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성 회귀자의 아포칼립스-165화 (165/230)

제165화. 격풍 (3)

용아병과 미라의 싸움은 대등한 듯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용아병이 미라보다 강하다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용아병의 창날에 미라들이 하나둘 재가 되어 스러졌다.

창훈은 이를 악물었다.

"끄으으윽!"

창훈은 미라들을 되살려 다시 전장에 투입했다.

의령수의 심장에 담긴 보라색 불꽃이 기관차의 엔진처럼 후끈후끈 타올랐다.

숨결이 너무 뜨거워서 코가 타는 것 같았다.

너무 마력을 많이 뽑아낸 탓인지 손끝과 발끝이 너무 뜨거웠다.

"젠장...!"

반면 '보이지 않는 죽음'은 팔짱을 낀 채로 조용히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태도가 창훈과는 다르게 너무 여유로워 보였다.

'이것이 주신과 신령의 격의 차이인가.'

서울역의 구성원들이 상원의 덕에 최상의 성장 코스만을 밟아온 터라 잘 느껴지지 않았지만, 사실 주신급과 신령급의 격의 차이는 현격했다.

'달의 신령 '같은 최하급 주신과 '낙원의 수문장' 같은 최상급 신령의 차이도 실은 어마어마했다.

더구나 눈앞에 있는 '보이지 않는 죽음'의 수호신인 '명계의 아버지'는 모든 주신들을 통틀어서 손가락에 꼽히냐 마냐를 논하는 괴물이었다.

아무리 자기 수호신 '화산정의 혐오체'가 마력을 다루는 실력이 빼어나기 그지없는 대강령술사라 한들, 애초부터 가지고 있는 마력의 양부터가 차이가 심했다.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싸움을 불리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어.'

버텨야만 했다.

여기서 최대한 버티는 것, 그게 창훈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버티다 보면 상원이 돌아올 것이다.

그때였다.

보이지 않는 죽음이 말했다.

"자네, 생각보다 꽤 하는군. 그 아가씨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는 반푼이인 줄 알았더니."

창훈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사실이야. 난 와이프님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해."

"끌끌. 사랑꾼 나셨어."

보이지 않는 죽음의 손에 들린 칼날이 주변의 빛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죽음이 단조롭게 말했다.

"자네 실력은 잘 봤네. 마력을 다루는 솜씨가 상당하군. 솔직히 조금 놀랐을 정도야. 이런 상황에서 만난 게 아니라면 한 수 배웠을 텐데."

창훈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나는 아저씨한테 가르쳐 드릴 의향이 하나도 없는데요. 영업비밀 빼갈 거란 얘기를 낯짝에 철판 깔고 아무렇지도 않게 하시네."

보이지 않는 죽음이 끌끌 웃었다.

"뭐 그래. 자네 영업기밀 빼가겠단 말이 맞아. 그런데 말이야, 그렇겐 못 하게 됐어. 우리 길드장이 독촉을 좀 심하게 하고 있거든."

"뭐요?"

보이지 않는 죽음이 창훈을 향해 단검을 겨눴다.

"그만 끝내자고."

다음 순간, 사위가 암전된 것처럼 어두워졌다.

'보이지 않는 죽음'이 빛을 빨아들인 것이다.

그에게 '보이지 않는 죽음'이라는 이명을 안겨준 기술, 주신 '명계의 아버지'의 권능 '침묵의 살인'이었다.

- 조심해라!

"이런...!"

눈이 보이지 않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중얼거린 자신의 목소리도, 수호신의 음성도, 심지어 온몸의 감각도 아득하게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그 괴물 같은 아저씨를 이 상태에서 상대해야 된다고? 이거 해도 너무한 거 아니야?'

그때였다.

심장을 향해 단검이 날아드는 게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창훈은 옆으로 몸을 던졌다.

공기를 가르는 단검의 풍압이 그대로 창훈에게 전해져 왔다.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그대로 탈락했겠군.'

자세를 바로잡은 창훈이 정신을 가다듬고 마력을 뽑아 올렸다.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스킬 '마력 보호막'을 사용합니다.]

곧 창훈의 주변으로 보라색 불꽃으로 이루어진 반투명한 막이 생겨났다.

그 어슴푸레한 빛에 어둠이 조금 물러났다.

그 사이로 '보이지 않는 죽음'의 단검이 다시금 날아들고 있었다.

창훈은 이를 악물었다.

