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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성 회귀자의 아포칼립스-171화 (171/230)

제171화. 격풍 (9)

'대해를 달리는 말'이 땅에 트라이던트를 거꾸로 박았다.

"하!"

서울역 광장의 단단한 돌바닥이 두부처럼 뚫렸다.

이어서 부서진 돌바닥으로부터 시퍼러 바닷물이 콸콸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가 트라이던트를 뽑아서 허공에 긋자 바닷물이 허공에서 호를 그렸다.

"먹어라!"

거대한 해일이 서울역 광장을 통째로 집어삼키며 상원을 향해 달려왔다.

파도의 맨 앞, 부서지는 하얀 거품들은 어느새 거대한 백마의 형상을 한 채로 돌진하고 있었다.

'대해를 달리는 말'의 장기, 스킬 '백마 군세'였다.

'불신자'를 개성으로 가진 상원이 스킬을 무시할 수 있다지만, '백마 군세'의 물리력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저걸 그대로 맞을 수는 없었다.

"흡!"

상원은 숨을 들이마시고 몰려오는 군세를 신중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타이밍을 맞춰, 상원은 바위에 박힌 검으로부터 기사단의 해골마를 불러냈다.

재빨리 해골마에 올라탄 상원이 힘차게 등자를 밟았다.

"하!"

해골마가 눈과 코에서 뜨거운 불길을 내뿜으며 지면을 박차고 파도를 뛰어넘었다.

파도를 넘어서자 대해를 달리는 말이 보였다.

그는 트라이던트를 꼬나들고 껄껄 웃고 있었다.

"오오! 역시, '천둥망치'를 그냥 이긴 게 아니군!"

놈의 얼굴에 공포와 뒤섞인 흥분이 보였다.

대해를 달리는 말이 넘실거리는 바닷물의 거품으로부터 백마를 불러냈다.

"네놈이 아무리 대단해도, 말을 타고 날 이길 순 없어!"

덩치에 어울리는, 하반신이 물고기인 커다란 백마를 타고서 '대해를 달리는 말'이 상원을 향해 쇄도하기 시작했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커다란 미사일이 물살을 가르며 날아오는 것 같았다.

상원의 몸뚱이만 한 삼지창의 창날이 상원의 목을 향해 똑바로 뻗어오고 있었다.

상원은 본능적으로 검기를 길게 뻗어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상원은 알았다.

'저 창이 내 검기보다 길다!'

방어가 먼저였다.

상원은 '바위에 박힌 검'의 손잡이를 양손으로 꽉 쥐었다.

연구선 길가메시에서 오른팔이 부서진 탓에 힘이 조금 부족했지만 이 정도면 충분했다.

새하얀 검기와 묵직한 창날이 부딪혔다.

'대해를 달리는 말'의 괴력에 백마의 돌격력이 실린 둔탁한 충격이 검을 타고 그대로 전해져왔다.

이미 충격을 입은 오른팔에서 으적 하고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오른팔의 충격 탓인지 오른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젠장."

상원은 오른손의 힘을 풀고 트라이던트를 흘려냈다.

면도날보다 예리한 삼지창의 날이 상원의 목을 살짝 스치며 작은 생채기를 냈다.

창날에 잘린 코트 조각이 공중에 나풀거렸다.

그렇게 첫 합을 부딪혔다.

해골마는 한참을 더 달리고 멈췄다.

상원은 말을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대해를 달리는 말이 저 멀리 있었다.

그가 커다란 삼지창을 볼펜마냥 휘휘 돌리며 소리쳤다.

"별 거 아니군!"

상원은 혀를 찼다.

'쳇!'

'천둥망치'를 물리쳤을 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작전을 세우지도 못했고 몸 상태도 좋지 않았다.

그리고 상원은 잊고 있던 사실 하나를 새삼스레 떠올렸다.

바로 '대해를 달리는 말'이 세브로 랭킹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강자이며, 육탄전이 주특기라는 것.

정상이 아닌 상태에서 힘으로 찍어누를 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상원은 놈을 아래위로 훑어보며 머리를 굴렸다.

"저놈을 어떻게 요리한다."

그때 갑자기 들려온 괴성에 상원의 정신이 흐트러졌다.

"끄아아아아악!"

하늘과 땅이 흔들린다는 착각이 들 만큼 커다란 괴성이었다.

상원은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상원은, 결코 보고 싶지 않았던 광경을 보았다.

전장 한가운데 작은 건물만큼 커다란 꽃봉오리가 솟아 있었던 것이다.

상원이 자기도 모르게 내뱉었다.

