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0화. 뱀이 허물을 벗듯
"영원한 삶이요?"
손을 들어 영원한 삶이 어쩌고 하는 아이템들을 꼽아보았다.
"'불사조의 심장'이랑 '통일 황제의 불로초', '현자의 돌'…. 또 뭐가 있더라?"
다섯 손가락이 금방 찼다.
시험의 세계에서 영원이란 그렇게나 흔한 말이었다.
"이렇게 많은데… 굳이 오래된 늪지까지 가셔야 합니까?"
상원이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있긴 있구나.'
문혁이 꼽았던 아이템들은 설명상으로는 영원한 삶을 준다고 되어 있긴 했지만 사실 회복이나 능력치 상승 아이템에 가까웠다.
그것들 중 정말로 영원불멸의 삶을 주는 아이템은 없었다.
"그 아이템은 정말로 영원한 삶을 주나 보지요?"
상원이 흠하는 소리를 내며 하늘을 향해 눈을 굴렸다.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게, 보기에 따라 다르긴 합니다. 명백하게 말하기는 조금 어렵겠네요."
"그럼 어째서…?"
"문혁 씨."
문혁의 말을 끊은 상원의 눈이 반짝 빛났다.
무슨 말을 하려는데 저런 눈빛을 하는 건가?
다음 순간 상원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정말 의외였다.
"수험자들… 이제는 수험자가 아니니 뭐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네요. 여하튼, 수험자들이 아이를 낳았다는 얘기 들어보신 적 있습니까?"
"예?"
그러고 보니 시험에 든 이후 태어난 아이가 있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건 사마에트가 죽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수험자는 아이를 낳을 수 없습니다. 시험이, 자손을 남겨 죽음을 뛰어넘는 걸 막아버린 겁니다."
문혁은 중얼거리며 덧붙였다.
"오로지 승천을 통해서만 죽음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상원이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렇다면? 그 영원한 삶이라는 게…? 설마 수험자가 아이를 낳을 수 있게 하는 아이템입니까?"
"그렇습니다. 이제 그걸 가져올 때가 된 것 같아요."
턱이 툭 떨어졌다.
"아아!"
탄성이 섞여 나왔다.
지구 어딘가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마물의 손에 사람이 죽어가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죽고 죽다 보면 결국은 이 땅에서 인간은 절멸할 터였다.
태어나는 인간이 없으니까.
하지만 아이를 낳을 수 있다면, 인간들은 이 땅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문혁은 입술을 굳게 물고 상원의 어깨를 두드렸다.
'인간의 운명… 이 여린 몸에 그 무거운 걸 짊어지고 있으니.'
상원의 깡마른 어깨에 뼈가 도드라졌다.
"무사히 다녀오십시오."
"예, 돌아올 때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상원이 말하는 투가, 마치 서울역을 이끄는 일을 넘겨 미안하다는 투였다.
그게 문혁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여윈 손을 흔들며 인사한 상원이 반대편으로 돌아서 걷기 시작했다.
"가죠, 샤믹."
"네, 대장! 나중에 봐요 문혁 씨."
샤믹도 두 팔을 크게 벌려 인사하고 상원을 따라 성역 바깥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마신의 땅을 향해 떠나는 그들의 뒷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여유로워 보였다.
부드럽게 서로를 마주 보며 한참을 걸어가던 그들이 살포시 서로의 손을 잡았다.
'잘 어울리는 한 쌍이네.'
그들이 밤의 어둠 속으로 사라진 후로도 오랫동안, 문혁은 서편 광장 너머 창백한 달빛 아래 멸망한 도시의 폐허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저 멀리서 거대한 용인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샤믹의 본체였다.
* * *
차원의 틈새에서 본체를 꺼낸 샤믹이 상원을 머리 위에 올리고 말했다.
"꽉 잡아요 대장."
상원은 바싹 엎드려 머리털을 꼭 붙잡았다.
가닥가닥이 상원의 팔뚝보다 굵은 머리칼에선 은은한 과일 냄새가 났다.
웬만한 극세사 이불과는 비교할 수 없이 부드러운 머리털 속에 파묻혀 있으려니 잠이 솔솔 쏟아졌다.
지난 몇 달간의 기억이 스쳐 갔다.
불신자의 몸으로 돌아온 후로도 수많은 사선을 건넜다.
신화의 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한 몸으로 말이다.
신화의 몸에 쌓아두었던 스킬은 모두 날아갔고, 특성 '불신자'는 여전히 남아 있으니 스킬을 쓸 수도 없었다.
능력치는 레벨업 시스템으로 때워서 신력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으니 불신자의 능력치는 초기 상태 그대로였다.
