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8화. 하늘에 올라 (4)
공허한 우주 속으로 발을 디디니 찰박하는 물소리가 났다.
발밑을 보니 어느새 싯누런 오수가 발밑에 가득 차 너울 치고 있었다.
검은 하늘 위에는 시뻘건 오로라가 뱀처럼 스멀스멀 움직이고 있었고, 그 사이로 무수히 박힌 블랙홀들이 작은 빛마저도 잡아먹고 있었다.
차가운 공허의 기운이 상원의 온몸을 바늘처럼 뚫고 들어왔다.
검은 하늘과 오수의 호수가 만나는 수평선에 시꺼먼 그림자가 거체를 드리우고 있었다.
어두운 밤 속에 우뚝 선 마천루처럼 거대한 그림자의 곳곳에 새빨간 불빛들이 반짝였다.
지금껏 보아온 것들과는 존재의 지평 자체를 달리하는, 어둠마저 잡아먹을 것 같은 그 존재가 바로 새하늘 아버지였다.
마신이 되었는데도 온몸이 떨려왔다.
‘세상 끝의 불꽃’도 ‘지하의 수호자’도 ‘태초의 대족장’도 이런 압박감에 무릎을 꿇었을 것이다.
'나 역시도 무릎을 꿇는다면 그들처럼 승천 시험을 떠받치는 기둥으로 전락하겠지.'
상원은 이를 악물고 새하늘 아버지를 향해 한 발짝을 더 디뎠다.
끌끌거리는 웃음소리가 공허한 우주 가득 울렸다.
- 어서 오너라.
새하늘 아버지가 주변으로 시꺼먼 촉수들을 뻗어 블랙홀들을 휘감았다.
촉수들이 블랙홀의 주변을 휘돌며 부서지던 빛무리들을 빨아서 본체로 흘려보냈다.
찰박
다시 한 발짝을 디디자 새하늘 아버지의 온몸에 시뻘건 불빛들이 다다다다 솟아올랐다.
수천 개의 촉수를 사방으로 내뻗고 수만 개의 눈을 빛내며 부서진 우주를 탐식하는 거인이 상원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차가운 시선에 몸속을 흐르는 마력이 그대로 얼어붙는 것 같았다.
탄식이 절로 나왔다.
'아아.'
타르타로스에서 보았던 그 괴물의 모습마저도 새하늘 아버지의 일부에 불과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저 존재는 그때 보았던 놈보다도 훨씬 추상적이었고, 그래서 훨씬 위협적이었다.
새하늘 아버지가 맥없는 절망의 노래를 불렀다.
- 이곳은 우주의 끝이고,
그의 목소리는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된 사람들이 진이 다 빠진 목소리로 웅얼거리는 합창 같았다.
'그렇구나.'
새하늘 아버지의 말에 이 공간의 본질이 파악되었다.
모든 것이 죽고 다시 태어나는 윤회의 수레바퀴마저도 멈춘 곳, 모든 물질이 찢어지고 시간마저도 죽어 기나긴 간격만이 남은 곳,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의미란 의미는 모두 사라진 곳.
여기는 그런 곳이었다.
머리 위에서 시뻘건 오로라가 물결에 흔들리는 뱀의 시체처럼 출렁였다.
- 나는 허무이며,
새하늘 아버지의 촉수 끝에 감긴 빛무리들이 산산이 부서져 나갔다.
- 절망이다.
그의 온몸에 박힌 새빨간 눈들이 무시무시한 안광을 뿜었다.
새하늘 아버지가 오수 속에 잠겨 있던 몸을 일으키자, 그의 몸이 저 먼 우주로 끝도 없이 솟아올랐다.
지금껏 그 어떤 존재에게서도 느낄 수 없었던 압도적인 존재감이 상원의 몸을 찍어 눌렀다.
징그러운 촉수들이 블랙홀과 오수를 매만졌다.
- 이것이 만물의 결말이다.
육체뿐만 아니었다.
마음마저 꺾이고 있었다.
