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성 회귀자의 아포칼립스-203화 (203/230)

제203화. 신들의 황혼 (1)

문혁이 이제 막 석화에서 풀린 사람처럼 굳은 입을 애써 움직였다.

"뭐... 라고요?"

저 바위 같은 남자의 목소리가 이렇게 떨리는 걸 듣는 게 얼마나 오랜만인지.

문혁의 옆에 여전히 돌처럼 굳어 있는 사람들을 찬찬히 바라보며, 상원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저는, 회귀자입니다."

잔잔한 수면에 돌을 던진 것처럼, 술렁임이 빠르게 퍼져 나갔다.

"회귀자? 그러니까... 다시 살아왔다고?"

"이 시험에 회귀자가 있었어?"

그 말에 놀라는 게 수험자들만은 아닐 테다.

두 개의 태양이 떠 있는 맑은 하늘 너머에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낮별들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 별들 하나하나가 여기 있는 수험자의 수호신들이었다.

회귀자라는 말은, 새하늘에 있는 승천자들마저도 체통을 잃고 술렁이게 하는 말이었던 것이다.

'이 시험에 회귀자가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을 테니 그럴 수밖에.'

문혁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말했다.

"사실... 입니까?"

상원을 지켜보는 문혁의 눈동자 속에 별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수호신 '해안선의 귀신'의 빙의가 강해진 탓에 그 격이 눈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상원은 문혁, 그리고 해안선의 귀신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힘주어 말했다.

"사실입니다."

순간 묵직하고 날카로운 격이 상원의 온몸을 짓눌렀다.

"큭!"

해안선의 귀신이 내뿜는 것과는 확연히 다른 격이었다.

'누구지?'

신화의 몸을 부숴버릴 것 같은 무시무시한 격을 내뿜는 존재는 신우주였다.

시력을 잃어버린 신우주의 두 눈에서 짙은 안광이 줄기줄기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녀의 몸속에 들어앉은 '최초의 수확자'가 격을 내뿜는 것이었다.

최초의 수확자는 주신급, 그 격은 다른 수호신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회귀자... 회귀자라고?"

그 한 음절 한 음절에 몸이 짓눌리는 기분이었다.

빙의가 너무 강한 탓에 그녀의 코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건 자기 화신을 끔찍이도 아끼는 최초의 수확자가 화신이 다치는 걸 무릅쓰고서라도 존재를 드러낼 만큼 화가 났다는 뜻이었다.

최초의 수확자뿐만이 아니었다.

'마천루 건설자'도 '자칭 협객'도 '부월을 든 왕시해자'도 화신을 통해 분노한 눈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들이 이렇게 분노하는 이유는 회귀자는 그 존재 자체가 반칙이기 때문이었다.

승천 시험은 표면적으로라도 공정성을 추구하는 시험이었고, 그 공정성의 핵심에는 '격에 따른 정보의 평등'이 있었다.

영령과 신령, 그리고 주신 - 격이 같다면 시험에 대한 정보도 평등하게 받는다.

거기에 격의 차이에 따른 정보의 차이도 눈앞의 시험을 풀어갈 정보를 먼저 받는 정도였고, 주신급이라고 해서 다섯 번 뒤의 시험 정보를 먼저 받거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회귀자는 처음부터 시험에 대한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회귀자는 공정성에 대한 믿음이라는 시험의 뿌리를 흔드는 존재였던 것이다.

최초의 수확자가 물었다.

"회귀자라니... 네놈의 잘난 수호신은 누구냐?"

최초의 수확자가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왔고, 그럴수록 몸을 짓누르는 압력도 강해졌다.

그가 상원의 앞에 섰을 때, 상원은 그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쿨럭, 기침과 함께 뱉은 피가 바닥에 뚝뚝 떨어진 신우주의 코피와 뒤섞였다.

상원은 굳어버린 입을 애써 움직였다.

"제... 수호신은.... 없습니다."

순간 상원을 짓누르던 격의 압력이 약해졌다.

