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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성 회귀자의 아포칼립스-227화 (227/230)

제227화. 하늘에 올라 (3)

어찌 된 일인지, 그 순간 상원은 '신화의 몸' 밖으로 튕겨 나왔다.

상원은 조그맣고 음침한 불신자의 모습을 하고서 신화의 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섯 마신들의 힘이 무릎을 꿇고 앉은 신화의 몸을 뚫고 나왔다.

새까만 지옥 불이 몸을 태우고 새파란 귀신 불이 몸을 얼렸으며, 비취색 독기가 몸을 녹이고 싯누런 그림자가 몸을 굳혔다.

타고 얼고 녹고 굳은 조각들이 신화의 몸 주위로 폭풍과 마그마에 쓸려 돌아다녔다.

부서져 가는 몸이 새삼스레 낯설었다.

얼굴을 덮고 있던 긴 백발이 전장의 폭풍에 쓸려 나부끼자 날카롭고 정갈한 얼굴이 드러났다.

상원은 신화의 몸의 백옥 같은 볼을 쓸어보았다.

살결은 부드럽고 매끈했다.

'참 잘 생겼구나.'

이 몸으로 수 없는 사선을 넘어왔다.

그런데도 왜 갑자기 신화의 몸이 이렇게 낯설어 보이는지 상원을 알 수 없었다.

그 잘생긴 얼굴과 단단한 몸, 그 안에 들어있는 수많은 스킬들과 신력들, 모두 상원의 것이 아니었다.

상원은 원래의 볼을 만져보았다.

불신자의 볼은 끈적끈적하고 우둘투둘했다.

그렇게 신화의 몸을 찢고 나오던 수 없는 힘들이 점차로 섞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각자의 색깔이 하나의 흐름 속으로 뒤섞이는가 싶더니, 이내는 흐름이 그 자체로 새로운 힘이 되었다.

단순히 다섯 힘의 합계가 아닌, 완전히 질적으로 새로워진 그 힘은 맑은 하늘색에 가까웠다.

하늘색 힘이 서서히 커지더니 이내는 신화의 몸을 완전히 집어삼켜 버렸다.

그렇게 하늘색으로 불타는 사람의 형상이 된 신화의 몸이 스스로 일어섰다.

신화의 몸이 눈을 떴다.

전신에 들끓는 하늘색 힘과는 달리 눈은 새빨갰다.

신화의 몸이 스스로 상원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말없이, 상원은 하늘색 불꽃 속에서도 똑똑히 보이는 크지만 부드러운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 손짓은 분명 이제 가야 할 시간이라는 뜻이었다.

'이 몸이 부서지고 나면 어떻게 될까? 죽는 건가?'

기계장치의 신은 연옥에 가기 직전인 상원을 잡아다 신화의 몸에 넣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상원은 신화의 몸에 붙어있는 귀신 같은 처지였다.

그러니 신화의 몸이 부서지면 상원이 사라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지 않아.'

상원은 고개를 저었다.

기계장치의 신은 상원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했다.

그 말인 즉, 이 몸이 부서지고 상원이 사라지는 게 유일한 결말이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상원은 아무도 모르는 결말, 그 미지의 영역을 향해 나아가기로 했다.

가느다란 손을 뻗어 신화의 몸의 손을 잡자, 의식이 신화의 몸속으로 쑥 빨려 들어가면서 감각이 신화의 몸으로 확장되었다.

마력 저장고로부터 흘러넘치는 힘은 초가을의 아침 공기처럼 쾌청했다.

한 단어가 머릿속에 분명하게 떠올랐다.

'하늘.'

이건 하늘의 힘이었다.

시험의 너머에 있는 거짓된 구원의 하늘이 아닌, 항상 사람의 머리 위에 있던 진짜 하늘의 힘.

상원은 한때는 푸르렀던 비그리드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부서진 하늘 너머 새까만 공허의 우주에서, 사마에트가 짐승 같은 얼굴로 상원을 노려보고 있었다.

저것이 바로 새하늘 아버지가 이 땅에 투영된 모습이었다.

"불신자…!"

그녀의 등 뒤로 긴 촉수들이 꿈틀거렸다.

상원은 새하늘 바깥에서 우주를 빨아먹던 새하늘 아버지를 떠올렸다.

그때 상원이 느꼈던 건 세상에 태어나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깊고 깊은 공포였다.

하지만 지금은 무섭지 않았다.

마음속에서 감정은 자리를 비웠다.

단지 저기에 있는 저 존재를 쓰러뜨려야 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래야 이 돌고 도는 세상의 수레바퀴를 시험이라는 수렁에서 건질 테니까.

