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처형자 그윈
한참을 계단을 따라 내려간 레이라와 나.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지하 끝자락까지 도달했다. 느낌상 하수도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좀 더 아래였다.
지하 특유의 음습한 찌든내가 코를 확 찔러온다. 나는 랜턴 빛에 어스름하게 비치는 주변 풍경을 보고 탄성을 흘렸다.
“여기는….”
“감옥이에요. 원래는 포로들을 수용하던 곳이었죠.”
“원래는? 그러면 지금은?”
“지금은….”
레이라의 말이 이어지기도 전에 "끼에에엑!" 하는 소리와 함께 감옥 창살 안에서 무언가가 덮쳐왔다.
철그렁! 창살에 막혀 그것의 습격은 무위로 끝났지만. 적어도 나를 놀라게 하기엔 충분했다.
“어메 X발! 저, 저건 뭐야!”
“뭐긴요. 원래 영지민이었던 언데드죠.”
레이라가 건조하게 말했다.
덕분에 공포가 짜게 식은 나는 침착하게 창살 안의 그것을 자세히 쳐다봤다.
“… 어, 언데드?”
썩어 문드러진 살갖과 나무를 긁는 듯한 울음소리. 충혈된 눈. 알현실에 즐비해있던 언데드들과 똑같았다. 불타지 않았다는 점은 달랐지만. 썩은 살가죽이 더 선명해서 섬뜩했다.
내가 망연자실하게 그걸 쳐다보고 있자, 뒤에서 레이라가 설명했다.
“아직 저주가 초기단계일 때, 희망을 버리지 못한 유족들이 자발적으로 구금을 신청했어요. 이 사람들은 갇힌 채로 변이가 진행돼서 언데드가 되었죠.”
“흐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창살들에서 떨어졌다. 레이라는 흥, 하고 가볍게 숨을 내쉬더니 앞장서 가버렸다. 나는 퍼뜩 그 뒤를 쫓았다.
“끼에에에….”
“가우… 으으으….”
지나가는 창살마다 언데드들이 우리를 향해 손을 뻗어왔다. 불빛에 이끌린 듯했다.
나이 많은 노인부터 뚱뚱한 여자. 아직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어린아이까지.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었다. 공통점이라고는 썩어문드러진 시체라는 것뿐이다.
입맛이 씁쓸해져 나는 그곳을 쳐다보길 그만뒀다.
“도착했어요. 여기에요.”
문득 레이라가 걸음을 멈췄다.
다른 곳과 별다를 게 없는 감옥 중 하나의 앞이었다. 레이라는 창살로 가까이 다가가 랜턴을 비췄다. 나는 자연스레 시선을 감옥 안으로 돌렸다.
레이라가 안타까운 손짓으로 창살을 쥐고 말했다.
“그윈. 나야.”
그 목소리에 안쪽에서 무언가 반응했다.
정확히는 보이지 않지만, 거대한 체구를 가진 무언가였다. 형체를 봐서는 사람 같았다. 크기 때문에 믿기 힘들지만.
이내 그것의 안광이 이쪽을 향했다. 어둠 속에서 갈라지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레이라?”
“응. 미안해. 요즘 바빠서 찾아오지 못했어.”
레이라는 울 것 같은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창살을 쥔 손이 안절부절한다.
하지만 이쪽을 가만히 바라보던 어둠 속의 안광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다시 시선을 돌려 이쪽을 외면했다.
“레이라. 도통 내 말을 듣지 않는군. 찾아오지 말라고 했을 텐데.”
“하지만 그윈… 나는 네가 없으면….”
“영주님 보좌에나 신경 써라. 그분에겐 이제 정말 너뿐이야. 나는 잊어버려.”
“그윈! 어떻게 그런 말을…!”
레이라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의 뺨으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소리죽여 우는 그녀를 향해 반대편의 거한… 그윈은 차가운 축객령을 내렸다.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두려운 것 같기도 하고, 슬픈 것 같기도 하다.
“돌아가. 그리고 다시는 여기에 오지 마. 여기는… 위험해. 그리고 나도…….”
거기까지.
문득 허공을 방황하던 붉은 안광이 어딘가에서 우뚝 멈췄다. 두 눈이 점점 커진다. 놀란 듯하다.
가만있어 봐. 자세히 보니 내쪽을 쳐다보는 거 같은데.
“이계인의 기척… 용사?”
중얼거리는 말을 들어보니 나 보는 거 맞는 듯하다.
꼴에 선임인데 해병대 전우회마냥 경례라도 박아야 되나 생각하고 있자니.
“으, 으으.”
그런 소리가 들려왔다.
퍼뜩 시선을 돌리자, 머리를 싸매고 안절부절하는 거한이 있었다.
“… 그윈?”
“위험… 도, 돌아… 죽는다…. 으으으… 주, 그어….”