이게 모든 것의 결말이라면, 삶은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전신을 단단하게 감싸고 있던 하늘색 힘이 서서히 부서지며 연약한 살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늘의 육체가 서서히 부서지고 부서져, 마침내 불신자의 작은 몸이 공허 앞에 내던져졌다.
끝도 없이 거대한 새하늘 아버지 앞에 선 조그맣고 비쩍 마른 그의 몸은 마치 대양에 떠다니는 부초(浮草)만 같았다.
상원은 오수 위에 무릎을 꿇었다.
지독한 악취를 내뿜는 미지근한 오수에 비친 불신자의 얼굴이 절망에 물들어 있었다.
철썩
오수의 파도가 몰려와 뼈와 살을 훑어가자 불신자의 육체마저도 모래성처럼 부서지기 시작했다.
힘없이 사그라드는 육체처럼, 상원을 지탱하던 모든 의미 역시도 사라지고 있었다.
'외롭다.'
부모는 자살했고 미쳐버린 누나는 아비의 손에 죽었다.
승천 시험을 치르는 내내 그 어떤 스킬도, 그 어떤 수호신도 없었다.
평생동안 만났던 그 어느 누구도 상원을 이해하지 못했다.
- 끝없는 고독을 맛보며 몸부림쳐라.
모든 의미를 집어삼키는 새하늘 아버지로부터 상원을 지켜줄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누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 불신자, 뭐 하는 거야?
'누나?'
아니, 누나가 그를 불신자라 부를 리가 없다.
누나의 목소리로 상원을 불신자라 부를 자는 단 하나, 마신 '지하의 수호자' 뿐이었다.
무릎을 꿇고 앉은 상원의 뒤로 오수 기둥이 불쑥 솟아올라 누나의 형상으로 변했다.
모든 이의 아래 있는 마신, 지하의 수호자가 시험 바깥에 던져진 상원의 곁에 온 것이다.
- 불신자란 타이틀이 아깝네. 언제부터 의미에 기대 살아갔다는 거야?
그녀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묻어 있었다.
- 원래부터 아무런 의미도 믿지 않았으면서.
그제야 아주 오래전, 지하의 수호자가 던졌던 질문이 생각났다.
'그렇구나.'
신들이 군림하는 세상에서, 불신자란 어떤 의미인가?
'없다. 아무런 의미도 없어.'
신들이 모든 의미의 원천인 세상에서 신을 믿지 않는 자가 의미를 가질 수 있을 리 없다.
그렇기 때문에 불신자는, 그 세상을 뒤집을 수 있는 가능성이다.
의미가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곳에서, 의미가 없이도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상원은 그 심연 같은 무의미 속으로 존재를 내던졌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지하의 수호자가 상원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 좋네.
새하늘 아버지의 수많은 눈들이 지하의 수호자를 노려보았다.
그 눈길 한 번에 지하의 수호자가 처절한 비명과 황색 안개로 산산이 부서져 흩어져 버렸다.
- 끄아아아악!
고작 눈짓 한 번으로 그 강대한 마신을 쫓아낼 수 있는 자, 새하늘 아버지는 그런 존재였다.
지하의 수호자가 사라지자, 우주의 차가운 공허가 기다렸다는 듯 온몸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몸은 더 이상 뜯겨 나가지 않았다.
이어서 모든 의미를 비워낸 상원의 몸속으로 다시 오래된 하늘의 힘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상원은 두 눈을 들어 공허의 우주를 직시했다.
"아버지."
블랙홀을 붙잡은 수천 개의 촉수가 꿈틀거렸다.
다시 한번, 상원은 몸을 일으켜 오수의 호수를 딛고 공허를 향해서 걷기 시작했다.
상원이 디딘 수면 위로 새파란 발자국이 남았다.
그 발자국은 꼭 맑은 하늘을 통째로 비추는 호수의 잔잔한 수면 같았다.
뱃속이 단단했다.
"이 우주의 끝에 아무것도 없다 해도, 결국은 모든 것이 공허 속으로 사라진다 해도."
