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성 회귀자의 아포칼립스-180화 (180/230)

제180화. 타우 (3)

티라노사우루스의 머리에 발과 꼬리를 붙여놓은 것 같이 생긴 데몬즈 헤드는 시험의 후반부 지역인 '타우 은하'에서 만나게 되는 대표적인 마물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데몬즈 헤드가 털썩 쓰러졌다.

데몬즈 헤드가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며 피거품을 뿜어냈다.

"그르르르륵."

타액과 피가 섞인 거품이 부글대며 바닥에 고였다.

상원은 벌떡 일어서서 주위를 살폈다.

'젠장, 뭐지 갑자기.'

상원은 '바위에 박힌 검'에 마력을 싣고 주변을 경계했다.

왜냐하면 데몬즈 헤드는 혼자 행동하는 법이 없기 때문이었다.

놈들은 항상 개떼처럼 바글바글 몰려다녔다.

상원은 정신을 집중하고 바깥의 기척을 살폈다.

바위에 박힌 검에서 뽑혀 나온 새하얀 검기가 웅웅거렸다.

그런데,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상원은 검기를 거두고 바위에 박힌 검을 브라이싱크론 지갑 속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쓰러진 데몬즈 헤드의 상태를 살폈다.

수험자들을 향해 미친개처럼 달려드는 놈들에게선 일말의 지성조차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 마물이 말을 한다고?'

그때 상원의 머릿속을 스쳐 가는 기억이 있었다.

바로 '깊고 깊은 물'에 불시착한 우주 연구선 '길가메시호'에서 타나스를 만났을 때의 일이었다.

거기서 예상치 못하게 5급 마물 우주 미노타우로스를 만났다.

그런데 예상을 깨고 나타났던 그놈은, 더 충격적이게도 상원에게 말을 걸었었다.

네트워크 타나스가 놈에게 빙의했던 것이다.

그리고 타나스는 예언 얘기를 했다.

자신의 데이터베이스에, '뱀이 훔친 불로초'를 구하러 온 자가 자신을 새하늘 아버지로부터 해방시켜 줄 거라는 예언이었다.

타나스가 수험자와 대화를 할 거라는 것도, 그리고 타나스가 예언을 알고 있다는 것도 모두 예상 밖의 일이었다.

그래서 성역 병합전이 끝난 후에는 기계장치의 신을 만나 타나스의 예언에 대해 알아보겠다는 이야기도 하지 않았던가.

그런 일들이 머리를 쭉 스쳐 갔다.

성역 병합전이 끝난 이후 폐허가 되어버린 서울역을 재건하느라 잊어버리고 있었다.

당장은 눈앞의 일이 급했으니까.

그래서 타나스는, 상원을 기다리다 못해 먼저 상원을 찾아온 것이다.

그 긴긴 우주를 건너서.

'아아, 이런.'

상원이 한숨을 쉬었다.

'일단은 말을 더 들어봐야 하겠다.'

상원은 데몬즈 헤드의 상태를 살폈다.

놈의 콧구멍에서 미약하나마 숨이 새어 나왔다.

상원은 다친 개를 안아 올리듯 놈을 안아 올리고는 복도를 내달렸다.

서울역 최고의 의사 오태성을 찾아서였다.

* * *

서울역 지하의 어두컴컴한 방, 주황색 불빛이 주변을 비추고 있었다.

방 한가운데 테이블 위에는 데몬즈 헤드가 축 늘어져 있었고, 그 주위로 네 사람이 둘러서 있었다.

상원과 태성, 그리고 에론 클라드와 신우주였다.

상원이 실신한 데몬즈 헤드를 태성에게 보여주었을 때, 태성은 난색을 표했다.

태성이 아무리 뛰어난 의원이라 해도 마물을 치료해본 적은 없어서였다.

그래서 상원은 주신 '최초의 수확자'의 화신 신우주와 최고의 드워프 기술자 에론 클라드의 도움을 받았다.

세 사람이 힘을 합치자 수험자가 마물을 치료한다는 전대미문의 일이 가능해졌다.

그렇게 네 사람은 데몬즈 헤드의 상태를 지켜보고 있던 것이다.

데몬즈 헤드의 코끝부터 꼬리 끝까지, 태성이 박은 침들이 주황색 불빛을 받아 번들거렸다.

놈의 옆으로는 신우주가 태운 약초들이 오묘한 향과 함께 파란 연기를 뿜었다.

