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성 회귀자의 아포칼립스-172화 (172/230)

제172화. 격풍 (10)

황금색 벼락이 하늘을 갈랐다.

섬광과 굉음이 온 천지를 집어삼켰다.

꽈르르릉!

벼락이 지나간 뒤 공기가 타는 냄새가 코를 가득 채웠다.

'카일 핸드레이크....'

놈의 힘은 예상 밖이었다.

상원의 미간이 구겨졌다.

'놈의 번개가 금색은 아니었는데.'

힘의 색깔이 바뀌었다는 건 그의 힘이 양을 넘어 질적으로 달라졌다는 뜻이었다.

카일 핸드레이크는 공간의 힘을 담은 검은 번개를 사용했다.

카일이 아무리 제우스를 원형으로 하는 최상급 승천자 '번개의 왕'의 화신이라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전생에서 시험 최후반부에 다다랐을 때나 이 정도였지.'

상원이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생명나무 제전에서 봤던 카일의 힘은 여기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그렇다면 그 사이에 이렇게까지 강해질 방법이 있는가?

경우의 수를 면밀하게 검토하다가, 상원의 생각이 단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상원의 입이 벌어졌다.

"지혜의 샘물."

‘그걸 지금 먹였다고?’

지혜의 샘물은 현 절대자인 '외눈 현자'가 관리하는 '지혜의 샘'에서 나오는 물이다.

마시면 마력이 현격히 늘어나지만, 그 대신 무언가를 대가로 바쳐야 한다.

카일 핸드레이크는, '번개의 왕'은 무얼 바쳤을까?

아니, 본인은 그걸 마셨다는 걸 의식하긴 할까?

외눈 현자의 종복인 '생각과 기억의 까마귀'가 상원 앞에 나타나서 했던 일을 생각해보면, 그녀가 카일에게 샘물을 먹이고 기억을 지워버렸을 가능성도 충분했다.

그리고 그 목적은 새하늘의 카르마가 허용되는 안에서 상원을 견제하려는 것일 테고.

어쨌든.

문제는 괴물이 된 카일이 눈앞에 나타날 거란 사실이었다.

그것도 성역 쟁탈전의 상대방으로서.

하늘을 가르는 번개의 힘만 봐도 그걸 알 수 있었다.

그때였다.

와장창하는 소리와 함께 '보이지 않는 죽음'이 만들었던 어둠의 구슬이 깨졌다.

그 안에서 나타난 모습은 상원이 바랐던 것이 아니었지만 예상했던 것이었다.

흑룡이 '보이지 않는 죽음'의 팔을 질겅질겅 씹고 있었던 것이다.

돌바닥에 눌어붙은 피떡은 보이지 않는 죽음의 시체이리라.

외신 '검은 숲의 목자'가 강림하여 만들어진 흑룡은, 주신급 수험자가 별다른 저항조차 해보지 못할 정도로 강력했다.

보이지 않는 죽음을 잡아먹고 그 힘을 흡수한 흑룡이 하늘을 향해 긴 울음을 내뱉었다.

"우우우우우우."

관자놀이에 새빨간 눈 두 쌍이 새로 생겨, 흑룡은 다섯 쌍의 새빨간 눈을 치켜뜨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르릉."

입에서 새까만 연기를 뱉어낸 흑룡이 하늘을 향해 구불 구불 날아올랐다.

저 하늘 위의 카일 핸드레이크를 먹이로 인식해서일 것이다.

서울역 광장의 모두가 넋을 잃고 그 광경을 쳐다보았다.

낮게 깔린 새까만 먹구름을 향해 날아오른 흑룡의 거체가 구름 사이로 사라졌다.

잠시 후, 구름 사이로 황금빛 번개가 미친 듯 춤추기 시작했다.

상처에서 피가 터져나오듯 먹구름 사이로 새까만 안개가 꿀럭 꿀럭 솟아올랐다.

이어서 천둥이 온 천지를 쪼갤 듯 연달아 울렸다.

꽈르르르르릉!

상원은 귀를 막았다.

너무나도 커다란 굉음에 골이 울릴 지경이었다.

이어서 주변에서 비명이 연이어졌다.

"끄아아아아악!"

"으으으윽!"

상원 정도 되니 천둥을 견딘 것이지, 보통 수험자들은 단지 천둥소리를 들은 것만으로도 혼절하며 쓰러질 지경이었다.

약한 수험자들의 귀에서는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다시 한 번 천둥이 울렸다.

꽈르르릉!

천둥소리 속에 짐승의 포효가 섞여 있었다.

"그오오오!"

한동안 벼락과 안개, 천둥과 포효가 계속되었다.