한 걸음을 디디자 오래된 하늘의 힘이 몸을 뚫고 튀어나왔다.
또 한 걸음을 디디자 머리칼이 아침노을처럼 새빨갛게 자라 등 뒤로 흩날렸다.
"나는 살아가겠소."
다시 한 걸음을 디디자 새파란 힘이 폭사하면서 상원은 파랗게 빛나는 거인이 되었다.
감각이 널리 확장됨에 따라 하늘이 머리에 닿을 듯 가까워지고 발밑의 오수는 멀어졌다.
최초의 인간이 땅을 디디는 그 순간부터 그의 머리 위에 있었던 푸른 하늘이 육신 그 자체가 되었다.
저 멀리 수평선에 선 새하늘 아버지가 대등해졌다.
"그 허무를 껴안겠소. 최선을 다해서."
상원은 오래된 하늘을 이고 살아가는 것들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오수를 뚫고 올라온 찬란한 별빛들이 손끝에 모여 은하의 모습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허무에 맞서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의 울림이 공허를 서서히 채워갔다.
- 부질없는 짓이다.
차갑게 대답한 새하늘 아버지가 촉수를 휘둘러 블랙홀을 내던졌다.
한없이 무거운 별들의 사체가 쇄도했다.
상원은 삶의 힘을 가득 그러쥔 양손을 휘둘렀다.
차가운 블랙홀이 삶의 힘을 찢고 상원의 양팔을 부수었다.
산산이 부서진 하늘의 힘이 나선형의 빛나는 흐름을 남기며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상원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음껏 부수어보시오."
다시 한 걸음을 내디디자 언제 그랬냐는 듯 새로운 팔이 자라났다.
다시 별빛이 양손에 모이고 다시 블랙홀이 날아오고 다시 양팔이 부서졌다.
그렇게 부서지고 재생하기를 반복하며, 상원은 한 걸음 한 걸음 허무를 향해 걸어 들어갔다.
‘태어나고 다시 태어날지니.’
허무의 파도 앞에서 여전히 육체는 모래성처럼 쓸려났다.
팔이 부서지고 다리가 뜯기고 몸통이 꿰뚫리면서 지독한 고통이 엄습했다.
하지만 걸어갈 의지가 남아 있었다.
파도에 쓸린 조약돌처럼 이리저리 굴러다니면서도 마음은 아직 굳건했다.
‘죽음이란 거짓이다.’
그렇게 걷고 걸어서, 마침내 새하늘 아버지와의 거리가 팔이 닿을 정도로 줄어들었다.
거기에 서니 새하늘 아버지의 형상이 분명하게 보였다.
"이게 당신의 정체였군."
새하늘 아버지, 그는 사실 무한히 많은 시체들의 집합이었다.
그 시체들은 하나같이 끝없는 절망을 직면하고 절규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시체 하나하나가 시뻘건 눈을 뜨고 상원을 노려보았다.
수 없는 시체들이 부르는 절망의 노래가 새하늘 아버지를 휩싸고 돌았다.
상원은 새하늘 아버지를 향해 두 팔을 들려 했다.
그 순간 절망감이 물밀듯 몰려왔다.
그 고된 순간들을 이겨내고 마침내 새하늘 아버지의 앞에 섰는데, 거짓말처럼 더 이상 팔이 재생되지 않았던 것이다.
살아가는 것들의 의미라고 무한할 리가 없었다.
새하늘 아버지가 블랙홀을 들어 다리를 내리치자 다리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풀썩 꺾여버렸다.
- 끌끌끌끌, 꼴좋구나. 사지가 잘리고서도 발버둥 치는 게 참 벌레 같구나.
새하늘 아버지의 촉수가 목을 휘감았다.
촉수를 타고 시체들이 꾸물꾸물 움직이며 하늘의 육체를 물어뜯었다.
그 입질 한번마다 절망이 몸을 파고들면서 마음이 무너져갔다.
새하늘 아버지의 목소리가 수많은 목소리로 흩어졌다.
