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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성 회귀자의 아포칼립스-160화 (160/230)

제160화. 올림포스의 침공 (7)

진아는 득시글거리는 마물들의 사이를 꼿꼿하고 도도하게 걸었다.

그녀를 중심으로 뻗어 나간 분홍색 불꽃이 마물들을 깨끗하게 삼켜버렸다.

진아의 '지천사의 불꽃'은 마물들의 급수를 가리지 않았다.

새타니도 이매도 지옥의 사냥개도 진아의 불꽃에 재가 되어 흩어져버렸다.

그렇게 홍례문을 넘어 근정문 앞마당도 깨끗하게 정리되었다.

진아는 근정문 앞에 섰다.

시꺼먼 마기가 근정문을 감싸고 흐르고 있었다.

그 너머의 마기는 어찌나 짙은지 하늘로 검은 아지랑이가 보일 정도였다.

"마기가 눈에 보일 정도군."

"끔찍합니다... 끔찍해요."

한 목사와 아이린 수녀가 말을 주고받았다.

실체화된 마기가 새까만 석유처럼 근정문 지붕에서 툭툭 떨어져 바닥에 닿아 꿈틀거렸다.

"후우."

진아가 깊은숨을 쉬며 불꽃을 뽑아내자, 근정문을 뒤덮고 있던 마기가 서서히 증발하기 시작했다.

진아가 근정문에 손을 대고 중얼거렸다.

"부정한 것들은 사라질지어다."

굳게 닫힌 문이 터질 듯 삐걱거렸다.

하지만 근정문은 홍예문 그리고 홍례문과 달리 한 번에 열리지 않았다.

진아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고작 문짝인데... 이걸 버틸 정도로 마기가 강하다니.'

심상치 않았다.

그렇지만 두렵지 않았다.

낙원을 지키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수문장이 그녀의 뒤에 있지 않은가?

심호흡을 한 진아가 문에 두 손을 대고 외쳤다.

"부정한 것은 사라질지어다!"

그녀의 두 손을 따라 분홍색 불꽃이 근정문을 집어삼켰다.

이어서 굉음과 함께, 근정문이 통째로 떨어져 나갔다.

그 너머의 광경은 진아와 수험자들이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근정전 앞 너른 뜰에 시린 달빛이 부서졌다.

그 아래로 드러난 풍경이 고요하고 섬뜩해 시린 느낌마저 주었다.

그 서늘한 고요.

진아는 그곳을 향해 조용히 발을 디뎠다.

저벅

그녀의 발소리가 너른 뜰에 울렸다.

하지만 육신의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었다.

고도로 발달한 그녀의 영안(靈眼)에는 근정전 전체를 감싸고 있는 어두운 그림자가 보였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히는 짙고 무거운 마기.

진아는 그 마기 속을 조용히 나아가기 시작했다.

"아아, 주여."

지천사의 불꽃이 마기를 밀어냈다.

모세가 갈라진 홍해를 건너듯, 진아는 마기를 가르고 천천히 나아갔다.

그 발걸음엔 확신이 있었다.

이 짙은 마기가 자신을 해하지 못할 거라는 확신이.

그때였다.

이제까지와는 확연히 다른, 무겁고 둔중한 소리가 들려왔다.

"으어어어어억!"

근정전의 문을 부술 듯, 근정전으로부터 거대한 근육질 괴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키가 4미터는 넘을 듯한, 피부가 온통 새빨간 근육질 거인이었다.

정수리에서는 세상 끝의 회색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런 괴물이 셋이나 모습을 드러냈다.

사당역의 핵을 지키고 있던 도깨비계 4급 마물 두억시니였다.

진아를 따라 홍례문을 넘어선 수험자들이 겁에 질려 주춤거렸다.

"두... 두억시니!"

"세상에, 두억시니가 넷이나...."

아무리 성속성이 도깨비들에 대해 상성 상 우위를 가지고 있다 해도, 4급의 힘은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니 한 목사, 아이린 수녀, 오상 스님 같은 강력한 성속성 수험자들도 사당역을 공략하는 데 쩔쩔맸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두억시니가, 하나도 아니고 셋이었다.

한 목사가 진아의 등 뒤에 대고 말했다.

"지, 진아 씨 조심...."

하지만 진아는 멈추지 않았다.

생명나무 제전에서 이무기가 된 해원향 같은 괴물마저 겪고 왔던 차다.

그에 비하면 두억시니 정도는 그야말로 잡몹에 불과했다.

세브로 랭커 윤진아, 그녀와 일반적인 최상위 수험자와의 격차가 그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는 뱀과 같은 교만을 끊임없이 물리쳤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 잡졸같은 두억시니들을 바라보면서, 그녀는 조금도 방심하지 않았다.

