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6화. 올림포스의 침공 (3)
보고를 받은 문혁은 즉시 오토바이를 타고 광화문으로 향했다.
광화문 일대가 마계화가 된다는 건 그만큼 심각한 사안이기 때문이었다.
마계화란 특정 장소가 마신 '세상 끝의 불꽃'의 영토인 '지옥'처럼 변하는 현상을 일컬었다.
마계화된 곳에서는 마물이 출몰하는 빈도와 나타나는 마물의 급수도 높아졌다.
게다가 곰팡이처럼 서서히 주변을 잠식하기까지 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마계화 현상이 그 장소의 중심에 있는 '마계화의 핵'을 파괴하면 중단된다는 것이었다.
그대로 두면 손쓸 수 없는 지경이 되기 때문에, 초기에 대응하는 게 중요했다.
따라붙는 마물들의 추격을 따돌리고, 문혁은 오토바이를 몰아 광화문 사거리에 닿았다.
벌써 공기부터가 달랐다.
공기 중에 매캐한 유황 냄새가 섞여 있었다.
문혁은 수건으로 코를 막았다.
"큽."
게다가 광화문 사거리 주변은 여름밤인 걸 감안해도 이상할 정도로 더웠다.
이마를 따라 주르륵 흐르는 땀을 닦으며 문혁은 오토바이에서 내려 광화문 광장으로 진입했다.
때아닌 바람에 붉은빛을 띤 먼지가 흩날렸다.
문혁은 한쪽 무릎을 꿇고 지면에 손을 대보았다.
돌바닥에서 여름의 열기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은은한 온기가 느껴졌다.
손바닥을 들어보니 시뻘건 먼지가 묻어 있었다.
먼지에서 강렬한 유황 냄새가 났다.
하늘에는 새까만 먹구름이 별빛을 삼키며 꿈틀대고 있었다.
"맞군."
문혁이 미간을 찡그렸다.
모든 현상들이, 광화문 일대의 마계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문혁의 머릿속에 얼마 전 서울역 수험자들의 기록에서 보았던 사당역 일대의 마계화 현상이 스쳐 갔다.
하필 그 사건은 서울역의 여섯 수험자가 생명나무 제전에 참여하기 위해 자리를 비운 동안 일어났다.
수험자들의 대응이 늦어, 마계화의 핵이 있었던 사당역은 5급 마물까지 출몰하는 악마 소굴이 되어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사당역을 소탕하기 위해 상당한 수의 수험자를 투입해야 했던 일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었다.
다행히 탈락한 수험자는 없었지만 꽤 많은 수험자들이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고 했다.
'이번에도 그럴 수는 없지. 내가 서울역을 지휘하는 이상 그런 일이 발생하게 둘 수는 없다.'
문혁은 몸을 일으켜 광장 주변을 살펴보았다.
분명 어딘가 핵이 있을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사거리에서 북쪽으로 갈수록 땅의 붉은 기가 짙어지는 게 보였다.
활을 뽑아 시위에 화살을 메긴 채로 문혁은 북쪽으로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해안선의 귀신'의 외침이 들렸다.
- 조심해라!
문혁은 본능적으로 몸을 던졌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 문혁이 서 있던 자리로 시뻘건 불덩이가 열기와 함께 매캐한 유황 냄새를 남기고 지나갔다.
몸을 굴려 불덩이를 피한 문혁은 곧바로 자세를 갖추고 불덩이가 날아온 방향으로 화살을 쏘았다.
핏
화살이 바람을 가르고 날아가자 비명 소리가 들렸다.
"끄억!"
문혁은 화살이 날아간 방향을 노려보았다.
성인 남성과 비슷하게 생긴 마물, 도깨비 족속의 2급 마물 이매가 미간에 화살이 박힌 채로 쓰러져 있었다.
방금 문혁을 스쳐 간 불덩이는 이매의 스킬 '유황불 화살'이었던 것이다.
그때 째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무의 자식!"
"나무의 자식이다! 살려두지 마라!"
광장 저편에서 이매 일곱 마리가 우루루 나타났다.
문혁은 인상을 찌푸렸다.
'1급도 없이 2급들이 이렇게 몰려다니는 게 흔한 일은 아닌데...?'
마계화가 상당히 진행됐다는 뜻이었다.
