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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성 회귀자의 아포칼립스-222화 (222/230)

제222화. 하늘에 계신 (1)

그 순간 짙은 어둠이 해일처럼 밀려와 상원을 집어삼켰고, 물에 빠진 듯 꼬르륵 소리가 났다.

그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외눈 현자'의 갑옷이 찬란한 금빛을 내뿜었다.

상원은 그 원형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오딘."

신들이 황혼을 맞을 때, 속박에서 풀려난 늑대에게 먹혀 최후를 맞이하는 자.

외눈 현자 역시도 다른 많은 승천자들처럼 그 원형과 같은 결말을 맞이하고 있었다.

파도치는 어둠이 수 없는 늑대 떼가 되어 외눈 현자의 온몸을 물어뜯었다.

"크르르릉!"

외눈이 시뻘겋게 충혈된 현자는 얼굴은 잔뜩 구긴 채로 짐승처럼 소리치며 창을 휘둘렀다.

"크아아악!"

죽음을 앞둔 그에게선 평소의 바위 같은 점잖음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 강대한 힘도, 그 수많은 스킬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6등급 마물을 가루로 만들어버렸던 창술도, 7등급을 뭉개버렸던 마술도 그저 어두운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늑대들의 날카롭기 그지없는 이빨과 발톱에 마창이 쪼개지고 황금 갑옷이 뚫렸다.

콰직!

한동안 결사적으로 싸우던 외눈 현자가 마침내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유독 커다란 늑대 하나가 현자의 뒤에서 나타나 그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큭."

짧은 단말마와 함께 그의 입에서 시뻘건 피가 주륵 흘러내렸다.

현자가 겨우 외눈을 치켜들고 상원을 꿰뚫어 보았다.

외눈 현자가 눈빛으로 상원을 부르고 있었다.

상원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소울 프레임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마력을 돌려 보아도 어떤 반응도 없었고 시스템 또한 묵묵부답이었다.

"이런."

조종석 오른쪽 위편에 달려 있던 비상 탈출 버튼을 누르니, 조종석 문이 열리면서 열 자체가 없는 것 같은 오한이 밀려 들어왔다.

상원은 저 아래의 새까만 지면으로 뛰어내렸다.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게 뛰어내릴 높이였지만, 온몸의 마력이 모조리 빠져나간 탓에 털썩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큭!"

양손과 무릎이 얼얼했다.

상원은 겨우 몸을 들어 외눈 현자를 향해 나아갔다.

외눈 현자는 소울 프레임과 키가 비슷한 거인이었기에, 무릎 꿇은 그의 얼굴은 한참이나 위에 있었다.

머릿속에 외눈 현자의 음성이 들렸다.

- 결국 이렇게 될 운명이었나?

운명이라는 단어를 들으니 목구멍으로 무거운 침이 꿀꺽 넘어갔다.

노트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외눈 현자는 우주의 중심에 있는 지혜의 샘물을 마신 그 순간 자신의 운명을 깨달았고, 그것을 피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

전생에는 그 설명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하늘에 오르는 데 필요한 지식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 설명의 무게가 다르게 다가왔다.

"운명을 알고 있었소?"

외눈 현자가 느린 끄덕임으로 상원의 물음에 답했다.

"그 운명을 피하기 위해서 그렇게 몸부림을...."

- 그만.

외눈 현자가 상원의 말을 끊었다.

- 그런 건 이제 더 이상 의미가 없네.

현자의 외눈이 상원의 주머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 나는 자네가 하려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네.

그 눈 속에는 브라이싱크론 지갑 안에 든 냉동 캡슐, 그 안에 잠든 윤진아, 그녀의 몸에 깃든 '세상 끝의 불꽃'이 있을 것이다.

- 자네가 바라는 대로 될 걸세. 이렇게 시험은 끝날 것이야.

쿨럭, 기침 한 번에 그의 입에서 피거품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 그리고 자네는 하늘에 계신 이를 마주하게 되겠지.

그의 깊은 눈에 다시 한번 공포감이 어렸다.

상원은 예언서 '신들의 황혼'의 내용을 떠올렸다.

"다섯 마신의 힘을 모으면 아버지를 상대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상원의 말에 외눈 현자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 그것도 지혜의 샘물에서 온 우주로 퍼져 나간 예언이겠지? 자네가 시험에 들기 전 읽었던 것과 같이 말이야.

'시험에 들기 전에 읽은 예언이면... 승천계시록? 외눈 현자가 그것에 대해 알고 있는 건가?'

상원의 눈이 커졌다.

상원은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물었다.

"외눈 현자! 승천계시록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외눈 현자가 눈을 감으며 대답했다.

- 말했지 않은가? 그것 또한 지혜의 샘물로부터 퍼져 나간 수많은 예언들 중 하나일 거라고. 그 예언을 하필 불신자인 자네가 읽은 건....