그 몸으로 변형된 세계의 여기저기를 누비고 다녔던 것이었다.
그러니 몸이 버티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요새 무리하긴 했지.'
의식이 점점 멀어져 갔다.
그 순간 들린 엄청난 폭발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쾅!!
샤믹이 뛰어오르기 위해 발을 구른 것이었다.
그녀가 공중으로 솟아오르자 무지막지한 대기압이 온몸을 찍어 누르기 시작했다.
"으윽!"
샤믹의 머리칼 속으로 꾸물꾸물 몸을 파묻자 그나마 몸이 따뜻해졌다.
고도가 높아지며 서울 시내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마물들이 등어리를 내민 한강의 남북으로 도시의 폐허가 이어졌고 그 사이에서 성화들이 표표히 빛나고 있었다.
이 도시가 인간들의 보금자리였다.
성화들의 수를 빠르게 훑어보니 지난번보다 줄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때 샤믹이 주의를 주었다.
"경계면에 들어가요."
"네."
하늘 높이 에메랄드빛 오로라가 빛났다.
차원문이었다.
샤믹이 하늘을 헤엄쳐 차원문으로 뛰어들었다.
차원문 너머에는 차원의 경계면이 새까맣게 펼쳐져 있었다.
경계면 저 멀리로 차원을 뚫고 파랗게 솟구쳐 오르는 마나 기둥이 보였다.
"기억나죠 샤믹? 저기 들러서 가야 한다고 했던 거."
"그럼요."
경계면을 헤엄쳐간 샤믹이 마나 기둥을 휘돌며 차원의 경계를 넘었다.
그러자 저 아래로 드넓은 설원이 펼쳐졌다.
마나 기둥의 주변으로는 상자처럼 생긴 건물들이 서서히 회전하고 있었다.
에론이 뽑아준 최단 경로의 경유지, 에키나르타 대륙의 마법 도시 파이에벨이었다.
파이에벨의 마법사 조합장 네릴 파호른은 행정력이라면 끝내주는 사람인지라, 재앙을 견뎌낸 도시는 마지막으로 보았던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샤믹이 아련한 목소리로 물었다.
"대장, 기억나요? 우리 처음에 저기서 만났었어요."
"맞아요."
그녀와의 첫 만남이 스쳤다.
마법사 조합의 대기실을 둘러보며 연신 감탄을 내뱉던 강아지 같은 수험자, 그게 그녀의 첫인상이었다.
그때는 그녀와의 인연이 이렇게 깊어지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역시 사람의 일이란 알 수 없는 법이었다.
찬란하게 빛나는 마법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으려니 그녀와 함께했던 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에키나르타를 누비며 용제를 되살리고, 중원에서 발할라와 해원향을 상대했으며, 지상에 강림한 신들에 맞서 싸웠다.
그 국면마다 샤믹은 결정적인 역할을 해 주었다.
고마운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맙습니다.'
입을 열려는 그 순간 숨도 쉬기 어려울 정도로 짙고 음습한 안개가 주변을 감싸기 시작했다.
저 멀리 에메랄드빛 차원문이 안개를 물들이며 빛나고 있었다.
"갑니다!"
호기롭게 외친 샤믹이 다이빙을 하듯 차원문으로 뛰어들었다.
상원은 손을 들어 코를 막고 숨을 참았다.
"흡!"
풍덩 하는 물소리와 함께 풍경이 바뀌었다.
흐린 하늘 아래로 아름드리나무로 가득 찬 숲이 펼쳐졌는데, 나무 사이로 희뿌연 안개가 융단처럼 깔려 있었다.
여기가 바로 마신 '오랜 땅의 이무기'의 영토 오래된 늪지였다.
샤믹이 굉음과 함께 안개에 뒤덮인 숲속에 착륙하자 수많은 마물들이 쉿쉿거리는 소리를 내며 저 멀리로 달아났다.
삼백 미터가 넘는 샤믹의 정수리가 나무의 중간에도 닿지 않았다.
이 한 그루 한 그루가 세계수였던 것이다.
샤믹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와…. 여기 나무들 진짜 크다."
주위에는 온통 새까만 나무와 안개뿐이었지만 세세히 살펴보니 위치가 파악되었다.
오래된 늪지의 위치는 완벽하게 외우고 있었다.
현 위치와 갈 길을 파악했으니 이제 나아가야 한다.
"샤믹, 저쪽으로."
"옛썰."
샤믹이 상원이 손을 뻗은 방향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마물의 영토에는 지구에 있는 것들과는 격이 다른 마물들이 득시글거렸다.
