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성 회귀자의 아포칼립스-195화 (195/230)

제195화. 도서관 (5)

스승이 말했다.

“그리하여 모든 별이 스러질 것이다.”

제자가 물었다.

“그러면 이 땅에는 무엇이 남습니까?”

스승이 대답했다.

“마귀와 망자와 벌레와 뱀과 짐승의 군세와, 그들과 함께 하였던 어두운 별들이 남을 것이다.”

제자가 물었다.

“그러면 저 하늘에는 무엇이 남습니까?”

스승이 대답했다.

“별이 있던 하늘은 무너질 것이다.”

제자가 다시 물었다.

“별이 있던 하늘이 무너지고 나면 무엇이 남습니까?”

스승이 대답했다.

“별이 있던 하늘 너머에 있는 이가 하늘이 무너진 곳에 자리할 것이다.”

제자가 물었다.

“높으신 이를 말씀하시는 것이나이까?”

스승이 대답했다.

“그러하다.”

상원은 천장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저 별들의 너머, 우주 바깥에서 이 땅을 굽어보는 높으신 이.

새하늘 우주에 그 촉수를 꽂고서 꿈과 감정을 빨아먹는 괴물.

‘새하늘 아버지.’

'신들의 황혼'의 예언에 따르면, 다섯 마신의 군세를 모아 추락한 승천자들을 쓸어버리고 난 후에는 새하늘 아버지를 직면하게 된다.

그건 뒤집어 말하면 새하늘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선 새하늘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뜻이었다.

선후관계가 정리되었다.

상원은 다시 두루마리에 코를 박았다.

제자가 물었다.

“스승이시여, 높으신 이의 태양과도 같이 찬란한 존안을 저희가 미천한 눈으로 어떻게 마주할 수 있겠나이까?”

스승이 대답했다.

“높으신 이의 존안은 태양과도 같아 우리의 미천한 눈으로 볼 수 없으니, 산맥과도 같은 옷을 걸치고 이 땅이 오실 것이라. 그러면 우리는 하늘이 무너진 자리에 드리워진 그분을 흠숭하며 찬양할 것이니라.”

상원의 눈이 한 단어에서 멈췄다.

‘산맥과도 같은 옷.’

상원이 읽고 있는 ‘신들의 황혼’에는 처음 등장하는 표현이었지만, 분명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다.

상원의 머리가 바쁘게 돌아갔다.

‘어디지…어디지...! 아!’

그 단어를 어디서 보았는지 찾아낸 상원이 눈을 크게 떴다.

바로 '승천계시록'에서였다.

‘그 자는 일곱 쌍의 날개를 가졌으며, 그 자의 몸은 산맥과도 같았다.’

산맥과도 같은 몸을 한 채로, 시험의 옥좌 왼 편에 서서 새하늘에 오를 이와 오르지 못할 이를 가르는 자.

상원이 익히 알고 있는 자, 사마에트였다.

옥좌에 앉은 절대자의 의지를 받들어 시험을 총괄 감독하는 자, 시험의 정점 사마에트가 새하늘 아버지란 말인가?

‘그래, 사마에트는...새하늘 아버지가 시험의 우주에 비춰진 모습이라는 거군.’

그 생각을 하고 나니 평소 궁금히 여겼던 질문들의 해답을 찾은 것 같았다.

어째서 절대자의 자리는 대를 걸쳐 내려가지만 기관장은 바뀌지 않는 것인지.

어째서 새하늘 시험은 절대자가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으며 대신 수많은 것들이 기관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구조로 짜여 있는지.

‘흐음. 그렇다고 해도…달라질 게 있나?’

최후에 마주할 게 그나마 그 모습이라도 익숙한 사마에트일지, 아니면 새하늘 우주 바깥에서 보았던 끔찍하기 짝이 없는 문어 괴물일지 정도의 차이 뿐 아닌가.

물론 사마에트의 역시도 그와 맞서 싸우기를 상상하기조차 버거운 존재이긴 마찬가지였지만.

"후우."

상원은 한숨을 쉬며 두루마리를 계속 읽어 나갔다.

그 뒤로 스승과 제자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이런 저런 말들이 이어졌지만 정작 쓸모 있는 정보는 많지 않았다.

그렇게 계속 두루마리를 읽어 나가다 보니 어느덧 예언은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었다.

상원은 점점 초조해져 갔다.