단검이 보호막에 박히자 쩡 하는 소리와 함께 보호막 전체가 크게 흔들렸다.

그 충격이 그대로 전해져 와서 창훈은 자기도 모르게 몇 걸음 물러났다.

'이게 고작 칼질의 위력이라고?'

도대체 저 작은 칼에서 어떻게 이런 힘이 나온단 말인가?

보이지 않는 죽음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자네, 상당하군 그래. 그 사이에 보호막을 뽑아내서 맞설 줄이야."

"왜요, 다른 친구들은 그 생각도 못 했나 보죠?"

"생각도 하기 전에 숨이 끊어졌지."

다시 단검이 날아왔다.

단검이 보호막에 부딪히자 또 굉음과 함께 보호막이 크게 흔들렸다.

뾰족한 칼끝이 보호막을 뚫고 들어와 있었다.

창훈은 자기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뱉었다.

"이런 씨발..."

보호막에 가해진 충격의 일부가 창훈의 몸에 전해졌다.

내장이 뒤집어지는 것 같은 충격과 함께 입속에 씁쓸한 피 맛이 감돌았다.

* * *

한편, 상원은 짙은 안개 속을 걷고 있었다.

검푸른 빛 안개가 주변을 온통 감싸고 있었고 숨을 쉴 때마다 안개가 머금은 한기가 폐 깊이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차가운 안개에서 어딘가 상쾌한 맛이 났다.

이곳이 바로 '깊고 깊은 물'이라 불리는 차원이었다.

이름 그대로 물속인 건 아니었지만, 앞을 잘 볼 수 없을 정도로 진한 안개 속을 걷고 있자니 정말 물속을 걷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생각보다 안개가 짙군.'

상원은 앞을 바라보았다.

검푸른 안개의 바닥으로 커다란 자갈들이 깔린 자갈밭이 쭉 이어졌다.

왼쪽으로는 시퍼런 바다가 파도 소리와 함께 넘실대고 있었다.

이 해변을 뒤덮은 짙은 안개는 거기서 나오는 것이었다.

상원은 록시에게서 산 재료들로 이 차원으로 오는 문을 열었다.

샤믹에게 먹일 약재 '뱀이 훔친 불로초'를 얻기 위해서였다.

상원의 머릿속에는 차원문에서 '뱀이 훔친 불로초'까지 가는 길이 정확하게 저장돼 있었다.

새하늘교의 노트에 그 길이 상세히 적혀 있기 때문이었다.

상원은 주변을 둘러보며 생각했다.

'길을 미리 보고 오지 않았다면 그대로 미아가 됐겠는데.'

안개는 그 정도로 짙었다.

'그나저나 그 노트... 정체가 뭐지?'

도대체 어떻게, 새하늘의 모든 것을 담은 노트가 세상에 존재할 수 있었을까?

새하늘교의 정체는 무엇이었지?

새하늘교를 처음 접했을 때 상원이 가졌던 의문들이었다.

새하늘교에 있는 동안 겪었던 괴로웠던 나날들은 그 질문들을 잊게 만들었다.

새하늘교를 탈출한 이후 상원은 그 질문들을 회피해 왔다.

새하늘교에 대해 떠올릴 때마다 집단 자살 사건이 생각나서였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시험을 버티는 것 자체에 매달리느라 그 질문들을 떠올릴 여력이 없었다.

그런데 새하늘 너머에서 그 꿈을 빨아먹는 괴수, '새하늘 아버지'를 보고 나니 그 근본적인 질문들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새하늘 아버지가 꿈을 빨아먹고 나서 온몸에서 흘렸던 오수, 그것과 분명히 연관돼 있을 거란 직감이 강하게 들었다.

그때였다.

웬 동산만 한 크기의 그림자가 상원의 앞을 가로막았다.

모르는 사람이 보았다면 언덕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니, 그건 동산이 아니었다.

외벽이 강철로 이루어진, 그것은 동산처럼 생긴 거대한 구조물이었다.

그리고 상원은 알고 있었다.

그게 바로 시험이 집어삼킨 '타우 은하'의 모성 '타우'에서 출발했다가, 이 행성의 해변에 추락한 우주 연구선이라는 걸.

'우주 연구선이라는 거, 실제로 보니까 스케일이 굉장하네.'

상원은 머릿속의 지도를 따라 연구선의 주변을 돌았다.

그리고 해변의 반대쪽에 다다랐을 때 연구선의 입구가 보였다.