그 틈을 타 상원은 몸을 펴고 최초의 수확자를 마주 보았다.

상원이 빠르게 말했다.

"저는 시험을 믿지 않는 불신자입니다. 아무도 저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습니다."

주춤 물러서는 최초의 수확자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어떻게 그런 존재가...?"

회귀는 그 존재 자체가 반칙이지만, 그러므로 모두가 바라 마지않는 능력이었다.

남이 가지면 반칙이지만 내가 가지면 초능력인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어떻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불신자가 회귀라는 힘을 얻었는지가 궁금해서 미칠 지경일 것이다.

'하지만 그건 가르쳐 줄 필요가 없지.'

한편, 최초의 수확자의 반응을 보면서 상원은 확신할 수 있었다.

최초의 수확자가 상원이 회귀자라는 걸 믿는다는 사실을.

다른 승천자들도 최초의 수확자와 마찬가지로 벙찐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들로서는 상원이 회귀자라는 걸 믿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상원이 보여준 성과는 회귀자가 아니라면 설명이 안 될 만큼 말도 안 되는 것이었으니까.

'첫 번째 단계는 성공.'

다음 순서는 앞으로의 일을 알고 있는 회귀자를 따랐을 때의 메리트를 주지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면 이들은 자연스럽게 상원을 따르게 될 테고, 신들의 황혼을 실행하는 데 이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

입을 떼려는데 최초의 수확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수험자 정보 열람'을...."

수험자 정보 열람은 말 그대로 특정 수험자의 정보를 열람할 수 있도록 기관에 신청하는 일이었다.

상원은 미간을 찌푸렸다.

'흠.'

그걸 신청하리라는 예상은 못 했지만 걱정은 되지 않았다.

예전에 '낙원의 수문장'이 시도했을 때 결과는 '열람 불가'였고, 최초의 수확자라고 다르지는 않을 테니까.

그때 그들 사이에 누군가 끼어들었다.

백문혁이었다.

"소용없을 거요. 오래전에 내 친구가 시도해 봤지만 아무것도 알지 못했거든."

문혁에게 깃든 해안선의 귀신이 슬며시 웃고 있었다.

상원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 친구라는 사람, 낙원의 수문장 말인가? 언제 둘이 친구가 됐지?'

최초의 수확자와 상원 사이에 서 있는 해안선의 귀신의 눈빛은, 부드럽게 올라간 입꼬리와는 달리 더없이 냉철했다.

"알겠소. 귀공의 말은 모두 납득하였소. 그간의 일을 반추해 보니 귀공이 지금까지 행했던 일들, 회귀자임을 생각하면 모두 납득이 되는군."

매끈한 턱을 문지르는 문혁의 손길이 마치 풍성한 턱수염을 쓰다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우리가, 서울역이 여기까지 온 것도 귀공이라는 회귀자를 따라온 덕택이지. 그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야."

그가 최초의 수확자를 돌아보며 덧붙였다.

"그렇지 않소?"

"흐음...."

최초의 수확자가 눈을 감으며 고개를 숙였다.

화신 신우주가 살아남은 게 상원의 덕임을 부정할 수 없었으니까.

그와 별개로, 상원은 영령과 주신이라는 격의 아득한 차이마저 아무렇지도 않게 뒤집는 '해안선의 귀신'에게 존경심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 괜히 탈 영령급이라고 하는 게 아니지.'

최초의 수확자가 고개를 숙인 건 꽤나 상징적인 일이었다.

다른 승천자들의 눈초리도 점점 부드러워지고 있었던 것이다.

해안선의 귀신이 상원에게 다가와 물었다.

"이제 할 말이 있지 않소? 왜 서울역을 이 행성에 소환한 건지, 그리고 귀공이 그간 비밀에 부쳐 온 정체를 드러내면서까지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이 무엇인지, 설명을 해주셔야지."

위엄을 실어 말하는 해안선의 귀신의 얼굴에서, 순간 문혁 특유의 어색한 미소가 보인 것도 같았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알겠습니다."

