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성 회귀자의 아포칼립스-217화 (217/230)

제217화. 일몰 (3)

대전사가 뼈망치에 새하얀 벼락을 둘렀다.

망치에 두른 마력이 소울 프레임을 넘어오는 통에 머리털이 쭈뼛 섰다.

겉보기엔 보잘것없는 뼈망치였지만, 시험 최강이라는 '뇌신의 파괴자'보다 한 차원 높은 무기였다.

'저런 걸 젓가락처럼 휘둘러대다니... 최강의 수호신이라는 타이틀을 괜히 얻은 게 아니군.'

천둥을 두른 대전사가 샤믹의 머리를 향해 날아올랐다.

"죽어!"

새하얗게 회오리치는 벼락을 두른 뼈망치가 거센 파공음을 냈다.

샤믹도 날아오는 대전사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해봐!"

그녀는 뇌전계 최강의 승천자가 직접 내뿜는 벼락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주먹과 망치가 부딪치자 눈부신 섬광과 함께 살과 뼈가 부서지는 끔찍한 소리가 났다.

쩍!

망치에 맞은 오른손이 그대로 터져버린 탓에, 샤믹이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꺄아아악!"

천둥을 두른 대전사라고 무사하지는 않았다.

그대로 바닥에 추락한 대전사가 외마디 비명과 함께 볼썽사납게 나동그라졌다.

"끄악!"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바닥에 처박혔던 대전사가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덩치만 크지 순 물살이구나!"

샤믹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너야말로. 간지럽지도 않네."

부서졌던 그녀의 오른손이 순식간에 자라났다.

주먹을 쥐자 빠드득하는 뼛소리가 화산 가득 울렸다.

천둥을 두른 대전사가 씹어 뱉듯 말했다.

"그 아가리... 함부로 못 놀리게 부숴 주마."

대전사를 감싼 번개 폭풍이 강해졌다.

"와라."

대답하는 샤믹의 주변으로 파란 안개가 일었다.

해원향의 절기 벽무공(碧霧功)이었다.

샤믹의 내단의 힘을 완전히 소화한 것이었다.

한편, 두 거인의 충돌은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낳았다.

신의 몸으로 쓰일 '불의 거인'을 배태한 주황색 알들이 날치알처럼 퍽퍽 터져 나간 것이다.

'외눈 현자'가 바닥을 끈적하게 흐르는 오렌지색 액체를 보며 눈썹을 꿈틀거렸다.

두 거인이 서로에게 돌진하려는 그때, 외눈 현자의 나직한 목소리가 그들을 멈추었다.

"아기들이 잠든 곳에서 소란이 지나치군."

'아기? 저 알 속에 있는 것들을 아기라고 한 건가?'

주황색 알 속에서 거인의 몸뚱이가 꿈틀거리는 꼴을 보니 구역질이 절로 올라왔다.

"우욱."

눈을 감은 외눈 현자가 창끝을 바닥에 두드리자, 바닥이 진동하며 하프 줄을 튕긴 것 같은 맑은소리가 났다.

이어서 외눈 현자가 샤믹에게 창을 겨누었다.

그러자 그녀 뒤의 허공이 문이 열리듯 세로로 쩍 갈라지며 커다란 손들이 수없이 튀어나와 샤믹을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외눈 현자가 태초의 거인에게서 배웠다는 아홉 마법 중 첫 번째, 대상을 어디로든 보내버릴 수 있다는 최강의 공간계 마법 '진리의 문'이었다.

"크윽!"

샤믹이 바닥에 손발을 박으며 저항했지만 끌어당기는 힘이 워낙 강한 탓에 속절없이 끌려가고 있었다.

공간계 최강이라는 마법의 힘은 불의 거인들보다도 수십 배는 커다란 샤믹도 버티지 못할 정도였던 것이다.

저 틈새로 끌려가면 시험 우주의 어느 곳으로 떨어질지 모른다.

주문의 완성을 막아야 했다.

