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성 회귀자의 아포칼립스-166화 (166/230)

제166화. 격풍 (4)

상원의 칼에 쓰러진 '데몬즈 헤드'가 꿈틀꿈틀 움직이며 피거품을 뱉어냈다.

놈의 시뻘건 눈이 상원에게 박혔다.

놈의 입이 조금씩 움직이며 잔뜩 일그러진 소리를 냈다.

"그르르륵... 너...."

'잘못 들었나?'

상원은 고개를 갸웃했다.

'데몬즈 헤드가 말을 한다고?'

그런 정보를 들은 적은 없었다.

마물 중에서도 지성이 있는 건 '금강족' 같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뿐이었다.

그때 놈이 입을 다시 움직였다.

"너... 그 힘...."

놈은 분명 상원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데몬즈 헤드가 갓 태어난 짐승처럼 비틀거리며 두 다리로 몸을 세웠다.

'끝난 게 아니었나?'

상원은 가지에 마력을 불어 넣었다.

놈이 벽에 기대 씩씩거리더니 입을 쩍 벌리고 내장을 토해내듯 포효를 질렀다.

"끄허어어어엉!"

상원은 살짝 물러서며 귀를 막았다.

놈이 울컥 피를 토해냈다.

"그르르륵...."

놈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보자. 니가 '그'가 맞는지."

"무슨 소리냐?"

놈은 대답하지 못했다.

놈의 다리가 풀리며 털썩 쓰러진 것이다.

혀를 길게 빼물고 쓰러진 놈의 눈이 완전히 풀려 있었다.

상원은 놈에게 조심히 다가가 마검으로 놈의 콧잔등을 쿡 찔러보았다.

미동도 없었다.

"흠."

'내가 '그'가 맞느냐니. 무슨 소리지?'

상원이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추론하기 어려운 정보였다.

그때였다.

복도 저편에서부터 쿵쿵거리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복도 저쪽 끝에서 또 다른 데몬즈 헤드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다행히도 놈들이 다가오는 곳은 상원이 향하는 곳의 반대쪽이었다.

'그래, 샤믹의 일이 더 급하다. 얼른 돌아가야 해.'

상원은 지갑에 마검을 집어넣고 연구선의 중심부를 향해 달렸다.

데몬즈 헤드들의 발소리가 멀어졌다 가까워졌다를 반복했다.

상원은 머릿속에서 지도를 그리며 달리는 동시에 다음 문들을 뚫을 방법을 떠올렸다.

비밀번호로 열 수 있는 문들과 무력으로 열어야 하는 문들이 명확하게 정리돼 있었고, 상원은 해법 그대로 문을 열면서 전진했다.

가끔 나타나는 실험체들은 단칼에 정리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눈앞에 커다란 방이 나타났다.

전체적으로 천장이 높은 타원형에 바닥이 평평했다.

둥그런 바닥의 지름은 삼십 미터가 넘을 것 같았고, 층고는 그보다 훨씬 높아 까마득했다.

벽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계장치와 패널로 가득했다.

하지만 상원은 기계장치들을 보고 당황하지 않았다.

그중에 조작법을 알아야 하는 건 딱 둘 뿐이었으니까.

그중 하나는 상원이 들어온 문을 닫는 스위치였다.

상원은 뒤를 돌아 벽에 달린 패널을 조작했다.

달리는 내내 패널을 조작하는 걸 시뮬레이션했기에 막힘 없이 움직일 수 있었다.

조작을 마치자 윙 소리와 함께 단단한 철문이 닫혔다.

문 한가운데 달린 창으로 바깥의 풍경이 보였다.

쿵 소리와 함께 달려온 데몬즈 헤드의 이빨이 창에 비쳤다.

이어서 쿵 쿵 하는 소리가 연달아 울렸다.

뒤따라 달려온 데몬즈 헤드들이 창에 부딪히는 것이었다.

이제 이 문에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상원은 돌아서서 방을 바라보았다.

여기가 연구선의 중심, 이곳에 상원이 연구선을 찾아온 목적이 있었다.

계란을 세워놓은 것처럼 생긴 거대한 연구실의 한가운데, 계단 한 단만 한 둘레돌 가운데로 흙밭이 있었다.

그 흙밭 속에, 사람의 키보다 조금 큰 나무가 자라나고 있었다.

심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얇은 나무가 연두색 이파리를 흩날렸다.

채광창을 통해 쏟아진 옅은 자연광이 나무 위에서 은은하게 부서졌다.

