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성 회귀자의 아포칼립스-196화 (196/230)

제196화. 비그리드 (1)

상원은 솔미르의 안내에 따라 주조종실로 향하는 직행 통로로 향했다.

통로 입구는 브라카다의 장서관 바깥에 숨겨져 있었다.

통로를 따라 조금 걷다 보니 작은 지하철 승강장처럼 생긴 시설이 나타났다.

승강장 사이 레일에는 한 칸짜리 작은 지하철이 있었고, 그 앞에 펼쳐진 검은 터널 안으로 레일이 뻗어 나가고 있었다.

생긴 건 지하철이지만 속도는 그와 비교도 되지 않는 교통수단, '척력 지하철' 이었다.

'핌불베르트에 척력 지하철이 있는 줄은 몰랐네.'

타우의 다른 별들에서는 수도 없이 보았던 시설이었기에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솔미르가 지하철 문을 열며 말했다.

"가시지요. 주조종실까지 금방입니다."

지하철 내부는 지구의 지하철과 같았지만, 지하철 가장 앞부분에 여러 가지 계기판이 붙어 있는 조종석이 있다는 점이 달랐다.

상원은 의자에 앉아 새까만 창에 비춰진 얼굴을 보았다.

백발을 한 선이 짙은 미남자, 이 사람이 상원 자신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짙어지는 생각이 있었다.

'신화의 몸'은 상원의 것이 아니라는 것.

"후우."

"웬일로 한숨을 그렇게 쉬어요 대장?"

샤믹이 한숨 쉬는 상원의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상원이 얇은 웃음을 지었다.

그녀의 안에 다섯 마신 중 하나인 뱀의 왕 '오랜 땅의 이무기'의 힘이 담긴 해원향의 내단이 있다.

상원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때 지하철의 조종간을 잡은 솔미르가 말했다.

"출발합니다."

이어서 철컥 소리와 함께 지하철이 살짝 떠오르는 게 느껴졌다.

지하철이 수직으로 떠오르는 걸 예상하지 못한 샤믹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 어?"

이어서 철컥 소리와 함께 바닥에서 손잡이가 솟아올랐다.

상원이 손잡이를 잡으며 말했다.

"꽉 잡으세요."

말을 마치자마자 척력 지하철이 총알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터널의 불빛이 창밖으로 스쳐 갔다.

* * *

주조종실이 있는 핌불베르트 관제센터까지는 금방이었다.

일행은 척력 지하철에서 내려 주조종실로 향했다.

관제센터 역시 마물과 사람의 시체로 가득했고, 동력이 들어오지 않는 탓인지 건물 자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멈춘 에스컬레이터를 따라 몇 층 올라가니 지상과 이어진 관제센터의 로비가 나타났다.

솔미르가 주위를 둘러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는데, 관제센터의 구조를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어... 이다음엔...."

상원이 피식 웃으며 우물쭈물하는 솔미르의 앞으로 나섰다.

"따라오십시오."

노트에서 길을 보았던 데다 전에 와본 적도 있는 곳이었기에, 주조종실로 향하는 길은 눈을 감고도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상원은 한 치도 망설이지 않으며 폐허가 된 복도를 지나 주조종실로 향했다.

복도는 전생에 비하면 그나마 덜 얼어붙어 있었는데, '겨울 늑대의 징표' 덕에 잔챙이 마물들이 달라붙지도 않았기에 수월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도달한 곳은 강화복을 입은 솔미르 정도의 체구라면 몸을 구기면서 들어가야 할 정도로 작은 철문이었다.

솔미르가 철문을 바라보며 의문을 표했다.

"이게... 주조종실이라고요?"

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솔미르의 반응도 이해는 됐다.

우주 도시 핌불베르트의 핵심 시설인 주조종실이 고작 이런 쪽문 안에 있다니.

믿을 수 없다고, 전생에도 수많은 수험자들이 이 문 앞에 서서 이야기했었다.

상원은 아랑곳하지 않고 철문을 밀었다.

삐걱하는 소리와 함께 힘없이 철문이 열렸다.

퀴퀴한 먼지 냄새가 이 공간이 아주 오랫동안 버려져 있었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뺨을 스치는 냉기를 느끼며, 상원은 익숙한 걸음으로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스위치의 위치를 나타내는 문장이 생생하게 머릿속을 스쳐 갔다.

'문을 열고 앞으로 세 걸음, 그리고 왼쪽으로 여섯 걸음, 이어서 오른쪽으로 두 걸음.'

