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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성 회귀자의 아포칼립스-182화 (182/230)

제182화. 핌볼베르트 (1)

윤진아의 병실은 윗층, 그러니까 병동 4층에 있었다.

병동 4층은 마귀에 씌인 수험자들을 모아서 치료하는 곳이었다.

상원은 복도 끝까지 나는 듯 달려 계단을 올라갔다.

"불신자...잠깐!"

등 뒤로 엘가의 목소리가 멀어졌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어차피 엘가도 마귀의 기척을 느끼고 따라올 테니까.

그리고, 그만큼 진아의 상태를 살피는 게 급했다.

한 층 올라가니 예상치 못했던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4층 복도를 막은 커다란 철문이 찌그러져 있었던 것이다.

철문을 지키던 수험자는 바닥에 넘어진 채였는데, 그의 오른쪽 다리는 천장에서 떨어진 커다란 바윗돌에 짓눌려 꺾여 있었다.

천장이 부서질 정도로 진동이 컸던 것이다.

'아랫층에는 그 정도로 느껴지진 않았은데....'

수험자가 상원을 올려다보며 울상을 지었다.

"사...상원씨...."

"흡!"

상원은 오른손에 '끝없는 대지의 거수'의 불타는 마력을 담아 바윗돌을 내려쳤다.

주먹질 한 방에 콘크리트 바윗돌이 산산조각나버렸다.

그리고는 4층 복도로 통하는 철문을 밀었다.

꾸드드득 하고 쇠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아뿔싸.'

복도가 무너지면서 철문을 짓누른 탓인지, 철문은 상원의 힘으로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젠장.'

그때였다.

다시 한 번 우르르릉 하는 굉음과 함께 병동 전체가 흔들렸다.

확실히 느껴졌다.

진동의 진원지는 이 철문 너머였다.

엘가가 상원의 뒤를 따라 올라오며 외쳤다.

"불신자! 서둘러야 해! 마기가 강해지고 있다!"

'젠장!'

상원이 이를 갈며 철문을 쳤다.

하지만 소용 없었다.

철문에 주먹 자국이 났지만 열리지 않는 건 그대로였다.

상원은 굳은 얼굴로 철문을 보았다.

4층 복도를 철문으로 막아놓은 이유는 마귀들린 수험자들을 격리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니 이 철문을 부수면 마귀들린 수험자들이 제멋대로 날뛰며 난동을 부릴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마귀 들린 수험자들이 날뛰는 걸 걱정하는 건 나중 일이었다.

지금은 윤진아가 급했다.

눈을 꾹 감고, 상원은 오른손에 기를 잔뜩 끌어모아 철문을 후려쳤다.

그러자 방금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폭탄이라도 터진 것 같은 굉음과 함께 두꺼운 철문이 종잇장처럼 날아가버렸다.

그 너머로 병동 4층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낮인데도 4층 복도는 어둡고 을씨년스러웠다.

그리고 상원은 섬뜩한 사실을 깨달았다.

평소 같았으면 마귀에 씌여 정신이 나가버린 수험자들이 지르는 괴성과 소음이 귀를 가득 메웠을 텐데, 지금은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복도는 섬뜩할 정도로 조용했다.

꿀꺽하고 침을 삼키는 소리가 지나치게 크게 울려퍼졌다.

상원은 복도를 걸어갔다.

넓은 복도에 상원과 그 뒤를 따르는 엘가의 발소리만이 울렸다.

저벅 저벅

그렇게 몇 개의 병실을 지났을 때, 또다른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누군가 속삭이듯 낮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말소리가 너무 빨라서 알아듣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정신을 집중하니 그게 기도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사오니...."

틀림없는 윤진아의 목소리였다.

"진아씨...!"

상원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어두운 복도 가운데, 유달리 짙은 마기가 흘러나오는 방이 있었다.

거기가 바로 윤진아의 병실이었다.

상원은 병실 앞에 섰다.

문틈으로 '낙원의 수문장'이 내뿜는 특유의 분홍색 불빛이 넘실거렸다.

엘가가 말했다.

"여기...여기다. '세상 끝의 불꽃'...."

'세상 끝의 불꽃....'

꿀꺽.

상원이 침을 삼키는 소리가 다시 한 번 복도에 울렸다.