외눈 현자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 그냥, 우연일세.

탄식이 절로 나왔다.

"아아."

가족이 겪었던 고통, 뇌수술로 머리에 결함이 생긴 자신에게 '승천계시록'이 들어온 것, 신도들의 집단 자살, 그리고 아포칼립스까지.

비록 찾지는 못했지만, 지금껏 걸어온 길에 무언가 의미가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런데 이것들 모두가 그냥 우연이라고?

- 공허한가? 어떤 의미도 없는 우연일 뿐이라니 말이야.

외눈 현자가 피를 뿜으며 클클 웃었다.

- 이제 와서 새삼스럽군. 시험의 어떠한 의미도 믿지 않는 자네가 그런 의미를 찾고 있었다니 말이야.

상원은 고개를 푹 숙였다.

맞다.

애초에 의미 같은 게 있을 리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 세상 끝의 불꽃, 연옥의 폭군, 지하의 수호자, 태초의 대족장, 오랜 땅의 이무기... 그리고 자네와 함께하는 수많은 사람들. 그들은 자기 세계의 명운을 자네라는 우연에 걸었네. 자네가 여기까지 걸어온 길에 예정된 의미는 없었지만 수많은 이들이 자기의 의미를 자네에게 걸었지.

외눈 현자가 가볍게 손을 튕기자, 그의 오른편에 거대한 문이 나타났다.

샤믹을 저 멀리로 날려버렸던 '진리의 문'이었다.

문이 열리며 자신을 향해 수많은 손들이 뻗어오는 걸, 상원은 덤덤하게 지켜보았다.

- 나도 이제 내 의미를 자네에게 걸어보지.

진리의 문 저편에 익숙한 풍경이 보였다.

울창한 밀림 속에서 표표히 빛을 내뿜고 있는 거대한 화산, 비그리드의 '홍염의 산'이었다.

수많은 팔들 끝, 단 하나의 팔이 상원을 향해 부드럽게 손을 내밀었다.

유달리 모양이 고운 게 어쩐지 누나의 손을 닮아 있었다.

상원은 품속의 브라이싱크론 지갑을 매만지며 물었다.

"이걸 저기에 보내면... 새하늘의 별들은 땅에 떨어질 겁니다."

외눈 현자가 대답했다.

- 모든 것은 수레바퀴 속에 있네. 돌고 돌아 다시 태어나니 별의 추락이란... 바퀴 너머의 또 다른 시작일 뿐이지. 다만 자네가 그 바퀴의 궤도를 바꿀 수 있기를 바랄 뿐.

상원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아아."

하늘과 땅을 가르는 장막, 이제 그것을 불태울 때가 됐다.

상원은 눈앞의 손에 브라이싱크론 지갑을 올렸다.

그러자 진리의 문에서 뻗어 나온 손들이 문 속으로 우수수 돌아갔다.

그 뒤에도 문은 닫히지 않았다.

상원은 문을 향해 걸었다.

그때 외눈 현자가 상원을 멈춰 세웠다.

- 잠깐만.

외눈 현자의 눈이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 자네를 만날 사람이 있는 것 같군.

그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니 익숙한 형체가 어둠 속에 서 있었다.

등짝에 커다란 태엽을 박은 다람쥐였다.

"오랜만이야."

기계장치의 신이 씩 웃으며 말했다.

* * *

'홍염의 산' 내부의 바닥.

외팔 검신은 지하의 수호자가 만들어낸 괴물에게 짓눌려 있었다.

놈이 흘린 오물이 코가 문드러질 듯한 악취를 풍기며 갑옷을 파고들었다.

놈이 우악스런 앞발로 외팔 검신의 어깨를 짓누르고 등에 돋는 낫발을 검신의 허벅지에 꽂아 넣었다.

낫발을 타고 무수한 벌레들이 외팔 검신의 허벅지 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크아아아악!"

외팔 검신은 두 다리로 있는 힘껏 괴물을 밀어내고 물러서서 자세를 잡았다.

몸속에 마력을 돌리자 살을 파고 들어온 벌레들이 퍽퍽 터져나갔다.

외팔 검신은 밭은 숨을 내쉬며 숙적을 노려보았다.

"하아, 하아...."

놈 역시도 여기저기 커다란 자상을 입은 채 걸레짝 같은 몰골이 되어 으르렁대고 있었다.

"그르르릉."

온몸에서 흘러내리는 누런 체액이 가슴팍에서 흘러내리는 핏덩이와 섞여 바닥에 고였다.

외팔 검신은 왼팔의 칼끝으로 괴물의 가슴팍을 겨누었다.

목숨이 꺼져 가는 촛불처럼 희미해지고 있었다.

더 이상의 칼부림은 의미가 없었다.

'이제 끝낼 때가 됐다.'