문득 그윈의 말이 뭉개지기 시작했다. 이쪽을 바라보는 안광이 점점 이지러졌다. 붉게 핏발이 서는가 싶더니. 시선이 훌쩍 높아졌다. 거한이 몸을 일으킨 것이다.
이내 그윈의 목에서 나무 긁는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언데드처럼.
“죽어… 다 죽여야… 처형해야 해… 죽어. 쳐죽인다. 너도. 어서… 죽어어어어어!!”
순식간에 그윈의 시커먼 신형이 다가왔다.
미처 반응도 하지 못하는 사이 그윈이 철창에 그 거대한 몸을 부딪쳐왔다.
“이런, 피해요!”
레이라가 황급히 철창에서 몸을 떼며 내 옷깃을 잡아 끌었다.
동시에 콰아앙! 엄청난 소리가 나며 지하가 우르릉 울렸다. 철창 안의 그윈이 전속력으로 철창을 들이받은 것이다.
나는 그제야 그윈이라는 거한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 언데드가… 아니잖아.”
창살을 부술 듯이 몸을 연신 부딪쳐오는 그윈.
신장은 어림잡아 3미터는 될법했고, 산발한 갈색 머리칼 사이로 보이는 눈은 붉은 흉광을 뿌리고 있었다.
그러나 언데드 특유의 시체 썩는 냄새는 나지 않았다. 피부 또한 거칠긴 했지만 분명히 살아있는 인간의 혈색이 돌았다.
옆의 감옥에서 썩어가는 다른 언데드들과는 분명히 달랐다.
“죽어어어! 처형한다! 내가 죽여주겠다! 어서! 죽어! 죽으란 말이다!!”
다만. 지금의 상태를 봐서는 도저히 정상적인 인간이라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내가 의아한 마음에 그윈의 얼굴을 빤히 보고 있자, 곧 익숙한 소리와 함께 패널이 등장했다.
[명칭: 그윈]
[별칭: 처형자, 배신자 용사, 할센베르크 최후의 기사]
[LV. ???]
[체력: ??? 마력: ??? 신체상태: 광증/혼란]
[힘: ??? 민첩: ??? 지능: ??? 히어로 센스: ???]
역시나. 미미르의 눈은 제대로 발동하지 않았다.
하기사 옆에 있는 일개 시녀도 파악하지 못하는 마당인데. 척봐도 나보다 강해보이는 저 거한이야 오죽하겠나.
나는 레이라를 흘깃 보고는 물었다.
“네 애인은 화나면 무서운 타입이구나?”
“…….”
비아냥거리자 레이라는 곧장 눈을 흘겼다.
아주 죽일 듯이 쳐다보는군. 나는 손을 들어 미안하다는 제스쳐를 했다.
멋쩍게 시선을 돌린 나는 그윈의 상태창을 보다가, 이내 어떤 사실을 발견하고 눈을 부릅뗬다.
‘…… 히어로 센스?’
저 그윈이라는 남자에겐 ‘히어로 센스’ 스탯이 달려 있었다.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얼마든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 스탯이 달려 있다는 사실 자체다.
“… 이봐 레이라.”
“예. 왜 그러세요.”
“저 남자는 설마… 그거야?”
“그게 뭔가요.”
“그거 있잖아. 네가 엄청 싫어한다는 그 족속….”
나는 하수도에서 당한 게 있다 보니 차마 그 단어를 입에 담지 못했다.
하지만 레이라는 이내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네. 그윈은 아주 옛날에 이 땅에 소환됐던 용사들 중 하나였어요.”
순간 사고가 정지했다.
“그아아아악! 죽어! 쳐죽여버리겠다! 처형한다! 모두 죽어어어어!!”
그러는 와중에도 그윈의 발광은 계속되었다. 눈에 들어온 우리를 죽이지 않고는 울분이 풀리지 않는다는 양.
나는 멍한 얼굴로 전 세대의 용사… 내 까마득한 선임의 추한 몰골을 눈에 담았다.
* * *
“그윈은 마지막까지 이 성에서 살아남은 기사였어요.”
그윈과의 대면을 마친 뒤. 길을 되돌아가던 중 문득 레이라가 입을 열었다.
나는 잠자코 그녀의 넋두리를 들었다. 어떻게 물어볼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먼저 입을 열어주면 나는 땡큐지.
“결사대가 조직됐을 시점에 용사들이 소환되기 시작했다고 했죠. 혹시 기억하시나요.”
“기억하지.”
“그 뒤로 결사대는 점점 수를 잃어갔지만, 소환된 수많은 용사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어요. 그들은 왠지 모르게 적극적으로 우리들을 도와줬지요. 최초로 소환된 사람 중 하나가 그윈이었습니다.”
“흐음.”
아마 순전히 호의 때문은 아니었을 거다. 나처럼 성에 진입한 뒤로 퀘스트를 받아서, 그걸 깨려는 요량으로 호의적인 척을 했던 거겠지.
