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성 회귀자의 아포칼립스-189화 (189/230)

제189화. 늑대 (3)

솔미르가 에론이 만든 물건을 보며 말했다.

"이게... 그러니까 '병렬 증폭 장치'라고요?"

에론이 만든 건 상원이 품에서 꺼낸 몇 가지 것들로 강화복 배터리를 이어 만든 염주같이 생긴 물건이었다.

'이걸 가지고 마력을 증폭할 수 있다고? 에너지 반응을 유도할 수 있는 충격을 만들어 낼 정도로?'

그 누구라도 농담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원의 대답은 더없이 진지했다.

"그렇습니다."

에론이 병렬 증폭 장치를 내밀었다.

"자요."

솔미르는 반신반의하며 병렬 증폭 장치를 받아들어 목에 걸었다.

"이거... 이렇게 쓰는 게 맞습니까?"

상원이 대답했다.

"네. 똑똑하시군요."

'똑똑하기는. 이걸 보면 누구라도 먼저 목에 걸어볼 생각을 하지 않겠어?'

다시 의심이 들었다.

이 사람들의 말을 믿을 수 있을까?

이런 장난감 같은 물건으로 그 야룬비드를 잡을 수 있다고?

상원이 말했다.

"솔미르, 지금까지 당신이 보았을 그 어떤 증폭기보다도 강한 물건입니다. 그걸로 에너지 코일도 충분히 흔들 수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그 말을 하는 상원의 표정은 진지하기 그지없었다.

저 사람이 저런 표정으로 말하니 믿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때 쿵 하고 땅이 울렸다.

천장에서 후두둑 먼지가 떨어졌다.

솔미르가 이를 갈며 말했다.

"놈이다...!"

벌써 몸이 벌벌 떨렸다.

상원이 무언가를 계산하는 듯 눈을 가늘게 뜨고 천장을 보았다.

무어라 중얼거리던 상원이 말했다.

"갑시다. 더 늦으면 놓치고 말아요. 그럼 또 한참을 기다려야 됩니다. 그럴 수는 없어요."

그리고는 두 여자에게 지시했다.

"에론, 여기 남아서 대원들을 돌봐 주세요. 강화복을 수리해주시고 상태를 봐서 음식을 주시면 됩니다."

"네 용사님."

"그리고 샤믹은 솔미르와 함께 코일로 가세요."

"넵 대장. 그런데 코일 위치는요?"

상원이 솔미르를 바라보았다.

"솔미르가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요?"

솔미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코일의 위치는 틀림없이 알고 있다.

다만 그 괴물을 다시 대면할 생각에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을 뿐.

그때 솔미르의 몸이 붕 떴다.

샤믹이 또 솔미르를 집어 든 것이다.

"어... 어어?"

힘이 지나치게 좋은 것도 탈이다.

말보다 몸이 앞서니까.

샤믹이 솔미르를 어깨에 짊어지고 말했다.

"빨리 움직이죠. 길 알죠?"

솔미르가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상원이 솔미르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코일로 가시면 대기하십시오. 신호를 주면 마력을 불어넣으면 됩니다. 명심하십시오. 신호를 주면, 그때 마력을 넣어야 합니다. 알겠지요?"

"아... 알겠소."

상원은 그래도 못 미더웠는지 샤믹을 보며 한 번 더 힘주어 말했다.

"샤믹, 들었지요? 신호가 올 때까지 대기해야 합니다."

"옛썰!"

고개를 끄덕인 상원이 대기실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고 나타난 어둠을 향해 상원이 뛰어들었다.

"갑니다!"

이어서 샤믹이 달렸다.

폐허가 된 도시의 어둠이 솔미르의 눈을 덮었다.

* * *

함께 움직이던 상원과 솔미르는 커다란 코일이 눈에 들어올 때쯤 갈라졌다.

하늘을 향해 삐죽 솟아오른 마천루들 사이에 이질적인 물건이 있었다.

옆의 마천루들과 비슷한 크기의 막대사탕같이 생긴 구조물, 바로 에너지 코일이었다.

코일이 내뿜는 강력한 에너지 때문에 그 주변으로는 구름도 안개도 끼지 않아 그 모습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지름이 몇십 미터는 족히 될 듯한 머리는 은색으로 빛나고 있었고, 마찬가지로 은빛 관이 가느다란 몸통을 나선형으로 감싸고 있었다.