놈의 몸 여기저기 붙어 있는 센서들이 보내는 정보가 에론이 설치한 스크린에 나타났다.

스크린에는 놈의 신체 구조가 삼차원으로 그려져 있었고 옆에는 각종 수치와 그래프들이 오르락내리락하기를 반복하고 있었는데, 그 수치는 몇 시간 전부터 명백하게 안정되고 있었다.

데몬즈 헤드가 낮게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냈다.

"구우우우욱...."

놈의 입에서 끈끈한 타액이 꿀럭 빠져나왔다.

상원은 타액을 보며 얼굴을 찡그렸다.

'젠장, 이거 괜찮은 건가?'

상원은 데몬즈 헤드의 약점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지만, 놈이 아픈지 아닌지를 판단할 지식이나 능력 같은 건 전무했다.

개나 고양이가 아픈지 아닌지도 잘 모르는 마당에 다른 우주에서 온 마물의 상태를 알아챈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상원이 태성을 바라보며 걱정스레 물었다.

"괜찮은 건가요?"

태성이 상원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신우주가 데몬즈 헤드의 몸을 더듬으며 푹 한숨을 쉬었다.

"정말 힘들었어요. 제 생에 이렇게 힘든 치료는 처음이었어요."

태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상원이 자네가 처음에 이놈 안고 내 방에 쳐들어왔을 때 얼마나 놀랬는 줄 알아? 세상에 이 친구가 너무 일을 열심히 해서 돌아버렸나 싶었다니까. 세상천지에 마물을 치료해달라고 들고 오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에론이 말했다.

"그래도 용사님이 다 생각이 있으시니까 이런 걸 부탁하셨겠죠. 그렇죠?"

상원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데몬즈 헤드를 바라보았다.

놈에게 들어야 할 말이 있었으니까.

사실 상원은 그들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있지 않았다.

수많은 의문들이 떠올라서였다.

'이제 놈이 회복됐으니 타나스가 조금 더 말을 하겠지? 아니, 과연 그럴까? 전생에 겪었던 것처럼 놈이 갑자기 이빨을 드러내고 공격해오지 않을까?'

수험자들과 에론을 지키는 건 쉽다.

데몬즈 헤드의 저력은 숫자에서 나오는 것이지, 놈들 하나하나의 무력은 보잘것없는 수준이었다.

그러니까 놈이 신우주나 태성을 공격하려 들면 제압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상원에게 말을 해줄 타나스의 단말이 없게 된다.

그러면 상원은 아무런 정보도 없이 타우로 가야 하는 것이다.

그건 너무 위험한 도박이었다.

수험자들이 시험 후반부에 향하게 되는 타우 은하, 그에 대해서는 속속들이 알고 있기는 했다.

문제는 시험의 진행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타나스가 아직 새하늘 아버지에게 잠식되지 않은 타우 은하는, 상원이 모르는 세계였다.

오로지 노트의 정보들과 전생에서 보았던 모습만으로 현재 상태를 유추해야 할 뿐이었다.

그런데 그 차이가 꽤 큰 것 같았다.

당장 타나스가 말을 걸어올 거라는 생각조차 못 하고 있지 않았는가?

'게다가, 예언은?'

새하늘 아버지에게 맞설 실마리가 담겨 있을지도 모르는 그 예언, 상원은 그 예언을 들어야 했다.

초조해진 상원이 깍지 낀 두 손에 힘을 주었다.

너무 힘을 준 탓에 손가락이 하얘졌다.

에론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그런데 진짜 궁금하긴 하네요. 용사님, 이 마물을 반드시 살려야 한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 이유가 뭔가요?"

상원이 한숨을 푹 쉬었다.

마땅한 대답을 찾기가 곤란해서였다.

'저기에 새하늘 아버지를 물리칠 단서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 얘기를 해야 하나?'

그러면 이들 역시, 새하늘이란 단지 단꿈에 불과하며 구원을 약속한 아버지는 그 꿈을 빨아먹는 괴물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들이 그걸 견딜 수 있을까?'

존재의 기반에 있는 믿음이 통째로 뿌리 뽑히면서 완전히 무너져버리지는 않을까?

그때 데몬즈 헤드가 꿈틀거렸다.

"그으으으으윽...."

상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아…!”

데몬즈 헤드가 정신을 차렸으니 첫 번째 고비는 넘겼다.