마음을 짓누른 짐을 뱉어내듯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입을 열자, 이들을 '신들의 황혼'에 끌어들이기 위해 준비해온 말이 폭포수처럼 나오기 시작했다.

"여러분들은 시험이 순차적이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첫 번째 시험을 마치면 두 번째가 있고, 세 번째가 있고... 그리고 그렇게 해서 마지막 시험에 이르면 승천을 한다고 말입니다."

그건 너무 당연한 말이었다.

승천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원은 그들의 눈을 하나하나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시험은 그렇게 순차적으로 구성돼있지 않습니다. 경우에 따라서 시험이 선포되기 전에 시험의 목표를 선취할 수 있고, 그러면 해당 시험이 시작됐을 때 시험에 합격한 걸로 처리된다는 걸 겪어보신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누군가 상원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맞아... 그렇네."

서울역의 승천자들은 시험이 선포되기도 전에 시험 목표를 달성하는 상황을 몇 번 겪어보았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아직 모르시는 게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아주 뒤의 시험 목표를 달성하면, 그 시험에 다다르기까지의 모든 시험을 합격한 걸로 처리하기도 합니다."

맞는 말이기는 했다.

승천 시험에는 그런 경우가 아주 가끔 있었고, 상원은 그렇게 몇 개의 시험을 건너뛰기도 했었다.

그 말에 승천자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래? 그런 경우가... 있어?"

"들어본 것도 같고...?"

의심할 틈새를 주지 말아야 한다.

상원은 두 눈을 똑바로 뜨고 군중들을 향해 몰아치듯 물었다.

"이쯤 말씀드리면 아시겠지요? 제가 여러분들을 여기 모신 이유가 무엇인지?"

주의를 환기하는 차원에서 상원은 숨을 한 번 골랐다.

이다음에 할 말이 쐐기였으니까.

상원이 배에 가득 힘을 주고 준비해 온 거짓말을 했다.

"여기서 49번 시험의 목표를 달성하면, 여러분들은 49번까지의 모든 시험을 건너뛰실 수 있습니다."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모두가 넋 나간 표정을 지었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49번 시험을 한 번에 건너뛸 수 있다는 건 그만큼 파격적인 일이었으니까.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해안선의 귀신이었다.

"그게...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해안선의 귀신이 침음성을 흘렸다.

"끄응...."

이번에는 최초의 수확자가 물었다.

"그걸, 어떻게 아는 거지?"

"보았기 때문입니다. 전생에 보았습니다. 그렇게 시험을 헤쳐 온 수험자들이 있는걸."

혼란에 빠진 승천자들이 웅성거렸다.

상원의 말을 믿을지 말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게 보였다.

여기에 말 한마디를 얹으면 이들의 마음이 무너지는 도미노처럼 와르르 쏠릴 것이다.

다음에 할 말은 지금껏 여러분들을 이끌어 오면서 증명했던 걸 기억해보라는 것이었다.

다른 승천자들이었다면 그런 말로 설득하기 어려웠겠지만, 서울역은 달랐다.

상원이 지금껏 한 일은 '영도'라는 말을 붙여도 될 정도였으니까.

그때 누군가 말했다.

"맞아... 대장 말이라면 믿을 수 있어요."

샤믹이었다.

이 타이밍에 그녀가 도움을 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는데.

제삼자인 그녀의 말은 효과가 커서, 술렁거림이 빠르게 잦아들었다.

"후우."

한숨을 내뱉은 해안선의 귀신이 물었다.

"그런데, 이 별에 있는 건 4등급 기관원이라고 하지 않았나? 어떻게 할 생각인가?"

그의 말은 승천자들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전환시켰다.

'상원의 말을 믿을 수 있는지'에서 '49번 시험을 어떻게 먼저 해결할 수 있는지'로.

상원은 해안선의 귀신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을 위해 준비한 게 있습니다."

상원은 씩 웃으며 소울 프레임을 향해 돌아섰다.

이들을 위해 준비해 온 선물, '핌불베르트의 무기고'를 꺼내 보일 시간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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