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9화. 영원한 삶
서울역이 지구에 돌아온 이후 몇 달이 흘렀다.
익숙한 지평선 위로 황혼이 다가오고 있었다.
침침한 마력등(魔力燈)이 밝히는 서울역 전술 지휘본부, 테이블에 앉은 문혁의 손등에 찍힌 시험의 표식이 여리게 빛났다.
문혁은 턱을 괸 손가락으로 볼을 탁탁 두드렸다.
시험은 끝난 건 분명했다.
섭리의 집행자 사마에트가 잿더미가 되어 사라지는 걸, 비그리드에 있던 모든 수험자들이 똑똑히 보았다.
그 이후로 몇 달이 흐르도록 27번 시험은 선포되지 않았고, 종종 나타나서 시험을 규율하던 기관원들도 모조리 종적을 감추었다.
더 이상 수험자들은 죽음을 향해 치닫는 경쟁에 내몰리지 않게 되었다.
변형되어버린 세계는 더 이상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세계의 변형과 시험이 완전히 같은 건 아니라는 거겠지.'
많은 것들이 그대로였다.
수호신은 없어졌지만, 상태창은 떴다.
여전히 인간들은 신력과 스킬을 가진 채로 여전히 이 땅을 활보하는 마물들과 싸우며 살아갔다.
여전히 마물을 잡아 얻은 코인으로 아이템을 사면서.
문혁이 피식 웃었다.
'많은 것들이 사라졌는데 남은 것들 중 하나가 하필 성전(聖殿)의 장사치라니.'
테이블 반대편에 앉은, 이제는 거의 덩치가 사람만 해진 록시의 전서구가 문혁의 손등에 발을 올리자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거래 성립. 10,600코인을 지불합니다.]
전서구의 목소리에 미안함이 묻어났다.
"말씀드렸듯이, 이번에 주문하신 물건들은 구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리우. 이해 하시쥬?"
문혁이 입꼬리를 당기며 대답했다.
"그럼요. 저희가 하루 이틀 거래하는 것도 아니고."
전서구가 고개를 숙였다.
"고맙수, 번번이 사정 이해해주시고. 어쨌든 말씀하신 것들은 내가 우리 상단 이름을 걸고 48시간 안에 보내드리리다."
어느새 세계 최대의 대상(大商)이 된 록시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건 문혁이 서울역을 경영하며 지금껏 록시와 쌓아온 관계의 결실이었다.
문혁이 선선히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새하늘이 무너지고 사마에트가 죽으면서 이 땅의 성스러움은 모두 사라졌다.
'성속(聖俗)에서 성이 사라졌다면, 가장 세속적인 상인이 남는 게 당연하군.'
"얼라리? 왜 갑자기 웃소?"
"아니, 아닙니다."
자리에서 일어선 문혁은 창으로 가 커다란 창문을 활짝 열었다.
"48시간 이내에, 틀림없이."
말을 남긴 전서구가 열린 창을 지나 어두워지는 하늘 저 멀리로 날아갔다.
문혁의 시선이 전서구가 날아간 궤적을 따라갔다.
동편 광장의 한가운데 만신전에 둘러싸인 성화가 빛줄기를 내뿜고 있었다.
불행히도, 사마에트가 죽은 후 모든 성역의 성화가 약해졌다.
그나마 다행인 건 새하늘에서 추락한 타락신들이 차가운 타이탄이 아닌 성화 곁의 만신전에 머물기를 택했다는 점이었다.
만신전에 깃든 타락신들의 기운이 성화를 밝혀주었기에, 성화는 여전히 밝게 타오르고 있었다.
물론 사마에트가 죽기 전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보랏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 아래로 서울역 주변의 부서진 건물들과 그 위로 점점히 날아다니는 마물들이 보였다.
세상은 여전히 아포칼립스였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아포칼립스에 적응해 살아가고 있었다.
문혁은 고개를 돌려 벽에 걸린 전술지도를 보았다.
지도에 표시된 성역의 숫자가 몇 달 새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
홍염의 산을 공략하면서 입은 손실은 올림포스 병합과 바빌론의 합류로도 메워지지 않았다.