온통 무기물로 가득 찬 연구실 안에 홀로 서 있는 나무는 은은하게 아름다웠지만 지나치게 이질적이었다.

그것이 바로 상원이 이곳에 온 목적, 샤믹의 병을 고치기 위해 필요한 '뱀이 훔친 불로초'였다.

상원은 불로초를 향해 걸어갔다.

노트에서 보았던 말들이 머리를 스쳐 갔다.

타우 은하의 모성 '타우'는 성간 항행이 가능할 정도로 문명이 발달한 곳이었다.

타우 사람들은 고도로 발달한 문명의 작동을 통합된 인공지능에 맡겼다.

그 인공지능을, 타우 사람들은 네트워크 '타나스'라고 불렀다.

그리고 네트워크 타나스는 새하늘 아버지의 시험이 타우 은하를 침공했을 때 큰 문제를 일으켰다.

타나스가 새하늘의 시스템에 잠식돼버린 것이다.

잠식된 타나스는 타우 사람들을 공격했다.

타우의 생명공학기술의 결실로서 특수한 환경에서만 자라는 불로초를 피워내는 연구선 '길가메시 호'가 이 외딴 행성에 불시착한 것도 그래서였다.

타나스가 연구선의 실험체들을 조종하여 연구원들을 살해한 것이다.

흥미로운 이야기였지만 상원은 더 많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중요한 건 어쨌든 눈앞에 '뱀이 훔친 불로초'라는 '아이템'이 있다는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불로초를 훔친 '뱀'이 등장할 차례였다.

아니나 다를까, 무언가가 퉁 퉁 하고 철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방이 종처럼 생긴 탓인지 소리가 방 안에 메아리치고 있었다.

상원은 정신을 가다듬고 마검의 손잡이를 쥐었다.

무언가가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걸 상원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온다!'

상원은 뒤로 몸을 날려 재빠르게 자리를 피했다.

방금 전까지 상원이 서 있던 자리로 뾰족한 나뭇가지들이 투창마냥 쿡쿡 박혔다.

상원은 나뭇가지가 날아온 쪽을 보았다.

커다란 마물이 벽을 타고 꾸물거리며 기어오고 있었다.

전체적인 형태는 커다란 뱀 같았는데, 몸은 잔뜩 얽힌 나뭇가지로 이루어져 있었다.

가지를 따라 듬성듬성 이파리가 돋아 있었다.

그리고 놈의 머리 부분은 커다란 분홍색 꽃봉오리 모양이었다.

불로초를 만들기 위한 실험 과정에서 부산물로 만들어진 식물 덩어리에 타나스가 생명을 불어넣어 만든, 저놈이 바로 '불로초를 훔친 뱀'이었다.

놈이 꽃봉오리같이 생긴 아가리를 벌리자, 다섯 장의 꽃잎이 벌어지며 그 정중앙에 칠성장어처럼 생긴 아가리가 드러났다.

"쐐애애애애액!"

놈이 아가리에서 끈끈한 타액을 튀기며 포효했다.

놈의 타액이 바닥에 떨어지자 신소재 강철로 만든 바닥이 흰 연기와 함께 부글부글 거품을 내며 녹아 들어갔다.

놈의 타액이 강산성이기 때문이었다.

놈이 긴 가지들을 촉수처럼 움직여 벽에 튀어나온 기기들을 휘감을 때마다 텅텅하는 소리가 울렸다.

상원은 '바위에 박힌 검'을 양손에 쥐고 마력을 불어넣었다.

새하얀 검기가 광선검의 칼날처럼 우웅 하고 뻗어 나왔다.

다가오던 놈이 우뚝 멈춰 섰다.

상원은 놈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한순간,

'온다!'

놈이 아가리를 활짝 벌리고 상원을 향해 짓쳐들어왔다.

"쐐애애애액!"

상원은 타이밍을 기다렸다.

그러다가 딱 맞는 타이밍이 왔을 때, 재빨리 오른쪽으로 몸을 굴려 놈의 공격을 피하는 동시에 마검으로 놈의 아가리를 베어냈다.

고기 썩은 내를 풍기는 두꺼운 꽃잎 두 장이 쿵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놈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쿵 소리를 내며 벽에 박혔다.

상원은 마검을 쥐고 놈을 향해 돌아섰다.

놈이 대가리를 상원을 쳐다보고 있었다.

방금 잘려나간 꽃잎이 순식간에 재생되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재생력, 그게 놈이 진정으로 무서운 점이었다.