그러기를 몇십 초, 마침내 벼락이 멎고 어색한 정적이 찾아들었다.

서울역 광장의 수험자들은 대부분 쓰러져 있었다.

아직 쓰러지지 않은 수험자들 중 하나, 상원이 큰 숨을 들이쉬며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후우."

전투가 끝났다.

상원은 결과를 예측했다.

제아무리 흑룡이 괴물이라 한들, 일반적인 수험자의 규격을 한참이나 넘어서버린 카일 핸드레이크를 상대할 정도까지는 되지 못했다.

틀림없다.

하늘에서 무언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상원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그것을 쳐다보았다.

흑룡의 거체가 하늘로부터 추락하고 있었다.

카일의 번개에 온 몸이 구워졌는지 김이 모락모락 솟았다.

흑룡이 땅바닥에 부딪히자 큰 소리가 났다.

쿵!

사방으로 튄 흑룡의 새까만 피가 검은 안개가 되어 바람을 타고 흩날렸다.

이어서 하늘에서, 그가 내려왔다.

새하얀 양복 안에 새까만 셔츠를 걸쳐 입은, 신이 빚은 조각이 풍길 법한 아우라를 온몸에서 뿜어내는 수험자.

길드 '올림포스'를 이끄는 길드장, 최강의 승천자 중 하나인 '번개의 왕'의 화신, 세브로 랭킹 2위, 카일 핸드레이크.

돌풍에 흩날리는 금발 사이로 또렷한 금빛 눈동자가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상원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저놈 원래 눈이 금색이 아닌데?'

수백 번도 더 본 눈이다.

상원이 놈의 눈동자 색을 헷갈릴 리 없었다.

놈의 눈동자가 금색으로 물들었다는 건 놈의 몸 속에 들어찬 이질적인 힘이 눈을 통해 밖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뜻이었다.

경우의 수는 하나뿐이었다.

바로 '지혜의 샘물'.

이로써 확실해졌다.

외눈 현자는 저놈에게 지혜의 샘물을 먹이고, 놈을 서울역에 보냈다.

이유는 하나.

상원 때문이었다.

상원이 욕지거리를 뱉었다.

"젠장...!"

시험이 점차로 어려워지고 있었다.

그때였다.

카일 핸드레이크가 차가운 눈으로 땅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나직하게 읊조렸을 뿐이었지만, 그 소리가 천둥처럼 울려 상원의 뇌리에 박혔다.

"근본도 없는 것이 명을 재촉하는구나."

'근본이 없다'는 건 새하늘에 제대로 자리를 잡지 않은 외신을 일컫는 것이었다.

흑룡이 그 말에 발끈한 듯 다섯 쌍의 눈을 치켜뜨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으르렁거렸다.

"그르르릉...!"

카일 핸드레이크가 낄낄 웃었다.

"아직도 힘이 남아있구나. 벌레 같은 게."

카일의 광소를 보고서, 상원은 깨달을 수 있었다.

카일이 샘물을 마신 대가로 바친 건 올림포스의 왕으로서의 위상이라는 걸.

그가 항상 두르고 있던 온화한 미소와 단호한 눈빛은 온데간데 없었다.

그 대신 끓어오르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는 광전사의 희열과 벌레를 짓밟으려는 광기가 넘쳐 흘렀다.

카일이 옆으로 손을 쫙 뻗었다.

그러자 하늘에서 내려온 황금빛 번개 줄기가 커다란 창의 형상이 되어 그의 손에 잡혔다.

'번개의 왕'의 권능, 다른 스킬들과는 비교를 불허하는 시험 최강의 공격기 중 하나, 힘의 창 '아스트라페'였다.

번개 줄기에서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은 섬광이 뻗어 나왔고, 무지막지한 돌풍이 불어와 옷이 찢어질 것 같았다.

카일이 광소를 흘리며 팔을 휘둘렀다.

무지막지한 굉음과 함께 황금색 번개가 하늘과 땅 사이를 수직으로 갈랐다.

쩌르르릉!

천지를 찢을 듯한 천둥소리 사이에, 카일의 나직한 말 한 마디가 똑똑히 들렸다.

"죽어."

주신 '번개의 왕'의 힘을 담은 벼락의 창이 흑룡을 직격했다.

섬광과 폭발음에 이어 먼지를 잔뜩 머금은 거센 돌풍이 광장을 덮쳤다.

먼지 바람이 코 속으로 들어와 상원은 밭은 기침을 했다.

"쿨럭, 쿨럭."

잠시 후 먼지가 걷혔다.

상원의 계산은 틀리지 않았다.

