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성 회귀자의 아포칼립스-194화 (194/230)

제194화. 도서관 (4)

치익 하고 공기가 빠지는 소리와 함께 높은 문이 좌우로 열렸다.

상원은 문을 넘었다.

문 안으로 펼쳐진 브라카다의 개인 장서관은 밖과는 달리 천장을 통해 들어오는 은은한 자연광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핌불베르트에서는 맡아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익숙한 풀냄새가 났다.

장서관의 흙바닥에서는 작은 풀들이 따뜻한 햇빛을 받으며 자라나고 있었다.

솔미르가 경탄의 소리를 질렀다.

“오오! 여기가 브라카다의 장서관...!”

샤믹이 손부채를 부치며 말했다.

“여긴 장서관이라기보다는 뭐랄까, 온실 같네요.”

그녀의 관자놀이를 따라 송골땀이 흘렀다.

상원은 부드러운 흙을 밟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 어디에 장서가 있다는 말인가?’

그때였다.

샤믹이 커다란 풀더미를 밟자 햇빛 속에서도 찬란한 빛을 내는 날벌레들이 우수수 튀어나왔다.

“엄마야.”

샤믹이 깜짝 놀라 주저앉는 사이, 날벌레들이 어디론가 날아가기 시작했다.

상원은 날아가는 날벌레들을 지켜보았다.

‘어디로 가는 거지?’

벌레들을 지켜보던 상원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브라카다의 장서관 안에는 방금 풀숲에서 튀어나온 것들 말고도 날벌레들이 수없이 많았는데, 그들 모두 어디론가 천천히 날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상원은 그들을 따라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벌레들이 유리 기둥과 대리석 조각들을 지나 날아가는 곳에 동화에나 나올 것 같은 작은 집이 있었다.

상원을 따라온 솔미르가 집을 보며 말했다.

“브라카다는 난쟁이였지요.”

'그렇군.'

고개를 끄덕인 상원은 집을 향해 걸어갔다.

낮은 지붕이 상원의 눈높이에 있었고, 그 아래 달린 둥그런 문은 상원의 가슴팍에나 겨우 닿았다.

상원은 허리를 숙여 문고리를 잡고 돌렸다.

그와 함께 상원은 집 안으로 쑥 빨려 들어갔다.

* * *

눈을 뜨니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집 밖과 같은 은은한 자연광이 우드톤으로 된 방을 비추고 있었다.

상원이 높은 천장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여기가 그 집 안이라고?”

밖에서 볼 때는 전혀 상상할 수 없던 규모였다.

‘하기사 승천 시험에 이런 공간이 한둘인가? 하다못해 브라이싱크론 지갑만 해도 그 안에 무한에 가까운 아공간이 있는걸.’

상원은 주위를 둘러보고는 여기가 브라카다의 장서관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넓고 높은 벽면 모두, 심지어 천장에까지 책이 빽빽하게 꽂혀 있어서였다.

서가를 찬찬히 훑어보던 상원의 눈에 유독 책 한 권이 눈에 띄었다.

이런저런 제목이 적힌 다른 책들과는 달리 빛 한 조각도 반사하지 않는 새까만 표지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상원은 책을 뽑았다.

책 한 권 무게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웠고, 책 표지는 돌덩이처럼 단단했다.

상원은 묵직한 표지를 넘겼다.

첫 번째 페이지에는 타우 문자가 아닌 시험의 언어로 무언가 적혀 있었다.

‘에다.’

이 책의 제목인 것 같았다.

상원은 천천히 페이지를 넘기며 내용을 훑어보았다.

몇 개의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이 우주는 거품처럼 생겼다. 거품을 이루는 방울 하나하나 안에 세계가 들어 있다.’

‘어떤 방울 속에는 꿈을 꾸는 자들이 있고, 어떤 방을 속에는 잠들려 하는 자들이 있다.’

‘그 바깥에서, 아버지는 거품을 굽어살피고 계신다.’

책장을 넘기던 상원의 눈이 점점 벌어졌다.

“이건… 진짜다.”

이 책에 묘사된 우주의 모습은 상원이 크로노스를 따라 새하늘의 바깥으로 가서 보았던 새하늘 시험의 모습과 일치했다.

