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성 회귀자의 아포칼립스-162화 (162/230)

제162화. 올림포스의 침공 (9)

뒤이어 시스템 메시지가 연속으로 떴다.

[스물여섯 번째 시험, '성역 병합전'을 선포합니다.]

[지금부터 24시간 내, 공격자로 지정된 성역 또는 길드는 방어자로 지정된 성역 또는 길드의 성화를 꺼야 합니다.]

[24시간 내 성화를 끄면 공격자의 승리, 끄지 못하면 방어자의 승리입니다.]

[공격자가 패배할 경우 공격자의 성화가 꺼집니다.]

[시험이 끝나는 시점에서 패배한 쪽의 수험자와 물자는 모두 승리자에게 귀속됩니다.]

[길드 '올림포스'를 공격자로 지정합니다.]

[성역 '서울역'을 '올림포스'에 맞서는 방어자로 지정합니다.]

[남은 시간: 23시간 59분]

문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젠장...!'

시험의 내용 자체는 간단했다.

말 그대로 성역들 간의 전면전.

속임수나 꼼수랄 것도 없는 담백한 힘 싸움이었다.

그런 힘 싸움에서라면 서울역은 어떤 성역에도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게다가 다행히도 서울역은 방어하는 입장이었다.

공성보다야 수성이 훨씬 유리하다.

평소라면 그랬다.

문제는 타이밍과 상대방이었다.

지금 서울역은 중요 전력들이 대부분 전투에 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샤믹의 발작은 잦아지고 있었고, 혜경과 창훈은 그녀를 말리기 위해 거의 병실에 붙어 있었다.

광화문에 다녀온 진아를 비롯한 성속성 수험자들 또한 병실 신세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서울역 최강의 전력인 조상원이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인데, 상대가 무려 올림포스였다.

세브로 랭킹 2위인 '시공간의 세습자' 카일 핸드레이크를 비롯해서 '대해를 달리는 말'이며 '보이지 않는 죽음'까지 주신급만 해도 열 명이 넘어가는 괴물 길드.

올림포스는 발할라가 몰락한 지금 명실상부 시험 최강의 길드였다.

안경을 벗은 문혁이 얼굴을 감싸고 한숨을 쉬었다.

"하아아아...."

이 조건으로 올림포스를 상대해야 한다니, 관자놀이가 지끈거려왔다.

"빌어먹을...."

그때 수호신 '해안선의 귀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 침착하시게. 반드시 방법은 있네.

문혁이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

"예, 장군님."

문혁은 곁에 있던 의자에 앉아 몸을 추슬렀다.

잠을 자지 못한 탓에 머리가 지끈거려왔고 온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마인화를 겪은 진아의 상태도 너무 걱정됐다.

이대로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진아의 곁으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문혁은 서울역의 지휘자니까.

이 성역의 명운이 그의 어깨에 얹혀 있으니까.

“가자.”

문혁은 몸을 일으켜 중앙지휘본부로 발걸음을 옮겼다.

몸을 꼿꼿하게 세우고, 턱을 조금 들어 약간 위를 보면서.

수호신이 빙그레 웃었다.

- 좋네.

명실상부 시험 최강의 성역인 서울역을 지휘하면서, 간부들이 빠졌다고 패배를 생각하다니.

이보다 어려운 조건에서도 불굴의 지휘력으로 전세를 뒤집은 영웅들이 수도 없이 많은데 말이다.

심지어 열세 척의 배로 백삼십 척이 넘는 적선을 깨부순 성웅이 그의 뒤에 있지 않은가?

언제나 그랬듯이, 전쟁사에 길이 남은 영웅들과 수많은 선배들이 걸어왔던 자취가 문혁에게 길을 보여줄 것이다.

문혁은 그것을 믿었다.

중앙지휘본부로 들어선 문혁은 곧바로 전술지도 앞에 섰다.

전술지도에는 서울역의 지휘하에 들어와 있는 성역들과 함께, 각 성역을 대표하는 수험자들이 적혀 있었다.

모든 길드와 성역들이 시험에 들었는지, 서울 시내의 성역들은 어떤 수준의 상대를 만나게 됐는지, 아직은 알 수 없었다.

