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성 회귀자의 아포칼립스-191화 (191/230)

제191화. 도서관 (1)

상원은 공중에 검을 휘둘러 보았다.

곧고 정한 양손검이 펜처럼 가벼웠다.

검이 그은 자리로 은빛 호가 남았다.

몸 속에 들어온 '원탁의 왕'이 말했다.

- 좋군.

검 실력에 있어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운 승천자가 상원의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 덕에 몸은 상원의 것이 아닌 것처럼 가뿐했다.

- 이번엔 늑대인가?

원탁의 왕이 야룬비드를 향해 검을 겨누었다.

날카로운 검 끝이 야룬비드의 두 목이 갈라지는 지점을 정확히 겨누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폐하."

상원의 입에서 은빛 기운이 눈처럼 흩날렸다.

- 그래, 가세.

상원은 원탁의 왕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스킬을 전개했다.

일대일 상황에서는 최고의 효율을 보이는 스킬, '결투장'이었다.

[스킬 '결투장'을 사용합니다.]

[상대: 야룬비드]

[주변에 구경군이 없습니다. 능력치 상승이 미미합니다.]

상원을 중심으로 뻗어 나간 녹색 막이 두 코일에서 뻗어 나온 에너지 장막 사이에 갇힌 야룬비드를 감쌌다.

'원탁의 왕'의 도움을 받은 덕에, 녹색 장막은 더욱 선명해져 있었다.

결투장은 설정된 상대를 장막에 가두고 다른 이들은 장막 밖으로 밀어내는 스킬로서, 막 주변 구경꾼의 수에 비례해 사용자의 능력치를 증폭시켜 주었다.

그런데 지금은 주변에 구경꾼이 없는 상황이라 능력치 상승폭 또한 미미했다.

하지만 그 미미한 능력치라도 없는 것보단 나았다.

- 고맙군.

- 별 말씀을요.

상원은 가볍게 대답하고 발을 놀렸다.

이제 다음 스킬을 쓸 차례였다.

원탁의 왕이 말했다.

- 이제 저 늑대를 잡을 기사들이 필요하겠군.

- 그렇습니다.

상원은 본모습을 되찾은 '바위에 박힌 검'의 칼자루를 양손으로 부여잡고 마력을 불어 넣었다.

그러자 긴 칼날이 우웅 하고 떨리기 시작했다.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바위의 박힌 검'의 스킬 '기사단 소환'을 사용합니다.]

[잊혀진 원탁의 기사단이 이 땅에 돌아옵니다.]

단전에서부터 마력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핑 하는 현기증과 함께 무릎이 풀썩 꺾여 주저 앉으려는 몸을, 검을 거꾸로 땅에 박아 겨우 지탱했다.

상원의 ['바위의 박힌 검'의 스킬 '기사단 소환'을 사용합니다.]

[잊혀진 원탁의 기사단이 이 땅에 돌아옵니다.]

몸 속에 깃든 '원탁의 왕'이 상원의 몸을 일으켜 주었다.

왕이 말했다.

- 그대를 따르는 기사단에게 위엄을 보이게.

상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기사단이 나를 보기 전에 위엄을 찾아야지.'

상원의 무기 '바위에 박힌 검'에는 원탁의 왕과 그를 따르는 기사단이 통째로 봉인되어 있었다.

그 검의 진정한 모습을 끌어내는 자에게는 기사단을 지휘할 권능이 주어졌다.

하지만 기사들은 그 지휘에 순순히 따르지 않는다.

기사단의 지휘자는 왕의 대리인으로서 그에 걸맞는 위엄을 보여야만 하는 것이었다.

'고작 소환 스킬인데 제대로 쓰려면 왕의 위엄을 갖추어야 한다니, 참 지랄맞은 스킬이야.'

상원은 힘이 빠져나가는 몸을 꼿꼿하게 세웠다.

곧 저 멀리서부터 말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룬비드를 감싼 마력 장막 건너편, 야룬비드가 걸어왔던 대로 저편으로부터 새까만 마구를 걸친 기사들이 말을 달려오고 있었다.

하나하나가 6등급 마물에 필적하는 전투력을 가진 기사, 그들이 바로 원탁의 왕을 추종하는 원탁의 기사들이었다.

그들이 허공을 향해 높이 치켜든 날붙이가 마력 장막이 내뿜는 빛을 반사하며 예리하게 빛났다.

기사단의 함성이 폐허가 된 도시에 가득 울려 퍼졌다.

