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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성 회귀자의 아포칼립스-209화 (209/230)

제209화. 신들의 황혼 (7)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진아가 누워있는 병실 침대 곁, 상원은 문혁과 함께 있었다.

진아는 마신 중의 마신 '세상 끝의 불꽃'을 불러낸 후유증으로 혼수상태에 빠진 후 지금껏 깨어나지 못했다.

'생명 나무 열매'를 먹고 강해진 몸마저도 마신의 강신이 부르는 어마어마한 반발력을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혼수상태에 빠진 진아의 몸은 열매를 먹고 강화된 덕에 더없이 건강해 보였지만, 사실은 그 속에서 '낙원의 수문장'이 죽을힘을 다해 그 몸을 지탱하는 중이었다.

"쿨럭, 쿨럭."

그녀가 밭은기침을 하자 그녀의 입에서 시꺼먼 연기가 담배 연기처럼 푹푹 피어올랐다.

아직도 몸속에 '세상 끝의 불꽃'의 잔재가 남아있다는 뜻이었다.

상원의 입에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후우."

옆에 앉아있던 문혁도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하아, 진아 씨가 너무 고생이 많습니다. 저번에는 악마에 씌어서 고생하더니, 이번에는 이렇게 혼수상태에 빠져서는...."

그의 목소리에 수심이 가득했다.

"차라리 제가 아팠다면 좋았을 겁니다."

상원은 말없이 문혁의 어깨를 다독였다.

그의 넓은 어깨가 그 어느 때보다도 처져 있었다.

사실 진아는 지금 그렇게 걱정할 만한 상태는 아니었다.

심각한 부상을 입은 탓에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긴 했지만, 낙원의 수문장 정도 되는 승천자라면 어쨌든 화신을 지켜낼 테니까.

상원은 몇 번 그 사실을 문혁에게 말했고, 합리적인 문혁은 그 말을 믿고 진아가 깨어나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언젠가 나을 걸 안다고 해서, 그녀가 지금 겪고 있는 아픔마저 외면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한편으로 상원도 상원대로 걱정이 깊었다.

그 걱정 역시 진아 때문이었지만, 이유는 문혁과 달랐다.

'윤진아가 생각보다 너무 약하다.'

'생명 나무 열매'는 모든 시험을 통틀어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강한 아이템이었다.

열매가 주는 능력치 상승효과는 사기적이었고, 그걸 먹은 윤진아는 한 마디로 괴물이었다.

성령급 화신인 윤진아가 군나르 인그로소나 카일 핸드레이크 같은 괴물들 사이에서 괜히 세브로 랭킹 4위를 먹은 게 아니었다.

그래서, 열매를 먹은 진아라면 '세상 끝의 불꽃'을 견뎌낼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진아는 불꽃의 강림을 견디지 못했다.

이번에는 이 행성 비그리드 어딘가에서 '신들의 육체'가 만들어지기 전에 '묵시록의 용'을 완성해야 했다.

그게 새하늘을 무너뜨릴 방법이었으니까.

만약 그걸 성공하지 못하면, 새하늘을 무너뜨릴 기회는 다시 올 수 없을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신들의 육체가 언제 완성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흘러가는 시간이 점점 더 촉박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윤진아의 몸에 '세상 끝의 불꽃'을 받아 '묵시록의 용'을 만들려던 계획이 실패한 것이었다.

'어떡한다.'

그때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상원이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드래곤의 몸."

전생, 지옥에 가장 가까운 행성 므깃도에서 보았던 풍경이 스쳐 갔다.

마지막 시험, 마신 '세상 끝의 불꽃'이 행성의 내핵에서 잉태된 거대한 드래곤의 육신에 강림했다.

육신을 얻어 '묵시록의 용'이 된 마신은 땅을 찢고 올라와 하늘과 땅을 가르는 장막을 불태워 버렸었다.

묵시록의 용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건 세상 끝의 불꽃의 강림을 견딜 정도로 강한 몸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행성에서, 승천자들의 강림을 강담할 수 있는 몸을 만들고 있다는 것 아닌가?

승천자들을 받을 정도로 강한 몸이라면, 마신이라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어디서 만들어지고 있는 거지?'

상원은 답을 몰랐다.

하지만 타나스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타나스와 소통할 수 있는 단말이 아직 저기 저 숲 건너편에 있었다.

"좋아."