상원은 깊은숨을 내쉬었다.

"후우."

백발이 새빨갛게 물들면서 발목에 닿을 듯 길게 자라났다.

발밑에는 하늘을 통째로 구겨 놓은 것 같은 엄청난 기가 모여 있었고, 몸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변형이 완료되었습니다.]

이어서 뜬 메시지는 그렇게 오래도록 시험에 임하며 상원이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이었다.

[의태 형상의 성질이 시스템으로 측정되지 않습니다.]

[남은 변형 시간을 추산할 수 없습니다.]

‘시스템으로 측정할 수 없는 힘이라니.’

그뿐만이 아니었다.

세계 전체가 상원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주변을 가득 채운 수험자들, 타락신들과 청소부들, 그것들 모두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다.

심지어 저 하늘 너머의 사마에트마저도.

하늘과 땅, 산과 초목과 바람, 화산과 불꽃이 상원에게 힘을 주었다.

‘신이 된다는 건 이런 것이구나.’

상원은 그대로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바람과 구름이 상원의 곁을 스쳤다.

길게 자라난 머리카락이 등 뒤로 망토처럼 펄럭였고 새빨간 안광이 상원이 지나는 자리로 긴 궤적을 남겼다.

상원의 시선 끝에 사마에트의 몸뚱이가 있었다.

"이놈!"

노호성을 지르는 사마에트의 이마에 시뻘건 눈알들이 돋아났다.

초록색 눈동자 하나하나에 분노와 광기가 가득 차 있었다.

눈알뿐만 아니라 피부 여기저기도 새까맣게 물들었고 일곱 쌍의 날개 중 몇 개는 꿈틀대는 촉수 덩어리로 변해 있었다.

사마에트가 점점 본모습을 드리우기 시작한 것이다.

일반적인 존재라면 목격한 것만으로도 죽거나 미쳐버릴 광경이었지만,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았다.

저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한 본체의 모습을 이미 본 터였다.

"크아아아악!"

사마에트의 괴성과 함께 시꺼먼 살덩어리들이 상원을 향해 쏟아졌다.

쏟아지는 덩어리들에 시뻘건 눈들과 긴 촉수들이 돋아나며 청소부가 되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청소부들이 싯누런 오수를 뿜었다.

“꽤애애애액!”

끔찍스런 독기가 담긴 오수가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방향을 바꿀 필요는 없었다.

그저 하늘을 향해 오를 뿐이었다.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새파란 힘이 오수에 닿자, 비가 바람에 흩어지듯 오수가 상원이 뿜어내는 힘에 밀려 산산이 흩어져 버렸다.

그러자 청소부들이 공중을 헤엄쳐 상원에게 다가왔다.

"꾸르르륵!"

"꾸르르르륵!"

구름처럼 몰려든 청소부들이 상원의 앞을 막아섰다.

놈들의 촉수에 줄지어 돋은 날카로운 이빨이 짐승의 털처럼 빽빽했다.

시뻘건 눈에 박힌 초록 눈동자들이 상원을 쏘아보았다.

하지만 상원의 마음은 넓은 하늘처럼 평온했다.

타르타로스에서 놈들을 보았을 때 느꼈던 끝 간데없는 공포 같은 건 한 줌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어떤 경계도 그 어떤 방어도 없이, 상원은 지상을 향해 치미는 햇살처럼 놈들을 향해 몸을 던졌다.

새파란 기운에 닿은 놈들이 가루가 되어 터져나갔다.

놈들이 흘린 누런 오수마저도 사막의 뜨거운 모래 위에 뿌린 물처럼 증발해버렸다.

햇살이 구름을 꿰뚫듯, 상원은 놈들을 꿰뚫고는 그 기세 그대로 날았다.

청소부가 쏟아지고 증발하기를 반복했고, 그럴수록 하늘을 뒤덮은 사마에트의 모습은 점점 가까워졌다.

"끄아아아악!"

사마에트가 비명에 가까운 절규를 지르며 살덩어리들을 쏟아부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렇게 날고 날아, 마침내 상원의 손 바로 앞에 사마에트의 살결이 와 닿았다.

멀리서는 그저 백옥처럼만 보였던 그녀의 피부엔 사냥개의 이빨보다 훨씬 날카로운 가시들이 빽빽하게 돋아 있었고 피부 아래로는 새까만 살덩이들이 꾸물꾸물 기어 다녔다.

상원의 손바닥이 그녀의 살에 닿으려는 찰나, 사마에트가 상원을 불렀다.

"불신자."