그렇게 급락한 전력으로 서울을 커버해오기를 몇 달, 이제야 서울은 안정세에 접어들고 있었다.
문혁은 공략전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 하나하나의 이름을 기억했다.
그중 몇 사람의 이름이 머리를 스쳤다.
'김만웅, 강상중, 박정수, 카렌 스나이더.'
숨 가쁘게 바쁜 나날들 속에, 떠난 이의 부재를 애도할 시간 같은 건 허락되지 않았다.
문득 '문혁이 동생' 하는 만웅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아, 문혁은 눈을 질끈 감았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바람 좀 쐬어야겠다.'
눈을 뜬 문혁은 큰 숨을 내쉬고 전술 지휘본부를 나섰다.
이렇게 가슴이 답답해질 때면 문혁이 향하는 곳이 있었다.
* * *
문혁이 향한 곳은 타이탄 격납고였다.
격납고 안에는 홍염의 산 공략전에서 살아남은 타이탄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문혁은 멈춰버린 그들을 지나 귀퉁이의 계단을 통해 격납고 최하층으로 향했다.
한때 소울 프레임이 대기하고 있던 이곳에는 이제 세 대의 타이탄이 잠들어 있었다.
최하층 비밀 격납고에 들어서자, 눈앞 좌우로 여전히 혼이 깃들어 있는 두 대의 타이탄이 왕릉을 지키는 거신상처럼 서 있었다.
오른쪽이 오디나스가 깃든 '나글파르', 왼쪽에는 엘가가 깃든 '니드호그'였다.
불가해(不可解)한 기술력을 가진 드워프 에론 클라드는 동료들과 함께 두 타이탄의 생김새를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하체가 없던 나글파르에는 다리를 붙여 이집트의 거상 같은 모습으로 만들어 놓았고, 용인 형태의 니드호그는 거미의 하체를 가진 아라크노이드로 아예 형체를 바꿔 버렸다.
오디나스와 엘가.
하나는 시험의 보스였다가 연옥에서 돌아온 타락신, 또 하나는 기관원이었다가 지하의 수호자에게 거둬진 타락신.
수많은 타락신들이 차가운 몸과 어두운 방이 싫다고 만신전으로 터를 옮겼지만, 이들은 무덤 같은 지하를 택했다.
'본디 무덤에 가까운 존재이기 때문이겠지.'
문혁이 발걸음을 옮기자 두 타이탄의 눈에 불이 들어왔다.
이들과의 친분도 꽤 깊어져 있었다.
오디나스가 말했다.
- 일주일 만이군. 잘 자고 있었는데 말이야.
문혁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자는 동안 시간도 잽니까?"
- 싫어도 어떡하나. 몸에 시계가 달려 있는걸.
오디나스의 목소리가 막 잠에서 깬 듯 나른했다.
반면 엘가의 목소리엔 걱정이 묻어 있었다.
- 오늘은 얼굴이 부쩍 어둡다. 무슨 고민이 있어서 온 거지?
문혁은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냥…. 어르신을 뵙고 싶습니다."
그들 사이 저 너머로 세 번째 타이탄, '해안선의 귀신'이 깃든 현무가 서 있었다.
홍염의 산 공략전에서 바닥까지 힘을 짜낸 해안선의 귀신은 그 후로 줄곧 침묵했다.
그 후로 고민이 있을 때마다, 문혁은 침묵하는 현무의 얼굴을 오래도록 올려다보곤 했다.
스물여섯 개의 시험을 해치며 그래왔듯, 해안선의 귀신이 말을 걸어주길 기대하며.
- 기대하는 마음은 알겠다만, 깨어날 기미는 없었다.
엘가의 말에 오디나스가 덧붙였다.
- 아직은 깨어날 때가 아니야. 조금 더 기다려야 될 거다.
그때 등 뒤에서 진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역시, 여기 있었네."
문혁은 돌아서서 허리를 숙이고 헉헉대는 진아를 바라보았다.
비그리드에서 귀환한 그녀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레깅스와 자켓 차림에 긴 머리를 포니테일로 질끈 묶고 있었고, 가녀렸던 몸에는 단단하게 근육이 붙어 날렵한 느낌을 주었다.