발 빠른 샤믹 덕분에 솔미르는 순식간에 코일에 다다를 수 있었다.

솔미르가 말했다.

"저기 몸통 아래, 문 있죠? 거기로 갑시다."

"넵넵."

바람처럼 달려간 샤믹이 문을 걷어차자 쾅 소리와 함께 강철로 된 문이 종잇장처럼 구겨지며 떨어져 나갔다.

무시무시한 힘이었다.

'그거 그냥 내가 열면 됐을걸요.'라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코일에 도착했으니, 다음 할 일은 승강기를 타고 머리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코일에 충격을 주려면 머리 내부로 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샤믹에게서 내린 솔미르는 얼른 달려가 승강기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 어어?"

버튼을 몇 번 더 눌러 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아... 이런...."

샤믹이 물었다.

"왜 그래요?"

"승강기가 작동하지 않아요. 이걸 타고 올라가야 하는데...."

"아...."

솔미르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승강기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이 뻗어 있었다.

그 옆으로는 비상용 사다리가 달려있었지만 그걸 타고 머리까지 올라갈 엄두는 도저히 나지 않았다.

그때 유심히 밖을 바라보던 샤믹이 말했다.

"솔미르, 저거... 혹시 저거 타고 올라가도 머리에 들어갈 수 있어요?"

솔미르는 샤믹이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몸통을 감싼 은빛 관이었다.

'코일이... 구조가 어떻게 되더라?'

몸통을 감싸고 올라간 관은 머리 안으로 이어진다.

관이 머리를 뚫고 들어가는 부분에는 관 주변으로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의 공간이 있었다.

그러니까, 이 관을 타고 올라가면 코일 머리로 들어갈 수 있기는 있었다.

"그렇기는 합니다만... 설마...?"

설마가 사람을 잡았다.

솔미르를 집어 든 샤믹이 관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한 것이다.

* * *

코일의 머리 안쪽.

커다란 구 모양의 코일 머리 한가운데 수평 바닥이 있었다.

관을 따라 올라와 그 바닥에 다다른 솔미르가 바이저를 열고 토사물을 쏟아냈다.

"그어어어억."

샤믹이 겸연쩍게 웃으며 솔미르의 등을 두드렸다.

"아이고, 미안해요."

아직도 하늘이 돌았다.

솔미르를 어깨에 짊어지고 달려서 관을 오르다 몇 번 미끄러질 뻔한 샤믹은 방식을 바꿨다.

꼬리로 솔미르의 발목을 감은 채로 기어서 관을 오른 것이다.

샤믹이 꼬리로 균형을 잡는 통에 솔미르는 하늘에 떠오른 연마냥 이리저리 휙휙 흔들렸던 것이다.

솔미르가 머리를 흔들고 말했다.

"아아,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속을 비워내니 머리가 맑아졌다.

솔미르는 고개를 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에너지 코일의 내부에 들어온 건 수십 년 전 수습 시절 견학을 온 이후 처음이었다.

그럼에도 코일 내부의 구조는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이걸 잘못 건드리면 핌불베르트가 멸망해버릴 수도 있다는 협박 섞인 설명이 귀에 박힌 탓일 것이다.

솔미르는 구의 중심으로 걸어갔다.

수평 바닥의 가운데, 반지름이 솔미르의 키보다 조금 더 큰 새까만 구가 있었다.

바닥에서 코일의 몸통을 감고 올라온 관이 거기로 이어졌다.

그게 바로 이 코일을 지나는 에너지가 집결하는 핵이었다.

새까만 구 안에서 파란 에너지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저 안에 담긴 에너지의 양은 막대하다.

잘못 건드리면 도시의 한 구역 정도는 우습게 날려버릴 수 있기에, 핌불베르트의 기술자들은 이중 삼중의 조치를 통해 코일의 안정성을 보강했다.

이제 그 안정성을 깨야 하는 것이었다.

'그걸 할 수 있다고?'

솔미르는 목에 건 병렬 증폭 장치를 만져보았다.

그에게 다가온 샤믹이 물었다.

"솔직히 모르겠죠? 그런 물건 하나가 마력을 얼마나 증폭시킬 수 있다는 건지."

"그렇게 보입니까?"

"그럼요. 표정에 다 드러나는걸. 근데 그럴 수 있다는 것도 이해해요. 저 같아도 그랬을걸요."