그녀의 앞길을 이끄시는 그분에 대한 믿음으로, 그녀는 두억시니들을 향해 나아갔다.

그녀의 발이 근정전을 오르는 돌계단에 닿았다.

그녀가 돌계단에 발을 올리자, 두억시니들이 비명에 가까운 포효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끄아아아악!"

분홍색 오오라에 새빨간 가죽이 벗겨져 날아가기 시작했지만 두억시니들은 멈추지 않았다.

자동차 정도는 우습게 부숴버릴 것 같은 거대한 근육 덩어리들이 진아의 몸을 부술 것처럼 짓쳐 들었다.

하지만 진아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진아가 두 손을 모았다.

이제는 그것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낙원의 수문장이 모든 것을 예비하는 분으로부터 하사받은 그것.

낙원에 발을 들이는 부정한 자를 모두 불태우는 그것을.

'낙원의 수문장'의 목소리가 그녀의 입을 통해 발화되었다.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겸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눈을 조용히 감았다 뜨고서, 진아는 두억시니들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땅바닥에 깔려 있던 불꽃으로부터 불꽃 줄기 하나가 석순처럼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녀가 조용히 불꽃을 움켜쥐자, 불꽃이 칼 모양으로 변했다.

낙원의 동쪽을 지키는 '지천사의 화염검'이었다.

[스킬 '지천사의 화염검'을 사용합니다.]

[부정한 것들이 그 불꽃 앞에 사그라질 것입니다.]

"아멘."

진아가 검을 움켜쥔 오른손으로 하늘에 호를 그렸다.

그러자 칼날이 지나간 궤적을 따라 분홍색 불꽃이 남았다.

"끄아아아악!"

코앞까지 다가온 두억시니들이 비명을 지르며 그녀를 향해 주먹을 뻗었다.

그 풍압에 그녀의 머릿결이 흩날렸다.

문 근처에 있던 수험자들이 안타까운 목소리로 외쳤다.

"진아 씨! 피해요!"

"안돼, 진아 씨!"

그 순간, 지천사의 화염검이 그렸던 궤적의 불꽃이 폭발했다.

따뜻한 불꽃의 장막이 진아를 주변으로 퍼져 나가 두억시니들을 집어삼켰다.

폭탄이 터지는 것 같은 굉음이 근정전 앞을 뒤덮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흙먼지가 가라앉았다.

두억시니들이 서 있던 자리에는, 바닥에 새까만 잿더미만이 남아 있었다.

4급 마물 두억시니라 해도, 최강의 성속성 수험자인 진아에게는 한낱 잡귀일 뿐이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녀는 조용히 근정전을 오르기 시작했다.

근정전을 오를수록 마기가 짙어졌다.

분명히 저 안에 마계의 핵이 있었다.

그녀는 돌계단을 모두 올라 근정전의 안을 바라보았다.

근정전의 허공을 떠도는 불덩이들이 실내를 비추고 있었다.

그 불덩이 안으로 저 멀리, 왕좌가 보였다.

그 왕좌의 위로 새빨간 촉수들이 덩굴처럼 자라면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 위, 촉수들의 뿌리에 심장처럼 생긴 거대한 살덩어리가 두쿵두쿵 움직이고 있었다.

저게 바로 마계의 핵이었다.

어느새 진아의 곁에 다가온 수험자들이 말했다.

"세상에... 엄청나군. 사당역에 있던 것의 다섯 배는 될 것 같아."

"진아 씨... 우리 저거 빨리 부수죠. 저게 마물들을 더 뱉어내기 전에...."

진아가 조용히 손을 들어 수험자들의 말을 끊었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저 왕좌에, 지금껏 보았던 것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흉흉한 것이 앉아 있었다.

진아가 기운을 뿜어내며 말했다.

"모두 물러서요."

그녀의 말에 수험자들이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그것이 몸을 일으켰다.

마기가 줄줄 흐르는 회색 갑옷이 온몸을 뒤덮고 있었다.

그것이 왕좌의 옆에 거꾸로 꽂혀 있던, 제 몸만큼이나 거대한 도끼를 가볍게 뽑아 올렸다.

그것이 펄쩍 뛰어올라 근정전 한가운데 착지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근정전 바닥이 진동했다.

그것이 휘척휘척 몸을 일으켰다.

'잠깐, 저거... 어디서 많이 본 모양인데?

그것이 목을 꺾듯 고개를 비틀며 괴상하게 웃었다.

"끄... 으으... 하하하하... 킹슬레이어의, 그레이트 엑스가, 피를, 갈구한다...."

그것이 도끼를 슬슬 끌며 진아를 향해 다가왔다.

'킹슬레이어의 그레이트 엑스? 설마....'

그녀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인물이 있었다.

'부월을 든 왕시해자'의 화신, 'SSS급 액스마스터' 박정수.