- 너도, 여기로 와라.
- 우리와 하나가 되자.
휘두를 팔도 서 있을 다리도 없는데 새하늘 아버지에게 맞선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그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아니, 아니다!'
아직 움직일 수 있는 팔과 다리가 있었다.
와사삭, 하늘의 육체가 부서짐과 동시에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탈신을 해제합니다.]
상원은 오래된 하늘의 힘으로 된 육체를 벗어던졌다.
그러자 하늘의 육체의 머리로부터 신화의 몸이 튀어 나갔다.
그렇게 신화의 몸을 두른 채로, 상원은 새하늘 아버지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야아아아악!"
상원의 두 손끝에, 여전히 찬란한 삶의 힘이 은하처럼 회전하고 있었다.
새하늘 아버지의 몸에서 쑥 자라난 시체로 된 나무들이 절규와 함께 상원을 향해 짓쳐 들어왔다.
- 허락할 것 같으냐!
- 끄아아아악!
무수히 자란 시체의 나무가 신화의 몸을 붙들었다.
신화의 몸이 시체의 이빨과 손톱에 뜯겨 부서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 상원의 주변으로 별빛을 두른 톱니바퀴들이 나타나더니 신화의 몸이 부서진 자리에 가 박혔다.
그러자 신화의 몸이 부서지는 것보다 빠른 속도로 재생하기 시작했다.
'기계장치의 신'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렸다.
- 내가 만든 기계는 끝까지 AS 해준다. 이게 내 가호야. 어때, 쩔지?
그게 상원이 받은 처음이자 마지막 가호였다.
가슴이 따뜻해졌다.
"고맙습니다."
- 그래, 힘내! 저 시체 덩어리 따위 자근자근 밟아버리라고!
기계장치의 신, 한때는 절대자였지만 그 자리를 후대에 내주고 영락해간 승천자.
그런 자가 가진 힘이 많을 리가 없었다.
톱니바퀴는 빠르게 줄어들었고, 그때마다 기계장치의 신의 짐짓 호기로운 목소리도 작아졌다.
그리고 마침내, 부서지고 부서져 새하늘 아버지의 몸이 팔이 닿는 거리에 왔을 때 별빛이 덜컥 그쳐 버렸다.
기계장치의 신이 침묵했다.
'아아…!'
그와 동시에 다시 한번 수없이 자라난 시체의 나무가 신화의 몸을 갈기갈기 찢었다.
팔다리가 뜯기고 내장이 후벼지고 공허한 우주 속으로 인조 혈액이 흩날렸다.
시체들이 낄낄 웃으며 상원을 마음껏 비웃었다.
- 끄하하하하! 너도 우리와 하나가 되는 거다!
- 이리 와 이리 와 이리 와!
- 불신자… 불신자… 불신자….
‘결국 저 시체들 중 하나가 될 운명이었나?’
마음이 꺾이려는 그 순간, 잡음과 함께 기계장치의 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 쿨럭 쿨럭…. 이봐, 깜짝 선물 하나 준비해뒀거든?
신화의 몸이 산산이 부서지며 남은 잔해들이 다시 희미한 별빛과 함께 붙기 시작했다.
- 지금까지 늙은이 비위 맞춰 주느라 고생했어. 고마워. 이건 내 마지막 보답이야.
별빛을 띤 덩어리가 점점 분명한 형체를 이루어 갔다.
- 남들이 만든 신화에 기대는 건 여기까지야.
별빛이 그치며 나타난 수척하고 끈적끈적한 손은 너무나도 익숙했다.
그건 다름 아닌 불신자의 손이었다.
- 이제 이 신화를 딛고 서서 니 신화를 만들어.
그 말을 끝으로 기계장치의 신은 침묵했다.
어떤 힘도 받아들이지 못했던 불신자의 몸 주위로 다시 한번 찬란한 별빛이 맺혔다.
발에 무언가가 걸려 내려다보니, 신화의 몸의 드넓은 어깨가 불신자의 맨발을 받치고 있었다.