상원은 '끝없는 대지의 칼'을 뽑아내 외눈 현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안 돼!"

외눈 현자가 상원을 향해 창을 들지 않은 왼손을 뻗었다.

"어딜."

그러자 외눈 현자를 향해 짓쳐 들어가던 칼날이 우뚝 멈춰버렸다.

칼날과 손바닥 사이에 생겨난 새파란 방어막이 소울 프레임의 돌진을 막은 것이었다.

그 방어막은 외눈 현자의 열여덟 비기 중 하나, '현자의 방어 마법'이었다.

상원은 이를 악물고 소울 프레임의 출력을 높였지만, 어찌나 방어막이 튼튼한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상원은 신음을 흘리며 뒤로 물러났다.

"크윽!"

그 와중에도 진리의 문은 샤믹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샤믹이 처절한 신음을 냈다.

"끄으으윽!"

샤믹의 몸이 문에 닿기 직전이었다.

그때 샤믹이 씩 웃으며 말했다.

"혼자는 못 가."

샤믹이 꼬리를 뻗어 천둥을 두른 대전사의 발목을 휘감았다.

꼬리질이 워낙 갑작스러웠던 탓에 대전사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볼품없이 나동그라져 버렸다.

"억!"

그와 함께 진리의 문이 먹이를 통째로 삼키는 뱀처럼 샤믹을 꾸역꾸역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진리의 문을 바라보는 대전사의 눈에 공포가 서렸다.

"안 돼!"

"안되기는."

대전사가 망치로 샤믹의 꼬리를 내려치려 했지만, 샤믹이 손을 뻗어 그의 몸을 움켜쥐었다.

그렇게 샤믹의 다리와 몸통, 머리에 이어 대전사를 움켜쥔 손까지 진리의 문 속으로 완전히 끌려들어 갔다.

이어서 텅하는 소리와 함께 진리의 문이 닫혔다.

진리의 문이 있던 자리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순식간이었다.

대전사까지 넘어가는 건 예상하지 못했는지, 그 외눈 현자마저도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이런...."

'외눈 현자가 샤믹을 어디로 보내버린 것일까?'

알 수는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해원향의 내단을 완벽하게 소화했으니, 시험 우주의 어디에 떨어졌든 그녀가 살아남으리라는 것.

지금은 샤믹이 문제가 아니었다.

진리의 문이 있던 곳을 착잡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오딘의 등 뒤로 별빛 몇 줄기가 더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태양매나 천둥을 두른 대전사 같은 승천자들이 더 내려올 것이다.

승천자들이 육체를 입고 이 땅에 도래하는 걸 이제는 끝내야 했다.

상원은 깊은 하늘의 대포를 뽑았다.

천둥을 두른 대전사가 끌어냈던 것보다 강렬한 번개가 소울 프레임의 왼팔에 맺혔다.

외눈 현자를 건드릴 수 없다면, 적어도 이 알들이라도 모두 부숴버릴 것이다.

그때 현자가 외눈으로 상원을 꿰뚫어 보며 말했다.

"속이 너무 뻔하지 않은가?"

외눈 현자가 창끝을 땅에 찍었다.

그러자 하프 줄을 튕기는 듯한 아름다운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주변의 풍경이 바뀌었다.

주변을 감싼 새까만 연기 속으로 굵은 번개 줄기가 뱀처럼 꿈틀거렸고, 그 너머로 가끔 별빛 섬광이 비쳤다.

숨 막히는 온기가 눅눅하게 몸을 짓눌렀다.

'끝없는 대지의 검'을 뽑아 휘두르자, 강렬한 검풍이 연기를 저 멀리로 몰아냈다.

그러자 새빨갛게 물든 하늘과, 저 멀리서 상원을 보고 있는 외눈 현자와, 상원을 올려다보는 수많은 눈들이 보였다.

"여긴...."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여기는 '홍염의 산' 위, 치솟는 화산 연기 속이었다.

외눈 현자가 말했다.