새하늘의 바깥에 가보지 않았다면 이 책이 그냥 헛소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늘방에서 승천계시록과 노트를 외우면서 그랬던 것처럼.

상원은 글자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책을 읽어 내려갔다.

글자가 내용이 되어 기억의 궁전에 기록되었다.

그렇게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지나고 마침내 마지막 페이지가 넘어갔다.

‘에다’를 읽고서, 상원은 우주의 모습을 세세하게 머릿속에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시험을 치르는 세계들과 새하늘은 물론 그 바깥으로 펼쳐진 마신의 영토들까지.

하지만 이걸로는 부족했다.

이 서가 어딘가에 반드시, 새하늘 아버지에 대적할 수 있는 방법이 적힌 책이 있을 것이다.

그걸 알기 위해서라면, 상원은 이 서가의 모든 책을 읽을 용의가 있었다.

“다음 책… 다음 책.”

텅 소리와 함께 ‘에다’를 바닥에 내려놓은 상원이 다른 책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다음에 잡힌 책은 황금색 표지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만져 보아도 책이 열리지 않았다.

“어… 뭐야?”

책을 자세히 살펴보던 상원은 책 가운데 금이 가 있는 걸 발견했다.

“설마…?”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

책을 좌우로 잡아당기자 그 안에서 두루마리가 나타난 것이다.

상원은 두루마리를 펴서 읽기 시작했다.

말려 있을 때는 겨우 상원의 팔뚝만 하던 두루마리는 펴 보니 끝이 없었다.

두루마리 가장 위에는 ‘신들의 황혼’이라 적혀 있었다.

두루마리의 내용은 시험의 진행에 관한 것이었는데, 사제 관계인 두 예언자가 시험의 내용에 대해 대화하는 형식이었다.

상원은 그 내용을 빠르게 훑어 내려갔다.

‘내용은 맞지만 디테일은 승천계시록에 비하면 형편없군,’

쯧 하고 혀를 차는데, 어떤 문장 하나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상원은 자기도 모르게 그 문장을 소리 내서 읽기 시작했다.

“제자가 자기가 본 미래를 말했다. '그리하여 시험의 끝에 다다르면 사바세계와 새하늘을 가르는 장막이 불타오를 것입니다. 사바세계의 미생들은 저 높은 별들을 따라 새하늘에 오르게 될 것입니다.'”

상원은 눈을 크게 떴다.

'이건... 마지막 시험에 대한 내용이다!'

상원은 주의를 기울였다.

그 문장을 읽는 상원의 머릿속에 마지막 시험의 광경이 스쳐 지나갔다.

'‘승천계시록’은 마지막 시험의 마지막에 가면 마신 중의 마신 ‘세상 끝의 불꽃’이 강림해 온 사바세계를 불태워 버린다 했었지.'

하지만 승천계시록의 내용과는 달리, 세상 끝의 불꽃이 태워버린 건 사바세계뿐만이 아니었다.

‘세상 끝의 불꽃’은 사바세계와 새하늘을 가르는 장막을 불태워버렸고, 그리하여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수험자들은 자신들의 수호신의 신성에 힘입어 새하늘에 올랐었다.

단 한 명, 상원만 빼고.

수호신이 없는 상원은 새하늘에 오르지 못했고, 그래서 그 자체로 신성을 가진 칭호 ‘일곱 별의 왕관’을 완성하기 위해 갖은 애를 썼던 것이다.

하지만 승천계시록엔 그런 내용이 없었다.

그러니까 적어도 마지막 시험에 대한 내용만큼은 이 '신들의 황혼'이라는 두루마리가 승천계시록보다 자세하고 완전했던 것이다.

그보다 더 놀라운 건 두루마리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이었다.

'여기다...! 여기에 새하늘을 끝장낼 방법이 있다!'

그리고 그다음 문장.

“스승이 말했다. '그렇다. 하지만, 때가 무르익지 않았을 때 장막이 불타게 되면 저 별들이 사바세계로 떨어질 것이다.'”

상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게 무슨 말이지? 별들이 사바세계로 떨어진다고?'

상원은 다음 문장을 읽었다.

"제자가 물었다. '스승님, 그렇다면 땅에 떨어진 별들은 어찌 되나이까?' 그러자 스승이 대답했다. '그러면 마귀와 망자와 벌레 그리고 뱀과 짐승의 군세가 사바세계의 별들을 쓰러뜨리리라.'"