아스트라페에 직격당한 흑룡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땅바닥에 널브러진 흑룡이 온 몸에서 새까맣고 끈적거리는 체액을 뿜어냈다.

터진 탱크에서 쏟아져나오는 석유처럼 땅바닥을 가득 메운 체액 웅덩이에서 조그만 촉수들이 스멀스멀 솟아올랐다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다섯 쌍의 눈에서 붉은 기가 점차로 사라졌다.

"그르르르륵."

카일 핸드레이크가 서서히 땅으로 내려왔다.

"건방지다."

카일이 두 손을 주머니에 꽂아 넣고 흑룡을 향해 걸어갔다.

체액이 카일을 거부하는 듯 홍해처럼 갈라졌다.

카일이 그 사이로 걸어가 흑룡의 머리를 툭 툭 걷어찼다.

발길질 한 번에 체액이 후둑 후둑 쏟아져나왔다.

그러다 이윽고, 흑룡의 몸이 땡볕에 내버려진 아이스크림처럼 서서히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때아닌 괴성과 함께 녹아내렸던 체액들이 커다란 덩어리의 형상이 되어 카일을 향해 쏟아졌다.

"크아아아악!"

덩어리에 달린 수천 개의 눈이 카일을 쏟아보았고, 날카로운 이빨들이 달린 수천 개의 입이 일제히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검은 숲의 목자'의 본체였다.

카일이 콧방귀를 뀌었다.

"흥."

자신을 향해 덮쳐오는, 악의로 가득찬 검은 파도를 바라만 보던 카일이 조용히 주머니에서 손을 뺐다.

그리고는 딱, 손가락을 튕겼다.

순간 세상이 멈췄다.

멈춘 세상에서, 시간이 멈추지 않은 상원은 가만히 카일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카일이 나직이 중얼거리며 왼손에 마력을 모았다.

"발악을 하는구나."

번개가 커다란 양날도끼의 형상을 이루었다.

'번개의 왕'의 또다른 권능, 왕의 권력을 담은 도끼 '케라우노스'였다.

아스트라페가 최고급의 원거리 공격 스킬이라면, 케라우노스는 최고급의 근거리 공격 스킬이었다.

더구나 카일은 '지혜의 샘물'을 마신 덕에 마력이 터무니없이 증폭돼있는 상태였다.

저렇게 지근거리에서 케라우노스를 맞는다면, 제아무리 잘난 주신급 외신 '검은 숲의 목자'라도 버틸 재간은 없었다.

"죽어라."

카일이 낮게 읊조리며 케라우노스를 휘둘렀다.

케라우노스가 검은 숲의 목자의 몸에 닿으며 섬광을 토해내는 그 순간, 멈췄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앞서보다 더한 섬광과 폭풍이 서울역 광장을 덮쳤다.

그리고 남은 건 새까만 체액 웅덩이 가운데 널브러진 혜경의 나신이었다.

그걸 본 카일의 눈이 동그래졌다.

"오호."

혜경을 향해 걸어가는 카일이 야수와도 같은 눈빛을 보였다.

"흐흐흐, 계집애가 반반하구나."

카일이 입맛을 다셨다.

'원본이 원본이라 그런지 미녀를 보니 눈이 돌아가는 게...짐승이 따로 없군.'

상원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대로 두면 혜경은 카일의 손에 잔혹하게 유린당할 것이다.

지금 카일의 정신상태라면 혜경의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었다.

이제 나서야 했다.

상원이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가 소리를 질렀다.

"카일!"

카일이 걸음을 우뚝 멈추고 상원을 쏘아보았다.

그의 황금색 눈동자가 약이라도 맞은 것처럼 덜덜 떨리고 있었다.

샘물의 마력에 잠식당하기 시작한 것이다.

"끄...흐흐흐...너...너, 수험자 조상원."

카일이 아스트라페와 케라우노스를 뽑아 들었다.

"니가 그렇게 강하다며?"

그가 걸음을 디딜 때마다 터무니없는 마력에 대지가 요동치며 쩌적쩌적 갈라졌다.

상원이 피식 웃으며 바위에 박힌 검을 뽑아들었다.

"그럼. 싸움이 무서워서 약물에 기대는 약쟁이 따위랑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지."

새하얀 검기가 바위에 박힌 검을 감싸며 광선검의 형상이 되었다.

마검에 순도 높은 마력이 넘쳐 흘렀다.

상원은 카일을 향해 마검을 겨누었다.

"너도, 천둥망치같은 꼴이 되고 싶으냐?"

상원의 도발에 카일이 우뚝 멈춰섰다.

그의 입에서 짐승같은 소리가 났다.

"크윽, 크으으윽...."

카일이 괴성을 지르며 상원을 향해 달려들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