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성 회귀자의 아포칼립스-193화 (193/230)

제193화. 도서관 (3)

서가를 내려다보던 상원의 입이 떡 벌어졌다.

'이 많은 책을 브라카다가 다 모았다고?'

믿을 수가 없었다.

이 정도 규모라면 기억의 궁전에 다 넣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렇게 큰 도서관은 처음입니다.”

솔미르가 상원의 말에 대답했다.

“그렇지요. 브라카다가 평생에 걸쳐 모은 것들이니까요.”

상원이 솔미르를 보며 물었다.

“타우 은하의 모든 정보들은 디지털화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렇게까지 책을 모을 이유가….”

‘아하.’

말을 하는 도중 깨달았다.

그걸 알아보았는지, 솔미르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당연히, 여기 있는 것들은 그 데이터베이스에 들어가지 않은 것들이지요. 대부분은 말입니다.”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은 책의 구덩이를 내려다보던 솔미르가 빙글 돌아섰다.

“일단 내려가시지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고 하셨으니 책을 보시는 게 먼저겠지요?”

솔미르가 구덩이에서 멀리 떨어진 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샤믹이 그를 종종 따라가며 물었다.

“아니 그냥 뛰어내리면 될 텐데….”

그녀의 말에 솔미르가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안됩니다. 책이 위험할 수도 있어요.”

솔미르의 말이 이해는 됐다.

오래된 책이란 건 깃털보다 소중히 다뤄야 하는 물건이니까.

솔미르가 계단을 내려가며 말했다.

“위대한 예언자였던 브라카다는 타우 은하의 종말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 종말을 막을 방법을 백방으로 찾아다녔지요. 여기 모여 있는 것들은 브라카다가 타우 은하의 종말을 막기 위해 찾아다녔던 것들입니다.”

한 층을 내려가서, 일행은 서고의 첫 번째 층인 지하 12층에 다다랐다.

벽에 늘어선 서가를 따라 걷던 솔미르가 자기 눈높이쯤에 있던 책 한 권을 꺼냈다.

“타우 은하에는 수백 수천 가지 신화와 예언이 있습니다. 브라카다는 그 이야기들 속에도 종말을 막기 위한 열쇠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건 브라카다가 타우 은하의 변방 행성에서 찾은 기록입니다.”

상원은 책을 받았다.

빛바랜 붉은 가죽 표지에 금박으로 쓰인 제목에는 군데군데 금칠이 벗겨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목을 읽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상원은 이름을 입에 굴려 보았다.

‘반지의 노래.’

“읽어봐도 되겠습니까?”

솔미르가 부드러운 웃음과 함께 작은 끄덕임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상원은 조심히 책장을 넘겼다.

타우 문자의 빼곡한 행렬에 상원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거... 못 읽겠는데.'

노트에서 보았던 타우 언어에 대한 지식은 문자를 읽는 법과 시험을 풀어나가는 데 필요한 간단한 단어 그리고 회화 정도가 전부였다.

이 책은 그 정도 지식으로는 읽을 수 없었다.

책장을 넘기며 미간을 구기는데 솔미르가 말했다.

“이건 타우어의 고문법으로 된 글입니다. 저도 읽기가 쉽지 않지요.”

“여기 있는 것들이 모두… 이렇게 타우 고문법으로 된 것들입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현대어로 적힌 것들도 많지요. 이쪽으로 오십시오.”

상원은 솔미르를 따라 몇 층을 더 내려갔다.

상원은 벽에 붙은 숫자를 읽었다.

‘지하 18층.’

솔미르가 지하 18층에 들어서며 말했다.

“여기 있는 것들은 현대어로 된 것들입니다. 쭉 보시지요.”

솔미르를 따라 18층에 들어선 상원은 서가를 쭉 훑어보았다.

수많은 책들이 빽빽하게 꽂힌 서가가 빈틈없이 늘어서 있는 건 지하 12층과 같았지만 다른 점이 있었다.

지하 18층의 서가엔 안내판이 붙어 있었던 것이다.

안내판이 주제별로 돼 있는 걸로 보아, 브라카다는 이 수많은 책들을 주제별로 분류한 것 같았다.

상원은 안내판을 하나하나 읽었다.

‘정치, 종교, 사회….’

지구의 도서관과 다를 게 없었다.

상원은 ‘정치’라는 팻말이 달린 서가에 가서 표지들을 쭉 훑었다.