천천히 데몬즈 헤드가 상원을 똑바로 보고 샛노란 눈을 끔뻑였다.

이제 다음 차례다.

아직 이놈을 통해 타나스와 소통할 수 있는지를 확인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일이 단단히 꼬인다.

상원이 나직이 말했다.

“타나스…?”

놈이 다리로 테이블을 툭 툭 딛고 일어섰다.

놀란 신우주가 새된 비명을 질렀고, 태성이 앞이 보이지 않는 신우주의 앞을 막아섰다.

“꺅!”

“조심하게.”

에론은 벌써 기계들 뒤로 몸을 숨긴 차였다.

‘그리 놀랄 필요가 없다는 말을 미리 하지 않았군.’

여차하면 베어버리면 되니까.

놈이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렸다.

“그르르르릉.”

사람 손만 한 날카로운 이빨들이 줄지어 드러났다.

놈이 테이블에서 내려와 먹이를 노리는 공룡처럼 상원을 향해 슬금슬금 다가왔다.

놈의 입에서 흘러내린 침이 바닥에 뚝 떨어졌다.

침이 떨어질 때, 상원의 마음도 덜컥 떨어지는 것 같았다.

놈의 어디에서도 지성을 찾을 수 없었으니까.

‘아아, 안되는 건가?’

상원은 한숨을 쉬며 바위에 박힌 검을 뽑아 들었다.

브즁 하는 소리와 함께 새하얀 검기가 광선검의 칼날마냥 솟아올랐다.

상원은 다가오는 놈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아직은, 아직은 모른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채로, 상원은 다시 한번 타나스를 불렀다.

“타나스?”

놈이 머리를 흔들었다.

“그륵?”

놈이 계속 걸었다.

상원이 푹 한숨을 쉬었다.

‘아아…, 안되는 건가?’

그때 놈이 입을 잔뜩 비틀며 말했다.

“무기를… 거둬라.”

‘됐다!’

상원은 환하게 웃으며 검을 거뒀다.

에론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태성이 입을 떡 벌렸다.

“어 뭐야 방금? 말한 거예요?”

“이럴 수가… 이럴 수가.”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말을 하는 마물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런 놈들은 최소한 인간과 비슷하게라도 생기긴 했으니까.

그런데 그런 일말의 지성마저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놈이, 그것도 자기에게 칼을 거두고 있는 수험자에게 칼을 거둬 달라는 말을 했으니까.

그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상원이 씩 웃으며 물었다.

손을 완전히 벗어나 버린 줄로만 알았던 실마리가 다시 손에 들어왔으니까.

“도와달라고 했나, 타나스?”

“그렇… 다.”

데몬즈 헤드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벌써부터 놈의 코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

스크린의 숫자들이 널을 뛰면서 화면이 빨갛게 깜빡였다.

타나스를 너무 많이 받아들인 탓에 몸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타나스가 자기 말을 전할 만큼 자신을 싣기에는, 데몬즈 헤드의 몸이 너무 약했다.

하기사 타나스를 싣는 건 그 강력한 우주 미노타우로스도 피를 토하며 죽어버릴 만큼 고된 일이었으니, 데몬즈 헤드가 저 꼴이 되는 것도 당연했다.

놈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타나스도 그걸 아는지 신중하게 말을 고르는 눈치였다.

잠시간의 침묵 후 타나스가 입을 열었다.

"너희 우주의 신들이 몸을 만들고 있다."

"뭐? 벌써?"

새하늘의 승천자들이 몸을 만들고 있다고?

화신을 잃어버려서 새하늘 시험에 참여할 수 없게 된 승천자들이, 타우 은하의 고도로 발달한 기술로 만들어진 육신을 가지고 시험에 참가하는 것이었다.

수험자들은 그들을 상대하게 된다.

전생에도 겪어본 일이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전생에는 그 일이 한참 뒤에 일어났을 뿐.

40번대 후반, 그러니까 시험 극 후반에 있던 일이 지금 벌어지는 것이었다.

얼른 막아야 했다.

상원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좌푯값을 다오."

타우로 넘어갈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시칠리아섬 지하에 있는 포탈을 타면 된다.

문제는 반대편의 좌표였다.

그걸 어떻게 아는지, 타나스는 묻지 않았다.

단지 짧게 대답했을 뿐.

"그래."

데몬즈 헤드가 발톱으로 바닥을 긁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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