상적인 결말을 맞이하기 위해서.

기왕 죽지도 못하게 된 몸뚱이인데 써먹지 않으면 아깝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힘찬 발걸음으로 변경백을 맞이하러 나갔다.

사냥하러 떠나는 게 이렇게 기대되기는 또 처음이었다.

* * *

“세븐 소드 피어스!!”

나는 스킬명을 우렁차게 외치며 전방으로 검을 찔러넣었다.

… 사실 스킬 쓰면서 스킬명을 굳이 외칠 필요는 없다. 굳이 따지자면 스킬명을 외치는 건 복잡한 커맨드를 단축키로 입력하는 것과 유사한 느낌이다.

내 안의 마력을 모으고. 검에 응축시키고. 그것을 특정한 형태로 만드는 작업까지.

감각으로 제어하는 게 아니라, 문장 하나 외쳐서 뭉뚱그릴 수 있으니까. 전투 시에는 쪽팔려서 싫어도 스킬명을 외치게 된다.

―그… 오오오.

내 앞에는 음울한 기운을 흩뿌리는 기사 갑옷 차림의 언데드가 있었다.

[몬스터 정보]

[명칭: 유령기사]

[체력: 141/420 마력: 98/230]

[힘: 92 민첩: 88 지능: 32]

[상세: 엘리트 언데드. 전투에서 죽은 기사의 갑옷에 투기와 망집이 집결되어 되살아난 것. 유령마를 타고 다니는 기병형과 백병전을 주로 하는 보병형으로 분류된다.]

언데드 중에서 나름 고위급에 속한다는 놈이다. 흔히 게임 등에서 데스나이트라 불리는 그것과 유사한 생김새다.

이정도 되는 고위 언데드는 변경백의 광역마법에 쓸려나가지 않기 때문에, 항상 변경백의 마법 작렬이 끝나고 나면 우리가 개별면담(?)을 해야 했다.

‘회전. 산개!’

파사사삭! 일곱 방향에서 마력이 방출되며 검의 형상을 띈다. 새파랗게 일렁이던 검신들은 내가 찌르는 방향을 따라 일직선으로 동시에 날아갔다.

유령기사들은 흐늘거리며 내 마력검들을 막기 위해 방어태세를 취했다.

‘느려!’

어느 순간. 나선을 그리며 회전하는 검날들이 일제히 산탄처럼 퍼져 놈의 시야를 교란시켰다.

당황하는 유령기사에게 다시금 사방에서 마력검이 쏟아졌다. 뱀처럼 교묘한 궤도의 찌르기였다.

―크아아아악!

유령기사가 괴성을 질렀다.

갑주 사이사이마다 마력 스파크가 지직거리는 검날이 박혀 있다. 스킬 레벨이 높아지다 보니 알아서 약점을 찾아 찌른 것이다.

―그… 으으….

유령기사의 투구 사이로 보이던 붉은 안광이 점점 빛을 잃어간다. 철그렁! 이내 갑옷이 와해되며 바닥으로 흩어졌다.

죽은 것이다. 언데드니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살아나겠지만.

‘잠입!’

나는 곧장 스킬을 사용하며 백스텝을 밟았다. 동시에 후웅, 하는 섬뜩한 파공음이 곧장 등뒤로 울렸다.

어느새 후방으로 다가온 또 다른 유령기사가 검을 휘두르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엄청난 속도였다. 히어로 센스로 날카로워진 육감이 아니었다면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웬만하면 도핑은 끊으려고 했는데….”

나는 위태롭게 웃으며 에테르 병을 재빨리 입에 갖다댔다.

연두색 빛이 내 몸에서 뿜어져 나오며 유령기사의 움직임이 느리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죽… 어라… 살… 덩이….

후우웅!

다시금 유령기사가 내게 진입한다. 여전히 빠르다. 하지만 충분히 반응할 수 있다.

나는 쏟아지는 검격에 맞춰 몸을 비틀고, 적절히 쳐내었다.

캉, 카캉! 카가강! 지리멸렬한 공방이 오갔다. 검끼리 부딪치며 높은 금속음이 연신 퍼졌다.

―그오오오!

어느 순간, 유령기사가 큰 공격을 준비하기 위해 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지금이다. 나는 쏜살같이 놈의 품으로 힘껏 파고들었다.

‘연화!’

스윽! 유령기사가 휘두른 검이 눈앞까지 온 순간. 내 시야가 시커멓게 휩싸이더니 이내 풍경이 변했다.

나는 어느새 유령기사의 후방으로 이동해 있었다. 유령기사는 순식간에 사라진 나를 포착하지 못하고 검을 휘적거렸다.

‘후방강타!’

나는 곧장 베스타크를 찔러 넣었다. 내가 낼 수 있는 속도를 아득히 초월한 섬광의 찌르기가 작렬했다.

푸직! 베스타크는 투구의 뒤통수를 그대로 뚫고 들어갔다. 원래는 이음새를 뚫을 생각이었지만, 설마 저 두꺼운 철판을 그대로 뚫어버릴 줄은 나도 몰랐다.

―그, 우우우….

유령기사는 언데드 특유의 나무 긁는 신음을 내더니 바닥에 퍼석 쓰러졌다.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갑옷 쪼가리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던 찰나.

쉴 틈도 없이 사방에서 조여 들어오는 숨막히는 투기에, 나는 다시 검을 치켜올렸다.

―… 제법… 이구나… 숨쉬는… 살덩이….

철그럭, 철그럭. 주변에는 아직 다섯 기나 되는 유령기사가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하나 같이 음울한 투기를 무럭무럭 쏟아내는 그들의 압박감에 짓눌릴 것만 같았다.

제길. 이 쪽수는 절망적이다. 나는 필사적으로 솟아날 구멍을 찾기 시작했다.

“정용 공! 피하게!”

그리고 그 순간. 수없이 많은 마력의 검날이 유령기사들의 뒤편으로 생성되었다.

방대한 마력의 응집체가 하늘을 가득 메우자 유령기사들은 화들짝 뒤를 돌아봤다.

거기에는 대검을 한껏 당긴 채 이쪽을 노려보는 변경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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