그녀가 등에 멘 새까만 목검은 '세상 끝의 불꽃'이 이 땅에 남긴 재였고, 타락신 '낙원의 수문장'은 여전히 거기 깃들어 분홍빛 오오라를 내뿜었다.
헐떡이며 문혁에게 달려온 그녀가 문혁의 손을 잡았다.
부드러운 손짓과 달리 강인한 성검사의 손에는 굳은살이 촘촘하게 박혀 있었다.
"오빠, 빨리 가자!"
그녀의 말투엔 몇 달 전과는 확연하게 질이 다른 애정이 담겨 있었다.
"창훈 씨가 깨어났어!"
"아!"
탄성이 절로 나왔다.
홍염의 산에서 혜경과 함께 '지하의 수호자'의 그릇이 되었던 창훈은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든 상태로 지금까지 굳어 있었다.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숨조차도 거의 쉬지 않는데도 지금까지 살아 있던 건 아마도 그의 몸을 빌렸던 마신의 가호였을 것이다.
혜경은 그나마 사정이 나아서 가끔 제정신을 차리긴 했지만, 그것도 정말 가끔이었다.
평소의 혜경은 곰 인형에 매달리는 아이처럼 굳은 남편의 몸을 쓰다듬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좁은 병실 안에서 미라처럼 바싹 말라가는 창훈과 배설물을 뭉개며 버르적거리는 혜경을 볼 때마다 문혁의 마음은 미어졌다.
그런데 드디어, 창훈이 깨어난 것이다.
"정말 얼마 만인지 모르겠네. 빨리 가자 오빠."
애써 밝은 척했지만, 진아의 목소리에서도 부부를 향한 연민이 묻어 나왔다.
"그래, 가자."
엘가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 마침내 그 사람들도 깨어났네.
문혁은 현무를 돌아보았다.
자기에게 연인이 생겼다는 그 말을 해안선의 귀신이 들어줄 그 날이 오기를 기대하며.
- '해안선의 귀신'도 반드시 깨어날 게다. 꺾이지 말고 기다려라.
방을 나서는 문혁의 뒤로 오디나스의 목소리가 울렸다.
* * *
헐레벌떡 뛰어간 문혁이 병실 문을 열어젖혔다.
"창훈씨!"
병상에 앉아 벽에 몸을 기대고 있던 창훈이 힘없이 손을 들었다.
"오랜만입니다."
창훈의 몸에 침을 놓고 있던 태성이 홀홀 웃었다.
"빨리 왔구먼."
문혁은 얼른 달려가 창훈의 손을 잡았다.
형편없이 말라버린 손에 뼈마디가 툭툭 불거져 있었다.
볼이 불쑥 들어가 해골에 가죽을 걸쳐놓은 것 같이 되어버린 얼굴을 보니 눈물이 툭 흘러나왔다.
창훈이 힘없이 웃으며 물었다.
"왜 울고 그래요?"
문혁은 눈물을 닦고 물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몸은 좀 어떠신가요?"
"배고파요. 정말 배고파 죽겠습니다."
문혁은 살짝 고개를 돌려 더러워진 반대편 침대를 보았다.
혜경은 거기 없었다.
태성이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간 지 얼마 안 됐어."
문혁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때때로 그랬듯, 혜경은 정신을 잃어버린 채로 서울역 곳곳을 배회하고 있을 것이다.
'곧 돌아오겠네.'
그때 병실 문이 삐걱 열리며 혜경이 들어왔다.
'하필 이 타이밍에?'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기껏 깨어났는데 여전히 제정신이 아닌 아내를 보면, 연약해진 창훈에게 무슨 일이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그 걱정은 기우였다.
"오랜만이에요 여러분."
마치 창훈이 지금 깨어날 걸 미리 알기라도 한 것처럼 깨끗이 씻은 그녀는 세련된 옷차림에 옅은 화장까지 한 채였다.
그제야 혜경의 얼굴이 원래는 연예인급이었다는 게 실감되었다.
진아가 입을 벌린 문혁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이를 꽉 깨물고 말했다.