그러므로 서울 시내의 수험자들 중 서울역을 도우러 올 수 있는 수험자는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지도를 보는 문혁의 눈에 몇몇 성역들과 그 성역을 대표하는 수험자들의 이름이 보였다.

문혁은 지도를 보면서 우선순위를 세웠다.

그리고는 자리로 가 수많은 아이템과 스킬들을 조합해 구축한, 다른 성역들과 연결된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맨 처음은 대림역이었다.

익숙한 세 자리 숫자를 누르자 잠시 통화 연결음이 들리더니, 수화기 건너편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대림역 회장실입니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여자의 목소리에 졸음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문혁이 단도직입적으로 화제를 꺼냈다.

"서울역의 백문혁입니다. 강 회장님 부탁드립니다. 몹시 급한 일입니다."

‘이 시간에 누구지’라는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그리고 뒤이어 비서가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전화를 건 사람이 누군지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네, 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회장님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잠시 후, 수화기 너머에서 익숙하기 그지없는 노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아, 백 장군. 이른 아침부터 무슨 일이시오?"

문혁은 목소리를 깔고 말했다.

"강 회장님. 서울역으로 와주셔야 되겠습니다. 지금 당장요."

* * *

서울역의 응접실, 서울역 소속이 아닌 수험자들 몇몇이 둘러앉아 있었다.

문혁이 각 성역들의 시험 진행 상황과 여력을 고려해서 불러 모은 서울의 정예 수험자들이었다.

상석 가까이 앉아 있던 강상중이 창밖의 성화를 쳐다보고 말했다.

"참, 대단하구만. 볼 때마다 놀라워. 시험 세계를 수없이 돌아다녔지만 저런 성화는 어디서도 볼 수 없었어."

상중의 옆에 앉아 있던 여자가 말했다.

앳된 얼굴에 눈동자가 하얀, 주신급 승천자 '최초의 수확자'의 화신 신우주였다.

"맞아요. 서울역의 성화는 언제 봐도 놀랍지요."

그 말에 강상중이 의자를 빙글 돌려 신우주를 보고 물었다.

"아가씨, 아가씨도 저걸 볼 수 있어?"

"그럼요."

신우주가 생긋 웃으며 대답했다.

"성화를 보는 건 육신의 눈이 아니라 마음의 눈이거든요."

신우주의 말을 들은 강상중이 껄껄 웃었다.

"그래? 그렇구만."

그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문혁은 마음 한 켠이 가벼워졌다.

서로 소속이 다른 수험자들을 불러 모은 터, 그들의 사이가 어색할까 걱정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는 분위기가 아주 좋았다.

목을 가다듬은 문혁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급하게 부탁을 드렸는데 이렇게 발 벗고 나서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감사의 마음을 담아 문혁은 고개를 꾸뻑 숙여 인사했다.

강상중이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소, 괜찮아. 우리가 다들 서울역으로부터 도움을 받은 사람들인데, 이 정도는 응당 해드려야지. 그렇지 않소?"

상중이 고개를 돌리며 묻자 다들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문혁은 거기서 다시 한번 상원의 그림자를 느꼈다.

승천 시험 세계의 성역들은 서로 적대 관계다.

무엇보다도 시험 자체가 성역들을 그렇게 만들었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기관은 26번 시험처럼 성역끼리 전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서울의 모든 성역들이 합심해서 시험에 대항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든 건 대부분 상원의 공이었다.

그리고 상원이 없는 지금, 문혁은 그걸 지켜야 했다.

자신의 생명을 몇 번이고 살려준 은인, 조상원이 만들어 둔 이 체계를.

신우주가 말했다.

"솔직히 좀 놀랐어요. 저희도 매번 서울역의 도움을 받기만 했는데, 이렇게까지 직접적으로 도움 요청을 받을 줄은 몰랐거든요."

강상중이 말했다.

"상황이 그만큼 심각한 거지."

문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지금 서울역의 상황은... 아주 심각합니다."

수험자들이 문혁을 주목했다.