4등급 '사괴왕'은 말 그대로 발에 치였으며 걸핏하면 6등급 '맹독 비룡'이 나타나는 수준이었으니 문혁이 말리는 것도 당연했다.
그런데 그 강대한 마물들이 샤믹이 나타나자 도망가기 바빴다.
제아무리 6급 마물들이라도 삼백 미터짜리 괴수한테 덤빌 담력까진 없었으니까.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이윽고 나무가 없는 너른 공터가 나타났다.
바닥에 깔린 안개는 다른 곳보다 더욱 짙어서 그 속이 아예 보이지 않았다.
바로 여기가 목적지, 오래된 늪지를 뒤덮은 안개의 연원이었다.
샤믹이 상원을 손바닥에 얹고는 내려다보며 말했다.
"미안해요 대장. 이 안은 내가 갈 수 없어요. 알죠?"
이 짙은 안개는 마신 오랜 땅의 이무기가 직접 설치한 방진이었다.
제아무리 강대한 샤믹이라도 이 안개를 뚫을 수는 없었다.
"괜찮습니다."
샤믹의 얼굴에 걱정이 가득 차 있었다.
"조심해요 제발."
상원이 겸연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조금만 기다려요. 금방 돌아올게요."
상원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샤믹을 뒤로 하고 안개 속으로 향했다.
등 뒤에서 느껴지던 샤믹의 존재감이 일거에 사라졌다.
공간이 단절된 것이었다.
뱀 단지를 연 것 같은 비린내가 엄습했다.
안개가 얼마나 짙은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고 가습기에 대고 숨을 쉬는 듯 숨구멍에 물이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찰박찰박하는 물소리가 들렸고, 종아리를 따라 파충류들의 꺼끌꺼끌 차가운 몸이 스쳐 갔다.
그 누구라도 여기에 함부로 발을 들였다간 끝없는 안개의 장막 속에 갇혀버릴 것이었다.
오랜 땅의 이무기가 이곳을 지키기 위해 직접 만든 방진, 하찮은 필멸자가 파훼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물론 상원은 그 방진을 파괴할 능력도 의지도 없었다.
단지 지도에서 본 대로 그 방진 속을 천천히 걸어갈 뿐이었다.
오감을 속이는 방진은 불신자에게 영향을 주지 못하니까.
안개 속을 더듬어 한참을 걸어가니 거짓말처럼 안개가 걷히면서 비린내가 사라졌다.
이어서 싱그러운 바람과 함께 향긋한 과일 냄새가 풍겨왔다.
오래된 늪지 그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옅고 청명한 하늘이 아래로 너른 풀밭이 펼쳐졌다.
한가로이 풀을 뜯던 작은 노루 몇 마리가 상원을 보더니 풀밭 저쪽으로 총총 뛰어갔다.
그 풀밭 한가운데 평범한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높이를 킬로미터 단위로 재야 하는 세계수들이 즐비한 땅 한가운데 서 있는 평범한 나무는 오히려 비현실적이었다.
상원은 천천히 초지를 건너 나무 아래 섰다.
보리수였다.
'오랜 땅 한가운데 보리수가 있다더니, 정말로 그냥 보리수였군.'
그 나무 아래 손바닥보다 조금 큰 하얀 고리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꼬리를 물고 있는 뱀의 허물이었는데, 주워 보니 깃털처럼 가벼운 고리는 형태가 단단했고 표면이 꺼끌꺼끌했다.
이걸 달여 마시면 몸에 붙은 불임의 저주를 풀 수 있는데, 달여도 달여도 줄지 않으니 세상 모든 수험자가 마실 수 있는 건 당연했다.
그렇게 인간은 계속 살아갈 것이다.
영원한 삶을 주는 아이템, 상원은 그 아이템의 이름을 읊어 보았다.
"무한의 똬리."
그건 이 땅의 주인 오랜 땅의 이무기가 수 없는 미련을 허물처럼 벗으며 남긴 결정체였다.
그때였다.
"그렇게 여러 번 허물을 벗었거늘 결국 닿은 곳이 거기인 건가?"
언제부터였을까?
머리를 파르스름하게 깎은 가사 차림의 여인이 나무 아래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부드럽게 눈을 감은 그녀의 얼굴이 왠지 아주 오래전 곁을 떠났던 어머니의 얼굴처럼 보였다.
상원은 홀린 듯 그녀의 앞으로 다가갔다.
'어머니?'
그 말이 목구멍으로 나오려는데 그녀가 눈을 떴다.
에메랄드색 눈동자 속 눈빛이 우주를 가득 담은 것처럼 그윽했다.