대부분의 제목을 읽을 수 있었는데, 하나같이 ‘통치구조론’이니 ‘은하연방조약 해설’이니 하는, 예언과는 큰 관계가 없어 보이는 것들이었다.

상원은 그의 뒤를 따라오던 솔미르에게 물었다.

“솔미르… 이 아래로 있는 서가도 다 이런… 식입니까?”

솔미르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말씀이시지요?”

“그러니까… 그, 다른 층에 것들이 예를 들면 수학이니 의학이니 그런 식입니까?”

솔미르가 입을 동그랗게 말며 대답했다.

“오호, 역시 똑똑하시군요.”

결코 듣고 싶지 않았던 대답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아.”

타우 은하에서 시험이 펼쳐지기 한참 전인 지금 시점에 여기 건너온 건, 상원이 그 내용을 모르는 예언을 찾기 위해서였다.

새하늘 아버지를 무찌를 수 있는 방법을 담고 있을 수도 있는 그 예언을.

타나스로부터 구조 요청을 받고서, 그의 안내에 따라 아직 솔미르가 타나스에게 삼켜지지 않은 시점의 우주 도시 핌불베르트에 왔다.

그리고 핌불베르트의 필드 보스 ‘야룬비드’를 잡고 얻은, 노트에 없던 아이템 ‘도서관 입장권’.

그게 타나스가 말한 ‘예언’과 관계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도서관에 들어와 보니 고대 예언이라는 것들은 도저히 읽을 수가 없고, 읽을 수 있는 책은 예언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들이었다.

맥이 탁 풀리는 기분이었다.

상원은 마지막 희망을 담아 물었다.

“그… 이런 것들 말고, 브라카다가 남긴 건… 없습니까?”

상원의 말에 솔미르가 흠하는 소리를 내며 턱을 쓰다듬었다.

무언가를 고민하는 눈치였다.

‘이런, 답답하군.’

당신의 우주를 구하려면 조그만 단서라도 주어야 한다고 말하려는 찰나, 한참을 그러고 있던 솔미르가 입을 열었다.

“그… 음, 그게. 이 서가의 마지막 층에 브라카다의 개인 장서실이 있긴 합니다.”

상원의 눈이 반짝 빛났다.

“오… 그런 게 있습니까? 그런데 왜 진작 말씀하시지 않은 겁니까?”

솔미르가 끙 소리를 내며 대답했다.

“그게, 브라카다는 거기 들어갈 사람이라면 들어갈 방법을 알 거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상원 씨가 그 장서실의 존재를 모르는 걸 보니… 좀 고민이 됐습니다.”

'브라카다가 그런 말을 남겼다고?'

상원이 대답했다.

“들어가는 방법을 알 거란 말이 장서실의 존재를 알 거란 말은 아니지 않습니까? 일단 가봅시다. 가면 또 뭔가 단서가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팔짱을 끼고 한참을 생각하던 솔미르가 말했다.

“그 말이 맞습니다. 그래요, 갑시다.”

솔미르가 걸음을 성큼성큼 옮겨 향한 곳은 아래로 향하는 계단이 아니었다.

서고가 없는 벽으로 향한 솔미르가 강화복 주머니에서 커다란 열쇠 같은 걸 꺼내더니 벽 한가운데 꽂았다.

그러자 칙 소리와 함께 벽에 커다란 문 모양의 균열이 생기더니 좌우로 열리며 사람이 열 명은 족히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승강기가 나타났다.

솔미르가 상원과 샤믹을 돌아보며 말했다.

“브라카다의 개인 장서관으로 직통하는 승강기입니다. 가시지요.”

승강기가 도착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직행이라 그런지, 승강기는 세 사람이 타자 별도의 조작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승강기는 로비에서 지하 11층까지 내려올 때보다도 훨씬 빠른 속도로, 더 오래 움직인 것 같았다.

승강기 문이 열리고 상원을 맞은 건 아치형의 높은 문이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천장은 끝도 없이 높았고 그 끝에 달린 작은 조명들이 너른 공간을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높이가 이십 미터는 족히 될 듯한 아치형 문의 꼭대기에 문자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상원은 그 문자를 읽었다.

“말하라.”

'뭐지 이게?'

상원이 솔미르를 돌아보며 물었다.

“무슨 말입니까?”

