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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성 회귀자의 아포칼립스-175화 (175/230)

제175화. 탈신 (2)

그보다 조금 전, '각성한 모노리스'의 꼭대기.

문혁은 침음성을 흘리며 금빛 삼두룡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젠장... 갑자기 저런 괴물이 어디서...!'

비록 영령급이었지만, 해안선의 귀신은 적시에 필요한 정보를 주는 걸 놓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저런 괴물이 나타나는데, 수호신이 아무런 언질도 주지 않았다고?

'정말로 장군님의 격이 낮아서 정보가 없었던 건가?'

그렇다면 주신급인 '최초의 수확자'의 화신 신우주는 다르지 않을까?

문혁은 고개를 돌려 옥좌 옆에 선 신우주를 보았다.

그녀의 얼굴 또한 당혹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렇다는 건 주신급들도 저 삼두룡의 등장에 대해 몰랐다는 것이다.

'그럴 수가 있나?'

장군님만 언질을 놓친 게 아니라는 얄팍한 안도감이 들었다가, 무거운 불안이 문혁의 양어깨를 짓눌렀다.

모노리스의 옥좌에 앉은 강상중이 중얼거렸다.

"저런 괴물이... 어디서...?"

신우주가 혼잣말을 하듯 대답했다.

"'격풍'이에요. 오만한 자들을 벌하기 위해 시험이 낳은 괴물...."

문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소리야?

오만한 자들을 벌하기 위해 시험이 낳은 괴물?

누가 오만하다는 거지?

신우주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저 격풍이 실제 시험에 나타난 적은 없었다고... 그런데...."

'해안선의 귀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 그래, 들어본 적이 있다. 시험에는 '격풍'이라는 괴물이 있다고. 그런데 그게 실제로 나타나다니....

수호신들도 잘 모르는 괴물이 시험에 나타났다고?

그것도 고작 26번 시험에?

문혁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심상치 않다.'

그때 삼두룡이 하늘을 찢을 듯 포효했다.

"크오오오오!"

활을 놓친 문혁이 주저앉으며 두 귀를 막았다.

문혁은 정신줄을 애써 붙들어 맸다.

포효만으로도 정신을 잃게 만들 정도의, 눈앞의 삼두룡은 그런 괴물이었다.

삼두룡이 날개를 휘젓자 거센 폭풍이 일어났다.

펄럭하는 굉음에 이어 매서운 먼지 폭풍이 모노리스를 덮쳤다.

문혁은 재빨리 바닥에 칼을 박고 폭풍을 버텨냈다.

"끄으으으윽!"

칼자루를 쥔 손바닥이 찢어질 것 같았다.

- 힘내시게!

해안선의 귀신이 힘을 불어넣어 준 덕에 어찌어찌 버티고는 있었지만, 금방이라도 몸이 부서져 버릴 것만 같았다.

잠시 후 폭풍이 지나갔다.

신우주의 앞에 나타난, 새까만 갑옷을 입은 무사가 삼두룡을 올려보며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었다.

"맙소사... 저게 뭐야?"

그녀의 그림자 속에 잠들어 있던 뱀파이어 발라딘 블라드였다.

발라딘이 신우주의 그림자에서 튀어나와 폭풍으로부터 그녀를 지켜냈던 것이다.

신우주가 말했다.

"우리의 적이에요, 발라딘."

"그래, 그건 확실한 것 같군."

차갑게 대답한 발라딘이 양손 검을 뽑아 들고 힘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짙은 보라색 검기가 쑥 솟아올랐다.

발라딘도 그간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는지, 그의 검기는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훨씬 길고 진했다.

하지만 저 괴물 앞에서는 코끼리 앞의 이쑤시개처럼 보일 따름이었다.

그때 우르르릉 하는 굉음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보니, 광장 저편에 있던 거대한 빌딩 한 채가 와르르하는 굉음을 내며 무너지고 있었다.

고작 날갯짓 두 번에, 그 커다란 건물이 모래성마냥 무너져버린 것이다.

상식을 뛰어넘는 힘이었다.

"이런 미친...."

그때 강상중이 노호성을 질렀다.

"이 개자식아! 내 도시를 짓밟지 마라!"

'서울이 당신의 도시?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하는 찰나, 강상중이 옥좌 앞의 보옥에 두 손을 올리고 힘을 불어넣었다.

그의 얼굴이 새빨간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고, 이마 위로 핏줄이 툭툭 불거졌다.

"끄아아아악!"

강상중의 고함과 함께, 보옥에서 발사된 초록색 레이저가 삼두룡을 향해 쇄도했다.

푸슝!

순간 시공간이 멈췄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강한 일격이었다.