입구는 연구선에 비하면 조그맸다.

사람 둘이 동시에 드나들 수 없을 것 같은 연구선의 입구는 열려 있었다.

연구선 입구에 우주복을 입은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타우인이었다.

연구선의 바깥쪽을 향해 엎드린 채였는데, 우주복의 등 부분이 마치 커다란 발톱에 긁힌 것처럼 찢어져 있었다.

'연구선을 탈출하려다가 당했군.'

상원은 타우인의 시체를 넘어 연구선 안으로 진입했다.

연구선 안은 엉망이었다.

복도 여기저기 시뻘건 핏자국과 고름 같은 연녹색 체액, 그리고 부서진 살점들이 그대로 엉겨 붙어 있었다.

시설들도 대부분 파손돼 있었고, 입구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우주복 차림의 시신들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시체들을 지나쳐 상원은 미로 같은 연구선의 내부를 나아가기 시작했다.

가끔씩은 발걸음을 멈추며 지금까지 온 길이 맞는지를 살폈고, 또 가끔씩은 아직까지 작동하는 차폐문을 해제했다.

그렇게 상원은 연구선의 중앙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발걸음을 옮길수록 타우인의 사체가 나타나는 빈도가 늘었다.

연구복을 입지 않은 타우인 시체도 있었는데, 그들의 생김새는 완전한 민머리라는 점을 빼면 인간과 같았다.

중심부로 갈수록 시체가 많아지는 건 대부분의 타우인들이 연구선 중앙에 있다가 모종의 이유로 저항도 하지 못하고 학살당해서였다.

상원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건 연구선의 생명공학 실험체들이 연구원들을 공격해서였다.

연구원들은 실험체들에게 공격받을 걸 예상도 못 했다는 듯 무장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학살당했다.

타우 은하를 항해하던 연구선이 이 행성에 불시착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연구선 안에는 연구원들을 학살했던 실험체들이 아직 그대로 남아있었다.

상원은 피칠갑된 문 앞에 섰다.

노트에서 본 문장이 저절로 떠올랐다.

‘피로 물든 문. 초록 파랑 초록 초록 빨강. 3 9 6 6 4 2 8 2 7.’

차례대로 패널을 누르자 위잉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옆으로 열렸다.

그때였다.

등 뒤에서 저벅저벅 하는 발소리와 함께 무언가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으르르르릉.”

‘왔군.’

상원은 코트에서 ‘바위에 박힌 검’을 꺼내고 뒤를 돌아보았다.

바위에 박힌 검에 마력을 불어넣자 새하얀 검기가 쭉 튀어나왔다.

상원을 향해서 공룡같이 생긴 괴생명체가 걸어오고 있었다.

커다란 티라노사우루스의 머리에 다리와 꼬리를 붙여놓은 것 같은 생김새였는데, 덩치가 어찌나 큰지 복도를 통째로 가로막은 채였다.

단검만 한 이빨엔 아직도 살점이 너덜너덜 붙어 있었고 턱을 따라 시뻘건 선혈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연구원들을 공격한 실험체 중 한 놈.

저놈들은 3급 마물에 해당하는 ‘데몬즈 헤드’ 종이었다.

놈의 샛노란 눈이 상원을 노려보았다.

‘온다!’

놈이 달려들 걸 감각적으로 먼저 알아차린 상원은 바위에 박힌 검을 양손에 꼬나 들고 타이밍을 노렸다.

아니나 다를까, 놈이 커다란 입을 쩍 벌리고 상원을 향해 달려들었다.

“끄아아아악!”

놈이 커다란 다리로 땅을 밟을 때마다 복도가 쿵쿵 울렸다.

커다란 아가리에서 피비린내가 훅 풍겼다.

선혈이 낭자한 놈의 아가리를 보며, 상원은 마력을 끌어올렸다.

“흡.”

놈의 이빨이 상원의 머리에 꽂힐 찰나, 상원은 검을 세로로 올려 베었다.

검기가 놈의 살을 찢는 느낌이 검을 타고 전해져 왔다.

잠시 후, 놈이 단말마도 남기지 피거품을 뿜으며 세로로 쪼개졌다.

“후.”

상원은 숨을 뱉으며 마력을 거두었다.

‘이렇게 갑자기 나타나다니.’

그때였다.

쓰러진 놈의 눈이 새빨갛게 변했다.

“끄르르륵.”

“끄르르르륵.”

실험체들이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복도를 잔뜩 울리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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