상원은 문혁이 자기를 부르는 소리를 뒤로하고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 * *

상원은 소울 프레임을 꺼내 타고 울창한 밀림을 건너 추락한 핌불베르트까지 단숨에 날아왔다.

직경이 몇십 킬로미터는 족히 넘을 우주 도시가 추락한 자리엔 거대한 구덩이가 생겨 있었고, 그 위로 완전히 부서진 도시의 잔해가 쓰레기 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아직도 꺼지지 않은 작은 불씨들이 잔해 사이에서 타오르고 있었다.

그 잔해의 한가운데 비교적 온전한 모습을 지키고 있는 건물 한 채가 서 있었다.

외벽은 모두 날아가 버렸지만 그 형체나마 시체처럼 남아있는 그 건물이 바로, 상원이 있었던 관제 센터였다.

관제 센터 앞에 착륙한 상원은 곧바로 주주종실로 뛰어들었다.

난장판이 된 주조종실 안, 완전히 박살 나버린 스크린이 눈에 들어왔다.

상원의 미간이 구겨졌다.

'저 스크린을 켜고 타나스를 만나야 하는데.'

그런데 스크린이 박살 난 상황이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타나스와 소통한단 말인가?

그때 주조종실 한구석에서 지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셨군."

솔미르였다.

강화복을 벗어 던지고 상의를 탈의한 채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그의 목둘레로, 에론이 만들어준 '병렬 증폭 장치'가 빛나고 있었다.

"몸은 괜찮습니까?"

상원의 물음에 솔미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재밌는 얘기하나 해드리리다."

솔미르가 자기 팔등을 두드리며 덤덤하게 말했다.

"아시다시피, 이 파란 피부는 초능력 강화 시술의 부작용이오. 시술을 기피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거야. 세상 어느 누가 이렇게 파란 피부를 가지고 싶겠소. 그렇지 않소?"

상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초능력 강화 시술에 저런 애환이 있을 줄은 몰랐다.

솔미르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말이오, 초능력 강화 시술의 부작용이 그것뿐만은 아니오. 시술을 받은 자만 알게 되는 부작용이 하나 있어. 그걸 알고 나니까 이게 얼마나 잔인한 시술인지 알게 됐어. 그게 뭔 줄 아시겠소?"

이번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알 리가 없었다.

그런 건 노트에 적혀 있지 않았으니까.

솔미르가 씁쓸하게 말했다.

"그건 자기가 언제 죽게 되는지... 알게 된다는 거요. 그리고 나는 얼마 남지 않았소."

"무슨 소립니까?"

양 입꼬리를 끌어올리는 솔미르의 얼굴에 슬픔이 어렸다.

"지금 내 몸 말이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안에서는 무너지고 있소. 너무 많은 힘을 연달아 썼는데 이런 추락까지 겪었으니... 강화 인간이길 망정이지 보통 사람이었으면 골백번은 죽었을 거요."

탄식이 절로 나왔다.

"아아."

핌불베르트의 추락으로 인해 조금 다친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어서 치료를...."

"소용없소. 지금 몸이 무너지는 건 돌이킬 수가 없어."

솔미르가 고개를 돌려 스크린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타나스를 불러야 할 일이 있소?"

상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솔미르가 말했다.

"이 스크린, 작동 원리는 잘 모르지만 그래도 확실하게 기억나는 응급처치법이 하나 있소. 급한 대로 마력을 불어 넣으면 작동하기는 한다고 합디다."

솔미르가 가부좌를 풀고 스크린을 향해 다가왔다.

그의 양손에 새파란 마력이 아른거렸다.

"아니, 마력을 넣어서 될 일이라면 내 마력으로...."

"상원 씨 마력으론 안 될 거요. 마력의 종류가 달라. 내 것밖에 안 돼요."

상원이 말릴 새도 없이, 솔미르가 부서진 스크린에 양손을 쑥 집어넣었다.

"흐으으읏!"

솔미르가 기합과 함께 마력을 발산하자, 파직 파직하는 잡음과 함께 스크린이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다.

솔미르가 긴 숨을 뱉으며 주저앉았다.

"후우."

창백해진 그의 얼굴이 심하게 초췌해 보였다.

그때 스크린에 나타난 타나스가 말했다.

- 시스템 재가동 완료. 핌불베르트의 피해 상황을 파악합니다.

"아니."