하지만 먼저 나서서 북방의 마족을 때려잡았다는 건 의외군. 어쩌면 그 때의 퀘스트는 내가 지금 받은 퀘스트와 완전히 다른 내용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윈은 정말 헌신적으로 일했어요. 레벨을 올리고, 스킬을 연마하고… 항상 주인님의 옆에 붙어서 전략과 전술을 논하고… 주인님도 그런 그윈을 금세 신뢰해서 오른팔 자리에 앉혔죠.”
“당시 그윈의 레벨은 어느 정도였는데?”
“글쎄요. 제가 기억하기론 100 정도는 거뜬히 넘겼던 것 같네요. 그 막강한 주인님과 합을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상대였으니까요.”
“배, 백이라….”
내가 레이라의 얘기를 들으며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는데.
레벨이나 스킬, 그리고 상태창 같은 개념은 소위 NPC격인 이 세계의 원주민들도 다 알고 있으며, 사용할 수도 있다.
그러고 보면 레이라가 전에 고블린을 잡을 때도 스킬을 사용해서 고블린들을 일격에 썰어버렸지. 다시 말해 이 세상의 모든 인물들은 각자 자신의 스탯창과 스킬창을 보유했고. 미미르의 눈은 그저 남들의 상태를 엿볼 수 있는 기능일 뿐이다.
뭐, 그것도 충분히 사기적인 능력이지. 나만 가지고 다니는 이세계 전용 나X위키니까.
속으로 납득하고 있자니 레이라의 말이 다시금 이어졌다.
“하지만 그 후로도 놈들은 세가 점점 불어났죠. 그리고 방만해지기 시작했어요. 제들끼리 조합을 만들더니 주인님께 각종 무리한 요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영지민을 미끼로 마족을 불러내자는 둥, 마족 한 마리당 터무니없는 금화를 지불해 달라는 둥… 도적떼가 따로 없었죠.”
“오우야.”
레이라는 증오가 서린 말투로 중얼거렸다. 나는 가만히 생각했다.
용사들의 요구로 봐서 아마 옛날 퀘스트 내용은 고대마족을 사냥하는 것이었나 보다.
그 과정에서 어떻게든 자기들의 이익을 도모해보자고 저런 짓을 한 거겠지. 사람 새끼 생각하는 거 어차피 거기서 거기다. 알만하다.
“그리고 놈들은 넘지 말아야할 선을 넘어버리고 말았어요.”
“대체 뭔 짓을 했길래.”
“백작 부인을 납치해서 엘더리치와 협상을 시도했어요. 백작 부인을 넘기는 대신 자기들에게 마족 졸개 백 명 분의 목숨을 달라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협상이었죠.”
“…….”
인정한다. 용사 새끼들 선을 오지게 넘었군. 변경백 그 양반이 마누라 소중히 여기는 건 하루 밖에 못본 나도 알겠더만.
나는 어리석은 선임 용사들을 속으로 한탄했고. 레이라 역시 한탄에 가까운 어조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분명히 효율적인 협상카드이긴 했죠. 주인님은 백작 부인을 목숨처럼 아꼈으니까. 엘더리치에게 있어서 미텔란트 침공에 가장 큰 벽이 되는 건 용사 같은 버러지 무리가 아니라 주인님이었거든요.”
“…….”
“그래서… 협상은 결국 성사됐어요.”
이것으로 확정되었다.
놈들이 받았던 퀘스트는 ‘북방의 고대마족 100마리 잡기’였다.
정답까지 맞췄는데 기쁘진 않고 토악질만 나는군.
나는 점입가경이 되어가는 그녀의 이야기를 재촉했다.
“그래서. 다음은?”
“당연히 대노한 주인님이 쓰레기들을 척결하러 나섰죠. 무수한 결사대원의 희생 끝에 주인님은 백작 부인을 탈환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미 늦어있었죠.”
나는 백작 부인의 처참했던 몰골을 떠올렸다.
말라비틀어진 목에 걸려 빛나던 붉은 루비가 유난히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윈은 그 때 다른 용사들을 배신하고 주인님의 곁에 섰어요. 그 수많은, 수백 수천에 가까운 용사들 중에 유일하게 그윈만이.”
랜턴을 쥐고 있는 레이라의 손이 미미하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결과가 어떻게 됐을 것 같나요.”
“변경백 양반이 지금도 떡하니 버티고 있으니, 당연히 용사들이 졌겠지.”
“네. 맞아요. 성내에서 내전이 일어났고, 한 놈도 남김없이 모두 살해당했어요. 어차피 그윈을 제외하곤 쓰레기 집단이니까요. 정확히 그윈이 반, 그리고 나머지 반을 주인님께서 직접 쳐죽였습니다.”
레이라가 문득 나를 슬쩍 쳐다보더니 서늘하게 웃었다.
그 미소에서 직감했다. 그녀는 아마 내가 용사라는 걸 반쯤은 확신하고 있는 듯했다.
'변경백 쪽으로 붙길 천만 다행이군.'
나는 안도의 한숨을 흘리며 얌전히 그녀를 따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