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성 회귀자의 아포칼립스-211화 (211/230)

제211화. 홍염의 산 (1)

아스가르드의 두 태양이 비추는 서울역 광장.

상원은 광장 높은 곳에 서서 광장의 바깥으로 장벽처럼 도열해 있는 거대한 인형 병기들을 바라보았다.

이들이 바로 타우 은하의 고도의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마력증폭병기 타이탄들이었다.

최하 상급 성물에서 신기에 이르는 타이탄, 한 대만 보유해도 길드의 질이 달라진다고 하는 그 병기가 1백 하고도 82대였다.

182대의 타이탄을 가진 서울역의 전력은 시험에 참여한 나머지 수험자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도 높을 것이었다.

양산형 타이탄들의 구릿빛 갑주 위로 쌍성이 내리꽂는 햇살이 부서졌다.

그 양산형들 사이로 특이하게 생긴 타이탄들이 끼어 있었다.

두 개의 오벨리스크를 달고 다니는, 짙은 회색 갑주로 무장한 강상중의 타이탄 '종말의 팔랑크스'.

덩굴 같은 수염을 늘어뜨린 신우주의 타이탄 '반고'.

네 개의 팔에 굵은 꼬리를 가진 샤믹의 타이탄 '나가 퀸'.

이들 모두가 성물급인 양산형들과는 비교를 불허하는 신기급 타이탄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을 초라하게 만들 정도로 압도적인 위용을 뽐내는 타이탄 두 대가 존재감을 마음껏 드러내고 있었다.

우선 다른 타이탄들보다 월등하게 덩치가 큰, 새까만 날개와 꼬리를 가진 타이탄 '니드호그'.

거인과 드래곤을 섞어 놓아 경전 속의 악마처럼 보이는 그 타이탄은 송혜경의 것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둥그런 비행접시에 인간의 상반신을 붙여 놓은 형태의 커다란 타이탄이 바로 한창훈의 '나글파르'였다.

물론 니드호그에 등록된 건 송혜경이고 나글파르에 등록된 건 한창훈이었지만, 실제로 그걸 모는 건 엘가와 오디나스일 것이다.

'어쨌든.'

광장에는 그 타이탄의 파일럿인 수험자들이 대오를 지어 서 있었다.

상원은 늘어선 수험자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들여다보았다.

서울역의 수험자들, 이들 모두가 지금까지 상원과 수많은 여정을 함께 해 왔던 소중한 동료들이었다.

모든 얼굴들 하나하나가 특별했다.

그리고 서울역의 수험자는 아니었지만 든든한 동맹으로서 서울역과 동고동락을 함께 해온 이들도 있었다.

꼬장꼬장한 강상중과 눈을 감은 신우주, 묘하게 흥분한 것 같은 김만웅과 잔뜩 긴장한 박정수.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광장 한 편에는 동아시아인과는 다른 인종으로 구성된 무리가 있었다.

이들은 주신 '천정의 재판관'과 '지혜로운 중재자'의 인도를 따라 비그리드로 건너온 길드 '바빌론'이었다.

길드 '발할라'가 생명 나무 제전에서 처참하게 패배하고 '올림포스'가 성역 병합전에서 서울역에 패배한 지금, 이들은 명실상부 최강의 길드였다.

게다가 핌불베르트의 무기고에 있던 성물급 아이템들로 무장까지 했다.

SF 영화에나 나올법한 타이트한 바디수트를 입은 바빌론의 길드장 스칼렛 이베르손과 부길드장 카렌 스나이더가 대오의 선두에 있었다.

또 한쪽에는 에키나르타 대륙 출신의 드워프들과 그들을 이끄는 에론 클라드가 있었다.

이들은 타이탄을 비롯한 핌불베르트의 무기들을 개조해서 성능을 끌어올렸다.

'우주 시대의 무기까지 개조할 수 있다니, 참 대단한 사람들이야.;

그리고 그 모두의 앞에 두 사람이 서 있었다.

한 명은 상원을 제외하면 능히 서울역 최강의 수험자라 할 만한 자, 상원의 복심 샤믹 프란시스코였다.

해원향이 먹인 내단으로 인한 변이가 상당히 진행된 탓에 검은 피부보다 파란 비늘이 더 넓어 보였고 꼬리는 공룡처럼 길게 삐져나와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그들을 모두 통솔하는, 서울역의 사령관이자 시험 최고의 지휘관 문혁이 있었다.