"젠장."

'대해를 달리는 말'이 중얼거렸다.

"저게 뭐야?"

그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수험자들도 서로 싸우는 걸 잊고 꽃봉오리를 보고 있었다.

으득, 상원이 이를 갈았다.

저건 바로 '검은 숲의 목자'의 각성의 꽃이었다.

검은 숲의 목자가 화신의 정신을 완전히 잠식한 걸로 모자라 그 육체마저 지배하게 됐을 때, 저 꽃이 나타난다.

저 상태가 되면 말 그대로 지상에 강림한 신이 되는 것이다.

저 꽃봉오리를 보는 건 상원의 계획에 없었다.

왜냐하면 저 상태의 '검은 숲의 목자'는 상원이 무슨 수를 써도 제압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화산정의 혐오체'가 힘을 쓴다면 모를까.

하지만 지금은 그녀의 힘을 빌릴 수도 없었다.

꽃봉오리가 한 장 한 장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새까만 안개가 꽃봉오리로부터 흘러나오며 고기가 썩는 듯한 악취가 진동했다.

전장에 침묵이 감돌았다.

꽃봉오리가 내뿜는 엄청난 위압감에 짓눌린 것이다.

다음 순간, 꽃잎이 벌어져 드러난 어두운 틈에서 거대한 용의 앞발이 쑥 튀어나왔다.

이어서 듬성듬성 새까만 털이 돋은 미끈한 검은 가죽질의 몸이 드러났다.

그러다 마침내 꽃이 완전히 벌어지고, 그 속에 있던 것이 하늘을 향해 솟아올랐다.

동양풍의 용처럼 생긴 새까만 흑룡, 그것이 바로 외신(外神) '검은 숲의 목자'가 화신과 완전히 융화되어 시험의 땅에 강림한 모습이었다.

이전의 '검은 양'이 금방이라도 붕괴할 것 같은 끓어오르는 힘의 덩어리였다면, 저 흑룡은 마치 정갈하게 갈무리된 검과 같은 느낌이었다.

검은 숲의 목자가 힘을 제대로 제어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대해를 달리는 말이 중얼거렸다.

"맙소사."

전장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흑룡이 여섯 개의 새빨간 눈을 부릅뜨고 전장을 내려다보았다.

"그르르르릉."

놈이 울부짖자 그 입에서 새까만 안개가 줄기줄기 흘러나왔다.

그리고는 어딘가를 향해 스멀스멀 기어가기 시작했다.

상원은 고개를 돌려 놈이 향하는 곳을 보았다.

'보이지 않는 죽음'이 망연한 표정으로 흑룡을 멍하게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눈이 공포에 질려 있었다.

흑룡의 위압감은 그 하데스의 화신이 제정신을 잃어버릴 정도였다.

대해를 달리는 말이 소리쳤다.

"저...정신 차려!"

그 말에 보이지 않는 죽음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외쳤다.

"마...막아! 막아라!"

땅에서 솟아난 용아병들이 흑룡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들은 웬만한 마물들은 가볍게 도륙내는 최상급의 소환수들이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그들의 창칼은 흑룡의 가죽을 뚫지 못했고 그들의 다리는 흑룡을 세울 수 없었다.

그 강인한 용아병들이 볼링공에 부딪힌 핀처럼 힘없이 튕겨져 나갔다.

놈이 새까만 안개를 뱉어내며 울부짖었다.

"그르르릉."

놈이 시뻘건 눈을 치켜뜨고 '보이지 않는 죽음'을 내려다보았다.

보이지 않는 죽음이 침음성을 흘렸다.

"크으으윽!"

보이지 않는 죽음이 투구로부터 새까만 어둠을 뽑아냈다.

흑룡을 집어삼킨 어둠이 전장 한가운데 검은 구 형상으로 뭉쳤다.

'죽음의 왕'의 권능 '어둠의 장막', 그 화신이 '보이지 않는 죽음'이라는 이명을 얻은 이유였다.

저 어둠 속에 들어가면 오감이 차단된다.

물론 그 정도 스킬로는 흑룡을 막을 수 없었다.

고작해봐야 최후의 발악인 것이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죽음이 이대로 흑룡에게 잡아먹히게 둘 순 없었다.

보이지 않는 죽음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건 흑룡이 수험자를 잡아먹고 강해지기 때문이었다.

저놈이 '보이지 않는 죽음'을 잡아먹고 나면?

이 전장에 있는 수험자들을 모조리 포식할 것이다.

그리고는 상원마저 잡아먹으려 들겠지.

상원이 중얼거렸다.