그대로 날아간 레이저가 삼두룡의 가슴에 박혔다.

"그르르릉?"

레이저를 맞은 삼두룡이 주춤 물러섰다.

문혁이 눈을 크게 떴다.

'먹혔다!'

깨어난 모노리스의 반물질 레이저는 웬만한 수험자들은 한 방에 가루로 만들어버릴 정도로 강력한 물건이었다.

그래 그런 물건이 있는데, 이렇게 무력하게 당할 수는 없었다.

문혁이 칼을 뽑고 소리쳤다.

"모두 물러서지 마라!"

해안선의 귀신이 불어넣는 힘이 단전에서부터 쏟아져나와 문혁의 입을 통해 퍼졌다.

우렁우렁한 함성이 서울역 광장에 울렸다.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스킬 '지휘의 외침'을 사용합니다.]

[같은 편의 수험자들이 능력치 상승 효과와 스킬 강화 효과를 받습니다.]

무리해서 스킬을 사용한 탓인지 입에서 깔깔한 피 맛이 났다.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지만, 재빨리 검을 지팡이 삼아 중심을 잡았다.

'이 정도쯤이야.'

몸을 부숴가며 수험자들을 이끌었던 조상원이라는 사람도 있는데.

그때 무언가가 발목을 콕 찌르는 느낌이 들었다.

바닥을 보니 모노리스 꼭대기의 타일 틈새로 자라난 조그만 풀이 두꺼운 전투화를 뚫고 있었다.

신우주의 풀이었다.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권능 '치유의 풀'의 효과를 받습니다.]

[상처가 치유되고 체력과 마력이 회복됩니다.]

거짓말처럼 몸이 가벼워졌다.

"모두 힘내세요!"

새된 목소리로 외친 신우주가 바닥에 정좌를 하고 명상에 들어갔다.

신우주가 서울역 광장에 거대한 '치유의 진'을 펼친 것이다.

서울역 바닥에 연두색으로 빛나는 동그란 마법진이 나타났다.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수험자 신우주가 '치유의 진'을 펼칩니다.]

그 덕에 서울역 광장의 수험자들이 몸을 추스르고 일어나는 게 보였다.

치유의 진은 일정 범위 내의 수험자들에게 치유의 힘을 주는 고급 치유 스킬이었다.

지금껏 치유의 진을 쓰는 수험자를 몇몇 보기는 했지만, 이렇게 거대하고 짙은 치유의 진은 처음이었다.

'그래, 승산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문혁이 고개를 끄덕이고 활을 뽑았다.

삼두룡이 괴성을 지르며 모노리스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크아아악!"

세 개의 머리가 꿈틀거리는 게 황금색 해일처럼 보였다.

삼두룡이 발을 디딜 때마다 쿵 쿵 소리와 함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지면이 바스러졌다.

"맙소사...."

그 압도적인 광경에 문혁의 기세가 꺾였다.

'저건 말 그대로 재해 아닌가? 저런 걸 상대로 이길 수 있다고?'

강상중이 고함을 질렀다.

"꺼져 이 개자식아!"

짐짓 호기롭게 외쳤지만, 범 앞에서 짖는 하룻강아지처럼만 보였다.

그 노회한 강상중조차도 잔뜩 겁을 집어 먹어버린 것이다.

반물질 레이저가 연달아 두 발 터졌다.

쾅! 쾅!

순식간에 바닥까지 힘을 쓴 강상중의 코에서 시뻘건 선지피가 줄줄 쏟아져나왔다.

강상중이 게거품을 물고 신음을 흘렸다.

"끄으으으윽...."

"젠장!"

문혁은 얼른 달려가 쓰러지려는 강상중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의 몸이 힘없이 축 늘어졌다.

'아직인데...! 반물질 레이저는 효과가 있었나?'

문혁은 고개를 돌려 삼두룡을 보았다.

그리고는 절망적인 신음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으으윽...."

삼두룡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 커다란 아가리를 쩍 벌리고 달려들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느새 코앞까지 달려든 삼두룡이 두 날개로 모노리스를 찍어 눌렀다.

엄청난 풍압에 문혁은 두 다리를 꿇을 수밖에 없었다.

이어서 모노리스가 땅에 쳐박히며 굉음을 냈다.

쿠구구구궁

모노리스의 몸체를 따라 올라온 충격이 문혁에게도 전해졌다.

온몸이 부서질 것 같았다.

"끄아아아악!"

문혁뿐만이 아니었다.

발라딘은 보라색 생기를 줄줄 흘리고 있었고 신우주는 아예 두 눈을 까뒤집고 혼절해버렸으며, 발라딘은 신우주의 그림자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꼭대기는 그나마 사정이 나을 게다.