부서진 거인의 어깨를 디디고, 상원은 별빛이 가득한 손으로 눈앞에 있는 시체의 얼굴을 매만졌다.
가문 땅에 내리는 비처럼, 축축하게 부서진 시체의 피부 속으로 별빛이 흘러 들어갔다.
그러자 시체의 뻥 뚫린 눈코입으로 별빛이 서서히 흘러나왔다.
시체들의 신음과 함께 부서져 내리기 시작했다.
- 아…. 아아아….
별빛이 주변의 시체들로 서서히 퍼져가면서, 그 눈 속에서 빛나던 새빨간 안광이 별빛으로 바뀌어 갔다.
빛줄기가 된 별빛이 새하늘 아버지를 이룬 시체의 몸을 뚫고 나가 공허를 뚫고 저 멀리로 달음질쳤다.
아버지를 이루고 있던 시체들이 서서히 군체로부터 떨어져 나가 우주의 티끌이 되기 시작했다.
승천 시험의 주관자, 새하늘 아버지가 그렇게 부서지고 있었다.
별빛으로 물든 안광들이 상원을 내려다보았다.
- 불신자, 너는 하늘에 오를 길을 닫았다. 이제 이 우주에는 그 어떤 승천도 없을 것이다. 생존과 투쟁만이 가득할 것이다.
상원이 피식 웃었다.
"삶이 원래 그런 것 아닌가?“
상원은 알았다.
이 또한 찰나일 뿐이었다.
지금 이 공허를 채운 별빛들은 얼마 가지 못해 공허 속으로 침잠할 것이다.
우주의 끝에 있는 이 공간을 채운 의미들도 모조리 사그라들어, 손쓸 수조차 없는 무의미만이 남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천 시험은 끝났다.
이 땅에 다시 시험은 없을 것이다.
군체를 이루던 시체들이 산산이 부서져 나가면서, 한 구의 시체가 남았다.
어쩐지 그 시체의 얼굴이, 하늘방 대들보에 매달려 있던 아버지를 닮아 있었다.
- 아들아.
시체가 늘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 재미있는 결말이로구나. 이 공허 속에서 오지 않을 죽음을 기다리는 처지라니.
끝없는 공허가 몸을 감쌌다.
새하늘 아버지는 물리쳤지만 정작 이 공허의 우주로부터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상원은 이 공간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영락해갈 것이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볼 얼굴이 아버지의 얼굴이라니.
”염병.“
그때 첨벙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 멀리 거대한 형체가 오수를 가르고 헤엄쳐오고 있었다.
저 정도로 거대한 존재라면 단 하나뿐이다.
샤믹 프란시스코.
상원은 씩 웃으며 아버지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우리는 삶을 마주 보며 계속 살아갈 거요. 서로 싸우고 기대고, 그리고 사랑하면서."
샤믹이 부르짖었다.
"대장!"
마지막 시체가 상원을 향해 손을 뻗었다.
- 많이 컸구나.
마지막 시체가 재가 되어 사라지기 시작했다.
끝없는 오수의 바다를 헤엄쳐온 샤믹의 거체가 상원을 향해 솟아올랐다.
그녀가 손을 들어 상원의 몸을 받쳤다.
괴수가 된 샤믹의 손바닥은 보기와는 달리 침대처럼 부드러웠다.
그녀는 괴수가 되어서도 이목구비가 그대로였다.
샤믹이 눈을 둥그렇게 뜨고 물었다.
"대장…. 대장? 대장 맞죠?"
저런 몸을 하고서도 강아지 같은 성격은 똑같구나.
상원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맞아요."
손바닥 위에 누워서, 상원은 샤믹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커다란 눈이 눈물로 그렁그렁했다.
"다들 걱정하고 있어요. 돌아가요 대장."
고개를 끄덕이는 상원의 눈앞이 일렁였다.
상원은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어…. 울어요 대장?"
"아니…. 아닙니다."
뺨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마지막으로 운 때가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