문혁과 샤믹이 상원을 올려다보았다.

상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 전력이라면 홍염의 산을 뚫을 수 있겠다.'

그때 누군가 상원의 뒤에서 말을 걸었다.

"대단한 위용이군."

뒤를 돌아보니 익숙한 사람 둘이 상원을 향해 오고 있었다.

상원은 그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휠체어에 앉아 있는 창훈은 피골이 상접한 채였는데, 그 눈동자에서 새파란 안광이 반짝였다.

그의 안에 있는 건 '화산정의 혐오체'의 제자, 에키나르타의 대강령술사 오디나스였다.

송혜경이 그의 휠체어를 밀고 있었다.

혜경은 모처럼 만에 깨끗한 얼굴이었는데, 그 안에 '지하의 수호자'의 전령 엘가가 들어앉아서 눈이 풍뎅이처럼 새까맸다.

한때는 적이었던 이들이 지금껏 고락을 함께해왔던 동료들에게 빙의하여 시험을 함께 하는 것.

신들의 황혼을 이런 방식으로 맞이하게 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필요한 것들은 모두 준비되어 있었다.

샤믹의 몸속에 '오랜 땅의 이무기'의 힘이 있다.

오디나스가 '연옥의 폭군'의 힘을, 엘가가 '지하의 수호자'의 힘을 끌어올 것이다.

그리고 냉동 캡슐에 넣어둔 윤진아가 가진 '세상 끝의 불꽃'의 힘, 마지막으로 상원 자신이 가진 '태초의 대족장'의 힘.

다섯 마신의 힘은 모두 준비되었다.

이제 홍염의 산 아래 준비된 '불의 거인'들의 몸에 '세상 끝의 불꽃'을 강림시키면 된다.

'거의 다 왔다.'

상원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오렌지 향과 비슷한 냄새가 섞인 외계 행성의 따뜻한 공기가 폐부를 가득 채웠다.

"후우."

숨을 내뱉고 나서, 상원은 광장의 수험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조상원입니다. 지금까지 저와 함께 해주신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상원이 꾸벅 고개를 숙이자 여기저기서 박수갈채가 터졌다.

고개를 든 상원이 말을 이었다.

"다짜고짜 회귀자라고 하면서 49번 시험을 한 번에 깨겠다는, 어찌 보면 말도 안 되는 계획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 제가 여러분들께 보여드렸던 성과와 결과가, 여러분들에게 신뢰를 심어드린 거라고 믿습니다."

상원은 문혁과 샤믹, 스칼렛과 카렌의 눈을 차례차례 마주 보았다.

"지금까지 우리가 겪어온 여정은 다른 어디에 내어놓아도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대단했습니다. 우리는 그 어떤 성역도 잃지 않고 서울을 지켜냈고, 그 대단한 길드 '올림포스'를 병합했습니다. 그 모든 위업을 이루는 데 여러분들의 도움이 지대했습니다."

다시 한번 박수갈채가 터졌다.

수험자 한 명 한 명의 눈에 이제껏 그 어려운 위업들을 헤쳐 왔던 데 대한 자부심이 서려 있었다.

그 눈빛들을 마주 보면서, 상원은 가슴이 빳빳해지도록 힘을 주었다.

이제 본론에 들어가야 했으니까.

"말씀드린 것처럼, 저희는 이제 마흔아홉 번째 시험의 목표에 도전할 겁니다. 성공하면, 우리는 27번부터 49번까지 시험을 모두 건너뛰게 됩니다."

수험자들의 눈빛이 흥분으로 반짝였다.

이 지독한 시험을 한 번에 스물두 개나 건너뛴다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 하나하나의 얼굴을 바라보며, 상원은 힘주어 말했다.

"물론, 당연히 쉽지 않을 겁니다. 여러분들이 타이탄을 얻으시고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강해졌지만, 절대 방심하시면 안 됩니다. 여기는 기관의 본거지이고 우리는 기관의 병력을 상대해야 합니다."

수험자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렇게 긴장하실 일은 아닙니다. 우리는 충분히 강합니다. '홍염의 산'을 둘러싸고 있는 기관의 요새 역시도 충분히 뚫을 수 있습니다."