"강림을 방해하게 둘 순 없네."

혹여라도 상원이 알을 깨지 못하도록, 부화장 밖으로 전장을 옮긴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실수였다.

이렇게 수많은 눈들이 보고 있는 곳에 오다니.

상원이 씩 웃으며 말했다.

"외눈 현자, 당신 실수한 거요."

상원은 '결투장'을 전개했다.

그러자 상원을 중심으로 뻗어 나간 녹색 막이 외눈 현자를 집어삼켰다.

[스킬 '결투장'을 사용합니다.]

[상대: 외눈 현자]

[구경꾼들의 시선에 힘이 솟습니다. 능력치가 올라갑니다.]

종말의 괴물이 된 디아블로와, 놈의 목덜미를 물어뜯고 있는 명룡과, 함께 맞서고 있는 서울역의 수많은 타이탄들이 넋을 잃고 상원을 올려다보았다.

그 수많은 시선이 신력을 배가하자, 전신에 팽팽한 긴장감과 함께 강렬한 힘이 흘렀다.

상원은 '깊은 하늘의 대포'에 마력을 모았다.

하늘을 그대로 찢어버릴 것 같은 뇌전이 포신 끝에 모였다.

아무리 잘난 외눈 현자라도 '현자의 방어 마법'으로 막을 수 없었다.

"먹어라."

외눈 현자를 향해 대포를 겨눈 그 순간, 현자가 바닥에 지팡이를 두드리듯 창끝으로 허공을 두드리며 말했다.

"잔재주가 통할 것 같은가?"

'잔재주?'

그 순간 외눈 현자의 뒤로 펼쳐졌던 결투장의 초록 막이 와장창 박살 났다.

외눈 현자가 결투장을 해제해버린 것이었다.

그 통에 펌핑되었던 능력치가 일순간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포탄이 내뿜는 빛도 약해졌다.

외눈 현자가 이런 식으로 결투장을 깨버릴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젠장!"

상원은 외눈 현자에게 뇌전 포탄을 쏘았다.

허공을 찢으며 쇄도한 포탄이 격렬한 폭발을 일으켰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보다 강한 스킬도 얼마든지 있었다.

시스템 메시지가 연속으로 떴다.

[스킬 '요새 수호자의 시선'을 소울 프레임에 동기화합니다.]

['요새 수호자의 시선'이 '광자력 빔'으로 동기화되었습니다.]

[타락신 '원탁의 왕'의 힘을 끌어냅니다.]

['끝없는 대지의 검'이 '오메가 블레이드'로 강화되었습니다.]

소울 프레임의 눈에서 나간 노란 레이저 빔이 외눈 현자에게 작렬하자, '깊은 하늘의 대포'를 뛰어넘는 강렬한 마력의 파동이 온 하늘을 쩌렁쩌렁 울렸다.

이어서 '원탁의 왕'의 힘으로 강화된 새하얀 갑주가 소울 프레임의 온몸을 덮었다.

'바위에 박힌 검' 특유의 새하얀 검기를 앞세우고, 상원은 시험의 정점에 선 절대자를 향해 돌진했다.

챙!

쇄도하던 칼날이 쇳소리와 함께 우뚝 멈추었다.

'현자의 방어 마법'의 새파란 방어막이 칼날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 강력한 스킬들을 모두 받아내고도, 외눈 현자는 오래된 바위 같은 표정 그대로였다.

외눈 현자가 느릿느릿 말했다.

"깊은 하늘의 괴조, 요새 수호자의 시선, 원탁의 왕. 모두 알고 있는 것들이네."

재빨리 뒤로 물러난 상원이 다음 스킬을 준비했다.

"큭!"

격풍을 일격에 격퇴했던 '탈신 모듈', 그걸 쓸 때가 지금이었다.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탈신을 시작합니다.]

[탈신 대상: 태초의 대족장]

[탈신 모듈을 '소울 프레임'에 동기화합니다.]