상원은 우뚝 비행을 멈추고 그녀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분노와 비웃음 같은 모든 표정들은 사라져버리고, 그녀는 맨 처음 보았던 그 날처럼 시체 같은 무표정을 하고 있었다.

사마에트가 물었다.

"정녕, 이 너머를 보고 싶은 것이냐? 아무것도 없는 그 공허를 보고 싶은 게야?"

상원은 끄덕임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나? 이 세상엔 그 어떤 의미도, 가치도 없다는 걸. 그 어떤 극적인 상승도 하강도 없다. 그저 작은 부침만이 계속될 뿐이야."

상원은 땅을 내려다보았다.

수험자들과 타락신들, 극적인 상승을 통해 지고의 자리로 등정하길 꿈꾸는 자들이 거기 있었다.

입을 열자 목소리가 주변에 우렁우렁 울렸다.

- 그 꿈은 거짓이다.

사마에트가 차갑게 되물었다.

"저 차가운 공허에 던져지는 게 새하늘에서 꿈을 꾸는 것보다 낫다는 거냐?"

머릿결 사이로 바람이 불었다.

상원은 사마에트에게 천천히 다가서며 대답했다.

- 적어도 네놈의 먹이로 사는 것보다는 낫다.

그 순간, 사마에트가 입을 크게 벌리며 대소를 터뜨렸다.

"하하하하하! 끄하하하하하하!"

그녀의 입속에는 이빨들이 날카로웠고, 혀에도 작은 입이 수없이 돋아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이마에 나타났던 것처럼, 그녀의 온몸에 수많은 눈과 입들이 나타났다.

시뻘건 눈에 박힌 초록색 눈동자가 일제히 상원을 쏘아보았고, 수많은 입들은 거무튀튀한 살덩어리를 끊임없이 뱉어내고 있었다.

온몸에 돋은 가시는 촉수가 되어 꿈틀거렸고 일곱 쌍의 날개 역시도 하나 하나가 거대한 촉수로 변했다.

사마에트가 외쳤다.

"와라 불신자! 전심전력으로 상대해주마!"

그 목소리는 더 이상 곱고 고운 여인의 것이 아니었다.

목소리라기보다는 잡음이 잔뜩 낀 라디오 소리에 가까웠다.

대답은 필요 없었다.

상원은 하늘을 걸어 사마에트를 향해 다가갔다.

그러자 상원의 눈앞, 그녀의 명치가 쩍 하고 세로로 갈라지며 파리지옥처럼 생긴 입이 되었다.

그 안에는 구불구불 구부러진 내장이 꿈틀거렸고, 그 위로 형체마저 불분명한 살덩어리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어디서도 맡아보지 못했던 역한 비린내가 풍겨 왔다.

사마에트의 머리가 아닌 가슴에 달린 입이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쓰아아아아악!"

그와 함께 내장에 붙어 시꺼멓게 꿈틀거리던 살덩어리들이 새까만 파도처럼 일제히 상원을 향해 쏟아져 나왔다.

상원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상원을 향해 쏟아지듯 달려오던 괴물들은 상원의 몸을 건드리지도 못하고 재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살덩어리들이 쏟아져 나와 모습을 드러낸 썩어가는 장기 안으로 공허의 기운이 흘렀다.

인간의 마음에서 한껏 멀어진 상원에게도 그 모습은 끔찍했다.

하지만 이것도 단지, 새하늘 아버지가 이 땅에 비쳐진 모습일 뿐이었다.

이 껍질 너머에는 새하늘 아버지의 진정한 모습이 있었다.

그를 마주해야 했다.

상원은 양손에 힘을 모아 그대로 사마에트를 향해 쏘았다.

그러자 굉장한 굵기의 광선이 그대로 사마에트의 몸을 꿰뚫었다.

시퍼런 균열이 사마에트의 온몸을 뒤덮었고 이어서 사마에트가 산산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사마에트는 광기에 가득 찬 눈으로 상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침내 사마에트의 몸이 잿더미가 되어 허공에 흩날려 사라졌다.

사마에트가 서 있던 자리 너머로, 누런 오수로 된 폭포가 보였다.

상원은 그곳을 향해 발을 디뎠다.

눅눅한 오수 속에 몸을 담그니 첨벙 하는 소리가 들렸다.

천천히 하지만 멈추지 않고, 상원은 오수의 폭포를 건넜다.

그 폭포 너머에 불빛 하나 없는 시꺼먼 우주가 보였다.

그 우주의 중심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상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 불신자.

새하늘 아버지가 수천 개의 시뻘건 눈을 떴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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