신화의 몸은 원래의 몸보다 다리가 훨씬 길었기에, 상원은 종종걸음을 하듯 조심조심 걸었다.

그렇게 걸어가서 손을 뻗으니, 단단하고 매끄러운 철제 벽이 손에 닿았다.

옆으로 손을 옮기자 이번에는 커다란 레버가 손에 닿았다.

"여깄군."

중얼거린 상원이 레버를 힘껏 내렸다.

그러자 구우우웅 하는 굉음과 함께 온 방 안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냉기가 조금씩 물러나고 있었다.

놀란 샤믹과 솔미르가 소리를 질렀다.

"어... 어어?"

"갑자기 이게 무슨...?"

그러거나 말거나, 상원은 전생의 광경을 떠올리며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가장 먼저 천장에서 초록색과 파란색 조명이 들어왔다.

이어서 벽면 한쪽의 스크린이 켜졌다.

웬만한 극장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스크린은 높이는 족히 20미터는 될 것 같았고 너비 역시도 만만치 않았다.

천장과 벽의 조명 그리고 스크린에서 나온 불빛이 주조종실을 비추었다.

솔미르가 탄성을 질렀다.

"이 문 뒤에... 이게 있었다고?"

그럴 만도 했다.

저 조그만 쪽문 뒤에 이렇게 거대한 방이 있으리라곤 생각도 못 했을 테니까.

여기가 바로 핌불베르트의 핵심 시설인 주조종실이었다.

전생에는 여기를 지키는 키메라 보스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솔미르가 아직 무기고를 지키는 괴물이 되지 않은 것처럼, 놈들도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상원은 스크린 앞으로 걸어가 그 앞에 펼쳐진 기계 장치들에 손을 댔다.

노트에 쓰여 있던 대로 상원은 스크린을 조작했다.

그러자 스크린 한가운데 커다란 얼굴이 나타났다.

백발을 길게 늘어뜨린 미녀였는데, 솔미르와 마찬가지로 피부가 새파랬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얼굴, 타나스의 아이콘이었다.

여기까지는 전생과 같았다.

전생의 타나스는 수험자들을 내려다보며 잡음이 잔뜩 낀 괴성을 질렀었다.

'이번에는 어떨까?'

"타나스."

상원의 말에 타나스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상원을 내려다보았다.

- 당신이 올 줄 알고 있었습니다.

데몬즈 헤드나 우주 미노타우로스가 말을 전할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깨끗한 문장이었다.

상원이 피식 웃었다.

'말을 잘한다. 게다가 존댓말을 하는군?'

마물의 몸을 빌리지 않아도 되니 말을 길게 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타나스가 이런 식으로 말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해 본 적이 없었다.

새하늘 아버지에게 오염된 전생의 타나스가 했던 말이라곤 '죽여라', '공격' 따위의 짧고 살벌한 명령들과 괴성뿐이었으니까.

솔미르가 말했다.

"타나스...? 완전히 맛이 가버린 줄 알았는데?"

타나스가 솔미르를 내려다보았다.

- 브라카다 리전의 군단장 솔미르 이븐 왈리 바라드.

그녀가 고개를 푹 숙였다.

- 생체병기들이 핌불베르트를 공격한 건 제 통제 밖의 일이었습니다. 거기서 일어난 일에 대해, 그리고 브라카다 리전의 대원들이 겪은 일에 대해 위로를 표합니다.

아픈 기억들을 떠올렸는지, 솔미르가 눈을 감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상원이 타나스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니가 부탁한 대로 핌불베르트에 왔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되지? 신들의 몸이 만들어지는 곳, 그곳으로 가면 되는가?"

타나스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 그렇습니다. 제가 당신께 말씀드린 장소는 비그리드입니다. 비그리드로 오시면 됩니다.

'뭐라고?'

잘못 들었나 싶었다.

"비그리드라고 했나?"

- 그렇습니다.

스크린에서 타나스의 얼굴이 사라지고 타우 은하의 그래픽이 나왔다.

원반 형태의 은하에서부터 점점 줌인이 된 스크린이 쌍성계의 네 번째 행성을 가리켰다.

지구와 마찬가지로 초록 땅과 푸른 바다로 이루어진 행성이었다.

"맞군, 비그리드."

'저곳을 어떻게 잊겠는가?'

새하늘에 가장 가까운 별이라는 이명처럼 온화하고 풍요로운 별 비그리드는, 다름 아닌 전생의 49번 시험이 펼쳐진 시험장이었다.