샤믹이 부드럽게 웃으며 덧붙였다.

"그래도 대장은 틀림없어요."

솔미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믿어보자.

그때 쿵 하고 땅이 울렸다.

이번에는 한 번이 아니었다.

쿵, 쿵, 소리가 연속해서 이어졌다.

"온다...!"

솔미르는 투명한 코일 머리의 바깥을 보았다.

도시를 뒤덮은 안개 속에서 거무스름한 형체가 나타났다.

쿵, 쿵.

땅이 울릴 때마다 코일 머리가 진동했다.

코일을 따라 흐르는 에너지는 안개와 구름은 물리쳤지만 놈이 내뿜는 냉기까지 막아주지는 못했다.

벌써 강화복 사이가 시려 오기 시작했다.

사지가 주체할 수 없이 벌벌 떨려왔다.

쿵.

이윽고 안개를 뚫고 놈이 그 거대한 형체를 드러냈다.

샤믹이 넋이 나간 목소리로 물었다.

"뭐야... 저게 뭐예요?"

"저게 바로 야룬비드요."

타나스가 브라카다 리전을 사냥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괴물.

안개 속에서 몸을 드러낸 건 수천 구의 시체를 붙여 만든 것 같은 흉물이었다.

전체적인 형상은 삐쩍 마른 고릴라 같았는데, 잔뜩 굽은 어깨 위로 늑대를 닮은 머리 두 개가 붙어 있었다.

껍데기에 돋은 수천 개의 우둘투둘한 돌기 하나하나가 사람의 손과 얼굴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놈의 코와 주둥이에서 허연 안개가 뿜어져 나왔다.

그게 바로 야룬비드의 냉기였다.

지독한 한파가 덮친 핌불베르트를, 저 안개가 지옥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솔미르는 보았다.

저 안개 속에서 빛나는, 시뻘건 네 개의 눈이 분명 솔미르를 바라보고 있었다.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놈이 하늘을 보며 울부짖었다.

"아우우우우!"

그리고는 서서히 코일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동작은 아주 느렸지만 덩치가 워낙 컸기에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다.

놈이 내뿜는 안개도 가까워졌다.

정말로, 죽을 것 같이 추웠다.

솔미르는 건너편 코일을 바라보았다.

어찌 된 일인지, 상원이 올라갔을 반대편 코일은 아무 일도 없이 잠잠했다.

'어째서...?'

바이저 위로 성에가 꼈다.

놈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졌다.

벌어진 입안에 늘어선 날카로운 이빨이, 솔미르의 심장을 꿰뚫는 시뻘건 눈이 선명하게 보였다.

절규하는 사람의 얼굴처럼 생긴 돌기 하나하나를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주춤주춤 물러나던 솔미르가 핵을 향해 달려갔다.

"제... 젠장!"

솔미르가 손에 마력을 불어넣자 병렬 증폭 장치에 달린 베터리들이 파랗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느껴진 무시무시한 마력량에 솔미르는 기절할 뻔했다.

"이건...!"

'이 장난감 같은 물건이 마력을 이렇게나 증폭시키다니!'

이 정도 힘이라면, 코일의 안정장치를 흔들기 충분했다.

그때 무언가가 발목을 잡은 탓에 솔미르는 바닥에 엎어지고 말았다.

넘어진 솔미르가 발목을 보았다.

샤믹이 그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놔... 놔! 뭐 하는 거요!"

샤믹이 소리쳤다.

"들었잖아요! 신호가 올 때까지 기다려요!"

"미쳤어! 이대로 있다간 죽어!"

"아직! 아직이에요!"

갑자기 퉁 하는 소리와 함께 코일의 외벽이 울렸다.

솔미르는 소리가 난 쪽을 보았다.

야룬비드의 얼굴이 코일의 외벽에 닿아 있었다.

놈의 콧구멍에서 나온 냉기에 외벽이 얼어붙었다.

순간 솔미르의 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갔다.

'죽는다.'

그 생각뿐이었다.

그때였다.

쾅 하는 굉음과 함께 야룬비드의 어깨너머 다른 코일로부터 파란색 에너지 기둥이 솟아났다.

샤믹이 외쳤다.

"지금이에요!"

샤믹이 솔미르를 집어 들고 핵으로 뛰었다.

"크오오오오오!"

야룬비드가 커다란 손을 들어 코일을 후려치려 하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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