이매들이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며 유황불 화살을 던져댔다.
문혁은 재빨리 몸을 굴려 유황불 화살을 피한 후 침착하게 화살을 쏘았다.
핏, 핏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 화살이 이매의 미간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이매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끄어어억."
일곱 마리의 이매를 처리하는 데 단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커다란 짐승이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광장의 북쪽에서 집채만 한 개들이 문혁을 향해 어슬렁어슬렁 기어오고 있었다.
3급 마물 '지옥의 번견'이었다.
놈들의 살벌한 이빨 사이로 마기를 담은 침이 줄줄 흘러내렸다.
게다가 그 수가 한둘도 아닌, 무려 여섯이었다.
3급 마물 여섯 마리, 보통 수험자라면 그 위세에 짓눌려 다리가 풀려버릴 법한 광경이었다.
문혁이 인상을 쓰며 중얼거렸다.
"여섯... 여섯이라."
'던전도 아닌 이곳에, 두세 마리 몰려다니는 걸 보기도 힘든 3급 마물 여섯이 붙어 다닌다고?'
놈들을 처리하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저놈들이 끝이 아닐 게 분명했다.
놈들을 처리하고 나면 4급 마물이 나타날 것이다.
게다가 사당역에서 그랬던 것처럼 핵 주변엔 5급 마물이 도사리고 있을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급한 일은 마계화의 핵을 부수는 것.
3급 몇 마리 처리하는 건 그것에 비하면 선택 사항에 불과했다.
그리고 문혁은 그런 선택 사항에 시간을 할애할 만큼 한가하지 않았다.
얼른 돌아가 성역의 성(聖)속성 수험자들을 재빨리 투입해서 마계화의 핵을 부수고 근처를 소탕하는 게 최적의 전략이었다.
'돌아가야겠다.'
저 곰보다도 커다란 맹견들은, 등을 보이면 그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바람처럼 달려와 목을 물어뜯으려 들 것이다.
다가오는 번견들을 주시하며 활을 겨눈 채로, 문혁은 오토바이가 있는 곳까지 주춤주춤 물러났다.
뒷발에 오토바이의 단단한 바퀴가 닿았다.
문혁은 재빨리 오토바이에 올라타 서울역으로 돌아가는 도로를 탔다.
문혁의 뒤로 번견들이 짖는 소리가 멀어졌다.
* * *
다시 서울역의 중앙지휘본부.
여러 명의 수험자들이 중앙의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평소에 중앙지휘본부에 집결하던 사람들과는 구성이 달랐다.
대부분이 승려, 신부, 수녀 등 종교인 출신으로 구성된, 이들이 바로 서울역의 성속성 수험자들이었다.
웬만한 성역에는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 성속성 수험자를, 성역 서울역은 이렇게 부대 단위로 운용할 수 있었다.
이것 역시도 긴 시각에서 수험자들의 육성을 계획하고 실행했던 상원의 덕이었다.
문혁이 죽 늘어앉은 수험자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조상원. 당신이란 사람은....'
수녀복을 입은 수험자가 하품을 하며 말했다.
"어우... 새벽 두 시인데... 급한 일인가요?"
"급한 일이겠죠. 웬만한 일로 문혁 씨가 이 시간에 우리를 부를 리가 없죠."
남자의 말에 단호하게 대답한 진아가 굳은 얼굴로 상석에 앉은 문혁을 보았다.
그녀의 표정이 한없이 진지했다.
문혁은 그녀의 얼굴을 보며 작은 숨을 뱉었다.
이제 고작 이십 대 중반, 게다가 나이에 비해 어려 보이는 얼굴.
그런 그녀에게 막중한 임무를 부여해야 한다는 게 답답해서였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진아가 나서지 않는다면 광화문 근처 어딘가에 있을 핵을 늦기 전에 제거하지 못할 테니.
"네, 급한 일입니다."
수험자들이 졸린 눈을 비비며 문혁을 보았다.
"광화문 광장에서 마계화 현상이 포착됐습니다."
그 말에 수험자들이 눈을 번쩍 떴다.
가사(袈裟)를 입은 수험자가 물었다.
"확실한가요?"
"네 확실합니다. 방금 직접 확인하고 왔습니다. 이걸 보십시오."