진아가 걱정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외쳤다.

"정수야? 정수니?"

다가오던 그것이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꺾었다.

그것이 잔뜩 쉰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암흑의 패왕...."

진아가 그것에게 다가서며 외쳤다.

"정신 차려 정수야!"

회색 투구 아래 그것의 눈동자가 시뻘겋게 빛났다.

"모른다.... 그런 이름."

진아는 직감했다.

저것은 마기에 잡아먹혀 마인이 되어버린 박정수였다.

'아니, 정수가 마인이 돼버렸다고? 언제?'

그때였다.

정수가 괴성을 지르며 진아를 향해 달려들었다.

"끄아아아악!"

마력이 가득 담긴 도끼가 진아의 정수리를 향해 쏟아졌다.

당황한 진아는 그저 멍하게 떨어지는 도끼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한 목사가 거구의 몸을 던져 정수를 감싸 안았다.

"조심해!"

우당탕하는 소리와 함께 한 목사와 정수가 바닥을 굴렀다.

"그으윽... 벌레 같은 게."

비척비척 일어선 정수가 한 목사를 집어던졌다.

“크억!”

슝 하고 날아간 한 목사가 근정전 문을 뚫고 밖으로 떨어졌다.

무시무시한 힘이었다.

도끼를 뽑아 든 박정수가 괴성을 지르며 진아에게 달려들었다.

"으아아악! 죽어!"

그사이 정수와 진아 사이에 끼어들었던 다른 수험자들마저 볼링핀이 쓰러지듯 튕겨 나가버렸다.

"안 돼!"

진아가 '지천사의 화염검'을 뽑아내 정수에게 맞섰다.

분홍빛 화염검과 새까만 도끼가 부딪치며 폭풍과 함께 굉음이 났다.

쾅!

그 무시무시한 압력에 진아는 무릎을 꿇을 뻔했다.

"끄윽!"

진아가 침을 삼켰다.

'아무리... 마인이 되면 강해진다고 하지만... 이 정도는....'

심호흡을 하고, 진아는 단전에서부터 수호신의 힘을 끌어 올렸다.

명치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불길이 차오르고 있었다.

두근대는 심장이 사지 끝까지 열기를 보냈고, 거센 맥박이 고동칠 때마다 불꽃의 칼날도 짙어졌다.

"정신 차려!"

진아는 도끼를 쳐내고 나서 정수의 머리통을 향해 칼을 내리꽂았다.

쩍 소리와 함께 정수의 머리통을 감싸고 있던 회색 투구가 양쪽으로 쪼개졌다.

그리고 드러난 얼굴은 역시나 박정수가 맞았다.

얼마나 마기를 들이마신 건지 눈은 눈동자가 없이 완전히 새빨개져 있었고 코와 입에서는 연신 짙은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얼굴은 자잘한 생채기로 가득했다.

정수가 고개를 뒤틀고 웃었다.

"끄끄끄끄...."

진아가 큰 숨을 내쉬었다.

'이 자는 이제... 더 이상 정수가 아니다....'

진아가 두 눈을 부릅뜨고 물었다.

"정수는 어디에 있지?"

그러자 그것이 대답했다.

"이 안에... 우리와 함께."

악마에 씌어도 단단히 씌었구나.

진아가 강렬한 불꽃을 뽑아내며 외쳤다.

"흥! 그분의 힘이 너를 몰아내리라!"

그것이 다시 기괴하게 웃었다.

"큭큭큭큭...."

정수가 도끼를 질질 끌며 진아에게 다가왔다.

"보인다, 암캐 같은 년. 머릿속에 온통 그 군바리 놈 생각뿐이구나."

'뭐?'

우뚝, 진아의 몸이 굳었다.

그사이 슬금슬금 다가온 정수가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 불경한 음성은 귀가 아니라 마음을 통해 그녀의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그 소리가 그녀의 머릿속을 헤집고 있었다.

문혁의 시원한 웃음과 팔뚝에 솟아오른 핏줄 그리고 단단한 가슴팍....

- 뭐 하는 거냐!

'낙원의 수문장'의 음성이 천둥처럼 울렸다.

"이런...!"

그녀가 퍼뜩 정신을 차렸을 때는, 악마에 씌인 박정수가 그녀를 향해 도끼를 휘두르고 있는 차였다.

진아는 얼른 칼을 세워 도끼를 막았다.

어깨뼈가 부서지는 것 같은 느낌에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악!"

낄낄대며 물러난 박정수가 도끼를 마구 휘둘렀다.

도끼를 막을 때마다 그녀의 몸이 이리저리 휘청였다.

팔에 감각이 사라졌고 온몸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아... 안 돼....'

그때, 그녀의 머릿속에 새로운 음성이 들렸다.

- 도와줄까?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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