그곳에서 기관이 내리는 시련을 통과하여, 그 점수에 따라 최후의 전투에서 자신과 함께 싸울 기관원을 모집하는 게 49번째 시험의 내용이었다.

그렇게 49번 시험이 끝나고 나면, 수험자들은 비그리드와는 반대로 새하늘에서 가장 먼 행성이라는 화산 행성 '므깃도'로 이동한다.

거기서 마신 중의 마신인 '세상 끝의 불꽃'이 지휘하는 마물들에 맞서는 게 마지막 시험 '아마겟돈'의 내용이었다.

'그래, 그래. 비그리드.'

상원이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

"그래서, 여기서 비그리드까지는 어떻게 가나?"

솔미르가 끼어들었다.

"마... 맞아. 지금 핌불베르트에는 멀쩡한 우주선이 하나도 없다. 그런데 어떻게...?"

다시 나타난 타나스가 AI의 아이콘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자연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 여러분들은 가만히 계시도 됩니다. 핌불베르트가 움직일 테니.

그녀의 말과 함께 주조종실의 천장이 서서히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 너머로 별이 총총한 우주가 나타났다.

이어서 주조종실이 통째로 우웅 하고 흔들리기 시작했다.

'설마...?'

상원이 물었다.

"핌불베르트를... 움직인다고? 핌불베르트에 이동장치가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 핌불베르트는 원래 성간 항행 목적으로 만들어진 이동식 도시입니다. 비그리드까지 이동하는 건 충분합니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타우 우주에는 상원이 모르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새하늘교의 경전과 노트에 있는 것들이 시험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상원은 다시 한번 절절하게 깨달았다.

샤믹이 천장의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탄성을 질렀다.

"와."

그녀를 따라 천장을 보니, 별들이 하얀 꼬리를 남기며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다.

아니, 별이 움직이는 게 아니었다.

우주 도시 핌불베르트가 비그리드를 향해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타나스가 말했다.

- 지금부터 5시간 후, 핌불베르트는 비그리드가 있는 아스가르드 쌍성계로 워프합니다. 워프 시 주조종실 바깥에 있는 건 위험하니, 그전까지는 반드시 주조종실에 돌아와 주시기 바랍니다.

상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다는 건, 바깥의 시설들이 워프의 충격을 견딜 수 없다는 뜻인가?"

- 그렇습니다.

"무기고도 말인가?"

- 계산 중입니다.

타나스가 어디선가 나타난 손으로 턱을 괴었다.

잠시 생각하던 타나스가 대답했다.

- 확률은... 아닙니다. 당신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무기고의 안전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런."

그렇다면, 빨리 무기고로 가야 한다.

거기 있는 보구들을 놓칠 수는 없으니까.

"샤믹, 나랑 같이 갑시다. 무기고에 가서 아이템 좀 주웁시다."

"넵 대장!"

상원은 솔미르를 돌아보았다.

"당신은?"

솔미르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남은 대원들을 챙겨야겠습니다. 다녀오십시오."

상원은 고개를 끄덕이고 주조종실을 나섰다.

* * *

핌불베르트의 무기고는 말 그대로 타우 은하의 발달된 기술로 만들어진 무기가 가득한 곳이었다.

하나같이 강력한 무기들이었기에 아이템 등급도 높았는데, 성물급 아이템이 즐비한 건 물론이고 신기까지도 있었다.

'다른 건 다 놓쳐도 신기는 가져가야지.'

관제센터를 빠져나와 대로를 따라 교차로를 몇 번 건너가니 익숙한 건물이 나왔다.

단층에 낮았지만 옆으로는 지평선을 다 덮을 듯 긴, 이 낮고 넓은 건물이 바로 핌불베르트의 무기고였다.

가로세로 삼 미터는 되어 보이는 셔터를 열자, 주조종실에서와는 달리 저절로 켜진 조명이 실내를 비추었다.

실내에는 키 높이 정도의 진열대가 빽빽했는데, 진열대에는 레이저 총이며 우주 강화복처럼 SF 게임에나 무기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하나하나가 적어도 하급 성물에는 해당하는 것들이었다.

"와."

경탄을 뱉으며 주변을 둘러보는 샤믹과는 달리, 상원은 어디에도 눈길 하나 주지 않고 성큼성큼 무기고를 가로질렀다.

무기고의 가장 깊은 곳에 두 번째 셔터가 있었다.

셔터 위에는 '타이탄 격납고'라는 글자가 선명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