"야, 눈 돌아간다?"
혜경이 웃음을 지으며 창훈에게 과자 봉지를 까서 내밀었다.
창훈이 제일 좋아하는 과자였다.
"옛다. 오다 주웠어."
"아이고 고맙다 여보. 역시 우리 여보 밖에 없어."
창훈이 엷은 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과자를 씹기 시작했다.
진아가 얼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어… 언니? 어…. 화장한 거 처음 봐요."
"간만에 남편 만나는 데 힘 좀 줘 봤지."
혜경이 긴 머리를 쓸어올리며 대답했다.
어쩐지 그녀의 태도가 창훈이 지금 깨어날 걸 알았다는 투였다.
태성도 같은 생각을 한 것 모양이었다.
"아니 혜경이, 남편 깨어날 걸 알았나?"
"그럼요. 부부는 일심동체인걸요."
태성이 머리를 긁적이며 허허 웃었다.
"어… 그게 그런 뜻인가?"
"일심은 맞는데 동체는 아닌 것 같습니다."
창훈이 조금 웃으며 대답했다.
혜경이 창훈의 손을 잡고 말했다.
"이거 봐 여보. 그 여자가 이거 남겨놓고 갔어."
등이 파인 옷을 입은 혜경의 등 뒤에서 잠자리 같은 날개 한 쌍이 길게 돋아났다.
혜경이 날개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기왕 벌레면 나비 날개라도 달아주지, 잠자리가 뭐니 잠자리가."
창훈이 대답했다.
"그거 말고도 더 있지 않아?"
"엄청 많이 있지. 사마귀 발도 있고 전갈 꼬리도 있고 다른 거 많아. 보여줄 게 마력 좀 조정해줄래?"
창훈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안 보여줘도 돼. 자기 지금 전갈 꼬리 뽑아내면 나 죽어."
풋 하고 웃음이 나왔다.
이 사람들은 이 상황에서도 그대로구나.
긴 시험을 함께 해쳐왔던 사람들이 다시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창훈이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근데 이렇게 얼굴 보는 게 오랜만인 게 뭐랄까…. 견우직녀 같네."
혜경이 깔깔 웃으며 대답했다.
"원래 주말부부는 삼대가 덕을 쌓아야 하는 거야. 아마 그 사람들은 전생에 나라라도 구하지 않았을까?"
그때 땅이 쪼개지는 것 같은 굉음이 들렸다.
쿵!
혜경의 눈이 순식간에 노란색으로 물들었다.
언제 웃었냐는 듯, 그녀가 날개를 펴며 서늘하게 물었다.
"마물인가요?"
창훈이 혜경의 마력을 조정할 준비를 하는지 그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진아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냐 아냐, 마물 같은 거 아니에요. 뭐…. 마물보다 무섭긴 하지만."
태성은 안심하라는 뜻으로 창훈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문혁은 휴 하고 한숨을 쉬었다.
"내가 이 근처에선 본체 꺼내지 말라 그랬는데."
말과는 달리 반가움의 미소가 절로 나왔다.
이 정도 굉음을 낼 만한 건 샤믹 프란시스코 본체의 발소리밖에 없었다.
두 주 만에 샤믹이 서울역에 돌아왔다.
그녀와 함께 떠났던 조상원도 함께.
* * *
잠시 후 병실 문이 삐걱 열리며 두 사람이 들어왔다.
한 명은 비늘 하나 없이 깨끗한 피부를 한 샤믹 프란시스코였다.
"오랜만이에요 여러분."
평범한 인간처럼 생긴 저 모습은 그녀의 분신이었다.
63빌딩보다도 거대한 용인의 모습을 한 그녀의 본체는 차원의 사이를 유영하고 있었다.
혜경이 달려가 그녀를 껴안았다.
"샤믹! 샤믹! 완전 오랜만이야. 세상에, 꼬리! 꼬리 어디 갔어? 나 그거 완전 좋아했는데."
"아이, 이거 그냥 분신이에요 언니."
혜경이 포옹을 풀자, 샤믹이 혜경의 얼굴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머, 언니 원래 이렇게 예뻤어요?"
