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성 회귀자의 아포칼립스-200화 (200/230)

제200화. 우트가르드 (3)

샤믹의 어깨가 덜덜 떨렸다.

"진짜 괜찮은 거 맞아요?"

상원은 겁먹은 강아지처럼 자기를 올려다보는 믹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괜찮을 겁니다. 타나스의 계산은 틀리지 않으니까요."

핌불베르트의 모든 시설이 망가져도 관제센터만은 안전할 거라는 계산은 믿어도 된다.

왜냐하면 다른 누구도 타나스의 계산이었으니까.

벽에 기대앉은 솔미르가 빠르게 숨을 쉬었다.

"후우... 후우... 젠장... 젠장!"

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송골송골 흘렀고, 이가 딱딱 부딪히고 있었다.

'야룬비드를 정면에서 마주 봤을 때도 저 정도로 놀라진 않았던 것 같은데. 추락이 무섭기는 무섭나 보군.'

상원은 천장 구멍으로 보이는 밤하늘을 지켜보았다.

추락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듯, 아스가르드 쌍성계의 어두운 공간 너머로 총총한 별들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에 맞추어 사이렌 소리는 점점 커졌고 램프가 미친 듯 회전하며 점멸하는 빨간 불이 불안한 공간을 가득 채웠다.

타나스가 말했다.

- 핌불베르트가 비그리드의 중력권에 본격적으로 들어섰습니다. 가속도가 상승합니다. 기체의 진동으로 넘어질 우려가 있으니 주위의 물건을 꽉 잡고 중심을 잡아주십시오. 말씀드린 것처럼 관제센터는 추락의 영향으로부터 안전하오니 안심하시고 침착하게 대처해주시기 바랍니다.

타나스의 말투는 지나치게 기계적이었다.

'아 원래 기계니 말투가 기계적인 게 자연스러운가? 여튼... 잘도 안심이 되겠다.'

상원이 피식 웃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바깥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듯 쩍 하는 굉음이 들리면서 한순간 진동이 거세졌다.

"꺅!"

샤믹이 새된 비명을 지르면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솔미르는 강화복 바이저를 올린 채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아아... 젠장... 젠장...."

그때 타나스의 말과 함께 스크린이 바뀌었다.

- 도시 방어막을 전개하였습니다. 방어막이 대기권 진입 시의 마찰로부터 여러분을 보호해 줄 것입니다.

스크린에 추락하는 핌불베르트의 모습이 나타났다.

'어떻게 핌불베르트가 추락하는 모습이 저 각도에서 찍힐 수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으나,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기에 잊어버리기로 했다.

핌불베르트의 주변으로 육각형 구멍을 가진, 파랗게 빛나는 촘촘한 그물이 나타났다.

바로 핌불베르트의 배리어였다.

하지만 도시를 보호하기엔 그것만으론 부족하단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방어막 바깥으로 새빨간 불길이 일기 시작했으니까.

갑자기 뜨거운 공기가 훅 불어닥쳐, 상원도 깜짝 놀라 소매를 들어 입을 가렸다.

"흡."

고개를 들어 보니 뚫린 천장으로 보이는 하늘이 불타는 것처럼 새빨갰다.

아니, 불타는 것처럼 보이는 게 아니었다.

'젠장... 저거 진짜로 불타고 있는 거잖아.'

상원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일흔여섯 번의 시험을 거치며 수많은 살풍경을 보아 왔지만 이런 건 처음이었다.

타나스가 말했다.

- 경고. 방어막 생성기가 손상된 관계로 방어막이 완전하지 않습니다. 열기와 충격에 대비하십시오.

상원이 쯧 혀를 차며 말했다.

"젠장, 그런 거 일일이 중계하지 말라고."

대기권 돌입 시의 강렬한 마찰로 핌불베르트의 단단한 외벽이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리기 시작하는 모습이 스크린을 통해 생생하게 비쳐졌다.

외벽뿐만이 아니었다.

핌불베르트의 차가운 먹구름 사이로 드높이 솟아있던 마천루들은 아예 가루가 되어 우주 공간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 추락하는 우주 도시의 가운데 있는 관제센터 역시도 그 외벽이 점점 뜯겨져 나갔다.

- 주의하십시오....

쿠르르르르!