"주군을 위하여!"

상원은 이를 악물고 땅에 박힌 양손검을 뽑아내 다시금 야룬비드를 향해 겨누었다.

검으로부터 새하얀 검기가 길게 뻗어 나갔다.

양손검을 움켜쥔 팔뚝에 투둑 투둑 핏줄이 섰다.

상원은 원탁의 왕의 힘을 담아 긴 함성을 질렀다.

“원탁의 기사들이여! 저 잔악한 늑대를 거꾸러뜨려라!”

상원의 외침이 때마침 불어치기 시작한 눈보라 속으로 퍼졌다.

원탁의 기사들이 기다렸다는 듯 화답했다.

“늑대를 쳐라!”

원탁의 기사들이 흉흉하게 내뿜는 새빨간 안광이 안개 속에서 성난 파도처럼 몰아쳐 왔다.

봇물처럼 야룬비드에게 닿은 원탁의 기사들이 무지막지한 날붙이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야룬비드가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아아악!”

평소 같았으면 그 거대한 팔을 휘둘러 기사들을 벌레처럼 짓뭉개버렸을 텐데.

그러나 두 겹의 마력 장막에 짓눌린 야룬비드는 허우적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브라카다 리전 대원들을 모조리 얼려버렸던 냉기도 마력 장막에 눌린 탓에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기사단의 공격에 야룬비드가 서서히 무너져 갔다.

상원은 그 광경을 차분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상원이 움직이지 않는 게 의아한 것인지, 원탁의 왕이 물었다.

- 이제 가야 하지 않겠는가?

상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 아직 아닙니다.

원탁의 왕의 목소리에 호기심이 어렸다.

- 호오? 기다리는 순간이 있는 건가?

- 그렇습니다.

원탁의 왕의 힘을 실은 일격필살의 검은 저 괴물에게 일격을 가하기엔 최적의 스킬이었지만 마력 소모와 육체적 부담 또한 상당했다.

그런 스킬은 역시 야룬비드의 약점에 꽂아 넣어야 했다.

상원은 그 약점이 드러나길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원탁의 왕이 재차 물었다.

- 어떤 순간인가? 저놈의 사지가 모조리 부서져서 목을 치기 좋게 쓰러지는 때인가?

- 비슷합니다.

야룬비드의 약점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이제 그 약점이 드러날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야룬비드의 두 목 사이의 가죽이 찢어지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서 사람의 코끝을 닮은 무언가가 슬슬 기어 나오고 있었다.

원탁의 왕의 목소리가 떨렸다.

- 저…저건…?

상원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드디어 세 번째 머리가 나오는군.’

늑대의 머리가 두 개 달린 고릴라처럼 생긴 마물 야룬비드.

평소 보이는 이 형태는 사실 야룬비드의 진정한 모습이 아니었다.

놈의 진정한 모습은 평소에는 숨기고 다니는, 마녀처럼 생긴 가운데 머리를 내놓은 형태였다.

가운데 머리를 드러내면 야룬비드의 전투력은 배가한다.

동시에 가운데 머리의 코끝이 놈의 약점이기도 했다.

늑대의 머리가 좌우로 밀려나면서 가운데 머리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좌우의 두 머리와는 달리 가운데 머리는 눈이 화등잔만 한 노파처럼 보였다.

귀까지 찢어진 입속의 상어같이 촘촘한 이빨을 드러내고 웃는 모습이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가운데 머리가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는 것 같은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사악한 웃음소리 같기도 했다.

“흐이이이익.”

가운데 머리가 입김을 후 하고 불어내자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이 짙은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 냉기에 맞은 원탁의 기사들이 서서히 느려지고 있었다.

당황한 기사들이 침음성을 흘렸다.

“으…이…이런…!”

“주군의…명을 따라야 하는데….”

원탁의 왕이 안타까움을 담아 외쳤다.

- 아니…이제 움직여야 하지 않겠는가?

상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마녀의 머리가 드러났으니 이제 움직일 때가 됐다.

상원은 검 손잡이를 꼭 움켜쥔 두 손에서 있는대로 마력을 끌어모아 칼에 불어넣고는 원탁의 왕에게 말했다.

- 왕이시여. 청이 있사옵니다.

- 무엇이냐?

- 제국의 앞을 가로막는 거인들을 처단하였던, 그 일격을 이 칼에 실어 주소서.