'마귀, 망자, 벌레, 뱀, 그리고 짐승. 이건 다섯 마신들이다.'

다섯 마신들의 군세, 그러니까 마물들이 땅에 떨어진 승천자들과 맞붙을 거란 이야기였다.

상원은 두루마리를 덮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승천자들을 거꾸러뜨릴 방법이 여기 있었다.

바로 하늘을 불태워서 승천자들을 떨어뜨리고 마물들을 일으켜 승천자들과 맞붙이는 것.

그런데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전생의 마지막 시험에서는 세상 끝의 불꽃이 사바세계에 강림하여 하늘과 땅을 가르는 장막을 불살랐었다.

그때 세상 끝의 불꽃이 강림한 건 자연스러운 시험의 내용이었지 누군가가 그를 소환한 결과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마지막 시험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그래선 안 된다.'

마지막 시험에서 세상 끝의 불꽃이 장막을 불사르면 수험자들이 승천하게 되니까.

그러니까 여기서 중요한 건 '때가 무르익지 않았을 때' 하늘을 불태우는 것이었다.

'조건을 만족해야 하는군. 첫 번째 조건, 때가 무르익기 전에 하늘을 불태울 것. 그런데 마지막 시험에 가기 전에 세상 끝의 마신을 소환할 방법이 있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 있다!'

실마리를 찾아낸 상원이 짝하고 박수를 쳤다.

다른 누구도 아닌, 상원의 가까운 지인 중 하나가 세상 끝의 마신에게 씌여 있었다.

'낙원의 성화' 윤진아.

바로 며칠 전에는 세상 끝의 불꽃의 힘을 그녀가 감당할 수 없는 속도로 증폭시켜서 그녀를 제압했었다.

'그때는 세상 끝의 불꽃을 막아야 했으니까.'

반대로, 상원은 마신의 힘을 천천히 증폭시키는 방법도 알고 있었다.

다만 하늘을 덮은 장막을 불태울 정도가 되려면 마신 그 자체를 강림시켜야 했고, 그러기 위해선 윤진아가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강해져야 했다.

물론 그 방법도 알고 있었다.

'좋아, 하나는 해결했다. 그다음 단계는 마물들을 모으는 거군.'

'신들의 황혼'은 '마귀와 망자와 벌레 그리고 뱀과 짐승의 군세'라 했다.

상원은 그 부분을 염두에 두고 그 앞에 있는 문장들을 샅샅이 훑었다.

'역시나. 승천계시록이나 신들의 황혼이나 패턴은 같군.'

이 문장에서 중요한 건 '마귀와 망자와 벌레 그리고 뱀과 짐승'이라는 부분이었다.

이건 단순히 마물들이 추락한 승천사들을 쓰러뜨리리라는 내용이 아니었다.

추락한 승천자들을 무찌르려면 다섯 마신의 힘이 모두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다섯 마신의 힘을 어디서 끌어온다?'

다섯 마신의 마물들이 모두 섞인 군세는 모으고 싶다고 모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상원은 끙 소리를 내며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때 상원의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아... 하나는 있군.'

다섯 마신 중 하나인 '태초의 대족장'의 힘은 상원 본인이 가지고 있었다.

강신회로에, 탈신모듈에 담긴 게 바로 그 힘이었다.

나머지도 가까운 곳에 있었다.

진아는 '세상 끝의 불꽃'에 씌어 있었다.

창훈의 가슴에 박힌 '의령수의 심장'엔 '연옥의 폭군'의 힘이 들어 있었다.

'지하의 수호자'의 전령 엘가가 혜경의 몸을 통해 이 세상을 드나들고 있었다.

그리고 이 방 바깥, 샤믹의 뱃속엔 '오랜 땅의 이무기'의 종복인 해원향의 내단이 들어 있었다.

절로 탄성이 나왔다.

"허."

준비해야 할 것은 많았지만, 대략적인 가닥은 잡혀 있었다.

'그래서, 떨어진 별들을 쓸어버리고 나면 그다음은?'

상원은 두루마리를 더 읽어내려갔다.

'신들의 황혼'은 그 뒤로도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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