열기가 숨도 쉬기 어려울 정도로 강해지며 도시가 부서지는 굉음이 타나스의 음성과 날카로운 사이렌 소리까지 묻어버렸다.

핌불베르트가 지면의 코앞까지 추락했다.

'이제 곧이다.'

상원은 큰 숨을 쉬었다.

"후우...."

머리는 무사할 거라 말하고 있었지만 가슴은 아니었다.

심장이 미친 듯 고동치고 있었다.

콰앙!

그리고 한순간, 엄청난 진동과 함께 원자폭탄이라도 터뜨린 것 같은 거대한 소리가 상원을 집어삼켰다.

상원은 순간 정신을 잃었다.

* * *

눈을 뜬 상원에게 가장 먼저 보인 건 뚫린 천장 너머의 연보랏빛 하늘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지?'

상원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조종실 안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고, 타나스가 나타났던 커다란 스크린은 완전히 박살 나 있었다.

샤믹과 솔미르는 정신을 잃은 채 쓰러져 있었는데, 다행히도 타나스의 말대로 생명에 지장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다행히 몸은 멀쩡한 것 같았다.

일어나 주조종실 문을 밀어보았지만, 바깥에 무언가 쓰러진 듯 문이 덜컥거리며 열리지 않았다.

"씁."

문짝을 걷어차자 문짝이 경첩째로 뜯겨 나갔다.

그 너머로 보인 풍경은 놀랍기 그지없었다.

"이런 맙소사...."

주조종실 바깥은 관제센터 복도가 아닌 완전한 폐허였다.

관제센터의 복도는 완전히 박살이 나버렸고, 골조만이 겨우 형체를 남기고 있었다.

그 너머로 널린 부서진 잔해들은 그 원형이 무엇인지 짐작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타나스의 계산이 틀렸다.

관제센터가 아니라 주조종실만이 그나마 멀쩡했던 것이다.

'이 상태라면... 브라카다 리전의 대원들도 무사하지 못하겠군.'

도시 하나가 통째로 부서져 버린 폐허 너머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핌불베르트가 추락한 자리엔 거대한 구덩이가 생겨 있었는데, 시간이 꽤나 흘렀는지 추락 때문에 나타났을 불길은 상당히 잡혔고 간혹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를 뿐이었다.

그 너머로는 가지 사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창한 삼림이 보였는데, 그걸 보니 여기가 비그리드인 게 확실해졌다.

그리고 그 삼림 너머에 하늘을 향해 뻗어 오른 나선형의 새하얀 탑이 보였다.

어찌나 높은지 그 밑에서 자라는 비그리드의 아름드리나무들이 이쑤시개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탑의 꼭대기에서 새파란 불빛이 하늘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저곳이 바로 추락할 때 보았던 도시 '우트가르드'였다.

'이렇게 빨리 우트가르드에 올 줄이야.'

그리고 저 탑의 꼭대기에서 하늘을 향해 파란 불기둥을 쏘아 올리고 있는 물건이 바로 상원의 목표인 '삼색 무지개의 다리'였다.

"좋아."

그때 우트가르드의 탑 주변으로 분홍색 불빛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탑이 워낙 큰 탓에 조그만 반딧불처럼 보이는 그것들의 정체를, 상원은 익히 알고 있었다.

바로 우트가르드를 지키는 기관의 전투원들이었다.

상원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쉴 틈을 주지 않는군."

전투원들이 날아오는 속도가 상당히 빨라서, 곧 그들의 모습이 육안으로 식별되었다.

4미터 남짓한 키에 새까만 갑주로 무장한, 분홍빛 날개 네 쌍을 가진 기사들이었다.

팔다리가 비정상적으로 길고 갈퀴 같은 손발톱을 뻗은 모양새가 악마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최전선에서 마물에 맞서 싸우는 기관의 전투원, 그들이 바로 '디아블로'였다.

그런데 그 수가 심상치가 않았다.

전생의 50번 시험에서 보았던 모든 디아블로가 여기 모여 있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뭐야... 원래는 저 많은 기관원이 여기 집결해 있는 거였나.'

49번 시험은 기관이 내는 퀘스트를 깨고 그 성적에 따라 기관의 전투원을 할당받는 구조였다.