시험에는, 듣기만 해도 공포스러운 이름들이 있었다.

'세상 끝의 불꽃'도 그 중 하나였다.

마신 중의 마신의, 그의 이름이 어찌 두렵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상원은 잘 움직이지 않는 팔을 억지로 들어 문고리를 잡았다.

문고리를 잡은 손에 땀이 가득한 탓에 문고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엘가가 상원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

큰 숨을 쉬며, 상원은 다시 한 번 손에 힘을 꽉 주고 문고리를 돌렸다.

삐걱 하는 소리와 함께 문고리가 돌아갔다.

문이 열리며 병실 안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진아가 방 가운데 앉아 오른쪽 벽을 향해 웅크리고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천주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어...그리로부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

그녀의 등 뒤에서 분홍색 날개가 너울거리고 있었다.

틀림없는 '낙원의 수문장'의 날개였다.

그녀가 기도를 올리고 있는 오른쪽 벽에는 커다랗고 새빨간 십자가가 그려져 있었다.

아마 자기 피로 그린 것일 게다.

상원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진아씨."

웅크리고 있던 진아가 고개를 들어 상원을 보았다.

그녀의 눈은 분홍색 불꽃으로 가득차 있었다.

상원은 직감했다.

'아, 이건 윤진아가 아니다.'

상원이 고개를 숙이며 그 존재를 향해 예를 올렸다.

"'낙원의 수문장'이시여."

낙원의 수문장이 살짝 눈을 내리깔고 말했다.

진아의 목소리가 우렁우렁 울렸다.

"정말 오랜만이군, 불신자."

그 성스러운 기운에 자극받은 것일까, 밖에서 마귀들린 이들이 지르는 비명이 들려왔다.

"으아아아악!"

"끄아아아아악!"

낙원의 수문장이 이렇게 강하게 빙의한 적이 있었던가?

이건 전례 없는 일이었다.

이 정도의 빙의를 견딜 수 있을 만큼 윤진아가 강해진 것이었다.

그리고 또 그만큼 상황이 심각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수호신이 자기 육체의 일부를 내비칠 정도로 강하게 빙의하면 화신의 몸은 그 격을 버텨내지 못하고 손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그건 수호신에게도 엄청난 부담이었다.

사바세계는 새하늘같이 별빛으로 가득한 곳이 아닌, 고통과 번뇌로 가득한 곳이었으니까.

사바세계의 공기는 승천자들에게는 치명적이었다.

낙원의 수문장은 그걸 감수하고서라도 화신을 지키고 있는 것이었다.

힘겹게 일어선 낙원의 수문장이 비틀거리며 상원을 향해 다가왔다.

그가 상원에게 손을 내밀었다.

상원은 그의 손을 잡았다.

맞잡은 손에서 타는 듯한 열기가 느껴졌다.

낙원의 수문장이 엷게 웃으며 말했다.

"이토록 오랜만에 만났는데, 명색이 낙원의 수문장이 체면이 말이 아니군."

그리고는 엘가를 보며 말했다.

"아아, 마신의 종이 여기에도 있구나. 기관원이었던 자가 이제는 마신의 종이 되었군."

엘가가 그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였다.

"오랜만입니다, 낙원의 수문장이시여."

상원이 낙원의 수문장에 물었다.

"진아씨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낙원의 수문장이 고개를 절레 절레 저었다.

"좋지 않아. 정말...지독한 게 몸에 들어왔어."

상원의 얼굴이 굳었다.

모든 징조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었다.

낙원의 수문장, 그 강한 성령들 중에서도 강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자가 지독하다고 할 정도의 악마가 누가 있지?

엘가로 하여금 '세상 끝의 불꽃'을 느끼게 할 만한 괴물이 누구지?

바알? 아가레스?

수많은 원형들의 이름이 머리를 스쳐갔다.

그때였다.

갑자기 낙원의 수문장의 등 뒤로 펼쳐졌던 날개들이 마치 꽃잎이 떨어지듯 한 장 한 장 툭 툭 떨어지기 시작했다.

떨어진 날개들은 바닥에 닿기도 전에 불똥이 되어 공기중으로 사라져버렸다.

그와 함께 눈에서 타오르던 불도 서서히 꺼져 갔다.