타락신 ‘원탁의 왕’은 그의 기사들과 함께 제국을 건설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앞을 가로막은 거인들을 물리쳤다.

그 거인들을 물리쳤던 검격이 칼에 서서히 깃들고 있었다.

검을 감싼 새하얀 검기가 눈송이처럼 부서지더니 검을 중심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아더왕이 허허 웃으며 말했다.

- 자네는 참 많은 것을 알고 있군.

누군가가 타락신이 된 자신의 이야기를 알고 있을 거라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 까다롭기 그지없는 원탁의 왕은 자신의 성명절기를 아낌 없이 보여주었었다.

그건 이번 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타락신 ‘원탁의 왕’이 스킬 사용을 위해 빙의합니다.]

몸 속에 원탁의 왕의 의지가 깃들자, 몸이 상원의 통제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감각이 지나치게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상원은 야룬비드가 내뿜는 숨결 하나 하나와 야룬비드의 몸에 박히는 병장기 하나하나를 느꼈다.

허공에서 춤추는 눈송이 하나하나의 궤적이 보였다.

어느새 나타난, 은빛 마구로 온몸을 감싼 해골마를 타고서 상원은 눈 사이로 걸었다.

눈송이가 몸에 닿을 때마다 눈 앞에서 맑은 종이 울리는 것 같은 청아한 울림이 온 몸에 진동했다.

상원의 몸에 들어온 원탁의 왕이 박차를 가했다.

“하아!”

그러자 해골마가 공중으로 날아 오르기 시작했다.해골마는 공중을 달리고 있었다.

그렇게 야룬비드의 가운데 머리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커다란 눈 가운데 지름이 몇 미터는 될 듯한, 불경한 문자가 잔뜩 새겨진 눈동자가 상원을 내려다보았다.

코끝에 잔뜩 돋은, 마찬가지로 사람의 얼굴과 손을 닮은 돌기들이 갈라진 손톱 하나 하나까지 선명했다.

그 코끝 한가운데 유달리 눈에 띄는 돌기가 있었다.

다른 것들처럼 사람의 얼굴을 닮았는데 눈코입이 선명했고, 두 눈구멍에서 새하얀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저기가 야룬비드의 약점, 야룬비드의 '진짜 머리'였다.

‘바로 저기다.’

상원은 양손검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날아오는 공을 때리려는 타자처럼 몸을 오른쪽으로 잔뜩 비틀었다.

단단한 허벅지가 안장을 조였고 허리 위로는 상체의 모든 근육들이 끝까지 당긴 활시위처럼 팽팽하게 늘어났다.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원탁의 왕'의 권능 '거인살해자의 검격'을 사용합니다.]

단전에서부터 썰물처럼 빠져나간 마력이 검신에 맺혀 찬란하게 빛나는 검기가 되었다.

원탁의 왕이 앞을 가로막는 거인들을 베었던 그 검격, 그것이 상원의 칼끝에서 준비되고 있었다.

야룬비드의 진짜 머리가 코와 입으로 허연 냉기를 뿜어냈다.

"후우우우!"

우주도시의 시가지 하나를 통째로 얼려버린 냉기가 거기 집약되어 있었다.

그러나 소용 없는 짓이었다.

상원에겐 스킬이 통하지 않으니까.

상원은 짧은 숨을 뱉으며, 늘렸던 근육들을 일순간 당겼다.

"흐읍!"

모든 힘을 쏟아낸 횡베기가 뿜어낸 섬광이 천지를 가로로 갈랐다.

흩날리던 눈보라가 순간 멈추었다.

시간이 정지한 것 같은 그 풍경 속에서, 상원은 야룬비드의 진짜 머리를 마주보았다.

눈구멍에 들어찬 시뻘건 불빛이 믿을 수 없다는 듯 흔들렸다.

"그...으으윽...!"

피식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가 가로로 갈라지며 싯누런 짓물이 퍽 하고 튀어나왔다.

이어서 야룬비드의 거체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던전 핌불베르트의 필드 보스 야룬비드를 물리쳤습니다.]

[보상 정산을 시작합니다.]

[기여도와 공략 방법에 따라 보상을 조정합니다.]

잠시 후 메시지가 이어졌다.

[보상 정산이 끝났습니다.]

[다음 보상을 제공합니다: 20만 코인, 겨울 늑대의 징표, 도서관 입장권.]

'응? 도서관 입장권?'

상원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생전 처음 보는 아이템이 보상 목록에 있기 때문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