그건 비그리드에는 기관의 전투원들이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비그리드가 '새하늘에 가장 가까운 별'이라는 이명을 가진 이유 중 하나도 그것이었다.

'그런데 저만큼 많이 있을 줄은 몰랐지.'

쓰읍 하고 한숨을 쉬며, 상원은 소울프레임에 올라탔다.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된 조종석이 부드러운 동시에 타이트하게 몸을 감싸는 그 익숙한 감각을 느끼며 상원은 하늘로 날아올랐다.

상원이 날아오르는 걸 인식해서일까, 디아블로들이 분홍빛 안광을 형형하게 빛내며 쩍 하고 입을 벌렸다.

그러자 놈들의 입에 눈빛과 같은 색의 분홍빛 빛덩어리가 맺히더니 레이저 빔이 되어 상원을 향해 쇄도해왔다.

디아블로의 장기인 '대재앙 대포'였다.

4등급 기관 전투원의 스킬인 만큼 위력도 위력이었거니와 더 큰 문제는 저 대포가 스킬 데미지만 입히는 게 아니라서 불신자인 상원이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수많은 디아블로들이 일제히 쏟아내는 대재앙 대포는 말 그대로 소나기 같았다.

"젠장!"

상원은 더 높이 날아올라 대재앙 대포의 세례를 피했다.

위에서 보니 디아블로들이 구름 같은 군집을 이루고 있었다.

놈들이 일제히 상원을 쳐다보니 또 입을 쩍 벌렸다.

하지만 상원은 놈들이 대재앙 대포를 준비하게 둘 마음이 없었다.

"흥.“

[빔블레이드를 준비합니다.]

마력을 불어넣자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오른손에서 빔블레드가 튀어나왔다.

상원은 빔블레이드를 꼬나 들고 디아블로들의 무리를 향해 뛰어들었다.

27번 시험이 시작되지도 않은 지금, 일반적인 수험자라면 디아블로 하나를 상대하기도 버거울 것이다.

하지만 상원은 보통 수험자가 아니었다.

마지막 시험까지 함께 했던 신기급 타이탄 소울 프레임도 상원과 함께하고 있지 않은가?

상원은 양의 무리 속에 뛰어든 늑대처럼 놈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십 미터를 넘어가는 거대한 기계 덩어리의 수족이 자신의 손발처럼 움직이는 그 감각이, 강력한 빔블레이드가 적을 가르는 느낌이 하나하나 살아 돌아왔다.

"하아!"

칼질 한 번 한 번에 디아블로들이 절명했다.

하나, 그리고 다시 또 하나.

디아블로들의 숫자가 조금씩 조금씩 줄어들었다.

하지만 디아블로는 줄어들지 않았다.

'젠장... 끝이 없군!'

무언가가 소울 프레임의 등짝을 사정없이 후려치는 바람에 뱃속에서 쓴 물이 올라왔다.

"크윽!"

바로 앞에 있는 디아블로가 소울 프레임의 얼굴 앞에 입을 쩍 벌리더니 대재앙 대포를 영거리로 쏘았다.

그 반동으로 놈의 머리도 날아가 버리겠지만 그런 건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가 저절로 젖혀졌다.

"컥!"

이어서 몸이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놈들이 소울 프레임에 달라붙은 것이었다.

아마도 무게로 소울 프레임을 눌러 땅에 처박을 심산인 것 같았다.

"젠장... 어떡해야...!"

그때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소울 프레임으로 강화할 수 있는 아이템과 스킬이 '바위에 박힌 검'만이 아닐 것이다.'

전생에는 바위에 박힌 검 한 자루로 긴긴 시험을 이겨내 왔기에, 자연스럽게 바위에 박힌 검만을 사용할 생각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소울 프레임이 아이템과 스킬을 강화하는 기능이 있다면, 다른 스킬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상원에겐 바위에 박힌 검보다 훨씬 강력한 스킬이 있었다.

상원은 양팔에 힘을 주자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강신회로를 활성화합니다.]

[강신회로에 마신 '태초의 대족장'의 힘을 담습니다.]

[기능 '강신회로'를 소울 프레임에 동기화합니다.]

[기능 '강신회로'가 '오메가 모드'로 동기화되었습니다.]

처음 보는 기능이었다.

'오메가 모드...?'

그때 무시무시한 힘이 소울 프레임의 양팔을 통해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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