그때 강상중이 손을 들고 물었다.

"그때 봤던 황금 거인... '에인하야르'라고 했나, 그놈들이 또 나타나면 어떡하오?"

그 말에 수험자들이 술렁거렸다.

타이탄 한 대 한 대는 4등급 전투원 디아블로들을 가볍게 상대할 수 있었지만, 5등급 에인하야르까지는 상대하기 어렵다는 걸 직접 겪어보아서였다.

상원은 차분하고 단단한 어조로 말했다.

"에인하야르는 염려하지 마십시오. 저희가 지난번 일망타진했던 놈들이, 기관이 가지고 있는 전력이었습니다. 저희가 상대할 건 4등급 디아블로가 전부입니다."

대답을 듣는 강상중의 입에 슬며시 미소가 걸렸다.

상원도 기관이 5등급 에인하야르를 그렇게 빨리 투입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상원도 그럴진대 도끼질 한 번에, 아무리 양산형이라지만 타이탄 하나를 가볍게 쪼개버린 괴물을 겪은 수험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겠는가?

그래서 상원은 출정 연설을 하기에 앞서 강상중과 함께 미리 질문과 대답을 준비했다.

묵직한 대답의 효과는 확실했다.

수험자들의 눈빛이 다시금 단단해지고 있었다.

이제 명령을 내릴 차례였다.

"갑시다, 여러분. 승천이 코앞에 있습니다."

상원을 올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인 문혁이 뒤로 돌아 나직하게 말했다.

"전군, 출정."

'해안선의 귀신'의 힘이 담긴 목소리가 북소리처럼 광장에 퍼졌다.

광장에 모인 수험자들이 뒤로 돌아 자기들의 타이탄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상원은 한참 동안 아무런 말 없이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마침내 저 멀리서부터 타이탄이 한 대씩 공중으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역시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던 엘가가 말했다.

"거짓말을 하려면 입술에 침이라도 바르고 하지?"

엘가의 말을 들은 오니다스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상원은 타이탄이 솟아오르는 하늘을 보며 대답했다.

"시험을 끝내려면 어쩔 수 없다."

오디나스가 물었다.

"시험이 끝나면, 이 사람들이 어떤 구원도 약속되지 않은 이 지옥도를 견디며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상원은 눈을 감았다.

"알잖아 오디나스, 약속된 구원 같은 건 애초에 없어."

아주 오랜만에, 누나의 얼굴이 스쳐 간 것도 같았다.

더운 바람이 불었다.

* * *

홍염의 산까지 거리는 우트가르드에서 직선으로 342킬로미터.

타이탄을 탄 수험자들에게는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니었다.

당초에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홍염의 산까지 진군하는 과정에서 기관의 병력을 맞닥뜨리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서울역의 수험자들은 어렵지 않게 홍염의 산 인근까지 올 수 있었다.

홍염의 산은 정말로, 정말로 거대했다.

어찌나 큰지 몇백 킬로미터 밖에서도 지평선을 점령한 괴물처럼 서 있는 화산의 모습이 보였다.

그 화산이 바로 49번 시험의 마지막 퀘스트 장소로서 7등급 마물 '불의 거인'들을 잉태한, 지금은 신들의 육체가 만들어지고 있는 '홍염의 산'이었다.

화산이 뿜어내는 짙은 연기에 하늘은 온통 새까맸고, 그 연기 기둥 사이로 굵은 뇌전이 뱀처럼 돌아다녔다.

문혁이 통신으로 이야기했다.

"목표 지점까지 남은 거리 35킬로미터, 20분 내로 도착할 예정입니다."

상원이 대답했다.

"그렇네요.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문혁이 말했다.

"이상합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아무런 기척이 없다니."

상원이 웃으며 대답했다.

"이제 있을 겁니다."

홍염의 산이 어떤 곳인데, 기관이 저곳을 비워놨을 리가 없다.

'역시나.'

홍염의 산 근처에서 분홍색 빛무리들이 점점이 솟아올랐는데, 그 커다란 산을 다 가려버릴 정도로 숫자가 많았다.

4등급 디아블로들이었다.

"준비합시다."

상원이 왼팔에서 '깊은 하늘의 대포'를 뽑아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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