오로지 단 한 합, 거기에 승부의 추가 달려 있었다.

외팔 검신은 마력을 가다듬으며 집중력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팽팽하게 당겨진 힘줄과 잔뜩 긴장한 근육 사이로 방울방울 흐르는 피의 움직임을 느꼈다.

한없이 느리게 흐르는 시간의 자락 사이 사이로 날카로운 마력이 단단하고 차가운 형상을 갖추어갔다.

'나는 시간을 끊는 검이다.'

"후."

한순간 시간이 멈추었다.

외팔 검신은 그 자체로 숙적의 명줄을 겨눈 칼끝이 되었다.

그의 기세가 변한 걸 느낀 건지, 한순간 숙적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놈 역시 금방이라도 달려들려는 사냥개처럼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외팔 검신을 노려보았다.

외팔 검신이 땅을 디뎠다.

칼끝이 분절된 시간을 하나하나 뛰어넘어 숙적을 향해 쏟아져 나갔다.

그와 동시에 놈이 마귀처럼 울부짖으며 외팔 검신을 향해 달려들었다.

"끄아아아악!"

외팔 검신의 가슴을 향해 떨어지는 낫발이 떨어졌다.

외팔 검신은 알았다.

'내 검이 먼저다.'

칼끝이 놈의 가슴팍에 나온 남자의 미간을 뚫을 때, 마치 물방울이 바윗돌을 때리는 것 같은 작은 소리가 났다.

톡.

이어서 마치 맞는 구멍을 찾은 열쇠처럼 검 끝이 놈의 몸속으로 쑥 들어갔다.

남자의 얼굴이 밭은 피를 뱉었다.

그와 함께 두 낫발이 검신의 갑옷을 종잇장처럼 구기고 들어와 가슴팍에 박혔다.

쩍!

입에서 쓴 물이 주체할 수 없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큭."

다리가 풀리며 무릎이 땅에 박혔다.

놈 역시도 사지에 힘이 풀렸는지 바닥에 털썩 엎드렸다.

여자의 눈코입에서 누런 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서서히 약을 먹은 바퀴벌레처럼 파들거리던 놈의 사지가 멈추었다.

'끝났다.'

외팔 검신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그 순간, 놈의 배가 쩍 갈라지더니 시퍼런 체액이 줄줄 흘러나오다 누런 덩어리가 울컥 떨어졌다.

젤리처럼 반투명한 덩어리 속에는 저 괴물의 모체가 되었던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껴안고 있었다.

그들의 가슴이 조금씩 두근댔다.

외팔 검신은 깊은숨을 내쉬었다.

'빌어먹을. 아직도 끝나지 않은 건가?'

발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었고 의식은 점점 멀어져갔다.

하지만, 죽음을 직감하는 그 와중에도 외팔 검신은 짙은 승리감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의 등 뒤로 승천자를 담은 수많은 거인들이 벽을 따라 기어 올라가고 있었으니까.

'이겼다.'

그때였다.

갑자기 하늘에서 무언가가 외팔 검신 앞에 툭 떨어졌다.

'이게 뭐지?'

자세히 보니 사람 하나가 겨우 들어갈 만한 크기의 캡슐이었다.

그걸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려니, 갑자기 증기와 함께 캡슐이 열리면서 한 여인이 캡슐 밖으로 툭 쓰러졌다.

그녀의 머리에 왕관처럼 삐죽 솟은 뿔들이 눈에 들어왔는데, 그 수가 도합 열 개였다.

외팔 검신의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설마!'

그때 여인이 번쩍 눈을 떴다.

그녀의 눈이 회색의 매캐한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비척비척 몸을 일으킨 그녀가 비죽 웃으며 말했다.

"흐... 여기, 좋은 몸들이 많구나...."

검신은 그 목소리에서 형언할 수 없는 공포를 느꼈다.

생각하기도 싫은 이름이 머리를 스쳤다.

'세상 끝의 불꽃...!'

그녀가 토악질을 하기 시작했다.

"우워어어어억!"

그러자 새까만 물이, 도대체 저 양이 어떻게 저 몸속에 있을 수 있는지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튀어나왔다.

물이 바닥을 따라 철철 흐르다 아직 부화하지 않은 알들에 닿았다.

그러자 알들이 하나둘 새까맣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알들이 새까맣게 되었을 때, 알들이 퍽퍽 터지면서 검게 물든 배양액이 봇물 터지듯 흘러나왔다.

흘러나온 배양액이 살아있는 생물마냥 화산의 한가운데 꾸물꾸물 모여 거대한 형체를 만들기 시작했다.

외팔 검신이 지금껏 보아왔던 그 어떤 존재와도 비교할 수 없이 커다란 거인이었다.

'안 돼.'

목청껏 부르짖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 순간, 거인이 하늘을 찌를 듯 치켜든 칼끝이 서서히 불타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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