어떻게 하면 새하늘 아버지를 마주할 수 있는지는 알았지만, 정작 그 새하늘 아버지를 상대할 방법이 무엇인지는 나오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두루마리가 끝나갈 때 쯤이었다.

제자가 물었다.

“이 미련한 제자가 다시 묻나이다. 그리하여 저 하늘 너머의 높으신 이를 뵙게 되거든 어이하면 되리이까?”

스승이 대답했다.

“미천한 우리는 아무 것도 할 것이 없다. 이 땅을 굽어 살피시는 존귀한 이께서 하사하시는 은혜를 흠숭하면 된다.”

제자가 물었다.

“그러면 이 땅에 남은 것들은 어이 되리이까?”

스승이 대답했다.

“마귀의 왕과 망자의 왕과 벌레의 왕과 뱀의 왕과 짐승의 왕과 검은 별들이 높으신 이의 은혜를 거부하고 그 분과 맞설 것이다.”

제자가 물었다.

“높으신 이의 은혜를 거부한 삿된 이들은 어찌 되리이까?”

스승이 대답했다.

“스러질 것이다.”

상원이 침을 꿀꺽 삼켰다.

‘스러질 것이다.’

이 땅에 추락해서 다섯 마신들의 힘 앞에 꺼질 승천자들처럼.

‘그것 뿐인가?’

제자가 물었다.

“그리하면 영원한 새하늘이 반석 위에 서리이까?”

스승이 대답했다.

“그러하다, 다만.”

‘다만?’

“다섯 왕은 보잘 것 없으되 그들이 결하면 높으신 이를 넘어설 권세를 얻을 것이다.”

상원의 입이 벌어졌다.

‘다섯 마신의 힘을 합치면 새하늘 아버지를 넘어설 권세를 얻는다…!’

상원이 그토록 찾아 헤맸던, 새하늘 아버지를 해치울 단서가 여기 있었다.

‘그런데, 그 다섯 마신의 힘을 어떻게 결한단 말인가?’

그 생각을 하니 그 뒤의 문장들이 여실하게 와닿았다.

제자가 물었다.

“이 미천한 제자가 묻사옵니다. 그는 다섯 왕이 결하여 높으신 이를 넘어설 것이란 말씀이시옵니까?”

스승이 대답했다.

“그렇지 아니하다. 다섯 왕은 결하지 못할 것이니 이는 다섯 왕이 태생에서 결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상원은 탄식을 뱉었다.

"아아."

새하늘 시험을 떠받치는 기둥인 다섯 마신, 그들은 새하늘 아버지가 다른 우주를 잡아먹는 과정에서 탄생한 존재들이었다.

마신들의 힘은 상상의 범주를 넘어서 있었기에, 다섯이 힘을 합치면 새하늘 아버지를 해치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떻게 힘을 모으나?'

시험과 마신은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일방적인 지시 복종 관계가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피조물을 시험에 내주며 운영에 협력하는 것 같다가도, 그 각각의 영토를 운영하며 서로의 영토를 침범하고 경쟁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지하의 수호자’가 그랬듯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존재들이었으며, 항상 서로를 해치고 자신들의 위상을 올리고자 했다.

'호시탐탐 서로의 목숨을 노리는 존재들 다섯의 힘을 모아야 한다고? 어떻게?’

상원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두루마리를 읽어 내려갔지만 결국 원하는 내용은 찾을 수 없었다.

신들의 황혼은 결국 승천자들과 마신들이 어떻게 멸망하는지, 그리고 그 뒤에는 직접 이 하늘에 강림한 새하늘 아버지가 만들어갈 새하늘의 모습은 어떠한지에 대한 예언이었다.

“하아.”

한숨을 쉬며 두루마리를 던져버린 상원이 미친 듯 다른 책들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상원은 브라카다의 개인 장서실에 있는 모든 책을 읽었다.

수많은 텍스트를 들여다보느라 눈이 빠질 것 같았고 머리는 터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상원이 찾는 내용 - 다섯 마신의 힘을 합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마지막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상원은 책을 던지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하아아아아."

상원은 착찹한 심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지금껏 읽었던 산더미같은 책들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책들을 하나 하나 다시 읽어보려던 상원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문득 타나스가 했던 말이 머리를 스쳐서였다.

‘타우 우주 어딘가에서 신들이 몸을 만들고 있다 했었지?’