빙의가 풀리는 것이었다.

낙원의 수문장의 목소리가 멀어져갔다.

"아아...안 돼...."

낙원의 수문장이 남긴 마지막 말이 상원의 귓전을 스쳤다.

"부탁하네."

진아가 눈을 감으며 털썩 무릎을 꿇었다.

빙의가 풀렸다.

"진아씨!"

상원이 진아에게 손을 뻗으려는데, 엘가가 상원의 손을 쳐냈다.

"조심해!"

그리고 다음 순간, 진아가 눈을 떴다.

그녀의 얼굴은 마치 가면처럼, 어떤 표정도 나타나 있지 않았다.

섬뜩할 정도의 무표정.

심장이 얼어붙을 정도로 공포스러웠다.

상원이 주춤 물러났다.

"큭!"

표정 없이 상원을 보던 진아가 갑자기 빙긋 웃었다.

본 적 없는 요염함,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아니다, 본 적이 있었다.

바로 4번 시험에서, 이마에 낙인이 찍혔을 때였다.

지금도 그녀의 이마에 낙인이 선명했다.

진아가 새빨간 혀로 입술을 핥았다.

“어머, 상원씨? 문혁씨는 어딨죠?”

그녀가 검지를 뻗어 상원의 가슴팍을 쓸었다.

어느새 그녀의 검지 끝엔 새까만 손톱이 날카롭게 돋아 있었고, 이마엔 뿔이 돋아 있었다.

그 강력한 윤진아, 빙의만으로 그녀의 신체를 변화시킬 괴물이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때 엘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 끝의 불꽃…!”

세상 끝의 불꽃…?

설마, 지금 진아의 몸에 들어있는 게 마신 중의 마신, 세상 끝의 불꽃 본인이라고?

진아가 엘가를 돌아보며 말했다.

“꺼져라, 구정물에 숨어 사는 벌레 주제에!”

그녀의 목소리엔 상원의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의 무게가 실려 있었다.

그 목소리의 타겟이 된 엘가가 버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끄으으으으….”

비명에 가까운 신음소리를 내며 엘가가 온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녀의 눈에서 검은 빛이 점점 사라지면서, 초점이 완전히 풀려버린 혜경의 눈이 돌아왔다.

진아가, 아니, 세상 끝의 불꽃이, 그 목소리 한 번으로 ‘지하의 수호자’의 전령을 쫓아버린 것이다.

혜경이 침을 흘리며 멍청한 소리를 냈다.

“으으, 어, 어어…?”

이미 더러워진 그녀의 바짓춤이 다시 젖어갔다.

뭐가 그리 좋은지 그녀는 헤실헤실 웃고 있었다.

진아가 손을 뻗어 그녀의 더러운 볼을 메만졌다.

"아아...언니."

혜경을 바라보는 진아의 눈에 연민이 가득했다.

"이게 짐승이지 사람인가요? 이런 꼴을 하고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아요."

진아가 손톱으로 혜경의 목을 살짝 긋자, 혜경의 새하얀 목덜미에서 피가 스륵 흘러 나왔다.

억눌려 있던 마음의 한 조각이 삐져 나온 것일 게다.

상원은 직감했다.

이대로 있으면, 혜경은 진아의 손에 죽는다.

그럴 수는 없다.

상원은 마음을 다잡고 진아를 보았다.

그리고 상황을 정리해 보았다.

우선, 진아의 몸속에 있는 건 '세상 끝의 불꽃'이 맞다.

낙원의 수문장이 혼신의 힘을 다해 지키고 있는 화신을 빼앗을 수 있는 자, 그리고 빙의만으로 성령의 화신인 진아의 육신을 변이시킬 수 있는 악마는 '세상 끝의 불꽃' 뿐이다.

그렇다면 타개책은 있다.

진아가 억눌린 감정과 마음들이 터뜨리고 있다는 건, 세상 끝의 불꽃이라는 존재의 극히 일부분만이 그녀에게 들어와 있다는 뜻이었다.

왜냐하면 세상 끝의 불꽃은 이름 그대로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존재라서, 빙의가 더 강해지면 그녀의 감정들까지 지워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저 속에 있는 악마를 조금만 더 끌어내면, 진아를 멈출 수 있는 것이다.

상원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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