저놈을 해치우지 않는 이상 '뱀이 훔친 불로초'의 열매를 채취하는 건 불가능하므로 저놈을 반드시 해치워야 했다.

그렇다면, 놈을 해치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방법은 둘 중 하나였다.

저놈의 재생력이 고갈될 때까지 이 짓을 반복하던가, 아니면....

'재생도 못 하게 한 번에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던가.'

상원은 후자를 선택했다.

지금 저런 놈을 상대할 만큼 한가하지 않았으니까.

상원이 품에서 '박피 단검'을 뽑아내 놈을 향해 던졌다.

마력을 잔뜩 머금은 박피 단검이 새빨간 검기를 두르고서는 쏜살처럼 놈을 향해 날아갔다.

"쉬이이이익!"

놈이 여러 갈래의 촉수를 뽑아내 방패처럼 뭉쳤다.

촉수로 만든 방패가 박피 단검의 진로를 막아섰다.

박피 단검과 방패가 부딪쳤다.

퍽 소리와 함께 방패가 뚫리고, 박피 단검이 방패 안으로 파고 들어가 놈의 몸에 박혔다.

박피 단검이 놈의 몸속에 독액을 주입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놈이 그 기분 나쁜 이물감 때문인지 꽃처럼 생긴 머리를 흔들며 괴성을 질렀다.

"쓰아아아악!"

물론 박피 단검의 독기만으로 극적인 효과를 기대한 건 아니었다.

독기가 치명적인 건 어디까지나 해원향 하나뿐, 박피 단검의 독기는 1급 마물마저도 간지럽게 여기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상원이 놈의 몸에 단검을 박은 건 그 독기로 놈을 잡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바로 칼에 주입된 마력을 흐르게 하는 독기의 독특한 성질을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상원이 놈을 향해 다가가며 말했다.

"가만히 있어라."

상원이 왼손에 마력을 모으자 왼팔에 번개무늬가 나타나 새파랗게 빛나기 시작했다.

상원은 놈에게, 정확히는 놈의 몸 한구석에 박혀 있는 박피 단검을 향해 번개를 쏘았다.

박피 단검의 홈을 따라 새파란 번개가 놈의 몸속으로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제 번개가 놈의 몸속을 흐르는 독기를 따라 흐르며 놈을 잠식할 것이다.

놈이 온몸을 흔들며 괴성을 질렀다.

"쓰에에에에엑!"

놈의 동작이 점차 작아지기 시작했다.

몸속을 흐르는 전기 때문에 근육들이 굳은 탓이었다.

곧 놈은 몸을 길게 늘어뜨린 채로 경련하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상원은 전기를 거두고 왼손으로 오른쪽 아래팔을 잡았다.

전처럼 오른팔이 부드럽게 열리지 않았다.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열지의 말뚝을 제대로 뽑아낼 수 없게 된 건, 오디나스를 잡은 이후 몸을 수복하면서 발생한 어쩔 수 없는 부작용이었다.

['열지의 말뚝'을 사출합니다.]

['열지의 말뚝'을 제대로 사출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사출을 계속할 경우 의체가 손상될 수 있습니다.]

[계속하시겠습니까?]

"물론."

의체가 부서지면 레벨업을 해서 회복하면 된다.

그러다 정 안되면 '기계장치의 신'이 와서 고치거나 하겠지.

상원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아래팔을 헤집어서 '열지의 말뚝'을 뽑아냈다.

오른쪽의 인공 근육들이 찢어지며 선홍색 체액에 뒤덮인 말뚝이 뽑혀 나왔다.

예상했던 것보다 심한 통증에 상원은 얼굴을 찌푸렸다.

"큭!"

하지만 상원은 멈추지 않았다.

어서 돌아가야 하니까.

돌아가서 샤믹과, 서울역의 수험자들과, 성역 서울역을 지켜야 하니까.

고작 이 뱀 따위에 시간을 할애했다간, 오랜 세월이 지나 다시 손에 쥐게 된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릴지도 모르니까.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 오른손에 말뚝을 억지로 쥐고 마력을 불어 넣었다.

곧 말뚝이 빨갛게 빛나며 은은한 열기가 피어 나오기 시작했다.

놈의 앞에 선 상원이 표정 없는 얼굴로 놈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오른손을 높이 들어 나무줄기처럼 생긴 놈의 몸에 말뚝을 깊이 박아 넣었다.

그러자 놈의 몸속에 들어간 '태초의 대족장'의 마력이 놈의 몸을 속에서부터 태우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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