그때 섬뜩한 느낌이 전신을 관통했다.

무언가가 목줄을 노리고 날아오고 있었다.

'움직이지 않으면 죽는다!'

상원은 그 비좁은 조종석 안에서 필사적으로 몸을 비틀었다.

바로 그 순간 거대한 창 콰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소울 프레임의 가슴을 부수고 들어왔다.

창은 멈추지 않고 상원의 어깨를 그대로 부수었다.

내장을 토해낼 것 같은 비명이 절로 나왔다.

"끄아아아아악!"

그래도 몸을 비튼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머리통이 날아가 버렸을 테니까.

창 표면에 빼곡히 새겨진 룬 문자들이 형형한 푸른 빛을 내뿜고 있었다.

'투창질 한 번으로 소울 프레임을 꿰뚫었다고?'

역시, 노트에서 읽는 것과 실제로 보는 건 하늘과 땅 차이였다.

외눈 현자가 서서히 상원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불신자, 나는 자네의 모든 힘을 알고 있다네."

모든 걸 알고 있다.

그 오만하기 짝이 없는 말을, 외눈 현자는 '오늘 날씨가 좋다'는 말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외눈 현자, 지혜의 샘물을 마시고 이 우주의 원리를 깨달아 모든 스킬에 통달하게 된 자.

새하늘에서 마력을 가장 잘 다루는 자가 모든 스킬을 알고 있기까지 하니, 그에게 통하는 스킬이 있을 리 없었다.

'젠장. 어떡하지?'

그때 상원의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상원에겐 외눈 현자가 알지 못하는 힘이 하나 있었다.

시험의 마수가 뻗쳐 왔을 때, 그 시험에 편입되기를 거부하고 세계의 변방으로 도망친 한 정령왕의 힘이었다.

비록 매개물은 시스템에 편입되었지만, 그 주인은 편입되지 않았다.

"모든 걸 알고 있다고?"

상원은 품에서 그 매개물을 꺼내 썼다.

"헛소리 마시오."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신기 '밤의 가면'을 착용합니다.]

[정령왕 '네 발 달린 밤'의 힘을 전개합니다.]

['밤의 가면'을 '소울 프레임'에 동기화합니다.]

상원의 등 뒤로 새까만 밤이 그 거대한 입을 벌렸다.

* * *

그보다 조금 전, 화산의 정상.

창훈은 혜경의 손을 잡고 분화구 끝에 서 있었다.

오랜만에 움직인 탓인지 금방이라도 다리가 꺾일 것 같았다.

혜경은 멍한 눈으로 쉴 새 없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은수... 우리 은수. 빨리 가야 돼 여보. 은수 밥 줘야 되는데. 은수... 아빠, 배고파...."

실성한 아내를 보고 있자니, 갑자기 지금껏 겪었던 일들이 거짓말 같았다.

'어느 날 나타난 괴물들이 딸을 죽이고... 시스템창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도 안 되잖아.'

질 낮은 농담 같았다.

이대로 정신줄을 놓아버리고 싶었다.

그때 무언가가 그의 뒤통수를 딱 때렸다.

익숙한 손짓에, 창훈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 멀리 선명한 보라색 혜성이 긴 꼬리를 남기고 있었다.

자리를 잡지 못한 채 새하늘을 떠돌면서도 못난 화신을 보우하시는 그의 수호신, '화산정의 혐오체'였다.

"지금까지 고마웠어요 할머니. 조금만 더 신세 질게요."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지금 저 아래서 고독한 싸움을 이어가는 상원이 애타게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창훈은 아내의 얼굴을 보았다.

문득 정신을 차린 아내가 말했다.

"가자 여보."

고개를 끄덕인 창훈은 그녀를 안았다.

그녀의 익숙한 체취가 화산 연기를 뚫고 코를 가득 채웠다.

창훈은 화산을 향해 몸을 날렸다.

시꺼먼 연기와 매서운 열기가 두 사람을 집어삼켰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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