문혁이 사람들을 향해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문혁의 손바닥에는 광화문 광장에서 묻혀 온 시뻘건 흙이 남아 있었다.
흙에 흐르는 마기 때문에 손바닥이 쓰려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을 닦지 않은 건 이 흙은 수험자들에게 직접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문혁이 손바닥을 펼치자 지휘본부 안에 유황 냄새가 훅 풍겼다.
갑작스런 냄새에 사람들이 코를 움켜쥐었다.
"흡."
백발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혁의 손바닥을 만졌다.
노인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확실하군. 마계의 흙이야."
노인의 말에 다른 수험자들의 얼굴도 굳었다.
수녀복을 입은 수험자가 묵주를 돌리며 기도를 올렸다.
가사 차림의 수험자가 민머리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
"이런 육시럴... 사당역에서 그 고생을 한 게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노인이 물었다.
"핵은... 핵은 어디에 있는가?"
문혁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찾지 못했습니다."
놀란 얼굴로 입을 벌리고 있는 수험자들에게 문혁이 덧붙였다.
"1급 없이 단독으로 돌아다니는 2급이 일곱 개체, 3급이 여섯 개체가 포착됐습니다. 광장이 완전히 마계의 흙으로 덮인 게 아니었는데도요."
"그래, 도저히 자네 혼자 핵을 찾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구만."
노인의 말에 문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사 차림의 수험자가 말했다.
"이런... 사당역도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러면 핵에 가면 5급이 여럿 있을 수도 있겠는데?"
수녀복 차림의 수험자가 덧붙였다.
"그것도 핵을 빨리 찾았을 때 얘기입니다. 광화문 근처의 그 수많은 건물들 중에 핵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다른 수험자들도 저마다 한마디씩 덧붙였다.
그래, 이러리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이 상황을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가 무슨 말을 할지도 문혁은 예상하고 있었다.
진아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방 안의 모든 수험자들이 진아의 얼굴을 보았다.
"2급이 몇이든 3급이 몇이든, 핵 근처에 5급이 얼마나 있든 문제없어요. 건물이 많은 것도 상관없어요. 그냥, 마기가 짙은 곳으로 찾아 들어가면 돼요."
그녀의 말은 사실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건 문혁 자신이었다.
상원이 서울역 수험자 개개인의 대외 활약을 최대한 숨겨서 많이 알려져있지 않을 뿐, 윤진아는 명실상부한 성속성 최강의 수험자였다.
랭킹 11계단 차이였던 '드높은 발키리'와의 격차도 현격했다.
'그렇지만....'
천진하기까지 한 그녀의 말에 수험자들이 혀를 내둘렀다.
수녀복 차림의 수험자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진아 씨가 함께 해주시면 저희는 걱정할 게 없죠."
가사 차림의 수험자도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 맞아 맞아. 생각해보니까 사당역 공략할 땐 진아 씨가 없었지? 진아 씨가 함께면 하루 안에 가능하지!"
노인이 인자한 얼굴로 덧붙였다.
"허허허, 동트기 전에도 가능하겠네."
다른 수험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진아를 보고 있었다.
고작 스물다섯 살인 그녀를.
진아가 밝게 웃으며 일어섰다.
"그럼요, 하룻밤이면 충분하죠. 자 가요 여러분. 다들 짐 챙기셔서 광장에서 만나요."
"네, 진아 씨."
다른 수험자들도 진아를 따라 일어섰다.
그렇게 수험자들이 하나둘 중앙지휘본부를 나가고, 방 안에는 문혁과 진아 둘만이 남게 되었다.
문혁은 여자치고도 조그만 그녀를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방문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어깨가 어쩐지 더 좁아 보였다.
문혁은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 성역에는 진아보다 어린 수험자도, 진아보다 작은 수험자도 많다.
그런데 유독 진아는 왜 이렇게, 마음에 걸리는 걸까?
진아가 문혁을 향해 돌아서서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너무 걱정하지마 오빠. 별거 아냐."
문혁은 그렇게 너무 나서지는 말라고 얘기하고 싶었다.
"진아야... 그렇게 너무."
문혁은 말을 멈췄다.
진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응, 뭐야? 왜?"
그녀의 이마에 커다란 낙인이 나타나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