모노리스에 깔린 수험자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피떡이 되어버렸을 테니.

문혁이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생지옥이 따로 없지 않은가....'

삼두룡이 황금색 전기를 줄기줄기 뿜어내며 괴성을 질렀다.

"크아아아악!"

삼두룡이 모노리스를 콱콱 물어뜯었다.

질기기 그지없는 생체강철로 강화된 모노리스가 두부처럼 뜯겨 나갔다.

삼두룡의 가운데 머리가 문혁을 내려다보았다.

문혁은 코앞까지 다가온 죽음을 직감했다.

온몸이 얼어붙어 무엇도 할 수 없었다.

전신에 힘이 쭉 빠지면서 가랑이 사이가 젖어갔다.

문혁은 잠깐 삼두룡의 거대한 아가리를 올려다보다, 순간 목에 힘이 빠져 고개를 툭 떨궜다.

삼두룡의 더운 콧김이 훅 몰아쳤다.

'죽는다, 이대로 죽는다.'

해안선의 귀신이 침음성을 흘렸다.

- 끄으으음....

지금껏 시험에서 겪었던 순간들이 눈앞을 스쳐 갔다.

'이대로 탈락인가?'

그때였다.

어디선가 거대한 포효가 들렸다.

"흐아아아아악!"

익숙한 목소리였다.

'이 목소리는...?'

문혁은 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새파란 기운과 새빨간 기운이 섞여 땅에서부터 기둥처럼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그 맹렬한 기세에 하늘을 뒤덮고 있던 거대한 먹구름이 갈라지면서 새파란 하늘이 드러났다.

그 기세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건지, 삼두룡이 세 머리를 휙휙 돌려 그곳을 보았다.

그리고 그 아래쪽, 빛이 뻗어 나오는 곳에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문혁은 침침해진 눈에 힘을 주어 그곳을 자세히 보았다.

큰 키에 곧게 뻗은 탄탄한 몸, 그리고 그 위를 뒤덮은 빼곡한 문신.

'아아, 왔구나.'

그리고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환영합니다, 상원 씨."

그 익숙한 형체는, 틀림없는 조상원이었다.

그런데 상원이 지금까지 보던 것과는 다른 힘을 쓰고 있었다.

그의 전신에 금이 가고 있었던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

피부에 일어난 균열을 따라 우반신에는 새빨간, 좌반신에는 새파란 빛이 퍼져 나오고 있었다.

그 빛이 점점 짙어지더니, 한순간 폭발하듯 새하얀 섬광을 내뿜었다.

문혁은 손을 들어 눈 앞을 가렸다.

"큭!"

이어서 삼두룡이 땅을 디딜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진동이 모노리스를 덮쳤고, 그 직후 쩍 하는 굉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잠잠한 정적이 찾아왔다.

불씨가 조용히 흩날렸다.

문혁은 눈을 가린 손을 치우고는 중얼거렸다.

"이번엔... 또 뭐야?"

상원이 있던 자리엔 빛나는 거인이 있었다.

5미터쯤 될 법한 거인의 우반신은 새파란 번개로, 좌반신은 시뻘건 마그마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 위로 새까만 금속 조각들이 공전하고 있었다.

몸속에 흐르던 에너지가 거인의 모습으로 실체화하고, 에너지를 덮고 있던 육체 조각들이 그 위를 흐르는 것 같았다.

둥그런 거인의 머리는 이목구비가 없는 매끈한 계란 같았지만, 그는 분명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혁이 허허 웃으며 말했다.

"뭐야. 이번엔 닥터 맨하탄인가요?"

그때 해안선의 귀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 마신... 마신이다!

항상 침착하기 그지없던 수호신이, 분명 떨고 있었다.

이런 일은 없었다.

'마신이라고?'

그때 삼두룡이 괴성을 지르며 모노리스를 놓았다.

"크아아아악!"

경계하는 듯 거인을 바라보던 삼두룡이 사냥감의 숨통을 끊으려는 맹수처럼 거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거인은 달려드는 삼두룡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서 있었다.

그러다 한순간, 거인의 몸이 공중으로 두둥실 떠올랐다.

그리고는 하늘을 향해 왼팔을 들어 올렸다.

새빨간 주먹이 태양처럼 빛을 냈다.

그 직후, 온 땅이 무지막지한 굉음과 함께 쩍쩍 갈라졌다.

그리고는 조각배를 집어삼키는 파도처럼, 땅에서 솟아난 엄청난 양의 시뻘건 용암이 삼두룡을 집어삼켰다.

후끈한 열기가 온몸을 덮쳐와, 문혁은 두 팔로 얼굴을 가렸다.

"끄아아아악!"

삼두룡이 내지르는 비명이 귓전에 울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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