그 말이 ‘신들의 황혼’에 쓰여 있던 말과 겹쳐졌다.

새하늘에 오른 승천자들을 쓰러뜨리려면 마지막 시험이 도래하기 전에 하늘과 땅을 가르는 장막을 불태워서 승천자들을 땅으로 불러야 했다.

'그런데, 만일 신의 몸이 완성되면? 화신이 아닌 온전한 몸으로 이 땅에 강림한 승천자가 ‘떨어진 별’이라고 할 수 있나?'

상원은 두 존재를 떠올렸다.

승천자 ‘화산정의 혐오체’의 화신인 한창훈과 그 원래의 몸인 붉은 본 드래곤을.

그들의 힘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그걸 생각해보니 답은 명확했다.

'신의 몸이 완성되기 전에 막아야 해. 그런데 잠깐만…지금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거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시계나 창문처럼 시간의 흐름을 짐작할 수 있을 만한 단서는 없었다.

다만 지금껏 읽은 책의 양으로 보았을 때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을 건 틀림 없었다.

“젠장!”

상원은 미간을 구기며 장서관의 조그만 문을 향해 달려갔다.

문을 밀어젖히자 상원의 몸이 들어올 때와 같이 문 속으로 쑥 빨려들어갔다.

* * *

눈을 떠보니 샤믹과 솔미르가 어리둥절한 눈으로 상원을 보고 있었다.

“어…대장? 어디 갔다온 거에요?”

“브라카다의 집 안에 다녀왔습니다.”

솔미르가 장서실의 문을 가리키며 얼떨떨한 목소리로 물었다.

“방금 상원 씨가 그 문 속으로 빨려 들어가셔서 저희도 따라 들어가보려고 했습니다만…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요?”

상원이 문을 돌아보며 고개를 갸웃 했다.

‘아니 잠깐만. ‘방금’이라고?’

상원이 샤믹에게 물었다.

“샤믹, 제가 저 장서관에 들어간 지가 얼마 정도 되었죠?”

샤믹이 턱을 문지르며 곰곰히 생각했다.

“글쎄요. 한 오 분? 정도 된 것 같은데요?”

솔미르가 거들었다.

“예, 그 정도 된 것 같습니다.”

‘오 분이라고? 그럴 리가.’

상원은 암기 능력자이지 속독 능력자는 아니었기에, 그 많은 책을 읽는 데 오분 밖에 걸리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저 집 안은 시간이 다르게 흘러가는 모양이군.'

어쨌든 시간이 그렇게 많이 흐르지 않았다니 다행이었다.

상원이 브라카다의 장서실을 돌아 나가며 말했다.

“따라 오십시오. 시간이 촉박합니다. 타나스가 신들의 몸을 만드는 걸 막아야 합니다.”

샤믹이 상원을 따라오며 물었다.

“신들의 몸을 만든다고요? 무슨 말이에요?”

상원이 대답했다.

“차차 설명드리겠습니다. 지금은 그걸 설명할 시간이 없습니다.”

솔미르도 물었다.

“그…말씀하시는 게 저 집 안에서 보신 내용들인 거지요? 그게 어떤 내용이었습니까?”

“그것도…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은 일단 움직여야 합니다.”

좀처럼 동요하지 않는 상원이 다급하게 움직이자 솔미르와 샤믹도 그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얼굴이 굳었다.

솔미르가 물었다.

“그래서, 어디로 가야 합니까?”

상원은 타나스의 말을 떠올렸다.

신들의 몸을 만드는 곳, 타나스는 거기로 가는 열쇠가 핌불베르트에 있을 거라고 했다.

“주조종실로 갑시다. 거기 답이 있을 겁니다.”

상원이 다급히 대답하며 성큼 성큼 지상으로 가는 엘레베이터로 향했다.

그때 솔미르가 상원을 붙잡았다.

“상원씨, 잠깐만.”

상원이 솔미르를 돌아보았다.

“아무래도 지상으로 다시 올라가서 주조종실로 가시려는 것 같은데,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여기는 주조종실로 가는 통로가 있어요.”

‘아아, 그런가.’

도서관 자체가 처음 들어보는 시설이었으니, 거기서 주조종실로 직행하는 통로의 존재를 상원이 몰랐다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상원이 말했다.

“갑시다.”

고개를 끄덕인 솔미르가 어디론가 향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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