솔미르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요,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이 장서고에 들어올 이는 들어가는 방법을 알고 있을 거라 했다고요. 그런 거 물어보셔도 저런 생판 모르는 문자는….”

샤믹이 어깨를 휘휘 돌리며 말했다.

“뭐야, 이깟 문 그냥 열어버리면 되는 거 아니에요?”

'아니, 그럴 리가.'

상원이 샤믹을 말리려는 데, 솔미르가 더 빨리 움직였다.

솔미르가 엎드려서 그녀의 발목을 붙잡은 것이다.

“아니, 안됩니다!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잘못하면 책이 모조리 엉망이 돼버릴 겁니다.”

“아니, 그럼 어떻게….”

상원은 두 사람의 실랑이를 보며 지끈거리는 골치를 부여잡았다.

'들어갈 사람이라면 들어갈 방법을 알고 있을 거라고?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지?'

상원은 한숨을 쉬며 ‘도서관 입장권’을 꺼냈다.

브라카다가 남겼다는 수첩, 여기에 뭔가 단서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상원은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수첩을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겼다.

역시, 수첩의 문자들은 모두 흐려지거나 번져 있었고 알아볼 수 있는 글자는 몇 개 되지 않았다.

그 글자라고 해봐야 고작 숫자들뿐이었다.

‘14, 14, 25, 3… 어, 잠깐만.’

“뭐야, 이거?”

상원은 수첩 덮었다가 첫 페이지부터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겨 보았다.

‘역시!’

수첩 안에 남아 있는 알아볼 수 있는 문자들은 모두 숫자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상원은 숫자를 모두 기억했다.

백 개도 채 되지 않는 숫자를 외우는 건 상원에겐 손쉬운 일이었다.

이어서 상원의 머릿속을 스쳐 가는 장면이 있었다.

지하 18층 서가에서 보았던 책 ‘통치구조론’의 표지에 붙어 있던 라벨, 거기에 숫자 몇 개가 쓰여 있었다.

‘그렇다면….’

상원은 솔미르를 불렀다.

“솔미르! 지하 14층으로 갑시다! 빨리요!”

실랑이를 하던 샤믹과 솔미르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상원을 보았다.

솔미르가 물었다.

“왜요…? 뭔가 알아내셨습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상원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그렇게 상원은 브라카다의 수첩이 안내하는 책들을 찾아다녔다.

수첩에 적힌 숫자는 하나같이 특정한 책들을 가리키고 있었다.

‘지하 14층 서고, 14 25 3 19 책 243페이지의 132번째 글자.’

그렇게 해서, 상원은 브라카다의 서고를 종횡무진으로 누비며 열 개의 문자를 찾아냈다.

쉴 새 없이 서고를 돌아다녀 열 개의 문자를 모두 모은 상원이 다시 브라카다의 장서관 입구에 섰다.

상원은 문 높이 붙은 글자를 읽었다.

“말하라.”

이어서, 상원은 수첩의 안내에 따라 모은 열 개의 타우 문자를 발음했다.

“멜론.”

기대감에 가득 찬 솔미르와 샤믹의 눈빛에 뒤통수에 구멍이 날 것 같았다.

‘그래, 틀림없이 열려야 한다.’

하지만 이게 웬걸,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지?’

샤믹이 얼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어라… 안 움직이네?”

솔미르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아니, 아니… 상원 씨, 뭔가 헷갈리신 거 아닙니까?”

상원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숫자는 모두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문자도 모두 정확하게 찾았다.

'그렇다면 예상하지 못한 다른 조합이라도 있는 건가? 아니면….'

샤믹이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치며 말했다.

“아니… 도대체 뭘 말하라는 거야?”

“그러게… 어?”

'잠깐만… 샤믹이 어떻게 저걸 읽을 수 있는 거지?'

상원이 다시 글자를 올려 보았다.

‘말하라.’

분명 한글로 적혀 있었다.

지금까지 타우 문자만 본 탓에 의식하지 못했다.

문 위의 글자는 한글, 정확히 말하면 바벨의 은총을 받은 이라면 읽을 수 있는 시험의 문자로 적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답 역시 시험의 말로 해야 되겠지.

‘타우어 멜론이 무슨 뜻이냐면….’

“친구.”

입을 동그랗게 말고 소리를 떠나보내자, 굳게 닫혀 있던 문에서 쿠르르하는 진동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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