"급하게 도움 요청을 드리느라 유선상으로 세세히 말씀은 못 드렸습니다만, 지금 저희는 여러분들의 도움 요청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에 대해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상원 씨는 부재중으로, 언제 돌아올 지 기약이 없는 상황입니다. 외에도 송혜경 씨, 샤믹 프란시스코, 그리고... 진아 씨를 비롯해서 많은 수험자들이 전투에 합류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문혁의 말에 다른 수험자들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누군가 물었다.

"아니... 그렇게나 강한 분들이 다들, 그렇게 될 만한 상황이 있었던 건가요?"

문혁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수험자가 물었다.

"광화문 근처에 마계화가 진행됐었다던데... 그것도 관련이 있는 거죠?"

"맞습니다. 그리고 그 건은 잘 해결됐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쨌든...."

문혁이 한숨을 푹 쉬고 말했다.

"이 판국에, 저희는 올림포스 길드와 병합전을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 말에 장내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누군가 말했다.

"올림포스요...? '카일 핸드레이크'가 이끄는 그 올림포스?"

"네."

이어서 수험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올림포스라고? 무슨 말도 안 되는...."

"가혹해도 너무 가혹한데요? 이건 상황이...."

혀 안쪽에서 씁쓸한 맛이 감돌았다.

그래, 서울역의 상황과 상대를 꺼내면 이런 반응이 나올 거라고 충분히 예상했다.

그래서 이런 반응이 나왔을 때 꺼낼 카드도 준비해두었다.

문혁이 목청을 가다듬었다.

“크흐흠.”

그러자 강상중이 책상을 턱 치며 말했다.

일순간 좌중이 조용해졌다.

"아니, 왜들 이러시나? 우리가 시험에 든 건 말이 됐고? 언제부터 시험이 그렇게 말이 되는 거였다고."

문혁이 상중에게 준비해서 미리 준비해둔 멘트였다.

서울역의 존재 필요성을 호소하는 건 서울역 소속이 아닌 강상중이 말하는 게 더 효과적일 테니까.

상중이 말을 이어가려는데, 신우주가 덧붙였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지금 서울역이 올림포스에 무너지면, 우리가 맺고 있는 협력 관계도 깨지게 될 겁니다. 그러면 결코 지금처럼 편하게 시험을 진행할 수 없어요."

문혁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신우주는 예상 밖이었는데, 강상중이 하려던 말을 신우주가 이런 식으로 대신해줄 줄이야.

강상중도 호오 하면서 신우주를 보았다.

강상중과 신우주의 말에 장내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다들 서울역의 방어전을 도울 의지가 생겼는지 결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말 그대로 하늘을 찢어버리는 것 같은 굉음이 방안 가득 울렸다.

콰르르릉!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온 방이 흔들리며 집기들이 와르르 무너졌다.

예상치 못한 진동에 살짝 비틀거린 문혁은 얼른 중심을 잡고 창가로 뛰어갔다.

그리고 창밖을 본 문혁은 넋을 잃고 말았다.

"이게... 뭐야?"

문혁의 곁에 와서 밖을 본 강상중도 말했다.

"이런...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 거야?"

하늘을 뒤덮은 새까만 먹구름이 미친 듯 흐르고 있었다.

구름이 어찌나 빠르게 움직이는지 구름이 아니라 새까만 격류처럼 보였다.

그 구름의 사이 사이로 눈부신 금빛 전류가 흘렀다.

"회장님... 이런 거 보신 적 있습니까?"

"그럴 리가."

서울역의 북쪽으로 모여든 구름이 격렬하게 소용돌이쳤다.

소용돌이의 중심에서 금빛 전류 덩어리가 똬리를 튼 뱀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그 전류 덩어리로부터 거대한 빌딩만 한 벼락 한 줄기가 땅바닥에 꽂혔다.

그 직후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은 섬광이 서울역을 집어삼켰다.

그 와중에 창문이 모조리 깨졌는지 와장창하는 소리와 함께 유리 파편이 문혁을 덮쳤다.

문혁은 직감했다.

스물여섯 번째 시험의 서울역의 상대, 현시점 최강의 길드인 올림포스가 서울역을 치기 위해 이 땅에 온 것을.

긴 전쟁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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