혜경이 꽃받침을 하며 말했다.
"그럼. 너 몰랐구나? 언니 클라스가 이래."
그제야 혜경의 시선이 샤믹의 뒤에 서 있던 사람에게 닿았다.
"그런데 이 사람은 누구…?"
키는 160 중반인 샤믹보다도 작았는데, 풍만한 그녀 옆에 서 있으니 볼품없이 마른 멸치가 따로 없을 정도였다.
제멋대로 자란 더벅머리 아래 피부는 얽었고 처진 눈은 음울했다.
그가 샤믹 옆으로 나와 씩 웃으며 말했다.
"오랜만입니다."
혜경이 화들짝 놀라며 손뼉을 쳤다.
"이 말투… 조상원? 세상에, 상원 씨? 상원 씨 맞아요? 이번 몸은 어쩌다 이렇게 돼버렸대요? 아니 옛날에 그 연예인 뺨치던 몸은 어디 가고……."
"이게 제 원래 몸입니다."
"어머. 죄송."
입을 가린 혜경이 방안을 둘러보며 물었다.
"아니 여러분! 이 사람이 상원 씨래요!"
"어…. 어어?"
입을 떡 벌린 창훈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의 얼굴은 그대로였다.
"어… 다 알았어요?"
그녀의 행동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진아와 태성이 말했다.
"오랜만이에요 상원 씨. 무사해 보여서 다행이에요."
"고생했네."
고개를 끄덕인 상원이 창훈에게 말했다.
"깨어나셨네요. 몸은 괜찮으십니까?"
"아 네, 배고파 죽을 것 같은 거 빼고는 문제없습니다."
입꼬리를 들어 올려 웃은 상원은 태성을 향해 손에 들고 있던 물건 두 개를 내밀었다.
새까만 새의 시체가 상원의 양손에 각각 들려 있었다.
"말씀드린 약재, '까치와 까마귀의 다리'입니다. 불사조의 심장과 동일하게 달이시면 됩니다."
"고맙네."
태성이 새 두 마리를 받아들고 방을 나섰다.
잠깐 방문을 본 혜경이 상원에게 물었다.
"어… 상원 씨, 까치와 까마귀의 다리요? 그거 오작교 같네요?"
"네."
고개를 끄덕인 상원이 높낮이 없이 빠르게 대답했다.
"창훈 씨의 몸을 회복시킬 방법과 혜경 씨가 맑은 정신을 유지하는 방법, 여러 가지로 궁리해본 결과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는 게 최적해입니다."
혜경이 과장되게 질린 표정을 지었다.
"조상원 맞네. 확실하네."
간만에 다시 모인 서울역의 에이스들이 한바탕 웃음을 지었다.
* * *
왁자한 저녁 식사 시간이 지나고 밤이 왔다.
상원의 긴한 부름을 받은 문혁이 서편 광장으로 나왔다.
샤믹과 상원이 손을 잡고 별이 총총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여기도 사랑이 싹트고 있었다.
문혁은 그들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둘 중 먼저 문혁과 눈이 마주친 샤믹이 화들짝 놀라며 손을 놓았다.
'둘이서 오만 세계를 돌아다녔는데 서로 가까워지지 않는 것도 이상하지.'
이어서 문혁을 발견한 상원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상원은 이번에도 떠날 것이다.
그는 떠날 때마다 저런 인사를 했으니까.
"좀 더 쉬고 가시지 않고요?"
"아니오. 지금 가야 합니다. 이번에 갈 곳으로 향하는 차원문은 닫히고 나면 언제 또 열릴지 모릅니다."
"어디로 가시는데요?"
"'오래된 늪지'로 갑니다."
문혁의 얼굴이 굳었다.
오래된 늪지는 마신 '오랜 땅의 이무기'의 영토였다.
아무리 샤믹이 강하다 해도 그곳에서도 무사할 거라는 장담을 할 수는 없었다.
"굳이 가셔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가야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이 있거든요."
"어떤 아이템입니까?"
"영원한 삶을 주는 아이템입니다."
상원이 엷게 웃으며 대답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