"뱀은 허물을 벗을 때마다 마음의 덮개를 하나씩 벗는단다. 미움도, 탐욕도, 애욕도, 애착도. 그렇게 피안과 차안을 모두 떠나 용이 되어 하늘에 오르지."
상원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오랜 땅의 이무기."
그녀가 상원의 손에 들린 '무한의 똬리'를 쳐다보았다.
"너는 그토록 많은 허물을 벗으면서 하나도 버리지 못했구나."
마신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도 어쩐지 마음이 한없이 차분해졌다.
상원은 마신을 똑바로 보고 서서 가슴을 폈다.
"당신께서 늪지의 모든 뱀이 승천할 때까지 승천하지 않겠다는 대원(大願)을 세우신 것도 애욕 때문이 아닙니까?"
그녀가 입꼬리를 살짝 들어 올렸다.
"그건 평범한 진리 때문이니라. 누군가의 진심을 다해 공양해 주면 늪지에서도 하늘에 오를 수 있음이 말이지."
어디선가 풍경(風磬)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나는 모든 인간을 위해 공양하겠습니다."
그녀가 맑게 웃었다.
"하, 하하하하."
그녀의 웃음에서 오래된 절간의 향기가 났다.
"그래, 가라. 이 땅의 모든 뱀이 하늘에 오른 뒤에 말이다, 그때도 내게 허물이 남아 있거든…"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상원은 마신의 말을 끊고 말했다.
"저희 죄인을 위해 빌어주소서."
꾸벅 고개를 숙이고 돌아서는데 등 뒤에 마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 딸을 잘 부탁한다."
'딸?'
샤믹을 말하는 것일 게지.
"역시나 당신도 아직 멀었군요. 세상 어느 부처가 속세에 딸을 둔답니까?"
돌아서서 보니 보리수가 있던 풀밭은 어느새 짙은 안개에 휩싸여 있었다.
"빠르기는."
볼일은 끝났다.
머릿속에 외운 대로 안개를 밟아 나가니 들어올 때처럼 일순간 안개가 옅어졌다.
바닥에 쭈그려 앉아있던 샤믹이 얼굴을 환하게 밝히며 상원에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고생했어요 대장."
상원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의 손바닥에 올라탔다.
샤믹이 무한의 똬리를 골똘히 들여다보더니 에게 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게 그거에요? 되게 조그맣네요."
"이래 봬도 모든 사람들한테 걸린 불임의 저주를 풀 수 있는 물건입니다."
샤믹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그래요? 그거 나한테도 효과 있는 거예요?"
"글쎄. 샤믹은 몸이 다르니까…."
샤믹은 '가라앉은 거인'과 '인식의 경계'라는 두 타락신이 든 육체를 마신이 직접 다시 빚어 만든 존재였다.
'샤믹에게도 무한의 똬리가 효과를 볼 수 있을까?'
생각에 잠겨 있는데 샤믹이 상원을 머리에 얹으며 말했다.
"일단 돌아가요 우리. 가서 빨리 사람들 보고 싶어."
"그래요."
샤믹이 대지를 힘차게 박차고 날아올랐다.
음습한 안개로 가득 찬 마신의 영토가 멀어졌다.
샤믹의 머릿결을 쓰다듬자 그녀가 배시시 웃었다.
"쓰다듬어주는 거 진짜 좋아요."
삼백 미터가 넘는 거구인데 이 작은 손짓을 어떻게 느끼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는데 샤믹이 불쑥 물었다.
"대장, 나 물어볼 거 하나 있어요."
"뭔가요?"
"우리 무슨 사이야?"
"...네?"
갑작스런 질문에 어버버 하느라 어느새 그녀가 말을 놓아버린 것도 늦게서야 알았다.
"기다리게 하기 있기 없기?"
"그… 대장과 대원… 이죠?"
"그거 아닌데?"
반문하는 투가 서리처럼 서늘했다.
그녀의 말에 풋 하고 웃음이 나왔다.
웃음은 나왔는데 볼을 따라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샤믹이 뾰로통하게 재촉했다.
"야, 그거 아니라구."
"우린."
상원은 샤믹의 머릿결을 부드럽게 쓸며 말했다.
"특별한 사이죠."
헤헤 하는 그녀의 웃음이 견딜 수 없이 사랑스러웠다.
온통 어둡기만 했던 삶에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이야.
삶이란 역시 오래 살고 볼 일이다.
흐린 하늘이 맑은 에메랄드빛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건너 차원의 경계면 저 멀리로 어렴풋이, 동이 터오기 시작하는 지구의 하늘이 보였다.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