"타이밍 하곤...."

다시 한 번 원탁의 왕의 힘을 빌려야겠군.

상원이 마검을 뽑아내고 흑룡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였다.

저 멀리서 '대해를 달리는 말'이 외쳤다.

"어딜가느냐! 네놈의 상대는 나다!"

대해를 달리는 말이 히포캄포스를 타고서 해수면을 가르고 달려오고 있었다.

상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젠지금 네놈 같은 걸 상대할 때가 아니다!'

위기의 상황이 되어서일까, 갑자기 냉정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저놈이랑은 정면승부를 할 필요가 없다.'

상원은 칼부림만 할 줄 아는 게 아니었으니까.

놈을 해치우기 위한 최적의 스킬 조합들이 상원의 머릿속에 펼쳐졌다.

우선은 '결투장'.

[스킬 '결투장'을 사용합니다.]

[수험자 '대해를 달리는 말'을 상대로 지정합니다.]

시스템 메시지에 이어 초록색 막이 상원을 중심으로 뻗어 나갔다.

그 막은 대해를 달리는 말을 삼키고 다른 수험자들을 바깥으로 밀어냈다.

[구경꾼이 많습니다.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이어서 상원은 왼손에 마력을 불어 넣었다.

'깊은 하늘의 괴조'의 마력이 담긴 왼팔이 새파란 빛을 냈다.

상원은 발목을 감싼 해수에 왼팔을 박았다.

그러자 강렬한 번개의 힘이 해수면을 타고 뻗어 나갔다.

'대해를 달리는 말'이 신음소리를 내며 우뚝 멈춰 섰다.

"크으으윽!"

바닷물을 타고 흐르는 번개의 마력.

고작 이 정도로 그 강력한 수험자를 물리칠 순 없었지만 돌진을 멈출 정도는 됐다.

이어서 상원은 비장의 패를 뽑아들었다.

상원이 가지고 있는 스킬 중 가장 강력한 스킬이었다.

[스킬 '요새 수호자의 시선'을 사용합니다.]

[스킬에 맞춰 의체를 최적화합니다.]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귀에서 튀어나온 바이저가 펼쳐지며 눈 앞을 덮었다.

[타겟을 설정합니다.]

[타겟: 수험자 '대해를 달리는 말'.]

[스킬 출력을 조정합니다.]

[출력치: 최대]

몇 번의 시스템 메시지에 이어 입이 목 끝까지 찢어졌고, 종아리에서 튀어나온 지지대가 땅바닥에 박혔다.

뒷통수에서 튀어나온 배기관에서 뜨거운 증기가 맹렬하게 솟아올랐다.

입이 벌어지면서 입 속에서 강렬한 에너지가 구슬처럼 뭉쳤다.

지금껏 사용했던 그 어떤 스킬보다도 강렬한 마력이 느껴졌다.

['요새 수호자의 시선', 발사.]

고오오오오!

굉음과 함께 상원의 입에서 새하얀 레이져가 뻗어 나갔다.

순간 눈부신 섬광이 상원의 눈 앞을 가렸다.

무지막지한 반발력이 다리를 밀어냈다.

지지대가 땅바닥에 단단히 박힌 덕에 그대로 날아가는 신세는 면한 대신 다리가 부서질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잠시 후, 섬광이 사라졌다.

목이 원래대로 돌아오고, 바이저와 지지대가 몸속으로 들어갔다.

"으...우...."

'대해를 가르는 말'의 드넓은 가슴팍 한가운데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가 불러낸 히포캄푸스가 새하얀 거품이 되며 흩어지면서, 그의 거구가 해수 속으로 풍덩 빠졌다.

전장을 뒤덮었던 바닷물이 말 그대로 썰물이 되어 빠져나갔다.

올림포스의 2인자, 주신 포세이돈의 화신 '대해를 달리는 말'은 그렇게 탈락했다.

하지만 상원은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단지 앞을 막아선 장애물 하나를 치웠을 뿐.

상원은 고개를 돌려 전장 가운데 나타난 새까만 구를 보았다.

빨리 저 속에 들어간 흑룡을 제압해야 했다.

그때였다.

말 그대로 하늘을 통째로 찢는 듯한 굉음이 들려왔다.

우르르르릉!

상원은 하늘을 보았다.

하늘 위로 금색 번개가 미친 듯 춤추고 있었다.

"이건...."

그게 의미하는 건 단 하나였다.

현시점 최강의 수험자, 최강의 길드 '올림포스'의 길드마스터, 주신 제우스의 화신 '시공간의 세습자'가 이 땅에 오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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