그런 걸 들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어차피 바깥의 도시는 폐허가 돼 있는 상황인데 무슨 피해 상황을 더 파악한단 말인가?

상원은 지금 당장 가장 필요한 정보를 물었다.

"대답해라 타나스. '신들의 육체'가 만들어지는 곳이 어디냐?"

- 명령 접수. 위치를 표시합니다.

타나스의 얼굴이 사라지고 행성 비그리드의 모습이 나타났다.

이어서 비그리드가 확대되더니, 행성의 한 곳을 더 크게 비추기 시작했다.

비그리드가 둥글게 보일 정도로 멀리서 보는데도 눈에 띌 정도로 거대한 화산이었다.

입에서 신음에 가까운 소리가 절로 나왔다.

"아."

스크린에 나타난 화산이 익숙한 곳이라서였다.

49번 시험에서 들렀던 저 화산의 이름은 '홍염의 산'으로, 49번 시험에서 진행하는 일련의 퀘스트 중 마지막 퀘스트를 하는 곳이었다.

비그리드는 기관의 근거지인 동시에 타우 문명의 생체병기 공장이 집약된 행성으로서, 저 화산 아래는 화산의 무한에 가까운 동력을 바탕으로 거신병들을 만들어내는 시설이 있었다.

49번 시험 마지막 퀘스트가 바로, '홍염의 산' 밑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7등급 마물 '불의 거인'들을 상대하는 것이었다.

"이 화산에서 신들의 육체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건가?"

- 그렇습니다.

머릿속에서 구슬이 맞춰졌다.

화신을 잃어버린 새하늘의 승천자들이, 불의 거인들의 몸을 빌어 이 땅에 내려오려는 것이었다.

'그래, 불의 거인이라면 신들의 육체로 쓸 만큼 튼튼하지.'

그건 동시에 희소식이기도 했다.

불의 거인들은 마물들 중에서도 정점이라는 7등급에 해당하는 놈들이었다.

그 육체라면 '세상 끝의 불꽃'을 담을 수 있을 정도로 튼튼했다.

이제 문제는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였다.

"진행 상황은?"

계산을 하는지 잠시 침묵하던 타나스가 말을 이었다.

- 198시간 20분 정도입니다.

"뭐라고?"

상원의 얼굴이 굳었다.

98시간이면 육체의 완성이 정말로 코앞에 와 있는 것이었다.

"우트가르드에서부터 거리는 어떻게 되지?"

- 직선거리 342km입니다.

상원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하아."

342킬로미터는 신력으로 강화된 수험자들에게는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가 기관의 본거지 비그리드라는 데 있었다.

'저 화산까지 가는 데 얼마나 많은 기관원들을 물리쳐야 할 것인가?'

그걸 생각하니 치가 떨렸다.

일단 윤진아를 이용해서 5등급 에인하야르를 일망타진한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거기까지 가는 최단 경로에 도시가 몇 개나 있지?"

- 없습니다.

그나마 반가운 대답이었다.

- 다만, 화산 근처에 타우의 요새가 구축되어 있는 점을 감안하셔야 합니다.

"그건 알고 있다."

고개를 끄덕인 상원이 스크린에서 물러났다.

홍염의 산의 풍경이 사라지면서, 스크린에 다시 타나스의 얼굴이 나타났다.

아바타일 뿐인 그녀의 얼굴이 어딘가 슬퍼 보였다.

- 부디, 성공하시기를 바랍니다.

상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이어서 솔미르가 쿵 주저앉는 동시에 스크린이 암전되듯 꺼졌다.

밭은 숨을 내쉬는 그의 코와 입으로 시퍼런 피가 콸콸 쏟아져나오고 있었다.

"괜찮습니까?"

상원이 그쪽으로 달려가려는데, 솔미르가 손을 들어 괜찮다는 표시를 했다.

"말했잖소. 예상했던 일이오."

상원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껏 지켜온 계시록이... 실현되는 걸 보지 못하는 게 슬프군."

솔미르의 얼굴 또한 슬픔에 가득 차 있었지만, 또 조금의 희망이 그 눈빛에 담겨 있었다.

솔미르가 웃으며 말했다.

"부디, 이 은하를 구해주시오."

"당연합니다."

솔미르가 스르르 눈을 감았다.

부서진 주조종실 안으로 쌍성계의 햇살이 스며들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등 뒤에서 상원을 불렀다.

"잘 계셨어 불신자 선생?“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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